설교자료/창세기

[창23:1] 막벨라 굴을 산 아브라함

'코이네' 2016. 3. 13. 00:45

막벨라 굴을 산 아브라함

 

(창 23:1-20)

 

“(창23: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4절)

 

오늘은 아브라함의 동역자인 사라가 향년 127세의 나이로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죽었습니다. 이 때까지 자기 소유의 땅이 없었던 아브라함은 헷족속으로부터 막벨라 굴을 사서 자기 소유 매장지로 삼고 사라를 거기 장사지내게 됩니다. 본문을 통하여 약속의 땅에 동역자를 묻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Ⅰ. 사라의 매장지를 구하는 아브라함(1-6)

 

사라가 127세를 살고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죽었습니다. 헤브론은 기럇아르바라고도 하는데 교제(fellowship)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이 헤브론이라는 땅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눈 땅입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땅을 양보하고 연약해 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 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縱)과 횡(橫)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은 땅과 자식을 줄 약속을 하십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거기서 하나님께 단을 쌓았습니다. 바로 이런 곳이 헤브론입니다.(13:14-18)

사라는 바로 이런 유서 깊은 곳에서 죽었습니다. 이렇게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의 슬픔은 어떠합니까?

2절 하반부를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했다고 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유일한 동역자였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을 지아비로 모시고 주(主)라 부르면서 62년을 동역하며 살다가 죽었습니다. 요사이 여인들은 남편 알기를 이상하게 압니다. 자기 남편을 부를 때 이름을 부릅니다. “동규씨”, “자기” 아니면 “보이소”하고 부릅니다.

그러나 사라는 남편을 주(主)라 부르고 남편에게 순복하므로 선을 행하고 자기를 단장하였느니라고 베드로전서 3:5-6에서 밝혀 줍니다. 죽을 때까지 한 평의 땅이 있거나 내 집 한 채가 없어도 불평하지 않고 동역하다 하나님 나라에 갔습니다. 한마디 불평이 없이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이방 땅에 살면서 남편이 가자는 데로 따라 갔습니다. 이렇게 다니다 사라가 너무너무 잘 생기고 빼어난 미인이라서 자기 아내 때문에 아브라함은 죽을까 봐 사라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20:13)하면 행여나 남편이 다칠세라 “오빠”, “오빠”부르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진짜로 두 번이나-한 번은 바로왕에게, 한 번은 아비멜렉왕에게 숙청 들러 갔습니다. 거기 가서도 아브라함을 “오빠”라고 남편이 시키는 데로 했습니다.

늙기까지 자식이 없자 죄스런 맘이 있어서 몸종 하갈을 들여보내서 자식을 얻도록 하는-항상 당신(아브라함) 좋도록 하는 사라였습니다. 65세에 부름을 받아 고향을 떠나 이곳 저곳 이사해 가며 나그네로 62년을 같이 살다가 127세에 소천하였습니다.

한 번은 손님이 오자 가루 세아로 떡을 만들고 음식을 만들어서 길손을 잘 대접하였더니 아들을 낳게 된다는 하나님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게 살다가 이제는 이삭까지 낳아서 며느리 볼 때가 됐는데 하나님이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에 갔습니다.

또 당시 이삭의 나이는 37세였으며 아직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 있어서 사라의 죽음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큰 슬픔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슬퍼하며 애통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계속 슬퍼하며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그 때까지도 땅 한 평도 소유하지 못하고 나그네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사라를 장사지낼 장지를 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울음을 그치고 시체 앞에서 일어나 헷족속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이방인입니다.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파시오 그러면 내가 거기 장사를 하겠소”(4절)라고 했습니다.

이상의 말씀을 볼 때 아브라함은 사라를 약속의 땅 가나안에다 묻고자 결단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양 사람들은 고향 땅에 대한 애착심이 강합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대로 고향에 돌아가려고 하고 고향 땅에 묻히려 합니다. 객지에서 죽으면 객사 혹은 횡사라고 해서 아주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반드시 고향 땅에 묻히는 것이 동양인들의 바램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은 어떠합니까? 사랑하는 아내의 시체를 이국(異國) 객지에 묻고자 합니다. 고향에서 2,000리나 떨어진 가나안 땅에 묻고자 했습니다. 그것도 한 평 땅도 소유하지 못한 땅에 묻고자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1) 첫째; 이 땅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약속의 땅에 아내를 묻고자 했습니다.

2) 둘째; 하나님이 그 땅을 그 후손들에게 주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 땅은 가나안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후손들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땅을 믿음으로 소유한 것으로 여기고 그 땅에다 묘를 쓰기로 했습니다

독일에 대학생 성경읽기회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있습니다. 이 선교회는 대학생 선교를 위해 있습니다. 작년에 최종근 형제가 독일 본(Bonn)대학을 중심한 선교사님 집에 가서 선교 훈련을 받고 왔습니다. 한 번은 그 선교사님이 최종근 형제를 데리고 어디로 어디로 데리고 가더니 거기에 서서 “막벨라 굴입니다.”하시더랍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었는데 이제서야 알겠다는 것입니다. 이 독일 땅을 주신다는 믿음에서 그랬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3) 셋째;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를 가리켜 나그네(stranger)요 우거하는 자(sojourner)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거룩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 인생철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다고 해서 가나안 땅에 그의 소망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더 나은 본향(本鄕)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였습니다.(히 11:14-16)

아브라함은 사라를 매장할 땅을 허락해 달라고 헷족속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아브라함은 ‘내 주(主)여!’하며 ① 주(主)로 칭하며, ②당신은 우리 중의 방백이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백(왕)이라고 높이며 오히려 그냥 그 땅을 차지하라고 했습니다. 헷족속은 아브라함에게 ‘내 주여!’라고 6,11,15절에 계속 이렇게 부릅니다.

헷족속에게는 이방인인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주(主)라고 존경을 받고 하나님의 방백(왕)이라고 높임을 받는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그 신앙이 인정받았음을 발해 줍니다.

5,6절을 보면 헷족속이 아브라함에게 크게 호의를 베풀고자 합니다. 우리의 묘실 중에서 가장 좋은 곳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십시오.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다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지낸다고 해서 금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좋은 데로 좋은 곳을 골라서 장사하도록 하십시오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아브라함은 이방 땅에 살면서도 철저하게 믿음으로 살고 이웃에게 존경과 인정을 받고 살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교회서 인정받기보다 사회와 이웃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Ⅱ. 막벨라 굴을 산 아브라함

 

헷족속이 아브라함에게 호의를 베풀려고 해도 아브라함은 몸을 땅에 굽히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몸을 땅에 굽히는 것은 겸손을 말합니다(7).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부탁하여 막벨라 굴을 내게 주되 준가를 받고 내게 주어서 우리 가족의 매장지가 되도록 해 달라’고 했습니다. 준가를 받고 우리 가족들의 선영(先塋)이 되게 해 달라 했습니다.

이 때 마침 헤브론이 헷족속이 모인 중에 앉아 있는데 아브라함의 말을 듣고는 성문에 모인 자 중에서 일어나서 아주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

“내가 그 밭을 당신께 드리고, 그 밭에 있는 굴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내 주여! 내가 동족 앞에서 당신께 거져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례 지내십시오(10-11)”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에 대하여 또 몸을 굽히고 백성이 듣는데서 에브론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돈을 받으시고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게 해 주시오”라고 했습니다.(12,17)

다시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그 밭 값이 은 400세겔쯤은 됩니다만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흥정하여 사고 팔고 하리이까 어찌 교계하리이까 그만 좋은 자리 당신이 보아서 좋다 싶으면 거기다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그 밭은 거져 드리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14,15)

그러나 아브라함은 에브론이 헷족속이 듣는데서 말한 대로 은 400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고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밭과 그 속의 굴과 사방에 둘린 수목(樹木)을 다 헷족속이 보는 앞에서 사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했습니다.(16,17) 이렇게 소유로 하고 막벨라 굴에 사라를 장사하였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그냥 주겠다고 하는 땅을 구태여 막대한 돈을 지불하고 산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도 헷족속이 진심으로 내 주여!(6,11,15)하며, 당신은 우리 중 방백입니다 하며 그저 주려고 해도 아브라함은 준가를 주고 샀습니다. 헷 사람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아브라함이 사서 소유지로 삼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헷족속 에브론의 호의를 거절하고 기어코 막대한 돈을 주고 산 이유는 무엇입니까?

① 아브라함이 그 땅을 그저 받았다고 하면 아브라함의 후손은 헷족속에게 영원히 빚진 자로 살았을 것입니다.

② 또 돈으로 사지 않았다면 상속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후손에게 상속하기 위해서 돈주고 산 것입니다.

③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셨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 그 땅을 샀습니다. 즉 싸인(Sign)을 남기기 위해서 샀습니다.

④ 이 막벨라의 땅을 준가를 주고 사지 않으면 에브론이 살았을 때는 괜찮으나 죽고 나면 내놔라 할 수 있으니 보는데서 공개적으로 산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기어코 매장지를 값주고 산 것은 그것을 분명한 자기 소유의 땅으로 정하고자 함이기도 했습니다. 막벨라 굴이 있는 땅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처음으로 갖게 된 아주 작은 자기 소유의 땅이었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당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비해서는 보잘 것 없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이 묻혔고 사라와 리브가가 묻혔고 요셉도 이곳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즉 막벨라 굴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고향이 되었고 나중에 온 가나안 땅을 얻는데 있어서 기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손들은 이 조상의 무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믿음의 표시로 가나안 땅에 사라를 장사 지내고자 하는데 남의 땅을 무작정 호의로 받아 묘를 쓸 수는 없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존경받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무작정 호의로 받는 것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23장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관문 교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의 땅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정복한 땅은 너무도 적습니다. 그러나 장차는 하나님이 온 대구를 주실 줄 믿고 현재는 억지로라도 〈막벨라〉를 준가를 주고 사야 합니다. 내가 아브라함처럼 이만할 때,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을 때 막벨라를 사 둡시다. 이것이 전 가나안 땅을 얻는데 기초가 될 것입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