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창세기

[창23:15]미래를 사는 사람

'코이네' 2016. 3. 13. 00:49

 

미래를 사(買)는 사람

 

- 아브라함의 소유 매장지 -

 

창세기 23:15-20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든, 마음속에 가득찬 슬픔을 울어 버리라. 그 슬픈 감정은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다'라고 립맨(Lipman)은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슬픔에 사로 잡혀 마비되어서는 안된다. 슬퍼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슬픔이 지나쳐서도 안된다. 우리에겐 과거도 있지만 장래라고 하는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고 요수아(Yosua)는 말한바 있습니다.

저 위대한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의 사랑하는 아내 사라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며 애통하였습니다(창23:2). 그녀는 127세의 향년을 기록하고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여성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녀는 남편 아브라함과 함께 갈대아우르의 문화를 등지고, 길고도 긴 모험의 길에 동참하였습니다. 그 남편 아브라함의 따뜻한 반려자로서 가나안의 불안정스러운 나그네 생활을 감수하였습니다. 유목인의 아내로서 장막에 거하면서 기쁨과 슬픔의 인생 여정을 함께 하였습니다.

그에게 있었던 무자(無子)의 슬픔 때문에 질투의 골짜기를 걸었는가 하면, 죽은 자와 방불한 그가 믿음으로 적자(適者) 이삭을 잉태하는 힘을 얻어 하나님의 약속에 응답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숨진 사라의 곁에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고 애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그가 머물고 있던 헷족속 중 막벨라 굴의 소유자 에브론에게 은 400세겔의 준가를 지불하고 그 밭을 샀습니다.

그 후에 아브라함은 헷족속 앞에서 공중 증거로 그 밭과 수목과 굴을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했다(23:8)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사랑하는 그의 아내 사라를 장사 지냈습니다. 다시 성경은 말하기를 [이와 같이 그 밭과 그 속의 굴을 헷족속이 아브라함의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23:20)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소유 매장지'라고 하는 말에 유의하기를 원합니다. 그는 미래를 매수한 사람이었습니다.

 

Ⅰ.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가 샀습니다.

 

창세기 23장 4절에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헷족속인들에게 아브라함의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말입니다.

'나그네'란 낯선 땅에서 고정된 거주지나, 부동산이 없이 잠깐 머물다가 떠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거자]란 임시 거주지는 있지만 토지를 소유하고 영주하는 사람이 아닌 자를 뜻합니다. 이것은 본질적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이 세상 처신관(處身觀)이었습니다. 그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란 이 두 가지 표현으로 이 세상에서 자신이 영주할 자가 아님을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8절로 10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며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에서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요, 잠시 머무는 우거자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매장지를 돈을 주고 사서 자기의 소유지로 삼았습니다.

 

Ⅱ. 준가를 주고 샀습니다

창세기 23장 4절 중에 [...청컨대 당신들 중에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헷족속인들은 '하나님의 방백'이신 당신께 우리가 거저 죽은 자의 묘실을 드리겠다는 호의를 베풀었습니다(23:6).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 몸을 굽혀 절을 하고(23:7, 12) 기어이 값을 주고 사라의 매장지를 사겠다고 강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침내 그 밭과 막벨라 굴의 소유주이신 에브론과 은 400세겔의 준가를 주고, 공증 거래의 합법적 절차를 통하여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바꾸어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 아브라함의 소유로 삼았습니다.

 

Ⅲ. 사라가 묻힐 매장지로 샀습니다.

 

창세기 23장 19절에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마므레를 곧 헤브론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의 죽음을 장사하는 일은 엄숙하였습니다. 아마 인간이 만난 죽음이란 슬픔을 죽은 이의 이름이라도 남겨 영세불망(永世不忘)케 하고, 그 기억을 자손만대에 전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릅니다. 고대 애굽의 피라미드(금자탑)가 그 좋은 한 예가 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사랑하는 아내 사라를 위하여 큰 금자탑은 못세웠으나, 그래도 그의 시체라도 자기의 소유지에 묻어 두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소유 매장지는 다름 아닌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 사라의 시체를 묻는 매장지가 되었습니다.

 

IV. 현대적 교훈

 

아브라함이 헷족속인 에브론의 밭을 은 400세겔이라고 하는 준가를 주고 그것을 사서 자기의 소유 매장지로 정했다는 이 성경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첫째, 직접적 의미는 죽은 아내 사라의 시신을 장사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한평생 나그네의 아내로, 우거하는 자의 아내로 살았던 사라의 시신을 남의 땀에 묻어놓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유한의 인생길 마지막을 떠난 사라에게, 자기의 소유지, 남편 아브라함의 땅에 뭍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경은 「아브라함의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23:20)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한한 인생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아브라함의 신앙적 행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을 불러 여기 가나안 땅으로 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에게 약속하기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400년동안 그들을 섬기다가, 그후에야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이곳으로 다시 나오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창 15:13-16).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후손)들에게, 현재 아브라함이 나그네로, 우거하는 자로 머물고 있는 이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아브라함은 그로부터 400년 세월이 지난 다음에 그의 후손들이 자기가 머물고 있는 그곳에 와서 살 것을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아브라함도 그 땅에 자신이 주인이 아닌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곳 헷족속들에게 몸을 굽히고 절을 하면서 자신은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약속하신 약속을 내다보면서, 그 약속이 성취되는 날을 믿는 믿음의 표식으로 그 밭을 돈주고 사들여 아브라함의 소유로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 400세겔을 주고 그 밭을 사서 자기의 소유지로 확증하는 아브라함의 행위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는 신앙고백의 표식이요, 표현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결코 단순한 물물거래나, 재산 증식의 수단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는 신앙고백의 행위이고 표현입니다.

아브라함과 비슷한 경우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영감을 받고 예언하기를 장차, 이 땅은 바벨론에 의해서 침략을 받게 될 것이고, 유다는 70년간 바벨론에 포로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70년 후에는 하나님의 권고로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 오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놀라 버린 그의 사촌이 자신의 땅을 팔아야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예레미야에게 팔겠다고 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그 땅을 값주고 사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돈을 주고 현실에 급급한 사촌의 땅을 샀습니다. 이러한 예언자의 행위는 결코 재산 증식을 위한 스단이 아니였습니다. 그것은 70년 후에 다시 되돌아 올 수 있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예레미야의 확신을 나타내기 위한 표징적 수단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저들은 믿음으로 미래를 사들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확신하는 믿음의 행위를 이런 방법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셋째, 후손들에게 약속의 땅을 대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준가를 주고 사서 자기의 소유 매장지로 사용하겠다고 헷사람에게 두 번씩이나 반복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막벨라 굴의 무비(無比)의 가치가 있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실상 가격으로 환산을 할 수 없는 고상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받을 그의 후손들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약속의 땅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후손들이 그로부터 그 땅을 물려받기까지는 아직 400년이라고 하는 기나긴 세월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어간에 그의 후손들을 이방에서 객이 되는 파란만장의 연단을 받게 될 것(창 15:13-14)이고 하였습니다. 그 어간에 그 후손들은 하나님의 연약을 잊어버릴 우려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자신은 죽을 때까지 가나안 땅을 끝까지 소유하지 못했던 나그네요, 우거자였습니다. 그는 그것을 믿음으로 멀리 서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인과 나그네라 증거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미래를 내다보고 생각하고, 미래를 위하여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만의 삶이 아닌 거룩한 후손들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그는 오늘에만 살지 않고 내일에서 살고, 내일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의 번영과 땅의 약속과, 복의 근원이 될 약속을 반복해서 받았습니다(창 12:1-3, 13:14-17, 14:21-15:1-5, 17:1-14, 22:16-18). 아브라함은 이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마므레 산지를(헤브론) 돈주고 사서 자기 소유로 만들고, 그의 아내 사라를 묻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단순한 매장지로 끝나 버린 것이 아니였습니다. 바로 그곳을 선민 기업의 상징으로 남겨 놓고 말았습니다. 그는 오늘을 살면서 내일의 미래적 작업을 할 줄 알았던 선견의 사람이요, 선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므로서 다음 세대를 걸어올 후손들에게 이 땅에 대한 동경심과 애착심과 열망심을 심어 주고 싶었습니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의 이같은 꿈을 때가 올 때 대를 이어 계승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아브라함 자신이 여기에 묻혔습니다(창 25:7-10). 그 아들 이삭이 여기에 묻히고(창 35:27-29) 이삭의 아내 리브가와 야곱의 아내 레아도 여기 묻혔습니다(창 49:31).

다음 세대를 살았던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그의 임종을 날에 두고 자기의 장지를 이곳으로 정할 것을 자식들에게 유언까지 하였습니다. 그렇게 장사할 이유를 설명해 주기를 내 할아버지 아브

라함이 헷족속에게 돈주고 사서 우리의 소유지로 삼은 곳이기 때문이라고까지 설명했습니다(창 43:32, 54:12-13). 그래서 그의 아들들은 그의 시신을 애굽에서 가나안 막벨라 굴에까지 옮겨와서 안장했습니다.

놀랍게도 후에 많은 세월이 지난 그 다음 애굽의 총리 요셉도 부명(父命)을 쫓아 그 자손들에게 언젠가 하나님의 권고를 받아 애굽을 떠날 때, 내 해골을 내어다가 조상의 땅에 장사하라고 유언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 유언을 쫓아 가나안 땅으로 그의 해골을 매고 나온바 있습니다(창 54:24-25). 정말 멋지고 멋진 거룩한 역사의 계승이 아니었던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세상에 와서 산다고 하는 것은 실로 잠깐동안입니다. 성경은 밤의 한 경점과 같이 짧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받은 짧은 인생 여로는 사라져 버리거나, 없어져 버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심었든지, 심은 그대로 거두는 영생적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삶이 값지고 귀중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미래를 사(買)놓고 갔던 사람입니다. 바로 그곳이 선민 부활 소망의 고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나그네요, 우거자로 살면서 미래를 믿음으로 사 놓고 갔습니다. 그것은 자신께 그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고백의 표시였습니다. 그리고 자손들의 기업지를 확신하는 미래적 소망의 직업이었습니다.

바로 그 땅이 하나님이 전개하시는 구속역사 경륜의 중심지가 되었고, 마침내 때가 올 때 인류의 구세주 예수께서 죄인 구속 사역을 성취하신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땅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세대, 모든 공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지가 되고, 마음의 고향처럼 되어 버릴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오늘의 경향인들은 미래를 사(買)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신학교운동, 세계선교운동, 새성전 신축 운동, 학원복음화 운동이야말로 값진 믿음으로, 21세기를 매수(사들임)하는 준비 운동이 되는 것입니다.

21세기는 주님의 세기입니다.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끝 날이 오고야 말 종말론적인 복음의 세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받은 새성전 신축 역사(役事)는 미래를 매수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 성공적인 삶을 사는 자인가? 믿음으로 미래를 매수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복받은 자인가? 믿음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위대한 비전을 주었습니다. 우리 모두 미래(내일)를 매수하는 신앙의 용사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에서 내일을 향하는 선진의 용사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