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창세기

[창2:9] 아담은 왜 생명과를 먹지 않았을까?

'코이네' 2016. 3. 12. 21:19

아담은 왜 생명과를 먹지 않았을까?

창2:9

 

나는 가끔 나의 아내에게 끌려서 Price Club 에 가요. 이 가게는 요즘같은 여름철엔 수박을 산 처럼 쌓아놓고 동네사람들을 왕창 끌어모으는 전 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우리 여왕님 각하께서도 이 유혹에 그만 속아서 싸고 맛있는 수박미끼에 걸려 다른 물건까지 팔아주면서 황금같은 돈을 왕창 바 치는 짓을 곧잘 해요. 하지만 우리의 각하의 수박 을 고르는 관찰력, 투시력, 분석력은 아주 경이롭 다. 그 많은 수박이 몽땅 다 맛있는 건 아닐텐데 이거 저거를 손으로 두드려 보고 들었다 놨다 해 가면서 아주 정확하게 맛있는걸 골라낸단 말이 지... 그래서 우리 처형은 수박 사는걸 꼭 우리 여 왕님께 의뢰한다구요... 수박을 잘 고르는 여자는 영감도 잘 고른다는 기분학적인 통계가 있다고 들 었는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직 쓸만한 힘이 남아있음을 과시하는 기회를 부여해 주는 각하의 명령이 떨아지자 마자 찍소리 하나 않하고 무거운 수박을 척척 옮겨놓고 그 대가로 수박을 얻어먹는 이 충실한 영감, 얼마나 잘 고른 거냐...!? 이 얘기 를 했더니 어떤 친구가 그러데... 그럼 수박이 맛 있는 거냐, 아니면 영감이 맛있는 거냐...?

 

맛있는 수박을 고르는 기준은 뭐냐? 나는 거 잘 모르겠더라구, 통통 울리는 소리가 틱틱거리지 않구 꽉 찬 소리가 나면서 여운이 길게 울려야 한 데나 어ㅉ대나 하면서 설명을 하지만 나는 영 모 르겠더라고...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건 나도 알아 요. 그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걸 좋 아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이 욕구가 맛있는 수박을 고르는데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 다. 맛있는 수박을 고르는데 가끔 실패를 하는 수 가 있기도 하겠지만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썩은 수박을 좋아할 리가 없겠지? 누구나 이 보암직, 먹음직, 그리고 탐스러운 걸 탐하는 본능으로 배 우자를 고르고 옷을 고르고 차를 고르면서 인생을 보내고 있는 거다.

 

에덴 동산에 등장하는 아담이 바로 이 본능 을 발휘한 첫 사람이였지. 그가 먹은 선악과의 외 적인 모습이 바로 보암직했고 먹음직 했고 또 탐 스러웠었다. 이렇게 생겨먹은 선악과의 내적인 모 습은 '사망' 이였지만 그건 아담의 눈에 포착되지 않았다. 왜 아담이 생명과는 먹지 않았을까? 성경 에는 자세하게 기록되지 않았지만 앞 뒤 전후를 보건데 이 생명과의 외적인 모습은 선악과와는 달 리 보암직하지도 않았고 먹음직 하지도 않았고 또 한 탐스럽게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생 명과는 겉으로 보기에 볼품도 없고 찌그러져 있고 어쩌면 징그럽게 생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당 연히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걸 좋아하는 본능적인 기능이 생명과를 거부했고 그 대신 선악과를 선호 했겠지, 그러나 생명과의 내적인 모습은 '생명' 이 였다. 이 역시 아담은 볼수가 없었다. 대단히 조심 해야 할 사안을 하나 소개한다면 사망이라는 저주 는 항상 화려하게 보이는 포장으로 유혹을 하고 생명이라는 복은 항상 눈길을 끌지 않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간첩이나 사기꾼이 '나 간첩이 요, 나 사기꾼이요' 하고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를 잘 뒷바침하고 있기도 하지...

 

사람들은 이런 보암직...을 선호하는 육신적 인 본능을 활용하여 조직체를 유지해 나간다. 어 떤 조직의 리더는 자기의 조직 내에서의 입지강화 와 조직의 유지를 위해서 잔머리를 굴리는데 이때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상벌제도이다. 바로 이 '상' 이라는걸 얼마나 보기에 좋고 탐스럽게 만드냐에 따라 이걸 차지하려는 경쟁의 열기를 조절할 수가 있다. 반대로 '벌' 이라는 건 조직과 그 리더에 항 거하는 자들에게 가한다. 이 벌은 누구도 좋아할 수 없는 고통이고 묵사발 당하는 것이고 소외당하 는 거다. 상이던 벌이던 어떻든 그것은 보암직... 을 좋아하는 인간의 깊은 내면적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이 상벌제도를 적당하 게 구사해서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은 물론이요 군 대, 기업체, 교육계, 체육계, 예능계, 심지어 교회 와 가정등의 각종 사회 문화 조직을 유지해 갈수 가 있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사람들은 이 보암직...을 선호하는 본능적인 경향을 하나님께로도 향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 에게 상벌제도를 적당하게 구사하시는 하나님이 시고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잘하면 보암직 먹음직한 상을 받고 불순종 을 하면 벌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다. 그래 서 교회에서는 순종하자, 충성하자, 기도하자, 전 도의 열매를 맺자, 배가운동...! 을 외치면서 순진 한 교인들의 경쟁심을 자극하고 이것이 마치 하나 님이 하시는양 말하지만 사실은 교회라는 조직의 리더들 끼리의 경쟁심이요 '명예' 라는 보기에 좋 은 먹음직 스러운 그리고 탐스러운 걸 탐하는 본 능적인 기능을 발휘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 문에 믿음의 본질에서 멀리 타락해 가고 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예수를 믿겠다고 마음가 짐을 고치고 입으로 예수의 피를 시인하고 그러면 그게 믿음이 되는 거냐? 어떤 사람들은 복음은 너무 쉽기 때문에 오히려 믿기가 어렵다고 말하지 만 과연 그렇게 믿는게 쉬운거라면 얼마나 좋을 까? 믿음을 갖는 것은 단정하건데 기적이 일어나 지 않으면 안돼요.

 

믿음이란 관심이예요. 나의 마음속에 도데체 무엇이 들어있는가? 그것이 바로 믿음이예요. 그 래서 그 관심사의 대상이 나를 기쁘게 하고 안심 을 시켜주고 평안하게 해 준다면 그것이 바로 믿 음이예요. 입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수백 수천번을 시인하고 고백한다고 해도 마음의 관심은 육신과 세상으로 향하고 자기 자신에게 향하여 있다면 그 것은 가짜요 결코 믿음이 아니란 것을 또 강조하 고 싶다. 나의 관심이 여전히 세상적이고 육신적 인 보고 먹고 탐스러운 것을 향하고 있는 한 생명 은 없다.

 

하나님의 의와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 애통하는 것, 마음이 가난한 것,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등이 육신 적으로 보기에 좋고 먹을 만 하고 탐스러울까? 사람들은 교회를 나오면서도 이런 것들을 싫어한 다. 참된 복음은 먹을 것을 탐하는 자들에게 철저 하게 배척을 당하게 되어있다. 영혼이 잘되면 범 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되리란 말씀은 얼마나 듣기 에 좋고 먹기도 좋고 탐스러운 말씀이냐? 그러니 까 이 말씀만 강조를 하면 사람들은 좋아한다. 그 래서 그런 말만 늘어놓는 교회에 사람들이 미여터 지게 모여든다.

 

후진국들의 위정자들은 국민들을 올바로 교 육시키기를 두려워 한데요, 듣자하니 국민들을 깨어나게 하면 기어오른데나...? 그렇지만 제놈들 의 자식들은 미국으로 유럽으로 유학을 보내, 그 래야 지네덜 끼리만 오래오래 해 먹을수 있단 말 이지, 그 대신에 무식한 백성들에겐 축구나 sex를 팍 안겨준다, 그러면 지깟것들이 정치에 관심이나 있겠어? 스포츠, 뮤직, 그리고 sex... 화...! 얼마나 멋진 거냐구? 그야말로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움 의 극치가 않니겠어? 오늘날 교회의 리더들이 써 먹는 잔꾀가 이런것하구 뭐가 달러? 하나님께로 향한 관심을 아예 처음부터 근절해 버리고 먹음 직, 보암직으로 관심을 쓰게 하면 하나님의 위치 를 교회 장사꾼들이 차지해서 오래 오래 해 먹을 수가 있단 말이지.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것이란 죽는 것 이고 세상을 버리는 것이며 세상에게 핍박과 소외 를 당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는 것을 싫어한다. 사 실은 사기꾼들이 그렇게 가르친게 보다 더 근본적 인 원인이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선 진들은 믿음으로 살다가 간 모습을 우리에게 보 여주었고 저들은 더 좋은 본향을 가기 위해서 이 세상에선 육신적으로 비참하게 죽어갔다. 돌에 맞 아 죽었고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했고 굻었고 주 렸고 쉬지 못했고 자지도 못했고 동족의 위험, 강 과 바다의 위험을 당했는데 이런 모습은 아담의 후예들이 보기에 보암직할 수가 없고, 먹음직하지 도 못하고, 탐스러운 모습일수가 없다. 그러나 이 런 모습의 내면은 '생명' 이다. 과연 누가 이 생명 과를 먹으려고 할까? 오늘도 이 볼 품이 없는 생 명과는 교회에서 여전히 팔리지 않는 품목이다....

 

야곱의 형 '에서' 는 먹음직한 팟죽 한 그릇 에 볼 품없어 보이는 장자의 명분과 바꿔치기 했 다. 이 에서의 행동이 우발적이고 단편적인 행동 이라고 생각하면 않돼요. 에서는 평소의 생각과 관심이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움을 추구하는데 있 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저질러 진거다. 오늘의 교인들은 야곱과 에서의 팟죽에 얽힌 얘기를 너무 도 많이 들어서 익숙해 있고 그래서 별 생각없이 자신을 야곱이라는 인물로 동일시 하고 싶어하지 만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야곱을 좋아하는 진짜 감추어진 이유? 그건 야곱의 단지 팟죽 한 그릇 으로 맛 바꾼 엄청난 축복이라는 것은 바로 적게 투자하고 많은 이익을 내는 경제원칙에 익숙한 탐 욕꾼들의 군침을 돌게 하는 먹음직한 선악과이기 때문이다.

 

생명과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볼품 이 없어 보인다. 칭찬을 좋아하는가? 징계를 좋아 하는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당연히 징계가 따른 다. 그게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 방법 이다. 절대다수의 많은 교인들은(목회자들을 포함 하여...) 징계받을 짓만을 골라가며 하고 있다. 그 래서 당연히 징계를 받아야 하고 징계가 그런 교 인들을 살리는 길이 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징 계혹은 충고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교인들은 적다. 그러나 칭찬은 기차게 좋아한다. 칭찬이란 사람의 영혼을 도둑질하는 거짓으로 얼마든지 악용될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칭찬이라는 열매는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게 보이고 그걸 덥썩 따먹다가 망 하는 얼간이들이 교회내에 얼마나 많은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동안 방황 하면서 많은 징계를 받았다. 이 징계는 백성들의 마음을 낮추기 위함이라고 민수기에서 기록하고 있지만 백성들의 마음이 낮아지기는커녕 마음이 더욱 강퍅하게 되어 결국은 2명(여호수아, 갈렙) 을 제외하고 다른 수십만명 내지 기백만명의 백성 들은 가난안을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객사했 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광야라고 말하지 않던 가? 말은 잘해 들.... 그때나 지금이나, 이스라엘백 성들이나 우리 한국교회의 백성들이나 여전히 징 계를 모르고 거역을 해서 걱정이지...

 

보기좋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에게 생명과 로 향하는 길이 불붙는 화영검으로 차단되어 있듯 이 오늘날에도 인간의 이성과 탐욕이라는 선악과 만을 선호하는 육신적인 기독교인들에게는 생명 과가 철저하게 감추어져 있고 차단되어 있다. 이 런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모습 조차도 볼 품이 없 게 보이도록 되어있다. 예수의 병고침 귀신 ㅉ음, 오병이어, 죽은자를 살리는 모습을 얼마나 먹음직 하게 여기는가? 그러나 예수의 고난과 멸시와 죽 으심에 동참하기는 관심도 없고 싫어한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는 일에는 딴전을 피운다. 자존심이 묵사발 되고 마음과 몸이 가난하게 되는 일에는 야곱의 형 에서와 같은 행동을 취한다. 이 유는 단 한가지...그렇게 사는 모습은 볼 품이 없 기 때문이다.

 

생명은 육신의 눈으로 보기에는 황당하고 썰 렁한 모습으로 감추어져 있다. 고난당하는 모습, 소외당하는 모습, 가난한 모습으로 감추어져 있다. 이는 마치 생명과가 불붙는 화영검으로 차단되어 있는것과 다름이 없다. 생명 그 자체이신 예수를 죽인 사건은 선악과를 너무도 좋아했던 결과이며 생명과 선악과의 차이를 극명하게 나타낸 것이며 사망의 저주를 받은 인간에게는 차단된 생명의 모 습을 보이는 사건이다. 또한 인간의 힘으로는 생 명을 얻을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리고 선악과는 아담에게 보여진 것 처럼 오늘도 화려한 모습으로 우리를 현혹하고 있다. 거짓 선지자들과 이단들은 이 선악과를 가지고 교 회에 가만히 들어와서 백성들의 영혼을 노략질 하 고 있는 중이다. 베드로가 뭐락ㅋ는지 아셔? (벧 후2:1-3).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거짓 선지자들과 이단들이 어디에 서식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교회내부이다. 어떻게 들어오게 ㄷ느냐 하면 가만히 들어왔다는 거다. 저들의 목적이 뭐냐하면 '너희로 이를...' 삼 는거다. 탐심이 뭐냐 하면 뭐 구질구질하게 교리 적으로 어렵게 말 할 필요없이 아주 간단하게 말 하면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운걸 좋아하면 그게 바로 탐심이다. 이런 탐심을 가진 거짓말쟁이들이 누구를 잡아먹으려고 오느냐 하면 바로 '너희...' 이다. 그런데 거짓말쟁이들의 먹거리인 '너희' 도 역시 탐심의 소유자들인고로 이들의 목표 역시 거 짓말쟁이들을 이용하여 자기의 속셈을 채우려고 한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서로 공생공사 하는 모습이 오늘의 교회이다. '저희' 나 '거짓 선 지자들' 이나 탐심으로 모이기도 하고 또 탐심 때 문에 헤어지기도 하는 작태가 바로 지금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람을 자기의 영향력내에 장악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영혼을 도둑질하는 마귀의 수작임을 알아야 한다. 교회내에 침투한 거짓 선지자들은 지어낸 먹기좋고 보기좋고 탐스럽게 보이는 거짓 말로 교회 전체를 삼키고 모든 사람들을 자기의 영향권내에 두고 싶어한다. 기도, 전도, 봉사, 충 성, 헌금, 성경공부.... 이런 것들은 보통사람들은 하고싶어도 할 수 없는 굉장히 존경할 만한 행위 로 보인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게을러 못하는 거지 할 수만 있다면 왜 그렇게 못하겠는가? 못 하는 내가 죽일 놈이지... 안그래?

 

그런데 이런 행위들은 바로 하고 싶지만 약 해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실제로 잘 하 고 있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수단이요 올무이다. 이런 행위들을 하도록 가르치고 강조하는 교회의 리더들은 자기 휘하에 사람들을 장악하고 싶어하 는 더러운 욕망이 숨어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행위들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믿음이 약하 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더 잘 하도록 더 믿음을 강 화시키는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 결과 믿음이 성 장하면 결국 리더의 영향력속에 사람들을 끌어 모 으게 되는 거다. 이런 식으로 성장된 모습은 리더 가 원하는 모습이요, 평신도들의 보기엔 믿음의 모범이 되는 보기에 아주 좋은 모습으로 비쳐지는 거다. 바로 이러한 모습을 사도 베드로는 '...너희 로 이를 삼는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 전도 헌금 충성 봉사.... 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오해하면 않돼요. 이런 행위들을 하되 교인들 각자가 자유스럽게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하는 거지 누가 하라 말라 해서 강제로... 그것도 않하면 믿음이 있느니 없느니 해가며 반 협박 비 슷하게 부담을 느끼게 하는 방법으로 한다면 그건 하나마나 이고 속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다. 목회자 자신이 모든 탐욕으로 부터 벗어나 서 육신의 눈과 이성으로는 볼 품이 없지만 생명 이 담긴 생명과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생명을 발 산한다면 이런 모습은 수 천마디 성경공부와 설교 보다 훨씬 복음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강조 하고 싶다는 거다.

 

육신의 눈을 경계하자, 이성적인 사고방식도 사망의 독을 뿜어내는 것이다. 당신의 눈으로 보 이는 이 물질세계... 이는 화려한게 틀림이 없지만 모두 사망의 저주가 숨겨져 있다. 그러나 이 화려 한 세계를 있게한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 계... 가 당신을 살리는 생명이 감추어져 있다.   (설교 : 강기원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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