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시4:1] 어둠이 덮힐 때

'코이네' 2017. 12. 13. 18:41

어둠이 덮힐 때

성경 : 시편 4

 

 

해가 지고 어두움이 덮이면 사람은 어딘가 허전해 져서 외로 움과 연약함을 느끼고 때로는 슬퍼지기도 하고 그리워 지기도 한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 보니 외롭기 한이 없네

내 동무 어디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 일 저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어릴 때 부르던 노래가 아직도 새삼스러워지는 것은 부질없는 동심(동심) 때문만은 아님을 우리는 안다. 시편에 소개된 첫 번째 해 넘어간 밤의 사연은 무엇인가? 인생 의 황혼녘에 접어든 다윗이 배역한 자식 압살롬과 배신한 다수 신민(신민)의 추격을 받으며 목숨을 위해 도망가는 비창(비창) 한 밤이었다. 왕위도 빼앗기고, 나라도 빼앗기고, 백성도 빼앗기고, 예루살렘과 성소, 그리고 법궤까지도 빼앗기고, 낯뜨거운 근친상간으로 후궁들지 빼앗겨(사무엘하620-22정 참조),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산산조각이 난 채 모진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구차하게 도망가던 그 밤, 다윗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공교롭게도 인간의 첫 부모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 이후 처음 겪은 고통과 탄식도 자식 때문이었음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자기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반역했을 때 하나님이 겪으신 고통과 탄식이 재연된 것인가?

 

첫 자식에 대한 첫 부모의 하늘같이 높은 기대는 지어준 첫 이름 "가인"(Cain)에서도 엿볼 수 있다. "얻다"(acquire)혹은 "속량하다"(redeem)를 뜻하는 히브리어 동사 "카나"(Qanah)에 서 나온 "가인"의 뜻은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창세기 41)는 고백에서도 확인된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이 낳은 첫 자식이 "여호와께서 주신 남 자", 곧 자신들을 죄 짓게 한 사단의 머리를 부수어 원수를 갚 아줄, 약속하신 메시아인 "여자의 후손"이기를 얼마나 바랐던 가(창세기 315절 참조).

 

그러나 첫 자식을 키우면서 그 기대는 무너져 갔다. 둘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 이미 그러한 기대 는 풀이 죽어 있었음을 지어준 이름 "아벧"(Abel)에서 엿볼 수 있다. 히브리어로는 "헤벧"(Hebel)인 그의 이름의 뜻은 "헛됨"(vani ty) 혹자는"무상(무상)"을 뜻하는 명사 "헤벧(Hebel)과 같은 것으로 전도서에서 강조된 그 "헛됨"과 같은 것이다(전도서 12,217,319절 참조). 터질듯한 기대를 걸었던 첫 자식이 아우를 쳐 죽이는 살인극을 벌렸을 때 모든 꿈은 너무나 허무하게, 그리고 깡그리 무너졌다. 노아 홍수가 있기 직전"사람의... 모든 계획이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 하"(창세기 65,6)신 하나님의 탄식에 드러난 무너지는 꿈 이야기이다.

 

시편에 소개된 첫번째 밤, 다정 다감한 아버지 다윗을 그러한 비탄과 암울 속으로 빠뜨린 것도 히브리어로 "마브솰롬" (Abshalom)혹은 "아비솰롬"(Abishalom),"나의 아버지는 화평 "임을 뜻하는 이름을 지어준, 기대에 찾던 자식 압살롬(Absalom)이 아니었던가? 그 압살롬이 끝내 아버지의 화평을 빼앗아 간 것이다.

2.어두움이 덮일 때

 

첫밤을 요단강 나룻터에서 잠시 눈을 붙여 단잠을 자며 보낸 다윗은(시편 35절 참조), 새벽녘에 일행과 함께 요단강을 건 넌 후(사무엘하 1722절 참조) 동편길을 따라 북상하여 온종일 피곤한 발을 끌며 성벽이 둘러있는 산간 성읍 마하나임에 이르렀다.(사무엘하 1726,27절 참조)

 

산간 성읍에 어두움이 덮이고 온 누리가 적막에 잠기자 다윗의 마음에도 안식이 깃들었다. 꿈만 같은 현실을 생각하면 기가 막히고 분하여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으나, 다시 생각하니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복받쳐 올라왔다.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사무엘하 1611), 철석 같이 믿었던 신하와 백성이 배신한 이 지경에서도 여전히 변치 않는 성실과 더 측은히 여기시는 사랑으로 여기까지 동행해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니 너무 고마워서 가슴이 뻐근해 졌다. 그리고 이 원통하고 비창한 심정을 터놓고 싶었으며 간절한 소원을 아뢰고 싶었다. 그의 저녁 기도가 시작 되었다.

 

3.저녁의 탄원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며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 (시편 41,2)

 

모든 일에 틀림없이 시시비비를 가려주시는 공의로 우신 하나님께서 이번의 이 엄청난 불의를 좌시(죄시)하지 않으시고 사필귀정(사필귀정)으로 결말을 내실 것을 생각하니 모처럼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이번의 반역을 주도한 무리들, 곧 그"인생들"이 하는 일이 가소로워지고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누가 뭐래도 하나님은 경건한자의 편, 곧 내편이시다. 나를 반역한 것이 곧 나를 세우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임을 명심하고 성사(성사)도 안 될 일을 하지도 말라고 외칠 만큼 의기양양해 졌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화와게서 들으시리로다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시편 43,4)

 

소란스럽게 역적 모의를 하고 반역을 변명하려고 나를 악선전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의인이 드리는 기도의 위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기도를 드리는 나는 약하고 보잘 것 없지만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막강하심을 알라. 이 천지가 고요한 밤에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양심의 소리를 들으라. 그리고 하늘 무서운 줄을 알라.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그럴 수가 있는가? 경거망동(경거망동)하여 더 이상 죄짓지 않도록 이 밤에 잠자리에 누워 자신들의 처신들에 대해 심사숙고 하라.

 

4.이상한 단잠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 지어다.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시편 45,6)

 

반역자들아, 너희가 예루살렘과 성소를 차지하고 거기서 형식을 갖추어 제사를 드린다고 하나님이 어리석게 받으실 줄 아는 가? 마음을 바르게 가져야 제사도 의롭게 되고 믿음도 진실한 것이 된다. 세상이 이처럼 혼란스럽다 보니 도덕에는 표준이 없고, 신앙에는 신조도 없고, 예술에는 가치가 없고, 정치에는 대의명분(대의명분)이 없어 졌다고 권성징악(권선징악)의 천리 마져 무너진줄 아는가?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시편 47,8)

 

지금의 내 형편은 처절하고 내 꼴은 말이 아니다.왕의 홀은 방랑자의 지팡이로 바뀌고, 왕이 거지가 되어 남들이 조금씩 가져다 주는 것으로 근근히 연명해 간다마는 하나님이 내 편이 되셔서 나를 끝까지 도우신다는 이 확실한 보증은 나를 더 바랄 것 없이 만족하게 만들었다. 지금 나의 이 기쁨은 너희가 곡식과 새포도주를 모두 거두어 쌓아놓고 희희낙락(희희낙낙)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실토하고 나니 슬픔과 울분으로 격했던 심정은 어느새 진정되고 기쁨과 확신이 가슴을 채우자 눈앞의 모든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졌다. 반군들이 물밀듯이 요단강을 건너 멀지 않은 발치 길르앗 땅에 이르렀다는 전갈이 왔지만(사 무엘하 1724-27절 참조) 겁날 것이 없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시편 1214)니 마음 놓고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다. 마음을 불안하게 하던 산간의 바람 소리는 어느새 평안한 잠을 청하는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자장가로 바뀌었다. 이 형편에서 이렇게 평안히 잠들 수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동안 다윗은 어느새 곤한 잠에 빠져 들어갔다. 오랜만에 어린 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한 잠을 잔다.

5.마지막 밤을 위하여

 

해 넘어가고 어둠 덮이니 구주여 나와 함께 합소서 내 친구 나를 위로 못할 때 내 도움 되신 주여 계십소서 내 사는 날이 속히 지나고 이 세상 영광 빨리 쇠하며 이 천지 만물 모두 변하나 변함이 없는 주여 계십소서 주 홀로 마귀 제어하시니 때마다 계심 요긴 합니다 주같이 누가 보호하리까 맑거나 흐린 때도 계십소서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면 원수의 세력 두렴 없도다 사망의 쏨이 어디있느뇨 내 승리되신 주여 계십소서

 

이것은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어두움이 덮일 때 흔히 부르는 친근한 저녁 찬송이다. 월남전이 한창일 무렵 국립묘지에 갔을 때 마침 유골함에 담겨 말없이 귀국한 전몰장병들 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유족들의 오열(오열)속에 군악대가 은은히 연주한 진혼곡(진혼곡)이 바로 이 찬송이었다.

 

해는 저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없는 외롭고 불안했던 밤을 혼자서 맞던 회상이 있는가? 마침내 어느날 우리 모두는 갑자기 죽음의 어두운 그늘이 내리 덮이는 인생의 마지막 밤을 홀로 맞 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 때에 부를 노래를 가졌는가? 그 때 드 릴 기도가 있는가? 시편은 날마다의 밤과 함께 언젠가는 이를 인생의 마지막 밤을 위해 드릴 기도와 부를 찬송을 지금 가르치고 있다.

 



by 코이네설교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