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시3:1] 구원자이신 여호와

'코이네' 2017. 12. 6. 19:14

 

구원자이신 여호와

3:1-8

 

 

사람들 누구에게나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 우리 가족들에게 있는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우리의 직장이나 사회에서 악한 자들로 인하여 고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요즈음 우리 나라가 경제위기로 인하여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실직의 아픔을 당하거나 생활에 심각한 타격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 가운데 어떤 것은 원인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경우는 원인을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오늘 이 문제를 다윗의 시를 연구함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윗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여러 번 위기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사울 왕에게 쫓길 때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어떤 때는 다윗이 사울 왕에 쫓겨 이웃 나라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 망명하기도 하였는데, 이 때에 그는 미친 체하면서 목숨을 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왕이 되고 난 후에 가장 그를 고통스럽게 한 일 가운데 하나는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여 광야로 쫓겨갈 때였습니다. 이 내용은 사무엘하 15장부터 18장까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위기의 순간들마다 어떻게 처신하였는지에 대하여 거의 모두 시를 통하여 남겨 놓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이 시편 3편입니다. 이 시의 표제가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 시를 쓰게 된 역사적인 배경(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는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여 쫓겨나는 위기의 순간에 어떻게 행동하였는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다윗의 그의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의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하여 썼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시를 역사적 상황에 제한하여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의 저자인 다윗이 그의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썼지만 모든 성도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하기 위하여 이 시를 썼기 때문입니다. 이 시의 주제는 여호와는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 시의 주제를 점 더 분명하게 살펴보기 위하여 이 시의 구조에 따라 첫 번째로는 다윗이 고통하는 모습에 대하여, 두 번째로는 다윗의 기도, 세 번째로는 다윗의 믿음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다윗의 고통

 

다윗은 그의 생애에 그를 대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3:1)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본문에 있는 것처럼 다윗의 대적들이 많았습니다. 이 시를 지었던 당시에 그의 아들 압살롬이 가장 무서운 대적이었습니다. 사무엘하의 내용을 보면 압살롬이 처음부터 다윗의 대적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다윗이 그의 아들로 하여금 복수심이 생겨나도록 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다윗은 여러 명의 아내들을 통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다윗의 아들 가운데 맏아들 암논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아히노암이라는 아내를 통하여 낳은 아들입니다. 그리고 셋째가 압살롬인데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입니다(삼하3:2-3). 또한 압살롬에게 여동생 다말이 있었습니다. 암논은 다말을 짝사랑하였습니다. 그는 계획을 꾸며 강제적으로 다말을 더럽히고는 버렸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다윗은 암논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마음이 상해 있던 압살롬은 오랫동안 계획하였다가 이년이 지난 어느 날 암논을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어머니의 나라 그술로 망명을 가서 삼년 동안 있었습니다(삼하13:38). 이 과정에서 다윗은 압살롬을 그리워하였으나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이 때에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의 지혜로 압살롬을 돌아오게 하였지만 다윗은 오랫동안 만나주지 않음으로 압살롬의 마음에 증오심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백성들의 마음을 다윗에게서 점차적으로 빼앗으며 모반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다윗의 대적이 된 책임은 다윗에게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일에 대한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경우 다윗이 고통을 받는 것은 다윗의 범죄함 때문입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모반을 계획하자 다윗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들이 주변 환경이 달라지므로 시류에 따라 다윗을 버리고 압살롬의 진영에 가담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다윗의 모사로서 당대에 가장 뛰어난 지력가인 아히도벨도 있었습니다(삼하15:12). 사울 왕의 집안 가운데 시므이같은 사람은 다윗을 저주하고 욕하였습니다. 다윗이 이 시에서 고백하고 있는 바와 같이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는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라는 것은 당시의 역사를 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당시에 권력이 압살롬에게 넘어가고 다윗이 광야로 쫓겨가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다윗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다윗은 이 때의 심경을 당시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를 이 시의 2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이 말의 히브리어 본문의 의미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다윗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지 않는다고 않는다는 뜻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심이 다윗을 떠났습니다(삼상15:13). 당시에 이 상황에 대하여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이 권좌에서 물러나 쫓기는 상황에 대하여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고 다윗을 저주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6:7-8에 보십시오.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시므이는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 쫓겨가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사울을 죽이고 대신 왕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버리신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시므이 뿐만 아니라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다윗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압살롬을 따랐습니다.

 

실제로 당시의 역사에서 비록 압살롬의 모반으로 쫓기는 몸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다고 생각하고 소수만 남고 다 다윗을 떠났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얼마나 낙심이 되었을까요? 사람들이 다윗을 향하여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시지 못한다. 이제 다윗의 시대는 끝났다"고 할 때 다윗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상황은 다릅니다만 이와 비슷한 표현이 시편에 여러 군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편 10:11에 보면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의인이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기 때문에 그가 마음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이제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지 않을 것이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당시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고 구원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역시 이러한 갈등을 겪지 않았을까요?

 

특히 믿음생활을 잘 하는 자들에게 예상치 않았던 문제들이 발생할 때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시는가? 나와 함께 하시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왜 구원해 주시지 않는가" 하는 질문함으로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미국의 아메리카 인디언 선교사였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가 이러한 상황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을 느낄 때가 가장 그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쓴 1743518일의 일기를 보면 그 내용이 잘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는 그 일기에서 그를 고통스럽게 만든 일은 그와 교제할 수 있는 친구도 없이 외롭게 사는 것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식사가 옥수수나 옥수수죽을 먹는 일도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가 잠을 잘 수 있는 처소도 짚더미 속이었는데 그것도 그를 고통스럽게 하지는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인디안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 자기를 미워하는 백인들이 있다는 사실도 그에게 있어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를 가장 견딜 수 없는 슬픔에 빠지게 만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서 얼굴을 감추고 계신다고 하는 것을 느낄 때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자가 당하는 가장 큰 슬픔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렸고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낙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나서 국제통화기금(IMF)에 돈을 꾸인 이후부터 우리 나라 전체가 정치인들이나 돈을 많이 가진 상류층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서민들은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신자들도 많이 있고, 우리 교회 믿음의 가족들 가운데서도 생계에 위협을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경기가 침체됨으로 하던 사업마저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본의아니게 실직을 당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길이 열리지 않아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경우들 가운데 그 스스로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못함으로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있으나, 전혀 이유없이 고통을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여 갈등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자포자기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

 

2. 다윗의 기도

 

이러한 경우 이 시에서 다윗은 어떻게 하였을까요? 다윗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결정적인 위기를 맞이하였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시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다 떠났습니다. 다윗 자신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을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경우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고백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표현이 안되어 있습니다만 원문에는 앞의 사실과의 대조를 나타내는 "그러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넣어서 3-4절의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니이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원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해 주는 방패가 되신다는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의 영광이라고 하였습니다. "영광"이라는 말이 하나님 편에서 사용될 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이나 하나님 자신을 보이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 편에서 사용될 때는 그의 말이나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나 능력을 나타내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영광"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보이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여호와는 그의 머리를 드시는 분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근거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부르짖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내가 부르짖는다"는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완료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어식으로 바꾸면 "과거"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의 대적이 많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상황에서 기도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성산에서 응답하셨다는 것도 히브리어 성경에서 과거사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NASB 성경은 이 점을 잘 번역하였습니다. NIV 성경은 현재사로 번역하였는데, 이렇게 번역한 것은 그가 고통스러운 순간에 기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본문에서 "성산에서"라는 말은 당시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구체적인 장소인 시온을 말합니다. 여기에 여호와의 법궤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다윗이 어려운 지경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산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 상황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시의 배경이 되는 사무엘하 15-18장까지 보면 잠시이긴 하지만 압살롬이 모반에 성공하여 권력을 잡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때 당대의 최고 모사인 아히도벨도 압살롬을 따랐습니다. 사무엘하 16:23에 당시에 아히도벨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아히도벨의 베푸는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라. 저의 모든 모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이와 같더라." 그는 당대 최고의 모사였습니다. 이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지금 당장 군사 12천을 뽑아서 다윗이 도망하여 피곤하고 약할 때 기습하여 그를 따르던 사람을 무섭게 하고 다윗만 죽이면 백성들이 압살롬을 따를 것이라는 전략을 내어놓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보낸 그의 친구 후새는 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서 일시에 공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러한 전략을 내어놓은 것은 다윗이 충분히 도망갈 시간을 주어 전열을 정비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삼하17:1-14). 어느 누가 보아도 그 상황에서 아히도벨의 전략이 나은 것처럼 보였으나 하나님께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폐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흥미있는 것은 이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시기 위하여 이미 작정하셨기 때문에 아히도벨의 모략을 폐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17:14 하반부에 보면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압살롬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알고 기도하였습니다. 당시의 상황과 이 시편을 볼 때 다윗은 그 위급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기도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작정과 기도와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압살롬의 행동이 기름부어 세우신 다윗을 대적하는 일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아시고 심판하시려고 작정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상황에서 다윗은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계획하신 것을 이루시는 방법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운 지경에 있을 때 우리가 알고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근거로 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많은 약속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들이 성취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기도해야합니다.

 

다윗은 당시의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이제 다윗을 구원하시지 않는다"고 말하며 다 그의 주변을 떠나던 상황에서 이렇게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를 대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심지어 나의 아들조차 나를 반역하여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나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 많이 떠났습니다. 그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하나님은 다윗을 구원하시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대적 가운데 나를 보호해 주시는 방패가 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보여 주시는 분이시며, 나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이심도 믿습니다. 하나님! 나의 방패가 되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나타내 보여주시고, 나의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모두 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저는 다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십시오. 새벽마다 기도하는 사람이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수시로 교회에 들러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할 때 과거에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도 구원해 주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에는 여호와의 성산에서 응답하셨지만 오늘날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곳마다 응답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3. 다윗의 믿음

 

이제 다윗은 과거에 어려움을 당하여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응답을 받은 하나님 체험을 바탕으로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시의 세 번째 연인 5-8절을 보십시오. "내가 누워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꺽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다윗은 이 절에서 적들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으나 계속 누워자고 깰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일상적인 생활을 계속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편안히 자고 깰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천만인이 그를 멸하기 위하여 둘러 진을 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의 믿음을 기도로 표현하기를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앞의 2절에서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놀라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에 "원수의 뺨(턱뼈)""악인의 이()"는 사나운 짐승들이 삼키려는 이미지를 가지고 원수의 공격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삼키려고 턱을 벌리며 무서운 이를 드러내는 그것을 부수어 버리실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라는 기도로 그의 믿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온전히 구원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나는 줄을 믿고 기도하고 잇습니다. 그의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당대의 최고 지략가인 아히도벨의 모략을 폐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다윗이 압살롬에 의해 쫓겨갈 때 시대의 조류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떠났습니다만, 암몬족인 소비와 로데발 사람 마길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라는 사람들을 보내어 주셔서 다윗을 도와주었습니다(삼하17:27-29). 하나님께서 다윗의 믿음대로 여러 사람들을 붙여주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문제를 만나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생활고의 문제로, 질병의 문제로, 또는 복잡한 인간관계로, 친구들의 배반으로, 실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다윗이 그의 생애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부르짖는 것처럼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 모든 상황에서 구원해 주신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교회의 의자를 눈물로 적셔보십시오. 이것이 구원자이신 여호와를 바라보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자세입니다. 이러한 신앙으로 나아갈 때 다윗이 고백한 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영광이 되시며, 우리의 머리를 들어주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by 코이네설교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