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출애굽기

[출 14:10] 저 바다를 건너가자 _정성훈목사

'코이네' 2024. 1. 8. 20:33

저 바다를 건너가자

출애굽기 14:10-16

저 바다를 건너가자.

설교자: 정성훈 목사(동래중앙교회)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서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두 가지 차원의 위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수평적인 위기이고 또 하나는 수직적 위기입니다. 수평적인 위기는 인간 스스로 잘못하고 실수하고 범죄함으로 인하여 초래되는 위기라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반면에 수직적인 위기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위기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섭리적 위기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인간 편에서 볼 때에는 위기요 절망이요 또한 낙심되는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위기를 이용하셔서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며 하나님의 뜻을 그 위기를 통해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대표적인 이런 수직적인 위기의 내용이 나타납니다. 요셉과 욥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요셉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에 팔려 가게 됩니다. 두 번의 억울한 옥살이를 치르게 됩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국무총리로 세워 주셔서 기근 때에 양식을 준비했다가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위대한 일을 하게 됩니다. 그 때 자기를 팔아 넘겼던 자기의 형들은 요셉에게 와서 무릎을 꿇고 양식을 얻어 어려운 기근 때에 환난 때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요셉이 자기가 팔았던 동생이었음을 형들이 기억하면서 형들이 요셉에게 가서 잘못했다 미안하다 우리를 벌하지 말라고 용서를 간청하게 되는데, 그때 요셉이 뭐라고 이야기했는지 아십니까? 창세기 50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고 애굽의 종으로 팔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바꾸셔서 만민의 생명을 살릴 수 있게 해주셨노라고 말하면서 자기에게 닥친 시련, 자기에게 닥친 생애의 환난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고 계시며 그 시기를 어떻게 하나님께서 바꾸어 가시는지 담담하게 증거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욥은 고난의 종입니다. 무수한 인생의 고난과 그 소용돌이 속을 지나가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고백을 하나 남겼습니다. 욥기 425절 말씀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셨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듣는 신앙에서 보는 신앙으로 바뀌어지는 이런 성숙한 신앙이 무엇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까? 놀라운 신앙을 소유할 수 있었던 비결은 시련 속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교회, 가정, 개인에게 닥치는 위기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 하시는가 어떻게 섭리하시는가 하는 분명한 사실을 바라볼 줄 안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위대한 신앙으로 바뀌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출애굽 시킨 다음에 가던 방향을 갑자기 돌이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시하기를 이제 내가 너희들의 방향을 바꾸어서 다른 곳으로 인도할텐데 그쪽으로 가라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쳐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인도함을 받았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돌친다고 하는 것은 매우 갑작스런 방향 전환을 의미합니다. 한 걸음으로 더 가나안으로 향하여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 가던 방향을 돌쳐서 그들이 다시 방향을 돌려놓고 계신 것입니까?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삶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넣어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시련의 소용돌이로 몰아 넣으시면서 시련 속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이 거룩한 손길을 바라볼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려움을 주고 여러분에게 환난을 주고 여러분에게 위기를 주시는 것은 여러분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의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는 신앙으로 섭리적인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 주시므로 말미암아서 그 시련을, 능히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 이겨 나아갈 수 있도록 주께서 역사 하기 위하심이기를 우리는 분명히 믿을 수 있어야 할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디로 이동하시는지 보세요.

믹돌과 비하히롯라고 하는 큰 절벽에 솟아 있는 그 양쪽 사이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몰아 넣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져 있습니다. 그들이 돌아 갈 수 있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왔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10절 말씀에 보면 바로의 군대가 가까이 그들의 뒤를 추격해 왔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길도 막혀 있고 뒤로 가야할 길도 막혀 있고 옆으로 도망가야 할 길도 막혀 있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께서 얼마나 어리석게 작전을 실시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작전을 하려면은 지형 지물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어떻든 적보다는 유리하게 고지를 먼저 선정해서 거기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적들을 유인해서 그렇게 섬멸을 시키는 것이 작전의 제일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의 지혜를 짜내어서 전략을 꾸미는 그 계획과는 정반대 되는 아주 어리석은 방법을 하나님께서 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느 영국의 전략가가 이 본문을 읽으면서 과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디로 인도하셨기에 그랬을까? 그래서 그 지형지물을 자기가 조사를 하는 가운데 어떻게 이렇게 무모하고 어리석은 작전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 결론을 내린 다음에 이 사람이 이 본문을 가지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전쟁의 역사 속에서 가장 무모하고 가장 어리석고 가장 최악의 작전을 하나님께서 행사 하셨노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호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킨다는 것을 말씀을 통하여 분명하게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아니하는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서 앞 뒤 좌우를 꽁꽁 닫아 놓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막다른 홍해 골목으로 몰아 놓은 다음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하여 바다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수직적 위기 앞에서 두려워 떨었습니다. 두려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에 여러분이 돌아가 보실 수 있길 바랍니다.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그렇습니다. 부르짖는 훈련을 하나님께서 그 위기 속에서 시키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히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붙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을 이 말씀에서 보게 됩니다. 우리가 위기를 당할 때 환난을 지나갈 때에 우리에게 공포가 찾아옵니다.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두려운 마음에 붙들리면 꼼짝달싹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풍랑이 있는 바다를 그들이 노를 저어 지나가게 될 때 너무나 풍랑이 심하니까 다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이들을 건져 주시기 위해서 바다를 걸어서 그들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유령인가그랬습니다. 공포에 질려 있다 보니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도 유령인가 착각할 정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인줄 그들이 발견하고 나서 베드로가 무어라고 말합니까? 나도 바다 위를 걷게 해 주십시오. ‘오너라!’ 바다 위를 걷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자기 옆에서 불어닥치는 풍랑을 보는 순간에 베드로가 물 속에 빠져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손을 내밀어 잡으시면서 그를 세워주시며 하시는 말씀이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우리가 왜 두려워하게 됩니까? 왜 공포에 질리게 됩니까? 왜 세상이 가져다 주는 이런 환난 속에서 우리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쩔쩔매게 됩니까 대답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적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한번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너희는 믿기만 하라돈이 없어서 지는게 아닙니다. 우리의 힘이 없어서 지는게 안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 두려움 속에 빠져 들어간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그런 위기가 올 때에 난 얼마나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여러분의 신념을 한번 체크하시길 바랍니다. 그 두려움 속에 여러분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두려움에 지고 말면 여러분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하찮은 믿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복자 보다 더 큰 정복자로 하나님께서 세워 주셔서 그 모든 것을 환난과 두려움을 이기게 해 주시는지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질려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 속에만 빠져들어 가시는 줄 아십니까? 11절 말씀을 보시면 압니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두 번씩이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 애굽에서 해방시킨 그 사실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왜 잘 있는 우리를 이끌어 내서 고생 시키느냐 불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꼭 한가지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위기가 올 때 여러분들의 숨은 욕심이 드러납니다. 위기가 올 때 여러분의 더러운 양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위기가 올 때에 이 위기를 이용해서 어떻게 하면 내가 살 것인가 이 위기 속에서 내가 어떤 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위선자들도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위기 속에서 우기가 측정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을 믿음이 진짜냐 가짜냐 하는 이 분명한 사실을 그 시련을 통해서 환난을 통해서 잴 수 있다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때론 환난 속에서 우리는 원망하기 쉽습니다. 너 때문에, 네가 그래서, 네가 잘못 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거야 이런 식으로 서로서로 향하여 손가락질하며 비난하며 흩어지게 될 때 남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기가 올 때 원망을 하는 일 조심해야 합니다. 환난이 올 때 그 환난을 요나가 고백했던 것처럼 이 풍랑을 잔잔하게 해 달라고 자기의 몸을 물속에 헌신하는 이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크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의 군사가 쳐들어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이들이 또 하나 본능적인 그런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12절 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해 나올때 만해도 그들이 얼마나 기뻤던가를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일평생 남의 종살이 하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극적인 도움을 통하여 그들이 애굽에서 해방 되었을 때에 아마 세상이 떠나가라 환호성을 외치면서 이제는 해방되었다 이제는 자유다. 출애굽 하는 행진을 거듭해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 보세요.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악하고 간사한 것인가, 위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인간의 그 악한 본색을 드러 낼수 있는 것인가 하는 사실을 여기서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들을 출애굽해 주셨는지 그런 기억조차도 잊어 버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면서도 그 인도하심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망각이 이 정도 되면 그 망각은 망한 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는냐 하는 이 한가지 사실을 우리가 잊어버리고 살 때에 우리의 신앙은 변질되기 쉬울 뿐만 아니라 그 신앙은 정말 보잘것없는 신앙에 불과한 것을 우리 똑똑히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한가지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억속에 내가 그래도 이렇게 과거에 이 정도 주님을 위해서 일 했었는데하는 과거의 공로 의식이 내 머리속에 기억되고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을 자꾸 높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여러분 분명하게 들으세요.

그 사람의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을 수밖에 없는 신앙에 불과하다는 것은 우리가 기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돌아 가려합니다. 위기를 만날 때 세번째 드러내는 인간의 본색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왕년에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과거 찾는 사람 치고 신통한 사람 제가 본적이 없습니다. 제가 과거에 이렇게 해노라고 자랑하는 사람 치고 좋은 신앙 가진 사람 저는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동래 중앙 교회가 새로운 변화의 중앙점에 섰습니다. 과거로 돌아 갈 것이냐 아니면 광야가 기다리는 가나안을 향해서 나가게 될 것인가 여러분 어느 쪽을 택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래도 옛날이 좋았지 무슨 소리야 힘들게 할께 뭐있냐. 이런 유혹이 여러분속에 찾아 올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미래를 향해서 전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뒤 좌우가 막혀 있는 그런 상황 속에 두려워하고 원망하고 옛날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 지리 멸멸해 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음성을 들려주시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를 확신하고 믿음으로 계속 전진할 때에 하나님께서 바다가 갈라지게 해 주시므로 그곳에 길을 내어 새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듯이 오늘 이 시간의 우리에게 닥쳐오는 시련과 환난속에서 하나님의 역사 하심과실 섭리의 손길을 바라보면서 주께서 싸우신 싸움임에 기억하고 그분께 전권 위임해 가면서 우리 주님의 인도 속에 날마다 승리의 삶으로 축하의 삶으로 감사의 삶으로 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