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출애굽기

[출 3:1] 인간보다는 주님 편에서 생각하라

'코이네' 2023. 5. 20. 11:34

인간보다는 주님 편에서 생각하라

본문 :  3:1-15, 12:9-21, 16:21-28.

 

 

 

시골버스하면, 어쩐지 여유로운 느낌을 갖게 합니다. 버스를 타려는 사람이 아주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달려와도, 시골버스는 그를 외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주 특별한 운전기사를 제외하곤, 그가 와서 탈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지역의 버스들도 대부분은 그런 여유를 갖고 있습니다. 비록 출발 시간은 지났고 거리가 좀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다행히 운전기사와 눈만 마주치게 될 경우, 그래서 타고 가겠다는 의사 표시를 하면, 그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하나님은 시골버스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좀더 많은 사람이 구원받게 하시려고, 그 심판의 때를 늦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까닭에, 하나님은 시골버스처럼 여유를 갖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물론, 머지않아 그 구원 버스도 문을 굳고 닫은 후에, 천국을 향하여 출발하게 될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너무나 여유가 없습니다. 조급합니다. 아주 쉽게 판단합니다. 그래서, 이웃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좀더 넓은 마음과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면 얼마든지 용납할 수 있는 일인데도, 바르지 못한 생각과 좁은 소견 때문에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좁은 마음과 옳지 못한 생각의 배경은 이기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거나 이웃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든지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사는 사람은 넓은 마음과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주께서 제자들에게 나는 머지않아 유대 지도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16:21)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펄쩍 뛰면서 주님, 그럴 리가 없습니다. 주님께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22)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베드로를 바라보면서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편에서만 생각하는구나!하고 질책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진정 주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죽음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입장을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간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아주 짧은 시간의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오로지, 나의 이익과 손해만을 아주 재빠르게 계산하고 판단합니다. 그 결과로써, 우리의 마음은 옹졸해지고, 또한 그 생각은 하늘이 아닌 땅으로 굽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누가 보더라도 선하게 여기는 일에 힘쓰며 노력해야 한다(12:17)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악한 세력이 힘을 쓰지 못하도록, 선으로 악을 정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모든 사람이 다같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할 경우, 그런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 참으로 삭막하기가 이를 데 없는, 아주 캄캄하고 어두운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다른 사람 아닌,

 

1.우리 자신이 바로 그런 죄와 어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살 때에도 그랬습니다. 애굽 사람들에게는 유대인의 고통이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무슨 고통을 당하든지, 오직 자신들만 편안하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숫자가 점점 많이 늘어나자, 애굽인들이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나면, 유대인들이 적군의 편을 들어 애굽을 치고 도망가지 않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애굽인들은 유대인을 몹시 핍박했습니다. 유대인들을 혹사시키면 아기를 덜 낳게 되리라는 계산이었던 것입니다.

그럴수록, 유대인의 숫자는 더욱더 많이 늘어났습니다. 애굽인의 핍박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 신음소리가 하나님께 들릴 정도로, 유대인들의 고통은 극심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서로 속이고 미워하는가 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인간은 자연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인간이 그 보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든 현상은 악의 세력에 의한 지배 구조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편의만을 생각하는, 그런 인간의 이기심을 이용하여, 죄악의 세력이 우리 인간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주의 뜻대로 살겠다고 항상 신앙고백을 하는 우리 신앙인들조차, 이런 죄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그렇습니까?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지 않고, 인간 편에서 생각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무엇인지, 그것을 늘 유념하고 살아야 하는데, 우리는 육신이 요구하는 대로 살 때가 더 많습니다. 수재민을 돕는 일이 주의 뜻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자신의 형편을 먼저 생각하는 습성에 젖어 있어서, 그 일에 쉽게 동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그런 형편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미쳐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애굽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이라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을 취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더라면, 유대인들을 그토록 괴롭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고 산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땅히 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16:24)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이 십자가를 억지로 질 때가 많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마지못해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겉치레로 남을 사랑하지 말고 진심으로 사랑하라(12:9)고 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듯 서로 사랑하면서, 마음으로는 서로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10)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쁘게 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를 지려면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인간 편에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살펴볼 때, 이 진리의 말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지 않나 싶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아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서로 원수가 되어 미워하면서 사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싶습니다.

서로 피해의식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애굽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너무 심하게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라는 것이, 유대인들이 자기들을 해칠 수 있다는 예상을 하고 한 짓이었습니다.

826일자 동아일보에는 하나님도 속이고라는 제목으로 공종식 기자의 칼럼이 실렸습니다. ‘옷 사건 청문회에 나온 세 여인 모두가 하나님과 성경, 그리고 신앙을 들먹이면서 자신들의 결백을 호소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데도 말입니다.

특히, 배정숙 씨는 몇 차례나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한다. 하나님만은 아실 것이다라고 하면서, 자신에 대한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그러자, 이형자 씨는 하늘이나 땅에 대고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고 하면서, 배정숙 씨의 말을 반박했습니다.

세 여인 모두, 한 교회에 출석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을 넘어뜨리려고 하는 모습이, 오늘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괴로운 일입니다.

이들 뿐이겠습니까? 내가 살기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이웃과 상대방을 괴롭혔던가요?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보존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는 얻을 것이다(16: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이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되새기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까?

바울은 원수 갚는 일은 주님께 맡기라(12:19)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원수가 배고파하면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면 마실 걸 주라(20)고 했습니다. 그래서, 악이 기세를 부리지 못하게 하고, 선한 일로 악을 정복해야 한다(21)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이 세상이 악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면, 이 십자가를 우리가 즐거운 마음으로 져야 합니다.

 

2.자기 십자가를 열심히 져야 합니다.

 

쿼바디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목은 쿼바디스 도미네라는 말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말은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뜻입니다.

주후 64년이래,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큰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가 로마 시가지에 불을 놓은 다음, 그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웠기 때문입니다. 박해를 견디지 못한 기독교인들은 카타콤이라는 땅굴 속 200미터 지하로 들어가서, 200년 동안이나 동굴생활을 했습니다.

그 당시, 베드로도 로마에 있었습니다. 그는 성도들도 모르게 로마시내를 빠져나와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타나셔서 그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깜짝 놀라서, 베드로가 한 말이 쿼바디스 도미네였습니다. 주께서는 베드로에게 로마의 성도들을 위해서, 내가 다시 십자가를 지러 올라가는 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누가 십자가를 져야 하겠습니까? 바로 우리가 아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십자가를 회피한다면, 주님께서 다시 십자가를 지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잠시 편하게 살 수 있을는지 몰라도, 훗날에 주님 앞에 갔을 때에 어떻게 고개를 들 수 있겠습니까?

 

그런고로, 이 세상에서 죄악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를 져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먼저, 모든 일을 주님 편에서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이익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일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사고방식을 가져야, 올바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결국 이웃과 함께 하는 사랑의 삶인 것입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까지도 다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겉치레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으로 악을 정복하여 평화를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평화입니다. 주님이 다스리시는 평화의 세계입니다. 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는 주님 편에서 생각하고 일해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려 하다가는 함께 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서 주를 열심히 따라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죄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인생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