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출애굽기

출 23:1 노동하는 손은 아름답다

'코이네' 2023. 6. 23. 17:24

노동하는 손은 아름답다

(본문/ 23:1-13)

 

 

 

요즈음 불로소득으로 재산을 모은 사회지도층 사람들을 향한 지탄의 소리가 높습니다. 땀흘려 일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깨끗한 사회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잇습니다. 이것은 땀흘려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오래된 기대입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땀흘려 일하는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노동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들으면서 높은 도덕성을 지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말씀은 계약법전이라 일컬어지는 이스라엘의 법전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먼저, 행정과 사법권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재판에 있어서 공정할 것은 촉구하고 있습니다. 부자나 강자에게 편향적인 판결을 하여 가난한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라는 명령입니다. 그 다음은 안식년과 안식일에 관한 규정입니다. 이것은 이집트의 압제 아래에서 고역에 찬 노예노동을 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분이, 야훼 하나님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와 땀흘려 노동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함께 담겨져 있습니다.

 

1. 땀흘려 일합시다.

 

하나님은 창조자로서 엿세 동안의 활발한 창조활동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만들어 내는 활동을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땀흘려 일하는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 인간에게 전수되어 우리 인간들은 땀흘려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하시면서 사역의 기쁨을 표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안식일 규정에도 "너는 육일동안에 네 일을 하고"(23:12)라고 했습니다. 같은 안식일 규정인 신명기 법전에는 "엿세 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5:13)라고 했습니다. 엿세 동안 땀흘려 힘써 일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먼저된 명령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다.

쉼은 땀흘려 일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땀흘려 일하는 노동 없이 쉼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악입니다. 땀흘려 일하는 노동 없는 열매도 하나님 뜻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요즈음 공직자 재산등록으로 온 나라안이 떠들썩합니다. 특히,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땀흘려 일한 결과가 아닌, 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엄청난 불로소득을 보면서 지탄의 소리가 높습니다.이것은 상대적으로 땀흘려 일하면서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허탈감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는 지금까지 이런 풍토와 관성에 대해서는 도덕적 불감증을 가져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우리 신앙인들이 앞장서서 땀흘려 일하면서 얻은 열매로 살아가는 본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또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도 높은 도덕성으로 우리 신앙인들이 앞서 나가야 하겠습니다.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일을 피하는 3D 현상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합니다. 작업환경의 개선이 시급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땀흘려 일하여 대가를 구하기 보다 손쉬운 열매를 찾아가는 풍조는 또 다른 노동 경시 풍조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발바닥처럼 가장 힘들고 냄새나는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일을 열심히 해내는 사람들이 되도록 합시다.

손쉬운 소득을 추구하고 땀흘려 일하는 작은 소득을 비웃는 사회 풍조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신앙인들은 열심히 땀흘려서 거둬 들이는 열매만을 구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달란트 비유는 이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것이라 할지라도,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땀흘려 일해서 열매를 거둬들이는 것을 하나님은 칭찬하고 있습니다.

 

2,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듭시다.

 

오늘 본문에 안식일 규정을 제정하시면서 그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제 칠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안식일 규정을 언급하면서, 다른 동물이나 사람이 아니라, , 나귀, 계집종의 자식, 나그네를 언급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들은 고된 육체적 노동을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쉼도 없고 휴식도 없이 육체적 노동에 시달리는 소나 나귀 같은 짐승, 또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종과 나그네로서 육체적 노동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사람들을 쉬게 하라. 이것이 안식일 규정의 근본 정신 중의 하나였습니다. 안식일의 쉼 규정을 어기는 자는 죽이라고 했습니다.(35:2) 이것은 하나님의 단호한 명령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육체적 노동으로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겨 아끼셨고, 그들에 대한 배려를 소홀히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이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땀흘려 일하는 손과 몰두하여 일하는 인간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일은 그 결과나 성과물 보다도 과정이 소중합니다. 일하는 과정이 존중되는 사회는 따뜻한 사회입니다. 그러나 일의 결과를 존중하는 사회는 비인간적인 사회입니다. 한 사회의 건강성은 땀흘려 일하는 가치를 얼마나 강조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노동하는 손이 부끄러운 사회가 아니라, 아름답고 존중을 받는 사회가 되도록 합시다.

기층(基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계층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계층, 모든 것의 근본 터가 되는 계층이라는 말입니다. 이 기층은 손 노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손노동, 육체적 노동을 하는 계층이야말로 이 사회의 터요 기본입니다. 예수님은 목수 출신이기도 했거니와 나무일뿐 아니라, 바다 어부일, 농부일, 목자의 일 등을 환하게 꿰뚫고 계셨으며 그 일을 자주 말씀의 소재로 사용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만큼 일하는 자, 노동하는 사람들과 친숙하게 지내셨고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또 그일 가까이 계셨습니다.

사회가 비록 천대하고 소홀히 대한다 할지라도,우리 신앙인과 교회는 노동하는 사람들을 가장 존중히 여기도록 합시다. 선교정책에도 가장 우선이 되도록 합시다.

 

3. 땀흘려 일하다 고통당하는 형제들을 돌봅시다.

 

오늘 본문의 말씀 중 누차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집트 종살이 하던 것을 기억하여 공동체의 가난한 자와 소외되어 고통당하는 형제들을 돌보라는 명령입니다.

 

1) 건강과 일터를 잃은 형제들을 돌봅시다.

아직도 우리의 노동현실은 개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매년 15만 명의 산업재해를 당한 사람이 있고 그 중 1700여명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또 아직도 한국은 장시간 노동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노동자의 노동.생활조건 개선이나 지위향상을 위해 활동하다가 구속, 해고, 수배를 당하면서 일터 바깥으로 내몰린 형제들이 있습니다. 19883월 부터 9210월 까지 6공화국 기간에 노조활동과 관련하여 해고된 노동자 수는 해직교사를 빼고도 3329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기간에 구속된 노동자는 1849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건국이래 최대사면이라는 새 정부의 지난 3,6 대사면 때는 125명의 구속노동자 중 15명만이 석방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고용불안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경기침체의 여파로 해고, 실직되어 길거리를 헤매는 형제들이 많아졌습니다.

 

2) 나그네된 형제들을 돌봅시다.

오늘 본문의 말씀 중 "23:9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23:12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나그네를 압제하지 않고, 나그네에게까지 쉼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구약시대의 나그네는, 남의 씨족 천막 아래 은신처를 구하는 흔히 추방된 자, 망명한자, 자연의 참변이나 전쟁 등으로 자기부족이 전멸한 후에 생존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다른 부족에 가서 살게 되므로 쉽게 착취와 압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들을 보호하라고 하셨습니다.

작년 법무부에 자진 신고된 외국인 노동자는 61126(2022년 통계는 45만명)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미신고자까지 포함하면 12만명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12만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개 동남아나 파키스탄 등지의 사람들입니다. 불안한 신분적 위치에 저임금 열악한 환경에 일부에서는 구타까지 당한다고 합니다. 일반인들이 보내는 따가운 눈총에 더해 근로현장에서 각종 따돌림과 멸시를 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는 도움의 손길을 펼쳐야 합니다.

한국 교회협의회 산하에 외국인 노동자 선교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들을 위한 선교활동을 시작한 것은 의미 있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이들을 교회가 돌봐야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역사의 중요한 고비를 넘어가는 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땀흘려 일하는 노동의 중요성과 고통당하는 노동형제들을 돌보는 일에 앞장서도록 합시다. 특별히 외면했던 선교과제를 발굴하고 힘써 노력하여 사회의 등불과 사표가 되는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노동주일을 당하여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에게 오늘 내리신 말씀을 순종하여 복되고 기쁜 삶을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