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자료

[삼일절설교자료] 내 동포여 들으라, 박조준목사 설교

'코이네' 2014. 12. 21. 12:56

내 동포여 들으라
미가서 6:1-9
갈보리교회 /박조준목사        


오늘 우리는 광복 54주년을 기 념하는 뜻깊은 주일을 맞이했습니 다. 일제 36년간의 식민지 생활은 빛을 잃고 어두움 가운데서 살던 암 흑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빛을 다시 찾게 되 었습니다. 그래서 '광복'(光復)이라고 합니다. 이 날은 한 마디로 감격의 날이었습니다. 우리가 일본 사람의 통치에서 벗어나 해방이 된다는 것 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 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 족을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에게 해방을 선물로 안겨 주셨 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오랫동안 애굽 에서 종살이하며 너무 힘들고 어려 워서 하나님께 눈물로 부르짖었습니 다. 그래서 하나님이 저들의 수고를 아시고, 눈물을 보시고, 간구를 들으 셔서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정치적인 구속을 받아 부자유하게 사는 것처럼 불쌍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전에 패트릭 헨리가 남긴 말은 유명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 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주시오."

그렇습니다. 자유는 생명을 주고 바 꿀 정도로 소중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슨 비극 무슨 비 극 하여도 망국(亡國)의 비극처럼 큰 것이 없습니다. 망국민이 되는 것처럼 슬픈 일이 없습니다. 나라 없는 백성은 가는 곳마다 멸시와 천 대를 받습니다. 사람으로서 가장 슬 픈 것은 부모 없는 고아가 되는 것 이요, 민족으로서 가장 슬픈 것은 나라 없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2차 대전 당시의 유대인들을 보 세요.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600만 명이 히틀러 정권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을 당했습니다. 나라 없는 백성 은 뿌리 없는 풀과 같고 집없는 어 린아이 같습니다. 나라는 백성의 큰 집입니다. 집은 우리에게 안전한 보 금자리와 자유로운 방과 행복한 생 활을 보장해 줍니다. 집이 없을 때 우리는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조국은 우리 조상의 나라요, 부 모의 나라입니다. 같은 땅에서 같은 핏줄기를 받은 동포들이 같은 말을 쓰고, 같은 글을 쓰고, 같은 역사를 창조해 나아갑니다. 나와 조국은 나 무와 잎사귀, 세포와 생명체의 관계 와 같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잎에 는 생명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조국의 품에서 떠날 때 우리는 유랑민 처럼 비참해집니다. 사람들은 나라 없는 백성을 측은하게 생각하기보다 는 멸시의 눈으로 대합니다. 왜냐하 면 애국심과 용기와 단결력이 부족 했기 때문에 제 나라를 다른 나라에 빼앗겼거나 그 나라가 무너진 것이 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라 없는 백성은 동정의 대상보다는 멸시의 대상이 됩니다. 망국민은 역사의 낙 제생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남을 침략해서도 안되지만 남의 침략을 당했을 때 용감하게 국토를 지켜야 합니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모든 국민의 첫째 의무요, 기본 책임입니 다. 우리는 위대한 조국, 자랑스러운 나라, 빛나는 사회를 만들어 우리 후손들에게 떳떳하게 물려주어야 합 니다. 우리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어야 합니다. 한 나라의 위대성은 무력이나, 경제나, 국토의 크기나, 인구의 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정신이 있는 나라가 위대한 나라입니다.

사람에게는 조국을 선택할 자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태어났 다는 것은 선택 이전에 하나님의 뜻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영광으로 바꾸고, 축복으로 바꾸고, 자랑과 보람의 빛으로 만들어야 합 니다. 해방의 그 날 우리에게 는 감격의 노래가 있었고, 희망의 대화가 오갔습니다. 독립의 의지가 솟구쳤고, 성실의 정신이 팽배했습 니다. 줄기찬 건설의 이상이 빛났고, 아름다운 협동의 윤리가 두터웠습니 다. 하늘과 땅에 순수의 정기가 넘 쳤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맑은 새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모두가 역사 적 새 출발의 감격과 정열과 희망이 벅찼습니다. 우리의 입에는 즐거운 노래가 있었고 우리의 가슴에는 아 름다운 기원이 서리어 있었습니다. 우리의 사상에는 부푼 희망이 있었 고, 우리의 행동에는 줄기찬 생명력 이 약동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외부의 세 력에 의해 국토가 양단 되는 비극을 안게 되었고, 동족상잔의 6.25 참변 을 겪게 되었습니다. 혁명의 진통을 치르고 군사 독재의 어두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 입에서는 많은 노래가 사라졌고, 우리의 가슴 에서는 아름다운 기도가 없어졌습니 다. 우리의 대화는 불신의 말로 가 득하게 되었고, 우리의 풍토는 부정 과 부패의 탁류로 화해 버렸습니다. 민족의 정기는 사죄와 파쟁으로 흐 려졌고, 우리의 생활은 좌절과 파탄에 직면했습니다. 낭비와 허영의 망 국병이 우리 사회의 골수까지 깊이 침투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미래에 대한 비전 을 잃고 건설에 대한 의욕이 희박해 졌습니다. 역사의 폭풍 속에서 정신 을 차리지 못하고 좌표와 방향을 상 실한 채 허덕이고 있습니다. 권력과 금력, 소위 정경이 유착해서 나라의 경제를 말아먹고 민생고에 신음하는 근로 대중의 처절한 신음 소리가 민 족의 고막을 슬프게 두드리고 있습 니다.

우리 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 어서고 있다고 좋아했는데 알고 보 니 남의 나라 빚 얻어다가 그 동안 흥청거리며 산 꼴이 되었으니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손꼽히는 기업마 다 수조 원씩의 빚을 지고 있어 자 기 자본으로 갚을 형편 못되어 국가 에서 소위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 는데 그 공적자금이라는 것이 결국 은 국민의 혈세가 아닙니까? 이제 그것마저 바닥이 나게 되었다니 어 떻게 해야 됩니까? 국제 금융 기구 의 도움을 받으면서 빈익빈 부익부 의 현상이 심해져서 국민은 도탄에 빠져 있는데 정치 지도자들은 그것 에 아랑곳없이 서로의 당리당략을 위해서 싸움만 계속해서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는 처지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 사의 전철과 과오를 다시 밟지 않는 총명과 예지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의 창부가 된 우리에게는 오직 진지 한 반성이 요구되고, 역사의 탕아로 전락한 우리에게는 다만 엄숙한 참 회가 필요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50년이면 이 강산 이 적어도 다섯 번은 변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해방 후 50년 동 안 세계는 전진하고 비약했는데 우 리 나라 이 민족의 의식은 좌절과 공전 속에 제자리걸음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확고한 민족적 주체 성이 서지 못하면 우리는 역사의 사 나운 격류 속에 떠내려가기가 쉽습 니다.

이런 때 우리에게는 우리의 힘 으로 서고,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려 는 자주정신이 필요합니다. 남의 힘 을 믿고 남의 힘을 의지해서 살려는 것은 노예 정신입니다. 세상에 무엇 이 슬프다 슬프다 하여도 마음이 죽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습니다. 스스로 인생의 패배자라고 믿는다면 그는 정말 인생의 패배자가 되고 마 는 것입니다. 나는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면 그는 정말 인 생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의 낙제생이라고 생각해서 비굴하게 살면 우리는 정말 역사의 수치스러운 낙제생으로 전락해 버리 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의 우등생이라고 스스로 굳게 자부하면 우리는 영광스러운 역사의 우등생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마음이 죽으면 모든 것이 죽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의 주체 정신이 생 생하게 살아서 힘차게 꿈틀거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살았는가 죽었는가를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합 니다. 우리는 자주의 나무를 심고, 독립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조의 불굴의 정신을 가슴속에 지녀야 합니다. 굴종과 비 하의 예속 정신을 버리고, 독립과 자존의 자주 정신으로 새로운 정신 풍토를 건설해야 합니다.

가장 행복한 사회는 서로 믿을 수 있는 사회입니다. 가장 불행한 사회는 서로 믿을 수 없는 사회입니 다. 성실은 대인 관계의 기본 질서 요, 신의는 사회생활의 기본 원리입 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성실의 도덕과 신의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있어야 합 니다. 마귀의 말은 믿을 수 없어도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있어야 합니 다. 신의의 터전이 없을 때 정치의 안정도, 경제의 번영도 바랄 수가 없습니다. 도둑놈들이 손발이 맞아 서 도둑질을 해도 최소한도의 상호 신의는 있어야 합니다. 하물며 공명 한 민주 사회 건설에 있어서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신의는 사회 를 흥하게 하고 불신은 사회를 망하 게 합니다. 이것은 인간 역사의 엄 연한 경험적 진리입니다. 우리는 일 찍이 불신 사회가 번영하는 예를 보 지 못했고, 신의 사회가 쇠망하는 경우도 보지 못했습니다. 한 개인이 사회에서 공신력을 잃으면 발붙이고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한 민족이 국제 사회에서 공신력을 잃어버리면 독립할 수가 없습니다.

개인 대 개인이나, 국가 대 국 가의 관계에서나 신의는 언제나 지 켜야 할 기본 질서입니다. 성실은 도덕의 핵심이요, 신의는 윤리의 기 본입니다. 허위와 불신은 불행과 멸 망의 원리요, 성실과 신의는 행복과 번영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 를 굳게 믿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나라는 어떻게 신의의 사 회에서 불신의 사회로 전락했습니 까? 그 책임은 온 국민이 져야 하지 만 특별히 위정자들의 책임이 크다 는 사실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 다. 과거 자유당 말기의 부정 선거 와 부패 정치는 이 땅에 불신의 씨 를 뿌리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 사 회가 불신 사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큰 비극이 아 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근본적으로 바로 잡는 길은 신의의 질서를 재건하는 일입니다. 불신과 부패를 제거하고 신의와 공정의 사회를 건설하는 일 은 우리 민족의 사활이 걸려 있는 문제입니다. 8.15 해방 이후 온 국민 의 가슴속에 깊이 메아리치며 서로 믿고 지내던 이 아름다운 신의의 질 서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불신 의 악을 깨끗이 불살라 버려야 합니 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의 말대로 공의가 하수처럼 흐르게 해야 우리 가 살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국민은 훌륭합니다. 우리 국민은 건강합니다. 이번 수재 민을 돕기 위해 며칠 동안에 천만에 가까운 국민이 ARS를 통해 참여하 는 것을 볼 때 정말 착한 국민인 것 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렇게 착하고, 이렇게 잘 참고 견디는 국 민을 우롱하는 것은 위정자들입니 다. 학부형에게 15만원 받았다고 구 속하면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 은 수백억 원을 받아도 떡 값이니, 관행이니, 대가성 없는 정치자금이 라고 해서 넘어가는 이 사회, 이것 이 공평무사한 법질서가 운영되는 민주 사회라고 할 사람이 어디 있습 니까? 이제 우리는 부패 불감증 환 자들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래서 밖에서는 우리 나라를 부패 공 화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붙 여 주지 않았습니까? 부끄러운 일입 니다. 가슴아픈 일입니다. 이런 대접 을 받고도 가만히 있으면 됩니까? 이 민족을 이런 처지까지 전락시켜 버린 사람들이여, 깊이 회개해야 합 니다. 참회와 반성과 개혁으로 성실 과 공정의 새 인간으로 돌아가야 합 니다.

오늘 우리의 정치는 국민의 혈 세를 받아 과연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고 있습니까? 이 사회를 부익부 빈익빈의 비극적인 사회로 몰아넣고 있는 자가 누구십니까? 로버트 오웬 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정치의 목 적은 통치하는 자와 통치 당하는 자 를 행복하게 하는데 있다."

옳은 말 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새로운 질서 가 요구됩니다. 우리의 경제 풍토에 서 빈곤과 사치를 몰아내고 생산 의 욕과 건전한 기업 윤리를 확립해야 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 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 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기업하시 는 분들에게 말씀합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부채를 낳고 부채가 장성 하면 부도를 낳습니다." 왕성한 의 욕으로 기업을 확대시키는데 자기 자본 가지고 하는 데야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내 자본은 없이 외부의 빚을 가지고 하다가 감당 못하니 결 국 당하는 것은 국민이 아닙니까? 이 착한 국민이 무슨 잘못이 있습니 까? 부지런히 일한 것밖에 없는데 왜 이런 부담을 안아야 합니까?

과거 우리 나라의 재벌이라는 분들이 장사를 자본과 기술로 하지 아니하고 정치적으로 했으니 장사가 됩니까? 그래서 지금 남은 것이 무 엇입니까? 빚밖에 더 있습니까? 이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책임질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일은 몇 사람이 저질러 놓고 국민에게 책 임지라니 이것은 언어도단입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우리에게 두 가지 악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분에 맞지 않는 망국적인 사치와 향락과 허영 그리고 과소비의 사회악을 몰아내야 만 합니다. 우리가 이 일을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습니다. 개인이나 민족이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분을 알고 자기의 분을 지키는 것입 니다. 사람이 자기의 분을 지킬 때 건전하고 번영합니다. 자기의 분을 모르고 자기의 분을 넘을 때 병이 들고 파멸이 오는 것입니다. 제 분 을 모르고 제 분을 넘을 때 오만과 불손의 병에 걸립니다.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이여, 부족한 것이 감히 말씀드립니다. 각 자 자기 분에 맞지 않은 소비, 자기 분에 맞지 않는 향락, 자기 분에 맞 지 않는 사치, 자기 분에 넘치는 사 업 확장, 자기 분에 맞지 않는 생활 은 버립시다. 이 모두는 쇠망과 파 멸로 통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 의 경제 풍토에 건전하고 합리적인 기업 윤리를 세워야 합니다.

사회의 부를 소유하는 자본가들 은 부의 사회적 책임을 알고 옳게 사용하는 윤리를 가져야 합니다. 돈 은 내 것이 아니고 관리하는 것입니 다. 돈뿐이겠습니까? 우리는 맡은 사람, 청지기로서 일해야 합니다. 여 기서 떠날 때 우리 사회는 불합리하 고 무궤도한 사리사욕의 각축장으로 화하고 말 것입니다.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이 협잡하 지 않고 먹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돈을 모으는 사람은 부정과 협잡으 로가 아니라 노력하고 수고해서 정 당하게 돈을 벌어야 합니다. 오늘 같은 사회 풍토에서는 젊은 사람들 이 성실하게 창의성을 살리며 일하 고 싶은 의욕을 잃어버릴 정도가 아 닙니까? 그러니 늘어나는 것은 사기 범밖에는 없습니다. 저는 누구를 원 망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정죄하 고 비난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이대로라면 이 민족의 앞날이 너무 어두워서 외치는 것뿐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미가서 6장 8절 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가장 위대한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여기 하나님 께 나아가는 이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번제나 잘 드리 면 되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미가를 통해서 주신 말씀은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 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이 아니냐"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종교의식보다 그 의식 을 행하는 이들의 마음과 생활을 더 중하게 여기십니다. 예물을 드릴 때 도 하나님은 예물 자체보다 예물을 드리는 이의 마음과 생활을 보십니 다. 그리고 올바른 윤리 생활을 원 하십니다. 공의가 행해져야 합니다. 산업 사회를 예를 들자면 일한 만큼 임금을 지불해야 되고, 받은 임금만 큼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부한 사람이 같은 대우를 받습니까? 여당과 야당이 같은 대우를 받습니까? 국회의원과 평민이 대통 령 아들과 보통 사람의 아들이 같은 대우를 받습니까? 부정 부패라는 말 이 왜 생깁니까? 결국 공의가 돈이 나 권력에 의해서 흩어진다는 말 아 닙니까?

공의를 행하는 사람이 복을 받 습니다. 공의를 행하는 사회, 민족, 나라가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도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의를 구해야 평화도 번영도 따르게 되는 것입니 다. 이사야 32장 17절에 "의의 공효 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 안과 안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의 는 평화와 번영의 조건입니다. 그래서 잠언 14장 34절에 보면 "의는 나 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 되게 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는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 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오직 공의가 우리 나라 어디나 하수같이 흘러 서 어느 사회, 어느 단체, 어느 기관 이나 공의롭게 운영되어서 우리 나 라가 축복을 받고, 민주국가도 발전 할 뿐더러 오늘 우리에게 행복을 가 져오며, 우리 자손 만대에 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