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자료

[부활절 설교] 부활을 본 자의 사명, 정성훈 목사 설교

'코이네' 2014. 4. 18. 14:34

부활 설교, 마가복음 16장,부활을 본 자의 사명, 정성훈 목사




막 16:15~20  부활을 본 자의 사명 The Last Mission Jesus Gave us

설교자 : 정성훈 목사(동래중앙교회)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다. 사람이 죽으면서 남기는 유언도 소중하듯이 예수님께서 이 땅의 사역을 마치시고 하나님 나라로 가시기 전에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귀중한 말씀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씀 속에는 예수님 가슴속에 불타고 있었던 소원이 무엇이며, 또 세상을 향해 가지고 계셨던 영적 비전이 무엇이었는가를 우리에게 잘 증거 해주고 있다. 이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부활을 본 사람, 부활을 체험한 사람은 부활을 보았다는 그 이유만으로 부활을 전해야 될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이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자는 누구나 다 이 명령을 듣고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과 함께 제자들을 불러 내셔서 그들에게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과 함께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복음서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증거 하는 공통점 하나는 부활을 본 사람, 부활을 믿는 자, 부활에 참여한 자라면 누구나 부활의 소식을 땅 끝까지 전하고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명령은 당시의 제자들에게만 주신 명령이 아니다.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한 명령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이 명령은 반드시 실천해야만 하는 중요한 명령인 것이다. 또한 주님은 이렇게 해 달라 우리에게 부탁을 하고 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고 부탁하시거나 명령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주님은 이제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에게 이렇게 해달라고 하는 부탁을 하고 계신 것이다. 이 말씀을 가리켜서 ‘주님의 위임명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위임해주신 특별한 명령이라는 것이다.

이 명령을 어떻게 지키느냐에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주님 앞으로 나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 생명을 얻어 살아 갈수 있게 된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 성도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복음을 전하는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성도로서 존재의 의미도 교회의 존재 의미도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가 다른 활동을 아무리 많이 하고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열심히 한다고 할지라도 그 속에 복음 전하는 일이 빠져 있다면,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일이 빠져 있다면, 그 모든 신앙생활은 큰 의미를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 우리에게 간절히 소원하시는 바가 바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해달라고 하는 이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명령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약에 이 명령을 듣고도 우리가 꼼짝하지 아니하고, 그저 부활의 소식을 듣고 거기에 만족하여 살아가고 있다면 주님의 명령에 불복종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 못하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가령 사막을 지나는 일행들이 있다고 가정 하자. 하루하루 물은 떨어지고 목은 말라간다. 목이 타 들어갈 쯤에 누군가가 샘물을 발견하였지만 아무도 눈치를 못 챘기 때문에 이 사람이 속으로 생각기를 ‘샘물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저들에게 알리면 내게 돌아올 양이 줄어들지는 않을까? 혹시 샘물 물이 넉넉지 못해서 내가 충분히 해갈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염려로 인해서 샘물의 존재 이유를 동료들에게 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이다. 머지않아 일행들은 목이 말라 사막 한가운데 쓰러져 죽어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기 혼자는 그 샘물을 마시고 살아 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존재를 이야기 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죽어간 많은 사람들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다. 그리고 명령과 함께 온 천하를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에게 부탁하고 계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명령이 이미 여러분에게 떨어졌다. 어떻게 하겠는가? 군인은 명령에 죽고 사는 자들이듯이 복음을 전하는 십자가의 군병들 역시 주님의 명령에 죽고 사는 자들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면 우리는 지체하지 말고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시간도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된다. 복음을 힘 있게 증거하여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뿐만 아니라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여러분들 모두가 되시기를 바란다.  

영혼의 가치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영혼의 가치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영혼의 가치가 얼마쯤 되리라 생각하는가? 한 100억 쯤 아니면 100조 쯤 되겠는가? 주님은 영혼의 가치를 물질로 따 질수 없는, 다시 말해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천안함 침몰 사고로 한주호 상사가 생명을 바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구조하다가 침몰하여 죽은 9명의 젊은이들은 왜 그런 위험한 일에 자원하여 뛰어들었겠는가? 생명의 가치가 귀하다고 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겠는가? 내 한 목숨 바쳐 한 사람이라도 더 건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것이 그들이 가진 기본적인 태도였던 것이다.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도 한 영혼을 건지기 위해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자기 몸을 바치거늘, 하나님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영혼을 건지기 위해서 꼼짝도 않고 있다면 그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이다. 오늘도 많은 영혼들이 위험에 처해 있고 그 위험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누군가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영혼을 건지는 일을 위해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 위기 속에 그대로 죽어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 영혼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주님은 그 가치가 얼마나 큰 가를 알고 계셨기에 자기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 우리의 생명을 구해내신 것이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주님께서 생명을 바쳐 건져낸 소중한 영혼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은혜를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통해서 갚아나가야 할 것이다. 어린아이가 아프면 한밤중에라도 그 아이를 끌어안고 병원을 향해 찾아가 닫힌 문을 두드리지 않는가? 의사를 찾아 백방으로 헤매기도 하고, 그 아이의 목숨을 건질 수만 있다면 돈이 문제겠는가? 불편함, 시간이 문제겠는가? 모든 것을 투자해서라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것이 부모의 생각 아닌가? 왜 그렇게 하는가? 아이의 생명이 귀중하기 때문에 그렇다. 여러분이 한 영혼 한 영혼을 소중히 아끼고 사랑하고 그들을 건지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해서라도 그들을 건져내려고 애쓰게 될 것이다. 그들을 건져내는 데 있어서 돈을 투자하는 게 아깝고, 물질을 허비하는 거 같아서 안타깝고, 시간을 투자하는 거 같아서 그것이 꺼려진다고 하면, 그 사람은 평생가도 영혼을 제대로 건져 낼 수가 없을 것이다. 한 영혼의 가치를 바로 알아야만 우리가 그 영혼 구원을 위해서 전적으로 헌신 할 수 있는 것이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영혼이 여러분의 복음 전도에 달려있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혼을 여러분의 복음 전도를 통해 그들의 영혼이 살아나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것처럼 복된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한 영혼 영혼이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하면서 그들을 향하여 복음 들고 나아가길 바란다.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복음을 전파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구원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 16절을 보면,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음이 어떻게 해서 온 것인가? 누군가 복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복음을 전하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한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도 있고, 멸망의 자리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입술을 열어 복음을 담대히 전하고 누구를 만나든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전해야 되는 이유는 그 부활의 소식을 듣는 자들마다 믿음을 얻게 되고, 세례를 받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믿는 자가 누리는 큰 상급을 얻을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전하지 않아서 그래서 부활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결국 그 영혼이 멸망하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우리의 복음 전도는 이처럼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낸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생명이 살아나고, 그 한 생명으로 인해서 가정이 살아나고, 그 가정이 살아남으로 사회가 살아나고, 사회가 살아남으로 국가가 살아날 수 있는 길은 복음을 전하는 이 일에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명심할 수 있어야 한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다. 복음에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심령을 전적으로 새롭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전하기 위해 다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부활을 본 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오늘 본문에 보면

‘온 천하를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고 말하고 있다. 누군가 다니지 아니하면 이 복음의 소식은 전해질 수 없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나만 알고, 나만 체험하고, 나만 믿고 살아가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들을 수가 있겠는가? 부활의 소식을 듣지 못한 자들을 향해서 그리고 복음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지역을 향해서 우리가 힘써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가야 만나고 가야 소식을 전할 수가 있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부활의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주 앞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게 된 것은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가서 그 부활의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갔기 때문에, 가서 그 소식을 들려주었기 때문에 그 소식을 듣고 믿음을 얻게 되고, 그 믿음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오게 된 것이다. 누군가 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영원히 죄 가운데서 해방되지 못한 채 그저 죄를 짓다가 정죄를 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죄 사함의 소식, 부활의 소식, 새 생명의 소식, 위로의 소식, 사랑의 소식이 우리에게 전해져 왔기 때문에 우리가 그 소식을 듣고 주님 앞에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 온 두 분의 선교사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이다. 물론 그 이전에 알렌이라고 하는 의료 선교사가 와서 제중원을 세우고, 그 후임으로 에디슨이라는 아주 걸출한 의사가 와서 우리 대한민국에 의료계에 혁신을 일으켰다. 에디슨이라고 하는 분이 제중원을 세브란스로 변모시키면서 현대적인 병원의 막을 열었고, 이것을 기념하여 몇 일 전에 에디슨 의료선교 120주년을 행사를 연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성대하게 열기도 했다. 이처럼 그들의 피나는 헌신이 있었기에 의료면 의료, 교육이면 교육, 사회봉사면 사회봉사, 모든 면에서 정말 기독교 정신으로 그렇게 이 나라를 세워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가난과 무지와 질병, 편견과 문화적인 충격, 자녀 교육과 심지어 풍토병으로 인해서 낳자마자 아이를 땅에 묻어야 했던 그런 참담한 상황에 직면하면서도 이 땅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그 뜨거운 열망 하나로 그들의 사명을 다했기에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아펜젤러 얘기를 좀 더 하자면 그가 이 땅에 와서 실제로 선교를 한 해 수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몇 년 선교활동 하는 중에 목포에서 열리는 성경번역위원회에 참여하러 가다가 배 충돌사고로 익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짧은 기간에 그가 이 땅에 와서 한 일은 어느 누가 100년에 걸쳐서 할 수 있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갔었다. 배재학당을 세운 일, 세브란스를 건축하는 데 앞장서서 헌신한 일, 한국말로 성경을 번역한 일 등 사실 그가 활동했던 짧은 기간에 비해서 너무나 위대한 역할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한 번은 독립협회회원들이 일제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승만 박사, 이상재 선생님, 오산학교를 세운 이승훈 선생님 등 이런 걸출한 지도자들이 옥에 갇히게 되자, 일제에 그 삼엄한 감시를 뚫고 들어가서 이들에게 사식을 넣어주고 필요한 물건을 대준 사람이 바로 아펜젤러이다. 아무도 가까이 할 수 없었지만 외국인 선교사라고 하는 그 신분으로 감옥마다 찾아다니면서 그렇게 전도를 했다고 한다. 그 때 이승만 박사가 아펜젤러의 이런 헌신적인 노력을 보면서 감동을 하였고, 다른 분들도 기독교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여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런 선교사들의 노력을 일일이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그들이 이 땅에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누군가 왔기 때문에 복음이 전해졌고, 그 복음을 받은 우리가 새 생명을 갖고 새 소망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주님께서 여러분을 어디론가 보내실 때 순종하고 그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표적과 기적이 따른다

우리가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에 주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어떤 표적과 기적으로 역사하시는 가를 5가지로 요약해서 말씀하고 있다. 17,18절 말씀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믿는 자에게 뭐가 따른다고 하는가? 표적이 따른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표적은 보통 표적이 아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 병든 자를 일으키는 권세, 새 방언을 말하는 권세, 뱀을 집어도 물리지 않고 해를 받지 않는 권세, 이런 권세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복음을 전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표적은 내가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이라고 그랬지, 믿는 자가 일으키는 표적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람에게 무슨 힘이 있어서 그런 기적과 표적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능력의 주님께서 표적과 기적을 일으키도록 하시기 때문에 그런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20절 말씀 보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때 주께서 어떻게 하신다고 하는가? 가만히 보고만 계신다고 하는가? 아니다, 함께 역사하사 우리와 동행하실 뿐만 아니라, 함께 역사하셔서 놀라운 표적을 나타내신다 하신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도 주의 능력과 그 권세를 의지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이러한 표적과 기적이 믿는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고,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이러한 능력을 힘입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란다. 주님은 지체 없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고 계신다. 이 영혼을 살리는 소중한 사명,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어느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던 하나님의 큰 계획과 사명을 우리가 실천해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하늘나라에 별처럼 빛나는 여러분들의 삶이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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