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자료

병원이 돈만 벌면 되나? 한일기독의원 김신기박사 부부 이야기

'코이네' 2016. 9. 22. 20:01

살며 나누며, 김신기 박사 부부 이야기

 

익산 한일기독의원 김신기박사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 2001년 2월 조선일보 기사 -

 

"병원이 돈만 벌면 되나요"...나환자 8백여명과 15년 한결같이. "봉사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아요. 고맙고 즐거워서 하는 일입니다. 나이 들어서도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건강이 허락된 것만도 큰 축복이지요.".

 

전북 익산시 왕궁면 나즈막한 구릉에 자리한 익산농장. 한센씨병 (나병)을 앓았던 800여명과 그 가족들이 모여 사는 이곳에서 한일기독 의원 김신기(70) 박사․손신실(64)원장 부부는 15년째 인술을 펴고 있다. 부부는 매일 오전 8시30분이면 어김없이 출근, 중환자에 대한 왕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김 박사는 한없이 마음씨 좋아보이는 얼굴에 환자들과 허물이 없다. 가족 이야기를 묻고 답하며 우스갯소리로 환자들의 시름을 덜어준다. 자상하고 따뜻한 진료에 외래 환자의 3분의 2 이상이 전주나 익산, 멀리 전남에서까지 온다.

 

50여년 전 한센씨병 환자를 수용하는 국립병원에서 시작, 69년 자활촌으로 바뀐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양계․양돈으로 생계터전을 일궜다. 모두 이웃을 아끼고 직업에 충실하지만 밖으로부터 멸시와 수모를 당하기 일쑤다. 한센씨 병은 전염력이 약해 이 땅에선 거의 사라졌으나 아직도 이를 천형으로, 유전병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노의사 부부는 몸에 난 상처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쓰다듬는다.

 

김김 박사 부부는 이곳에 오기 전 24년 동안 대를 이어 익산시 중앙 동에서 '삼산병원'을 운영했었다. 시민들과 친숙한 의사들이었고, 세 금도 많이 내던 병원이었다.

 

"병원을 하다보니 종업원을 거느리고 '경영'을 해야 했습니다. '돈 버는 일'에 파묻히다보니 의사의 본분을 잊고 지낼 때가 많았어요. 벌 기만 하면 죄라는 생각, 어렵고 가난한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 각으로 고민했어요.".

 

김 박사와 한센씨병 환자와의 인연은 전주 예수병원 수련의 시절 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2년 세브란스의대를 졸업한 그는 예수병원 인 턴을 하면서 한센씨병 환자 수용소인 여수 애향원에서 수련을 쌓았 다. 그는 이때부터 한센씨병 환자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기 시작했고 6개월 동안의 수련의 생활을 마치면서 '언젠간 꼭 돌아오리라' 다짐했다.

 

공군 군의관을 거친 김 박사는 58년 예수병원 외과과장 시절, 전 남대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을 쌓던 손원장과 결혼했다. 노부부는 익산농장에서 운영하는 한일기독의원의 고용 의사로 일 하면서 의사 한 사람의 급여에도 못미치는 생활비를 받는다.

 

부부가 온 뒤 일반환자들까지 밀려오면서 병원은 흑자로 돌아섰고, 병원 수익 대 부분은 복지원을 돕는 데 쓰인다. 김 박사는  한국전력과 MBC가 공동 주최하는 '98 좋은 한국인 대상' 수상자로 뽑혀 상금 100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세금을 뗀 상금 전액은 복지원 기름보일러를 값싼 심야 전기를 이용하는 보일 러로 바꾸는 데 지원, 복지원 노인들의 겨울이 따뜻해졌다.

 

- 2014년 11월 익산신문 기사 -

 

김신기_손신실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는 김신기 손신실 박사 (익산 한일기독의원에서 지금은 왕궁 삼산의원으로 이름이 바꼈다.)

 

 

“여기서 계속 진료하다 죽는게 내 마지막 남은 꿈이에요"


삼산의원 김신기(85)·손신실(79)부부는 28년동안 왕궁면 한센인들의 ‘슈바이처'로 살고 있다.


오는 25일 서울 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 1층 강당에서 진행된 제26회 아산상 시상식에서 의료봉사상을 수여받는 부부는 1949년 조성된 한센인 정착농원인 익산복지농원이 농원 산하기관으로 세운 한일기독의원(현 삼산의원)에서 1986년부터 진료를 시작, 김 원장은 주로 의원에서, 손 원장은 농장 안 양로원에서 환자를 보살피며 하루 평균 60여 명을 진료하며 지내왔다.


그러던 2007년, 대장안과 심장판막증, 심근경색증 등이 찾아온 김 원장이 치료 때문에 병원을 쉬어야 하는 상황이 오게됐다. 이에 농장 운영위원회는 다른 의사를 물색했지만 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약 2년여간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2009년 2월 다시 한센인마을로 돌아온 김 원장은 한일기독의원이 있던 건물을 임대, 예전 부친과 부부가 운영했던 삼산의원 간판을 내걸고 진료를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손 원장이 류머티즘 등으로 걷기가 불편해 2011년부터 김 원장 혼자 진료를 보고 있다보니 월~금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4시까지 하루 50명의 예약환자만 진료를 보고 있다.


뿐만아니라 이들 부부는 봉사단체에서 후원을 받아 한센인을 위해 태양열시스템을 갖춘 공동목욕탕을 만들어주었으며 한국전력공사에서 받은 상금으로 마을회관에 심야전기보일러를 설치해주기도 했다.


김 원장은 “90년대까지는 한센인들이 더 많이 찾는 병원이었지만 10여 년전부터는 일반 환자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며 “익산뿐만 아니라 여수, 제천, 원주, 서울 등 전국에서 오는데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웃음지었다.


그는 “왕궁으로 오기전 부인과 함께 병원을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했지만 안정이 될 수록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짙어졌다"며 “내가 익산로터리클럽 회장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한센인 마을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했을때 아무말없이 날 따라와준 부인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부인은 이제 몸이 불편해 병원에 못 오지만 나 혼자라도 여기에서 계속 진료하다 죽는게 마지막 남은 꿈"이라고 전했다.


1958년 연을 맺고 56년째 함께 백발이 되어 서로의 동반자로 살아가고 있는 부부는 오늘도 환자들을 위해 병원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