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시143:1] 피곤할 때 드리는 기도

'코이네' 2021. 2. 17. 19:57


피곤할 때 드리는 기도
성경:시편 143:1-12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피곤하다」,「피로하다」는 것은 육체와 정신과 영적 상태를 포괄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일반 의학에서는 피로(Fatigue)를 정신피로와 육체 피로,중추피로와 말초피로,급성피로 등으로 구분합니다.  

피로는 그 단계가 지날수록 심해집니다. 첫 단계에서는 작업능력의 저하현상이 일어납니다.둘째 단계로 접어들면 작업능력의 저하는 물론 자신의 의지로는 막을 수 없는 피로감이 나타납니다.셋째 단계는 작업을 중단하고 휴양을 해야 될 단계가 되고, 넷째 단계는 심신기능에 변조가 일어날 뿐만 아니라 만성피로가 되어 회복이 어렵게 된다는 것입니다.
피로가 나타나는 증상은 여러가지이지만 대개는 두통,현기증,설태,변비,식은땀,소변분비의 이상,권태,무력감,자율신경이나 장기 기능의 변조 등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피로는「만병의 원인」이며「건강의 적」인 것입니다. 의사들은 피로를 고치는 일차적 방법은 쉬는 것이라고 합니다.충분히 자고 먹고 기분을 전환하고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는 해결할 수 없는 피로가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시인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 영혼이 피곤하니”
 

시편 143편을 자세히 살펴보면「영혼」이라는 표현이 다섯 차례 나옵니다.
인간의 육체는 정신의 지배를 받고,정신은 영혼의 지배를 받습니다.육체 피로와 정신 피로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육체가 피로하면 정신도 피로하게 되고 정신적으로 피로하면 육체도 피로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적 피로는 결국 정신과 육체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영혼의 문제를 심각하게 취급했고 사도 요한도「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육체든 정신이든 그리고 영혼이든 피로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영혼이 피곤할 때 어떻게 출구를 찾았는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주의 말씀을 듣게 해 달라는 것은 하룻동안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매일 아침 8시 30분이면 중역회의가 열리는 회사가 있습니다.중역들은 8시 20분까지 출근을 합니다.8시 30분이 되면 중역들은 저마다 노트와 서류 뭉치를 들고 중역실로 모여듭니다.그리고 자기 업무를 보고하고 논의합니다.그날 할 일이나 회장의 지시사항을 노트에 적어가지고 중역실로 떠납니다. 시인이 아침에 주의 말씀을 듣게 해 달라는 것은 아침마다 주의 가르치심과 지시를 따라 하루하루를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말씀을 듣는 이유는 주님을 의뢰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주를 의뢰한다」는 구절 속에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주경가 헹스텐베르크는 이 구절의 의미를 “하나님은 그에게 숨는 자들을 숨겨 주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해석 했습니다.
「주를 의뢰한다」는 말을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나를 주와 함께 숨기나이다”가 됩니다.
 주의 말씀을 이른 아침에 듣는 사람,그 말씀을 사모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숨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헹스텐 베르크의 해석을 따른다면 하나님이 숨겨 주시는 사람에게 무슨 스트레스가 있고 걱정이 있고 염려가 있겠습니까?
 

위에서 언급했습니다만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푸는 방법이 쉬고 먹고 즐기고 여행 떠나는 것이라면 영혼의 피로를 푸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시인은 아침마다 주의 말씀을 듣고 주께 피하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제 개인의 경험으로는 피로를 풀기 위해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빚쟁이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면 피로가 더 쌓일 것입니다.내 영혼의 피로는 주님과 함께 쉬고 그 그늘 아래 머무는 것으로 해결됩니다.


 찬송가 478장이 생각납니다.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 바람 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키시리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주 날개 밑 즐거워라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이 찬송은 1896년 윌리엄 오커드 커슁(Willian Orcett Cushing)목사가 가사를 쓰고 아이라 데이빗 생키(Ira David Sankey)가 곡을 만들었습니다.생키는 매일 아침 신학교 예배시간에 이 찬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커닝 목사는 목회도중 성대에 이상이 생겨 목회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설교 못하는 목사는 무기없는 병사와 같습니다.그는 강단을 떠나 좌절감에 빠져 있었습니다.그러던 어느날 찬송시를 쓰라는 영감을 받게 되었습니다.그리고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받는 은총의 사람임을 깨닫게 되면서 이 찬송을 작사하게 된 것입니다. 주 날개 아래 숨으면 걱정이 없습니다.말씀 듣고,말씀 믿고,주안에 머물러 삽시다.

 2.영혼을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9절 끝을 보면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간절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혼을 주께 드린다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주를 갈망하고 사모하다는 것입니다. 주경가 베이커는 “영혼을 하나님께 받들어 드리는 것은 모든 어려움을 몰아내는 출발점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영혼이 좌우합니다.영혼이 강건하면 정신도 육체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지만 영혼이 병들면 육체도 정신도 함께 병들고 마는 것입니다.  한 때 떠들석 했던「엔돌핀」은 철저한 자기부정으로부터 시작하여 생존을 위해 필요로 했던 욕심과 야망을 모두 버렸을 때 분비된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엔돌핀이 분비되는 순간 일종의 희열 상태에 빠지게 되고 때로는 육체의 질병도 치유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뇌 생리학자인「마이클 세이범」박사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엔돌핀이 아닌 다른 정체불명의 물질이 사람의 체내에서 일종의 정신작용에 의해 분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물질은 엔돌핀보다 더 효력이 크다는 것입니다. 저는 과학자는 아닙니다만 저더러 마이클 박사팀이 찾아낸 정체불명의 그 요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받들어 하나님께 맡겼을 때 오는 영적 희열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웃고 즐기고 기분좋고 평안할 때 엔돌핀은 분비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엔돌핀보다 더 좋은 영혼의 평안은 내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참으로 쉬는 것은 하나님께 나를 맡길 때 가능해집니다.

 3.주의 인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10절 끝을 보면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인도해 달라는 것은 따르겠다는 것입니다.따른다는 것은 신뢰와 순종을 의미합니다.성경은 믿고 따른 사람들과 믿지 않고 따르지 않은 사람들에 관하여 얘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고 순종하여 복받을 사람들과 불순종하고 저주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카라우드」라는 18세의 소녀가 미국의 어느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매일같이 그 식당을 찾아오는 고객 가운데 노인 한 사람 있었습니다.그 노인은 1989년에 부인이 세상을 떠난 82세의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노인의 처지를 알게 된 카라우드 양은 그 노인의 집안 일도 보살펴 주고 서류정리를 도와 주는가 하면 병원에 입원하자 극진히 간호까지 해 주었습니다.카라우드 양의 사랑에 감동한 노인은 입원실 병상에 카라우드 양의 사진을 걸어 놓기까지 했습니다.그러다가 노인은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카라우드 양에게 50만 달러의 유산을 물려 주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일한 혈육이었던 누이에게 장례 비용을 포함해 10만 달러의 유산만을 물려 주었습니다.어린 소녀의 정성과 사랑,친절과 봉사가 얻어낸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무조건적으로 주의 인도를 따랐습니다.그리고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란을 떠나라고 했을 때 투정부리고 조건 따지고 대들고 거역했다면 그는 가나안 땅의 주인공이 못 됐을 것입니다.  모압 여자 룻이 자기 동서처럼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르지 않고 자기네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더라면 베들레헴 갑부 보아스를 만날 수도 없었으려니와 다윗 왕가의 조상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그러나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나섰습니다.
 룻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더러 어머니를 떠나라하지 마소서 어머니의 하나님이 저의 하나님이시며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며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저도 함께 갈 것이며 어머니 머무시는 곳에 머물 것이며 어머니 묻히시는 곳에 저도 묻힐 것입니다.”
 

시인의 고백도 나는 주의 인도를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혼자 길을 가는 것은 피곤합니다.그러나 동행이 있으면 피곤이 덜합니다.그리고 그 동행이 뜻맞고 마음맞는 사람들이라면 즐겁고 기쁩니다.시인은 그것을 깨달은 것입니다.그래서 그는 주의 인도를 따르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인생살이나 인생 길이 피곤하다면 즉시 동행자를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인도자를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그 길이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4.주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12절 끝을 보면 “난 주의 종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최고 경영자와 말단 경영자 다시 말하면 사장과 사원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먹는 것,입는 것,잠자는 것,화장실 가는 것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그리고 최고 경영자는 하나에서 열까지 예를 들면 자금,인사관리,품질,판매,시장확보,판촉,개발 등 모든 것을 다 관여하고 신경을 써야 합니다. 잠을 자도,차를 타도,밥을 먹어도 오직 회사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단 사원이라면 회사에 있는 동안은 회사를 생각하고 회사 일을 하겠지만 퇴근시간 되기 바쁘게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그러나 그런 직업 정신이나 자세로는 신임받고 출세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주의 종입니다”라는 고백 속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 주님이 나의 주인입니다라는 것입니다.주님이 나의 주인이면 나는 걱정할게 없습니다.
 둘째 주인의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입니다.종이 할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셋째 나를 낮추며 살겠다는 것입니다.종은 높은자가 아닙니다.낮은 자입니다.

 

이렇게 고백해봅시다. 

 

주님은 내 영혼의 안식처입니다.
밤 바다에서 길 잃은 선박의 등대입니다.
주님은 내 삶의 목적지입니다.
나의 영원한 의사이십니다.
나의 영적 피로를 풀어주시고 
죄의 결박도 풀어 주시고 
영혼의 골깊은 상처도 치료해 줍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