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시137:1] 누가 애국자입니까?_삼일절 설교

'코이네' 2020. 12. 23. 16:06


누가 애국자 입니까 

시편 137 : 1-9


 

오늘은 이 민족이 나라를 잃어버린 망국의 한올 품고 눈물로 강산 을 적시며 자유독럽만세를 외쳤던 기미년 3월I일 63돌을 맞는 날이올시다. 우리의 지난날을 회상하면 거의 반세기 동안이나 일본 사람들에 게 종살이하며 회생당한 우리 순국 선열들과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 당한 주의 종들을 생각할때 우리의 조국은 눈물과 피로 얼룩진 강산 입니다. 우리는 나라를 빼앗기고 우리의 형제들을 땅에 메어치며 언어도 문화도 민족의 양심도 송두리째 짓밟힘을 당했던 그 수난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뜻이 있고 생각이 있는 백성이라면 이 민족의 역사를 눈물 없이는 읽을 수가 없습니다.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를 보면 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쓰다가 말고 붓을 놓고 눈물을 닦지 않으면 안되는 이 역사. 눈 물을 닦으면서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이 역사. 섹스피어를 못 읽고 괴테를 몰라도 이 역사는 알아야 한다. 그래 수 천년을 두고매맞고 짓밟히고 조룽받고 속임당하는 이 백성을 생각하면 눈물 없이 넘어 설 수가 없는 것이다.' 아직도 이 민족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북한 땅에는 자유를 모두 빼앗기고 종살이하며 많은 생명들이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으니 같은 피를 이어받은 동족으로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성경을 읽노라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들과 선지자들의 조국을 사랑하는 심정과 뜨거운 눈물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 별히 오늘 읽은 시편 l37편은 어느 한 사람의 애국심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중의 한 맺힌 조국애의 뜨거운 눈물을 볼 수 있기에 3 . l절을 맞는 우리에게는 더욱 감명 깊은 말씀으로 들려집니다. 또한 이북에 처자를 두고 월남한 동포들에게는 실향민의 슬픔을 이 시편에서 함께 나눌 수가 있습니다. 


이시는 유명한 포로민의 슬픈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들의 포로수용소가 바벨론 강변에 있었다고 합니다. 바벨론 강변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쳐다보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나 깨나 그리워하는 예루살렘의 시온성, 거룩한 성전을 향하여 한없이 울었던 것입니다. 저들은 이땅에서 고독을 느꼈고 자기 조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컸으며 달밝은 밤이면 밤마다 강물에 눈물을 뿌려 야만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강인한 애국심을 배워야 합니다. l 절에서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앗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밤새 울었도다 하였습니다. 왜 그들이 그토록 울어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의 눈물이올시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애국자는 누구일까요? 첫째. 하나님과 조국에 대한 죄를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애국은 하니님 앞에서 전 국민이 회개함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온을 기억하고 울은 것은 하나님을 반역 하고 패역한 백성의 죄값으로 받아야 할 이 서러움을 자복하는 회개 의 눈물이었습니다. 나라를 잃은 망국의 서러움 속에서 누구를 원 망하거나 저주하기 전에 하나님의 준엄한 역사의 심판으로 받아들이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패역한 길로 갈 때마다 하나님은 강한 이방 민족을 막대기로 사 용하시어 저들을 징계하였던 것입니다. 이사야서 10장24절에 징계를 받고 있는 백성을 위로한 음성이 있습니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시온에 대한 나의 백성들아 앗 수르 사람이 애굽을 본받아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머지않은 날 네게는 분을 그 치고 노를 옮겨 그들을 멸하리라 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자기 백성들에게 진노의 막대기를 드시나 저들이 회개하면 그 막대기로 사용된 민족을 꺾으셨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10장 l8절에 선민의 고난을 그들의 죄값으로 참고 견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땅에 거하는 자를 이번에는 내어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라. 이는 참으로 나의 고민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강변에서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지난날 우리 선배들도 나라를 빼앗기고 이국땅에서 조국을 생각 하며 울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 잃은 서러움에서 울었을 뿐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던 이스라엘 민족의 울음과는 달랐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이렇게 회개하며 울었습니다. “저는 우리 민족의 죄인이올시다. 이 민족이 저를 이렇게 위해 주는데 저는 민족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저는 죄인이올시다. 자손은 조상을 원망하고 후진은 선배를 원망하고 우리민족의 책임을 자기 이외에게 돌리려고 하니 대관절 당신은 왜 못하고 남만 책망하려 하는가 '우리나라가 독럽 못하는 것이 모두 나 때문 이로구나'하고 가슴을 두드리며 아프게 뉘우칠 생각은 왜 못하고 어찌하여 그 놈이 죽일 놈이라고 하며 자신들을 깨닫지 못하는가 우리나라 망하게 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읍니까 그것은 나 자신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회개운동이 진정 나라를 구원하는 운동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 은 원수 때문이 아니요, 그 민족의 죄가 관영할 때 그 죄값으로 인해 민족이 버림을 받게 됩니다. 잠언의 말씀에,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잠언l4 : s4)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의롭게 사는 것은 애국이요, 내가 타락하고 범죄하면 곧 이것이 매국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아 5장I절에 보면,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이 성을 사하리라 하였습니다. 

누가 애국자 입니까? 회개하지 않는 백성은 망합니다. 사울 왕이 회개 못하고 망했습니다.  헤롯왕도 회개 못하고 죽었습니다. 바로 왕도 회개 못하고 망했습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살아 믿음의 사도가 되었으나 가롯 개 못하고 죽었습니다. 개인이고 국가고 회개하면 살고 회개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회개 하는 길만이 사는 길입니다. 회개 운동은 이 민족을 한반도의 수난에서 구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둘째, 민족 양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토록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던 악기인 수금을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놓았습니다. 민족의 고난 앞에서 저들은 이방 민족의 값싼 즐거움에 동참할 수 없는 슬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로잡은 저들이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 청하지만 우리가 어찌하여 이방 땅에서 여호와의 노래를 부르리요. 예루살렘아내 가 너를 잊을 진데 오른손이 말라 버리리라. 내가 예루살렘을 잊어버리거나 내가 만일 시온을 향하는 마음에서 떠나 더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 이와 같은 단호한 민족 의지로 조국을 향한 열정적인 자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심장 속에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선지자들은 자기 민족과 함께 고난을 같이 했습니다. 이것이 민족의 양심이올시다.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서러움을 당하고 있는데 안일을 누리고 있다면 이는 민족 양심이 마비된 자올시다. 국토가 폐허가 되었는데 자기 혼자 사치스럽게 살고 있다면 이는 민족 반역자올시다. 모세는 민족 양심의 위대한 산 표본입니다, 히브리서 11 장24 절에서 26 절의 말씀을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자기 민족이 당하는 학대와 고 초를 생각할 때 바로의 궁궐 속에서 먹는 기름진 음식이 모래알 씹는 것 같았고 자기 백성의 헐벗고 착취당하는 모습을 생각할 때 푹 신한 잠자리가 송곳방석같이 느껴졌기에 궁녀의 치맛자락도 내일 의 영화도 헌신짝처럼 내던질 수 있었습니다. 

누가 애국자입니까? 민족 양심을 지키는 자입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기가 이로울 때는 애국자처럼 떠들고 자기 일신상에 어려움이 오면 망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민족도 조국도 배신해 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3.I운동 사건에 감추어진 비화가 있습니다. 신철이라는 일본 앞잡이 형사가 있었습니다. 조선 사람으로 일본 총독부에 생명을 걸고 충성을 하던, 동족에게 가장 악질적인 형사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나이는 3.l 거사가 비밀리에 진행하는 것을 벌써 알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 지도자들은 그를 제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민족 지도자들은 생각다 못해 그 중의 한 사람인 최 런 선생이 거사 일주일전 2월24일 신 철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 습니다. '그대는 조선 사람인가. 일본 사람인가?'이에 신 철은 '나는 조선 사람입니다.'라고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이 독럽을 해야겠는가 아니면 일본의 속국이 되어야겠는가 "독럽해야만 하지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최 린 선생은 냉엄한 어조로 '너 같은 자가 우리 민족에 있기 때문에 독럽이 안되는 것이다. 그러하니 너 하나는 죽을 생각이 없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거사에 대한 모든 계획을 그에게 밝혔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난 신 철은 말없이 큰 절을 하고 물러났습니다. 그는 번민 끝에 결단을 내리고 일본을 배신하고 나라를 한 번 사랑하리라 다짐하고 일본 총독부에 허위 보고를 낸 뒤 만주에 독럽단이 들어오고 있으니 신의주로 출장을 가야 한다고 하고 서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서울 장안의 이상한 공기를 눈치 챈 일본 경찰은 신 철이 배신한 것을 알고 체포령을 내렸습니다. 그가 3.1거사에 대해 보고하지 않은 일로 인해 일본 총독부는 수사에 실마리를 찾지 못했고 그가 신의주에서 체포되었을 때는 이미 품고 다니던 청산가리를 마셔 죽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조국에 대 해 빚을 졌던 신 철, 그는 죽음으로써 조국을 사랑하여 사나이답게 죽었습니다. 멋있게는 살지 못했으나 멋있게 죽은 신 철은 조국을 향한 양심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위해서 애국하는 사람입니다.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하는 이 시인의 눈물은 민족주의에서 솟아오르는 민족 감정이 아니라. 오직 민족을 사랑하는 눈물이었습니다. 오늘날 민족 지상주의나 국가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더욱 불행하게 만든 사람이 지구상에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할 때만이 되는 것입니다. 

일본의 내촌 선생 비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는 조국을 위하여, 조국은 세계를 위하여, 그리고 세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 애국은 민족적인 감정을 유발시켜 국제간의 갈등을 조장하며, 세계 평화를 교란시키기도 합니다. 히틀러나 뭇솔리니 일본 같은 독재자들은 애국이라는 민족 지상주의에 빠져 약소민족을 침략하는 구실을 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애국은 하나님 안에서 애국이어야 합니다. 

남강 이 숭훈 선생님이 독럽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검사 앞에 섰을 때, '독럽 운동은 누가 시켰나 무슨 마음으로 독럽 운동을 하였는가?'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선생의 대 답은 이러했습니다. '시키기는 누가 시켰겠는가, 하나님이 시키셨지.'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독럽 운동도 하나님이 시켜서 해야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 운동은 하나님이 시켜서 해야 합니다. 정치하는 일도 하나님이 시켜서 해야 합니다. 사업도 직장도 결혼도 하나님께서 시켜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지 않는 일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일은 어려움이 있으나 결과는 좋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조국을 사랑하고 참으로 조국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심정이 참 애국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자기 조국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독일의 신학자요, 순교자인 본훠퍼는 자기 조국 이 히를러의 민족 지상주의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있었기에 그는 사랑하는 조국이지만 하나님의 선한 국가가 되기를 원하여 그의 조국이 멸망하기를 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우리 조국을 하나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어느 사람의 손에도 이나라를 맡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애국자라도 이 나라, 이 민족을 맡길 수 없습니다. 오직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만이 조국을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깨 이 조국을 맡기고 그를 믿는 믿음이 애국이올시다. 시편 144편l절에,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조국을 생각할 때 염려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오직 우리는 조국을 사랑하기에 이 민족이 복음화되기를 힘써야 하고 원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나라가 강대해지는 것을 여러 가지 면에저 찾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나라는 군사적으로 강국이 되어 세계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하고 종말이 비참함을 보여 줄 것입니다. 독일이나 일본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또 하나 경제적으로 강국이 되어 세계 시장을 점령하는 나라인데 이 또한 국제간의 긴장과 미움,원망 을 가져오며 신의를 저버립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장성한나라 정녕 이러한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아니하며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한 길은 오직 한가지의 방법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지식과 학문적인 방법이 아니라, 오직 복음으로 만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민족 복음화의 대대적인 행사를 비판하기에 앞서 힘을 뭉쳐 노래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의 살 길이 있으며 여기에 이 민족의 번영의 길이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많습니다. 세계 시장에 수출할 자원마저도 없습니다. 기술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복음을 수출하는 힘이 있습니다. 한국이 동양에서 군사 대국이라는 이유로 월남에 군대를 파견하여 싸웠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홀려 죽어갔으나 끝내 월남은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의미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월남 파병의 여력을 선교사 파송에 힘을 기울였다면 그 역사는 어찌 되었을 까요 그 땅에 들고간 무기 대신에 성경으로 총탄에 맞아죽는 대신에 복음의 순교 제물로 죽었다면 월남의 역사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 을까요 그 역사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미국이 제 2차 세계 대전을 숭리로 이끌고 6.25동란 때 한국을 군사적으로 도운 일도 장한 일이지만, l886년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선교사로 파송되어 복음을 전했떤 사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애국입니다.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공장에서는 성실하게 상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공무원은 친절하게 봉사하고 법관은 공정하게 재판해야 합니다. 군인은 국토방위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농민은 땀흘려 곡식을 생산해야 합니다. 상인은 속임이 없이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 믿고 사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만인이 기도하는 집으로 성도는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주의 종들은 예언자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성경에 모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왕으로부터 전 국민에 이르기까지 두려움 없이 경고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목숨을 저버리고 목숨이붙 어있는 한 순간까지 입을 열어 외쳤습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할 일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사상가요 문필가인 소로우는 사람이 봉사하는 데는 세 가지의 방식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육체로서 봉사하는 일인데 농장에서나 공장에서나 생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고 

둘째는, 두뇌로서 종사하는 자들인데 교육 기술 지식으로 사회각 분야에서 종사하는 지성인들이요 세째는, 양심으로 봉사하는 자들인데 순교자나 각 층에서 역사의 식을 가지고 조국을 위하여 헌신하는 소수의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누가 애국자입니까 국가를 위하여 몸으로 봉사하든 두뇌로 봉사 하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애국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앙 양 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수 없는 이 민족 역사에 애국자의 소리가 높았습니다. 저는 애국자의 삶을 이 시편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조용히 자신을 반성하고 조국을 더욱 사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