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시8:1] 땅의 아름다운 이름

'코이네' 2020. 11. 11. 21:11

땅의 아름다운 이름

본문:시8:1-9

 

누구나 다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땅에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이름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조현신 선교사님의 편지가 왔는데 자녀들에 대한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디다 큰애이름은 아라 둘째는 세라 세째는 치요였습니다.남미비아말로 특별한 뜻이있는가? 선교사님이 선교를 위해서 이름까지도 선교지의 이름으로 지으셨구나 생각했습니다. 우리한국교회에서 선교하신 구의령선교사님, 마포삼열선교사님도 한국 이름을 가지신 선교사님을 생각했습니다. 이름은 곧 의미입니다. 이 땅에는 많은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의 수 많큼이나 많은 의미들이 세상에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명예라는 이름, 물질이라는 이름, 건강이라는 이름이라는 의미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 이름가운데 예수의 이름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회사의 사장이라는 이름도 있고 과장이라는 이름도 있고 교감이라는 이름도 있고 부자라는 이름도 있고 여러종류의 의미들이 있습니다. 그 이름가운데 예수라는 의미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가운데 가장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이 무엇입니까? 결혼, 대학입학, 자녀 출산, 그 어떤 것도 예수의 이름을 안 것보다 능가하는 것이 없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3:7-9절"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예수의 이름이 이렇게 귀중하고 값진 것은 주의 영광이 하늘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다른 것은 한때 빛이 납니다. 이것이 세상의 명예와 물질의 본래의 모습입니다.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시들고 부패하고 사라지고 영원한 것 앞에서는 빛을 비추이지 못합니다. 캄캄한 밤에는 촛불하나라도 주위를 밝힐수 있습니다.그러나 형광등이 켜진 곳에서는 촛불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고 있는 둥 마는 둥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할로겐등이나 최첨단의 조명기구라도 햇빛을 능가하는 빛은 없습니다. 땅의 다른 이름은 잠시 빛을 비추는 것 같아도 하늘에서는 아무 빛도 발휘할 수 없습다.

 

1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우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에 두셨나이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여러분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명칭입니까? 여러분의 회사나 이웃들로 부터 예수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부담이 되십니까? 아름 다운 이름이 아니라 창피한 이름은 아닙니까? 그것은 우리가 그 이름에 합당하게 살지 못하고 살기 있기 때문입니다.이 예수의 이름은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하게 하십니다.

 

2절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하려 하심이니이다."

 

대적들 앞에서 어린아이와 젖먹이와 같이 연약하고 힘없는 자들이 그의 이름을 부를때에 그 이름을 인하여 주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힘이 없습니다. 나는 연약할 지라도 내게 베플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큰 권능을 가지셨기에 대적 앞에 우리를 세우시고 원수와 보수자로 입이 있어도 할말을 하지 못하게 그입을 막아 잠잠케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과 불레세 사람 골리앗은 어른과 어린아이의 싸움입니다. 갑옷과 투구를 쒸우니까 그것도 벗어버립니다. 손에 방폐도 없습니다. 창도 없습니다. 양칠때 가졌던 막대기 그리고 물매와 매끄러운 돌다섯을 쥐고 골리앗앞에 나아가면서 다윗은 용기있게 갑니다.

삼17:45-47절에 "다윗이 불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불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 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손에 붙이시리라"

전쟁이 여호와께 속하였습니다. 예수이름만이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옵니다. 오늘날 골리앗과 같은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창과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경쟁에서 이기려고합니다.예수이름은 그냥 있어도 좋고 없어도 내힘으로 승리할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호와 이름으로 나아가면 여호와께서 그이름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하여 싸워셔야 하는데 우리는 내 명예를 때문에 우리가 예수 때문에 싸우는 그런 건방진 교만에 빠지지는 않습니까? 황산성변호사가 고백하기를 내가 바른일 하고 내가 정의를 위해서 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거둘줄을 알았던 것이 교만이라는 것을 깨닫고 세상에 에서 아무리 투자해도 투자한대로 거두지 못하는 것이 세상 원리이며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세상에 나아갈때에 예수이름을 앞세워서 나아가십시요 그 이름때문에 하나님이 싸워주십니다.

시편23:3절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주의 이름 곧 주의 인격을 안 사람에게 주의 이름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자연 피조물을 통하여 이 우주 만물을 알게 해주십니다. 어떤 우주의 과학자나 생물학자나 천체 물리 학자도피조물가운데 인생을 모르기 때문에 그지식이 헛되고 헛된 지식이 될수 밖에 없습니다. 자연 곧 하나님이 만드시 우주만물을 통하여 인간 이해가 이루워지는 것입니다.

 

3절-4절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플어두신 달과 별들을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하나님의 피조물가운데 인간이란 무엇인가 많은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이 사람들을 생각하셨기에

 

1)인간을 ‘생각할 수 있는 피조물’로 만든 것입니다.
생각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생각없이 감정이 대로, 의지대로, 습관에 종노릇 할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보살피시되 생각가운데 우리를 보살피십니다.보배로운 아이디어로 우리를 보살피십니다.
시139:17절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어찌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그리 많은지요"

 

2)영적인 존재로만드셨습니다.
그가운데 주의 이름을 아는 우리에게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우셨습니다.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로만드셨지만 하나님의 영화에 그리고 그 존귀함을 입지 못한 사람은 영혼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영화와 존귀함이 없는 영혼은 짐승입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인간의 한계는 인간이상을 배우고 본받을 수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화와 존귀의 면류관을 씌우시고 하나님을 본받게 하셨습니다.
엡5:1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자가 되고" 영화와 존귀로 면류관을 씌여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가집시다. 우리는 우리 삶속에서 예수를 본받는 자가 될자격도 있고 그런 의무도 가졌습니다. 우리 교회에 부지런히 우유배달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짜증스러운 일도 많고 온갖종류의 사람을 대하게 되는데 그 사람들에게 우유를 배달하면서 하나씩 하나님을 닮아간다면 우유를 받아먹는 사람이 우리집에 우유배달하는 사람은 하나님같더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우유배달의 목표로 삼고 생활한다면 우유배달은 거룩한 직업인 것입니다. 우리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셨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을 닮을수 있는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어 주셨습니다.

 

3)자연을 통하여 바라본 우리의 귀중한 모습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이 이 자연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만드신 자연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일을 우리 인간에게 맡기셨습니다.통치하고 다스리는 하나님의 방법은 섬기는 것입니다.6절에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으니"


자연을 관리하고 섬길 책임을 저와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늘 야외예배에 여러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물론예배는 하나님을 섬기고 기쁘시게 하는 것이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습니다만 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깨닫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 예배의 중심이 예배당이 아니라 예수 중심이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배당을 벗어나면 예수의 통치로부터 벗어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교회는 교제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또 하나가 있다면 자연에 대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성경적인 이해가 확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보호할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세제를 쓰는 것도 그렇습니다. 아무생각 없이 퐁퐁 삼프를 아무렇게나 쓰고 하수구로 내려보냅니다. 만물을 우리에게 다스리게 하셨고 관리하게 하셨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자연을 파괴하는 그런일에 동참한다면 우리는 우리스스로 만물을 다스리게 우리 발아래둔 자연에 대하여 관리하기를 포기하는 것이 됩니다. 자연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십니다.십계명에 대하여 조심하듯이 자연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리라생각됩니다. 자연을 파괴하면 곧 우리의 생존권을 파괴하는 일입니다.우리가 관리해야 할 자연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7절말씀에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로 다니는 것이니이다."

 

동물이 살수없는 환경이면 사람도 장수할수 없는 환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환경 보존의 책무를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이런 환경 가운데서 예수의 이름이 더욱 아름다운 이름으로 찬양받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이루워가시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빕니다.9절에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땅에 어찌그리 아름다운지요" 그래도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이 찬양받으시기위하여 환경을 지키시고 보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을 전적으로 관리하는 때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하늘과 새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통치를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롬8:21절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이땅에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예수의 이름입니다. 예수 이름을 가진자들에게 자연을 통치하고 다스리시도록 맡기셨으면 피조물까지도 예수이름을 가진 자가 자연을 다스리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보다 탁월한 자연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이 주신 자연 앞에서 자신들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