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시4:1] 고난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

'코이네' 2020. 11. 14. 20:45

고난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

 

시편4:1-8

 

 

누가 참된 신앙을 가졌는가는 위기를 당했을 때 입증됩니다. 신앙이 깊지 못한 사람은 보통 때에는 잘 믿는 것처럼 보이나 일단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밑바닥이 드러나게 됩니다. 반면에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보통 때에는 신앙이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다가도 일단 유사시에는 그 신앙의 깊이가 입증됩니다.

시편 3편과 같이 시편 4편도 압살롬의 반역을 배경으로 하여 쓰인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자기 아버지의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반역을 일으켰고, 다윗 왕은 아들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요단강을 건너서 도망했을 때 저녁에 잠자리에 누워지만 잊었던 생각이 마구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패배감, 분노, 원통함 등이 다윗의 마음을 엄습했을 것입니다. 이대로 두면 한없는 증오의 불길이 다윗을 휩싸버렸을 것입니다.

다윗은 역시 신앙이 깊은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도 사람인 이상 미움과 분노와 원수 갚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을텐데 그는 근시안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문제의 해결의 열쇠를 가지신 하나님을 의뢰한 것을 보아 이 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시편은 산업화되어 가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너무 많습니다. 산업 사회를 이루는 과정 가운데서도 서로 피해를 주고 받고 이를 해소할 길이 없을 때에도 이 시편을 통해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워야 되는 부부 사이만 해도 그렇습니다. 서로 배신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만일 한쪽에서만이라도 이 시편에 나타난 교훈대로만 행동한다면 해피 엔딩으로 끝날 경우가 허다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어려움을 당했을 때 너무 성급하게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지 말고 먼저 하나님과 대화를 갖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없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4:1-3)

 

1.도움을 청할 때 응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4: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이 기도를 했을 당시 다윗의 주위는 필경 복잡했을 것입니다.

욕되게 하는 것과 거짓과 허사와 사기와 암담함이다윗을 엄습했을 것입니다.(키드너). 그러나 다윗의 시선은 주위 환경에 다시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의 초점은 가장 근본적인 분에게 맞추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의 처지를 호소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가 목동으로 있을 때부터 왕이 되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기도의 응답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이제 그는 다시 한 번 자신만 하나님께 기도드릴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5).

어려울 때 달려 갈 수 있는 이웃이 있다든가, 아니면 마음 속에 있는 고통을 숨김없이 털어 놓을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요즘은 좀처럼 그런 이웃을 찾기도 어렵고, 동료도 구하기 힘듭니다. 모두들 자기 할 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이웃이나, 동료나 그 어느 사람보다도 나은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뿐인가! 말씀드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적절한 응답까지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특권은 신앙 생활을 오래한 사람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칠 가능성이 큽니다. 예수님도 이런 특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이 약속을 무슨근거로 확신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까닭이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인격 때문입니다.

내 의의 하나님이라고 다윗은 하나님을 불렀는데, 하나님은 실로 의로운 인격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의로운 인격을 가지신 분이시므로 그 자녀가 애매하게 불의한 자에게 해를 당하게 될 때에 무관심하지 않으실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과거에도 곤란 중에 구원해 주신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우리를 곤경에서 구원하셨다고 해서 반드시 이번에도 구원하셔야 한다는 당위성이나, 또 무조건 구원해 주신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경우에는 즉시 해답을 주지 않고 우리가 어느 정도 교훈을 받은 후에 해답하실 수도 있고, 또 우리에게 적합하지 않을 경우 거부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경우 하나님께서 과거에 응답하신 것이 이번에도 도와 주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은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구원)하셨아오니”

 

셋째로, 하나님의 자녀를 향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하나님의 긍휼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의 기초가 됩니다. 이것이 없었다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바울 사도가 말한 것처럼 ‘원수’(롬5:10) 상태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 긍휼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자비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애3:22,23)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호소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인격과 과거의 전례와 무궁하신 긍휼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호소를 거부하시기보다는 응답하시리라고 생각하는 편이 오히려 합리적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곤란을 당했을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2.언약적 관계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4:2,3)

 

인간들은 그 실제와는 달리 자신을 지나치게 기대하고 신뢰합니다. 그러나 최초의 사람이 타락한 이후 인간은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은 성경에서 에 비교되고 있습니다(시90:5-8). 다윗도 하나님 없는 인생들의 실제가 얼마나 초라한가를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기를 도우려는 그들의 수고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2) 반면에 여호와와 언약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경우가 다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이 있는 것이 다릅니다. 올림픽의 봉화의 마지막 주자로 택함을 받았을 때에도 영광스러운 일인데, 하물며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아는 사람들의 영광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영광은 일시적입니다. 하나님이 언약적인 사람으로 우리를 택하셨을 때에는 영구적으로 우리와 교제하기 위하여 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현재 도움이 되는 자기 부하들의 도움도 이런 하나님의 영구적인 택하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체험하였을 것입니다. 또 이런 언약적인 사랑의 표현이 자신을 택하심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3)라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런 특권은 비단 다윗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모든 이들에게 있습니다. 이들도 이제 다윗처럼 하나님을 깊이 신뢰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중에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끝까지 붙드시는 언약적인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께 향한 신뢰심이 있는 사람들의 행동(4:4-8)은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1.하나님의 방법대로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4:4,5)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공정하지 못한 일을 당할 때 우리의 즉각적인 반응은 우리 방법대로 일을 처리해 버리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종종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식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는 충동에 따라서 우리의 반응을 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사실을 평가하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반응을 보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처리한다는 것은

 

첫째로, 자제하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4)

여기서 떨며는 분을 못이겨서 어찌할 줄 모르는 것을 의미하는데, 자제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여 함부로 하고 범죄하기 앞서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잠잠히 하나님을 생각할 때 의인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느끼게 되고, 이렇게 되면 악한 길을 버리고 끝내 의로운 길을 추구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이렇게 산 우리의 가장 본보기이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신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벧전2:21-23)

 

둘째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자제만 할 뿐 아니라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가까이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가까이 하십니다(약4:8). 압살롬은 불의의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멀리 했습니다. 다윗은 의의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가까이 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자는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서 행동하게 됩니다.

다윗처럼 우리도 많은 어려움을 당하며 살고 있으나, 다윗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신뢰할 때 고난을 당해도 자제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의 방법대로 문제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현세상에서도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이 있고(요일3:21,22), 주님을 만났을 때에도 큰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계22:12). (하나님께 신뢰심이 있는자)

 

2.고난 중에도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4: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에는 숫자적으로 보아서 하나님 한 분보다 우세할 것처럼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보아 이들의 말은 무력합니다. 이들은 해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선을 보일 자 누구뇨라고 절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반면에 여호와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되었을 때 비록 한 분이시지만 큰 도움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경우 환경은 변하지 않았으나 그의 마음이 변하여 큰 희망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부터 오는 격려와 소망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대우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통해 나타난다.”

오늘날에도 이 원리는 변화되지 않고 적용됩니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천만인이 가져다 주지 못하는 위로를 여호와 한 분을 통하여 맛보게 되므로 낙관적인 태도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3.환경을 초월해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하바국 선지도 자기 나라와 유다가 당할 고난을 생각할 때에 불평과 회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여호와께서는 지금도 온 우주를 통치하고 게시며 악한 세력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그 마음 속에 큰 기쁨을 체험했습니다. 그후 하박국은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합3:17-19).

여호와께서 주시는 즐거움은 환경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초월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 기쁨의 원천은 여호와시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여호와께서 주십니다. 그 기쁨은 세상에서 맛볼 수 있는 그 어느 것보다 큽니다. 남녀간의 사랑이 가져다 주는 기쁨이 클 수 있지만 그 어찌 여호와께서 주시는 기쁨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오는 기쁨도 있겠지만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는 데서부터 오는 기쁨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긴 시간 직장에서 수고하는 자들도, 가정에서 말없이 봉사하는 이들도, 날이면 날마다 도서관에서 보내는 재수생들도, 전방에서 적과 늘 대치하고 있는 군인들도, 정직한 땅에 씨앗을 맡기는 농부에게도 하나님을 신뢰할 때에 주께서 주시는 기쁨을 맛보며 살 수 있습니다.

 

4.참된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주님을 신뢰히는 자들에게는 주위 환경을 불문하고 여호와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다고 해서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게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녀들이 고난을 통하여 정금처럼 연단되기를 바라십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호와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우리가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잠언 기자는 이런 특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고 달려 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18:10)

바울 사도는 이런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를 알고 우리도 하나님을 알 때에 우리도 다윗처럼 참된 평안을 누리고 잘 살 수 있습니다.

 

 

결론

 

인간들에게는 몇가지의 욕구들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욕구만이 아니라 더 이상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합니다.

먼저 육체적인 욕구들 안락함, 따스함, 움직이고 싶어함이 있다면

다음은 안전의 욕구를 채우려고 합니다. 하나의 집단에 소속되고 다른 의견을 갖는 것이 허용되고 위협받지 않는 환경에 살고 싶은 욕구들입니다.

사회적인 욕구들- 다른 사람과의 대화, 서로 돕고 싶은 욕구, 감정들을 함께 나누고, 다른 사람을 용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수용되고 싶은 욕구

자존(자기 존경)의 욕구들 - 다른 사람을 존경하며 또 존경받고 싶은 욕구, 사실이나 개념을 이해하며 주목과 칭찬을 주고 받고 싶은 욕구

성취의 욕구들 - 창조적으로 생각하거나 목표를 이루고 싶은 욕구, 아이디어들을 발견하고 시도해 보며 하나의 인격등로 자라가고 싶은 욕구

마지막으로 영적인 욕구들 -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인의 생활 속에서 변화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친숙해지고 싶은 욕구, 배운 사실들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다른 신자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고 매일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싶은 욕구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다윗의 시대와는 다릅니다. 다윗도 존재하지 않고 압살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와 똑같이 지금도 도덕적인 어두움이 있고, 배신으로 말미암아 고통과 괴로움 등이 실존합니다. 거짓말과 실망과 두려움과 좌절감이 여기저기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다윗의 체험을 통해 나타난 교훈이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또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책임지실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