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출애굽기

[출19:1] 율법의 축복

'코이네' 2020. 8. 4. 17:13

율법의 축복

출애굽기 19:1-9

 

 

사람이 잘먹고 잘입고 좋은데서 살면 행복할까? 하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그렇습니다. 배부르고 등따듯하면 행복한 법입니다. 그것은 행복의 첫걸음이요. 기초입니다. 그것을 빼고, 어떤 행복을 말한다는 것도 사실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더 질문해보고 싶습니다. 정말 잘먹고 잘입고 좋은데서 산다고 다 행복할까?

그렇지 않습니다. 구라파나 미국이나 일본을 보십시오. 잘사는 나라일수록 자살율이 높습니다. 왜 그럴까요? 먹을게 없어서일까요? 환경이 나빠서 그럴까요? 복지가 안돼서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유층이나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이 허무주의자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삶의 의미나 행복이란 물질적인데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데서 완성된다. 육체적인데서 행복은 시작되지만 영적인데서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광야에서 살고있는 우리들이 제일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입니다. 직장을 가지고 돈을 벌고서 생존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교육을 해야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만족되고 충족되었다고, 우리가 이 광야에서 버틸 수가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4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버틸 수 있었던 비밀은 쓴 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고, 먹을 것이 없었을 때 하늘에서 만나를 비처럼 내린 것을 먹고, 메추라기를 먹고, 바위에서 샘물이 나고. 원수가 우리를 공격했을 때, 그 원수를 물리친 것만으로 그들이 만족한 게 아닙니다. 그들의 진정한 만족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어떻게 동행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니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그 어떤 분인데, 그 분을 구체적으로 내 삶에 만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말씀이에요. 율법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축복은 기초적인 축복은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에 대한 축복을, 비밀을 주셨지만 은 정말 축복은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받았던 가장 핵심적인 축복은 두 가지예요. 율법과 성막이예요.

오늘은 율법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다음주일은 성막의 축복에 대해서 나누게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은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 그 자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율법, 말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야 할 원칙, 지침서 이런 것들을 그 시내 산에서 주셨는데, 그들은 그 말씀을 받고, 먹고 그 말씀과 동행하고 살므로 서 광야 같은 세상을 아-무 문제없이/ 집도 제대로 없고, 먹을 것도 제대로 없고 하는 그 쓰라린 고통의 세월을 축복의 세월로 바꾸게 된 비결이 거기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사는 비결은 말씀이에요. 말씀이 만약 여러분에게 있다면, 하나님의 율법이 여러분이 마음속에 있고, 율법과 동행하며 산다면, 분명히 이 광야 같은 세상은 천국으로 변할 줄로 믿습니다.

 

191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시작 (19: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 삼 월 곧 그 때에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애굽을 떠난 지 삼개월이 되던 때입니다. 그들은 유월절, 니산월에 떠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삼월이 되었습니다. 고대하던 시내 산이 있는 광야에 그들은 도착을 했습니다. 그들이 가야할 곳은 모래가 있는 광야가 아니었고 시내 산이었습니다.

왜 시내 산으로 가야만 했을까요? 시내 산에서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언제든지, 시험이 들면 은혜 받았던 그 장소로 돌아가세요. 처음 그 장소, 그러면 회복이 됩니다.

시내산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받았던 그 자리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바로와 열 번의 투쟁을 하고, 홍해를 육지같이 가르고, 물 없는 곳에서 쓴 물이 변하여 단물 되는 그런 기적도 보았고, 만나가 내리는 그런 기적도 보았고, 사막 길을 건너서,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령 내렸던, 시내 산으로 이제 삼개월만에 도착을 한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2절 시작

(19:2)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드디어 시내광야, 시내 산 앞에 온- 백성들은 장막을 쳤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홀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시내 산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누구든지 다 하나님을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요즘 신약시대 사람들은 얼마나 축복 받은 사람들인지 몰라요.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다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되 있어요.

장막이 찢어지고,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막았던 휘장이 찢어지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이제 가서 보혈의 피를 의지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축복을 받은 거예요.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특별한, 기름 부은 사람만 하나님을 만나고 대면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시작

(19: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시내 산에 올라가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그는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감격적인 장면입니다. 왜냐 하면 모세가 그의 인생에 가장 고통스러운 절망과 좌절의 끝에 섰을 때였습니다. 인생의 벼랑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벼랑 끝에 서보는 것입니다. 그때 인간은 정직해 집니다. 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소망 없이 살았습니다.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듣지 못하고 양떼들을 몰면서, 살았던 그 40년 마지막 끝에 그는 소망 없이 양떼를 몰고 시내산 한 길목을 걷고 있었을 때, 떨기나무를 본 거예요. 그 떨기나무는 불꽃이 있었습니다. 불이 타는데 나무가 타지 않아요. 이게 하나님의 불이에요. 보통 불은 다 태워버립니다. 하나님의 불은 타는 데 타지 않아요.

 

나는 여러분의 인생의 끝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이 은혜받을만한때요, 구원의 날 인줄로 믿습니다.

모세가 거기서 이 불에 빨려 들어갑니다. 불에 가까이 접근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모세야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마라 너의 선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발에서 신을 벗어라.

여러분 지금까지 모세는 하나님을 커튼 뒤에서 만났어요. 대면하지를 않았습니다. 40년 동안 분명히 하나님은 계시는데, 여러분 다 하나님 계시다고 믿지 않아요? 그렇지요? 안 믿는 분이 어디 있어요. 그러나, 대면을 해야 됩니다. 대면을. ENCOUNTER. 만나야 되요. 그분과 만나야되요. 수면에 떠오르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동안 나의 삶을 인도하고 역사 해주셨어요. 우리는 그렇게 믿었어요. 그렇게 기도하고. 그렇게 했지만은 이 하나님과 한번 정면으로 만나는데 모세가 이때 정면으로 만나 깜짝 놀래요. 그때 모세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출애굽기 3장에서 명령을 줍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려 하노라

하나님의 꿈이에요.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꿈이었어요. 모세에게 하나님이 자기 꿈을 얘기합니다. 400년 동안 고생하는 내백성, 애굽 간역자들에 의해서 매일 고통을 겪고 있는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듣고 내가 그들을 건져내겠다. 모세한테 얘기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꿈을 여러분에게도 얘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도동교회를 통해서 이런 일을 하고싶다. 이거예요. 여러분을 통해서 내가 이 21세기에 이런 일을 하고 싶다. 너희 민족의 통일도 이루어주고 싶고, 전세계 모든 백성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하는 일에 내가 너희 교회를, 너를 사용하고 싶다. 쉽게 말하면 그런 얘기예요. 모세한테, 네가 내 백성을 구원해야 되겠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 에게 보낸다.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명령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40년 동안 그는 버려진 줄 알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능해졌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러분, 여러분이 무능할 때 하나님은 유능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포기할 때 하나님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말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 안 씁니다. 여러분이 할 수 없다고 말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들어 쓰시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 탈출을 시키는 것입니다. 모세는 처음에 거절을 했습니다.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입이 둔하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집요하게 모세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가야 한다

이런 명령을 아마 오늘 여러분들에게 주실 지도 모르겠어요. 너는 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하는 거 아니다. 여러 사람이 집단으로 하는 거 아니다. 여러분 바로와 싸울 때 모세는 데모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사람 힘을 동원하지 않았어요. 혼자 했어요. 혼자. 영적 싸움은 혼자 하는 거예요. 영적 싸움이 시작됐어요. 무서운 싸움이 시작됐어요. 열 번의 싸움이에요. 마지막 싸움에는 장자가 다 죽는 그런 일들이 생깁니다. 그 싸움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홍해 앞에 그들은 섰어요. 이것은 바로와의 싸움보다 더 깊은 절망이었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 육지처럼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가보니 젖고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아니라 사막이었어요. 물이 없는 곳이었어요. 먹을 것이 없는 곳이었어요. 원수들이 자기들을 공격하는 핍박 있는 그런 장소였어요. 그렇지만 모세는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주었던 그 명령을 의지하고 천신만고 끝에 그 명령을 내렸던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온 거예요. 그 얘기가 지금 4절에 있습니다. 그러니 모세로서는 참 감격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이었습니다. - 모세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대답하는가? 4절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4절 시작

(19: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먼저 말합니다. 애굽에서 행한 모-든 것은 네가 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한 거다. 열 번의 싸움, 홍해를 가른 것은 모세가 한것처럼보여요. 그렇지요?

도동교회는 고창덕 목사나 장로님들이 다 한 것 처럼 보이지만 아니지요. 하나님이 하셨지요. 나는 그런 믿음이 우리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썼을 뿐이에요. 여러분의 헌금을 썼고, 여러분의 은사를 썼고, 여러분의 노력을 썼지 실재로 행하신 분은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모세에게 그렇게 말했어요. 이렇게 하게 한 것은 나다. 네가 아니다. 나다. 그 어려운 천신만고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네가 살아난 것은 독수리가 그 날개로 그 새끼를 안는 것같이 내가 너희를 날개로 보호해서 여기까지 인도해낸 것이다.

 

4절 얘기예요. 4절 다시 보세요.

(19: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나다. 그랬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한 것은 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항상 숨어 계시지만 않고 어느 날 수면에 부상하듯이 나타나셔서 여러분에게 친히 말씀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해서 독수리의 날개로 보호하듯이, 업듯이 그들을 보호해서 그 험한 광야생활과 그 어려운 싸움에서, 투쟁에서이기면서 여기까지 오게 했는가?

하나의 약속, 하나의 언약, covenant, promise 약속 하나의 축복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 내용이 5,6절에 있습니다.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시작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하나님이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간역자의 손에서,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홍해를 건너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험악한 광야를 통과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그렇게 고생을 시켰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 백성을 삼기 위하여. 너는 내 백성이다. 너는 내 꺼다 이거예요.

놀라지 말고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너를 구속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양자로 삼기 위하여, 내 자식을 만들기 위하여, 내 상속자를 만들기 위하여, 내 거룩한 백성을 만들기 위하여, 너는 버려진 사람이었지만 은, 마귀 자식이었지만 은, 마귀자식으로 지옥 가고, 죽게 만들고 싶지 않고 내가 너를 건져내기 위하여, 내가 너를 축복하기 위하여, 내 소유물로 삼기 위하여, 내가 너를 건졌느니라. 그 얘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자기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이기까지 그 대가를 치르면서도 여러분을 건져내고 살려내신 것입니다.

 

5절 보세요. “세계가 다 내 것이라.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이렇게 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여러분을 자기 백성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고생을 해도, 대가를 치러도, 하나님의 관심은 내가 너를 축복을 주시 위하여 내 소유물로 삼겠다. 내 백성, 내 소유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 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어요?

너는 내 꺼야. 라고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죠. 물론 싫은 사람이 너는 내 꺼야 그러면은 그건 안 좋지만, 자기가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너는 내 꺼야 그러면은 그게 얼마나 좋아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너는 내 꺼야 너는 내 소유물이야. 너는 내 백성이야이렇게 소유하고 싶다는 말입니다. 내 말을 지키면, 순종하면, 이런 축복을 너에게 주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이 오늘 이 말씀은, 이 시내 산에서 주신 약속, 언약을 벧전 29절에는 조금더 분명하게 이걸 고쳐서 기록하고 있어요.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 시내 산의 계약이 베드로 서에서 다시 인용된 거예요. “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 축복을 주기 위하여 너를 애굽 땅에서 내가 불러냈고 광야의 그 험한 골짜기를 건너서 여기까지 오게 했다 할렐루야! 이게 축복이에요.

여러분 택하신 족속입니까? 왕같은 제사장입니까? 여러분들은 정말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요, 백성들입니까? 아멘!

우리는 그의 소유된 사람들입니까? 아멘!

우리는 사단의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축복을 주시기 위하여 모세를 시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나왔다는 거예요.

78절을 보십시오. 78절 그래서 이 메시지를 모세는 받아 가지고 백성들에게 전달해 줍니다. 읽어주십시오.

(19:7)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19:8)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회보 하매

이게 설교의 모범이에요. 설교란 무어냐?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자가 듣고, 말씀을 통해서, 그것을 선포하면 백성, 듣는 사람들이 아멘! 하는 거예요.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백성에게 나가서 뭐라고 그래요? 당신들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당신들이 만약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면 이 축복들이 당신들에게 다 임할 것입니다. 그랬더니 뭐라고 그랬어요? 백성들이 일제히 응답하여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이것을 다른 말로 아멘! 그런 거예요. 설교들을 때 아멘으로 받고 순종하는 사람은 축복이 있는 거예요.

 

오늘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보게 되요.

 

첫째는 어떻게 이 약속이 우리에게 올 것인가? 첫째 순종이에요.

 

말씀에 순종해야 되요. 여러분 신명기 82절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한 것을 기억하라. 너희를 광야의 40년 길을 걷게 한 것은 너를 낮추시고 너를 시험하사 낮추시고 시험하사 하나님은 언제든지 여러분을 낮추시고 시험하사 내 말을 듣는지 안 듣는지를 알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의 제일 기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순종과 뭐예요? 헌신이예요.그래서 순종과 헌신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제사보다 중요한 게 뭐예요? 순종이에요. 순종.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들어 쓰세요. 여러분이 능력이 있어서 쓰는 게 아니요, 순종하기 때문에 쓰는 거예요.

 

또 하나 있어요. 그 뒤에 모세가 다시 한번 시내 산에 올라가는데, 그때 하나님이 굉장히 강력하게 얘기 하는 게 있어요. 성결입니다. 성결.

 

불꽃나무 가까이 모세가 가까이 왔을 때 하나님은 막았어요. 모세야 모세야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 신을 벗어라.

여러분 이 축복의 산에 올라가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순종이에요. 그러나 그것만큼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세요? 순결이에요. 거룩이에요. 성결이예요. 하나님이 백성에게 요구한 것은 능력이 아니고 순결이에요. 성결이예요. 순종과 순결 이 두 가지가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그때 하나님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기가 막힌 모습으로 나타나요. 16절을 보십시오. 16절에 보면은 제 삼일 아침에 뭐죠?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과 산 위에 또 뭐가 있어요? 나팔소리.

18절에 보세요. 시내 산에는 뭐가 자욱해요? 연기가. 여호와께서 어디에서 오세요? 불 가운데서.

19절 나팔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이때 2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시내 산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와요. 우리 하나님이 불 속에서, 구름 속에서, 천둥 속에서, 나팔소리와 함께, 연기가 자욱하는 그 위엄 그 하나님의 영광이 시내 산에 가득 찼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나는 도동교회에 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기를 바래요. 이 성전에 들어오기만 하면은 하나님의 영광에 감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막 죄있는 사람이 들어오자 마자 꼬꾸라지고, 귀신이 떠나가고, 그런 곳이 되어야 되요. 이 시내 산이 그런 곳이에요.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가득 찼다. 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에요.

하나님 계신 곳에서 소리지르고, 싸우고, 방자하게 한다면 그 어디 성전이겠어요. 그것은 시장바닥이에요. 아무리 교회처럼 지어도 여기서 싸우고, 소리지르고, 세상 적인 얘기하고, 세상의 방법이 여기 다- 온다면 이건 시장바닥과 다를 바가 없어요. 하나님의 집에는 이런 거룩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위엄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곳에 모세를 부르시는 거예요.

자 첫째는 너는 내 꺼다. 내 소유다 내 백성이다 내가 너를 축복해주겠다 너는 제사장이다 너는 거룩한 나라다 너는 택하신 족속이다 왕같은 제사장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다 축복을 해주시고

그걸 다 약속을 해주시고 그 다음에 모세를 그 연기 속에서 그 나팔소리 속에서 불 속에서 천둥과 번개 속에서 모세를 불러요

. 왜 부르는지 아세요? 이게 중요한 거예요. key 예요. 광야의 key. 축복의 키 보면은 출 20장을 보면은 1절을 한번 읽을까요. 시작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2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3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어디서 들었던 얘기죠? 여기서 드디어 하나님의 율법, 말씀인 십계명이 선포 되요.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살 수 있는 지침서들이 선포 되요. 방향이 선포 되요. 하지 말라 하라 이것은 하고 이것은 하지 말라 이게 율법이에요. 율법을 주셨어요. 여러분, 율법을 받는 것만큼 축복이 없어요. 율법은 의롭고, 율법은 완전하고, 율법은 축복인 것입니다. 19:7 이하에 보면은

(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조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19: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19: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 다.

그랬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우리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말씀,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여러분 이 광야의 이 캄캄하고 어두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어떤 소망이 있겠어요.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춥고 배고프고 이런 기가 막힌 악조건 속에서 하나님은 그들이 40년동안 승리하며 살수 있었던 비결은 율법이었어요.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에서 승리하며 사는 비결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말씀이에요.

세상에 제일 웃기는 사람들은 주일날 한번 예배드리고 신앙생활 잘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어떻게 주일날 예배 한번 드리고 일주일을 보장할 수가 있어요? 그것도 안나오는 사람보다는 낫긴 하지만, 어제께 먹은 밥이 오늘 내 배고픈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오늘 음식은 오늘 먹어야 되요. 오늘 잘 먹었다고 하더라도 그 배부름이 내일까지 가지 않아요. 내일 먹을 음식은 또 내일 먹어야 되요. 일용할 양식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먹고 매일 배불리 먹고 축복 받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기도 나오라는 거예요. 나는 우리교회가 새벽기도 한 100여명 찼으면 좋겠어요. 새벽기도 못하는 사람들은 집에서 큐티 하세요. 말씀으로 매일 최소한 30분 이상은 말씀 안에 있어야 되요. 말씀 안에 있다는 얘기는 하나님이 내안에 있다는 얘기예요. 말씀을 먹으면 하나님 먹은 거예요. 말씀과 있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예요.

광야에서 살 수 있는 비결은 다른데 있지 않아요. 여러분이 외롭고, 고독하고, 속상하고 상처받은 모-든 이유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말씀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배고프지 않아요. 말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상처받지 않아요. 여러분 건강한 사람 때려보세요. 아프나 안 아프나 안마같대니까요. 아픈 사람 건들면 아픈 거예요.

여러분의 영혼이 건강하면, 파도가 치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세상에 불경기가 와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여러분은 살아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을 붙잡고 이 광야 40년을 버텼던 것처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이 말씀 붙들고 세상 살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고, 그 말씀이 내안에 들어오도록 하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광야에서 받은 축복은 율법이에요. 율법, 주의 율법,

하나님의 말씀은 흙 도가니에 일곱 번 연단 한 금처럼 아름답고 순결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 안에 거하십시오.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말씀을 연구하십시오. 최소한 하루에 30분 이상 말씀과 동행하십시오. 그때 하나님은 광야에 사는 여러분에게 축복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광야에 사는 우리들은 외롭고 허전하고 고통스럽고 병들고 시련이 많습니다. 주님, 저들로 하여금 주님의 율법인 말씀으로 다 소성케 하여 주옵시고 영적으로 부강하게 하여 주셔서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