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출애굽기

[출18:13] 민주적인 교회2_김동호 목사

'코이네' 2020. 8. 4. 17:06


  민주적인 교회2
  출애굽기 18:13-27

 
    지금 우리는 엄청난 수해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교회와 인접해 있는 중랑천 지역이 가장 위험했고 피해가 많아서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있는지 모릅니다.  특히 이번주에는 제가 출퇴근을 하면서  주로 사용하는 동부간선도로가 물에  잠겨서 어려움을 격었는데  며칠전에는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러 가던 상계동의 목사님 내외분이 그 도로에서 갑작스런 도로의 침수로 자동차의 시동이 꺼지면서 탈출하지 못하고 익사한 사고도 있었습니다.
  저도 새벽기도회때에 그 길을 이용하는데 그날 새벽 그 길로  왔었다면 그  목사님 내외분이  사고를 당한 시간대와 거의 같은 시간대에 운전을 했을 터이니 아마 저도  함께 그 어려움을 당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전날 원고를 써야할 일이 너무 많아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교회에서 작업을 하고 교회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 전날 교회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면 저도 큰 어려움을 당했을런지도 모릅니다.
 
  홍수가 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 강과 하천의 둑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 그 둑이 무너지느냐  무너지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둑이 무너지거나 물이 둑을 넘는다면 그 피해가 이루말로 다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와같은 생각을 하면서 교회도 마찬가지다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교회를 무너트리기 위하여 사탄은 엄청난 힘으로 언제나 교회를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홍수를 일으키고 거센 탁류를 교회로 흐르게하여 교회를 무너트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때  교회가 무너지지 아니하고 능히 그 홍수를  이겨내려면 무엇보다도 교회의  제방과 둑이 튼튼하고 높아야 합니다. 교회의 제방과 둑이 낮거나 약해지면 이번과 같이  홍수가 나서 엄청난 양의 탁류가  한꺼번에 밀어  닥칠 때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넘치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교회가 무너지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약화되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불안한 것은 누구나 다 알고 걱정을 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 어느때 보다도 교회의  둑이 낮고 약하다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전보다 키는 커졌지만 오히려 체력은 전의 아이들보다 허약해 진 것과 같이 요즘 우리들의 교회는 전보다 외형은 커졌으나 영적인 체력은  오히려 전보다  비교되 되지 않으리만큼 허약해져서  세상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교회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지게 된  정말 연약한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한국의 교회는 정말 무너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괜히 여러분들을 겁주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한시 바삐  위기 의식을 가지고 교회의 둑과  제방을 점검하고 보수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교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빠른 시일 안에 몰락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이와같은 사실을 알고 미리 준비하고 있는 교단이  있습니다. 합동측 교단이 바로 그 교단입니다.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을 중심으로 교회갱신협의회라는 것을  만들어 교단과 교회의 썩은 병폐를  과감히 도려내고 교회와 교단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얼마나  발버둥을 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교단도  한시바삐 그  뒤를 좇아야만 합니다. 더  이상 총회가 세상 정치판 돌아가듯이  돌아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총회장 선거에 수억원의 돈이 왔다갔다하는  것과 같은 부정과 부패를 보고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와같은  탁류가 교회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둑을 새롭게 높히 튼튼히 쌓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교회의 문제는 비단 그와같은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시정도 하고 고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말  보다 심각한 문제는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과 같이 썩은 정치판과 선거판 못지 않게 우리 한국  교회의 둑을 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을 교회의 성장과 발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낙후된 의식과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면 신발과  옷을 바꾸어  주어야만 합니다. 아이들은 자라는데 계속 어렸을 적의 옷과 신발을 고집한다면 아마 아이들의 발은 옛날  전족을 한 중국 여인들 처럼  장애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교인들이 100명일  때  목회하는 것과 교인이  천명일 때  목회하는 것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교회는 교인의 수와 관계없이 변해서는 아니되는 것이 있어야하지만 시대와 교회의 사이즈에 따라 변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성장할 수  없으며 성장한 교회를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유지하고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제가 지난 몇 년 동안  교회에서 격었던 어려움도 바로  이와같은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출석교인이 천명대일 때와 이천명대 일  때 그리고 큰 예배당을 건축하고 하나님 앞에서 중대형 또는 대형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할  때 제일 먼저 하여야 할 일중의  하나는 예배당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의 식과 틀을 먼저 바꾸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큰 예배당을  건축했으니 곧 교인들이 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80년대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생각이   바뀌고 목회의 틀이 그것을 수용할 수 있도록  바뀌지 않는다면 교회는 성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그것을 생각하고 나름대로 목회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은 저에게 출석교인 천명대일 때의   목회를 요구합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출석교인 백명대일 때의 목회를 여전히 요구합니다. 출석교인 백명대  일 때의 목회의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점을 살리다보면 지금 우리 동안교회와 같은 교회의 목회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큰 교회라고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큰 교회의 사명이 있고 큰 교회가 하여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몇몇 교회를 시대마다 선택하여 특별히  성장시키시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동안교회가 그와같은 교회중에 하나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마음을 먹으셨다면 우리는 빨리 의식과 체제를 그에  맞도록 바꾸어야만  할 것입니다.
  정말 작은  교회는 다른  교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중소형 교회는 남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지만 남을 크게 도울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연  자신의 교회 하나만 신경을  쓰고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러나 중대형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중대형  교회가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중대형  교회는 다른 교회도 생각해야하고 자기 교회만 생각하는 교회가 생각하지 못하는 그리고 책임지지 못하는 일들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교단도 생각하고 세상과  나라도 생각하고 더 나아가 세계도 생각해야만 합니다.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일을 하여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개척교회와 중소형 교회 목사와  중대형 교회  목사의 사역의 범위가 다른  것입니다. 중대형 교회 목사는 개척 교회  목회자나 중소형 교회 목회자들이 손을 대지 못하는 부분까지 손을 대야만 하기 때문에 자연 자기 자신의  교회와 교인들을 돌아보는데는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만큼 시간을 낼 수도 없고 마음을 쓸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교만해서도 아니고  게을러서도 아닙니다. 소명이  다른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교회는 참으로 어려운 갈등을 격을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와같은 갈등이 오늘날 많은 교회들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중대형 교회의 담임목사는  나름대로 자신의 소명 때문에 교회내의 일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부교역자를 청빙하여  저들에게 일을 분담시키는 것입니다. 저들로 하여금 작은 교회의 담임목회자들  교회내에서 하는 일들중의 많은 부분을 감당하게 함으로  담임목사의 일을 덜어주고 담임목사로 하여금 중대형 교회가 하여야 할  사명을 감당케 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만해도 담임목사인  제가 교인 여러분 가정을 일일이  심방하지 못합니다. 그일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가 그일을  다 감당할 수도 없거니와  감당한다고 하여도 그일에 매달리다보면  그외의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연 심방과 교인 여러분들을 직접  심방하여 섬기는  일은 부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이와같은  점을 잘 인정해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담임목사가 부목사에게 심방을  맡기는 일을 불성실하고 게으른 것으로 치부하려고 합니다. 부목사님들이 심방을 하는 것을 온당치  않게 생각을 하고 담임목사가 심방을 하며 교인들을 일일이 살펴주지 못하고 자꾸 밖의 일을 하려고 하면 차라리 교회를 사면하고 밖의 일만하는 목사가 되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교회가 성장하며 성장하여 교단과 세상과 세계를 섬기는 교회가 되려고하면 담임목사의 교회 외적인 활동을 인정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부교역자들의 교회 내적인 활동의 권위를 인정해 주어야만  합니다. 작은 것 같지만 이 문제를 정확히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우리 동안 교회는 더 이상 성장하고 발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역할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교인들뿐만이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교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담임목사에게 있습니다.   감당도 하지 못하면서  부교역자에게는  책임과 권한이 없는 부수적인 일만 시키고 정작 중요한 권한은 혼자서 다  쥐고 있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제법 크다고하는 교회의  담임목사는 마치  재벌의 총수와 같습니다. 마치 군인 줄신의 독재자 같습니다. 교회의 삼권을  다 장악하고 엄청난 권력을 휘두릅니다. 그러다가 목사가 아니라  교주가 됩니다. 독재 독재해도 교회의 독재처럼 무서운 곳이 없습니다.  교회의 담임목사가 독재를 하면 세상 독재자보다 더 무서워집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독재자들은 삼권만  장악하지만 교회의 독재자들은 삼권보다 더 무서운 영권까지 장악하기  때문입니다.
  좀 거칠고 험헌 말이 될  것입니다만은 잘못된 교회의  독재자들은 대개 무당과 같아집니다. 목회자를 잘 섬기면 복을 받고 목회자를  거역하면 벌을 받는다고 공갈을 칩니다. 실제로 한국의 많은 큰 교회의 목회자들이 이와같은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를 아주 취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때  우리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이 깊이  연구하고 본받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는 바사왕 아닥사스다의  술맡은 관원이었습니다. 그 자리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자리였습니다. 왕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었으며  왕의 술친구 역할을하여 자연 왕과 가장 가까운 사람중의 하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훼파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하여 그 좋은 자리를  내어 놓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생명을 걸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합니다. 만일 느헤미야가 자기가 누리고 있는 그 자리를 포기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지 않았다면 결국 예루살렘 성전까지 훼파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게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성벽이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이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그 성벽을  새로 쌓으려고 하는 일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는 느헤미야와 같은 목사가 필요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는 느헤미야와 같은 장로가 필요합니다.
  교회가 작고 어려울 때에는 목사와 장로의 자리가 별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여 큰 교회가 된 지금 대형교회의 목사와 장로의 자리는 느헤미야의  자리와 별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목사가 목사의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어느정도 적당한 지위와 자리가 보장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교회의 장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교인들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그 자리와 지위가 지나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지나친 자리를 내어 놓아야만 합니다. 특히 목사들이  지나치게 차지하고 있는 자리들을 과감히 내어 놓아야만 합니다.   교회를 혼자서 다 장악하려고 하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만 합니다. 저부터  내어 놓겠습니다. 담임목사가 혼자서 교회의 일을 다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내어  놓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교회가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저는 오늘도 같은 본문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모세 혼자서 그 모든 일을 감당하려고  하는 일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와 특별히  교회를 섬기는 목사와 장로들이 가장 깊이 묵상해야야  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저희 교회는 작은 개척교회가 아닙니다. 중소형  교회도  아닙니다. 이미 중대형  교회로 들어  섰습니다. 미국과 같은  곳이라면 초대형교회(mega church)로 분류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안  교회의 목회는 담임 목사 혼자에게 모든  목회적인 부담을 주는 교회가 되어서도 안되고 담임목사 혼자서 모든 일을 장악하려는 교회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동안교회의 목회는 서로  책임을 나누어 지고 서로 협력하는 목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와같은 의식과 제도의 전환 없이 우리 동안  교회의 발전과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앞으로 우리  동안교회에서 협동 목회(team  ministry)를 해보고 싶습니다.
  팀목회에 대하여서는 앞으로  더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만은 오늘은  그동안 제가  나름대로 생각해 오던 것을 전반적으로 그리고 쉽게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혹시  약방과  약국의 차이를 아십니까? 지금은 거의 약방이 없었졌지만 몇  년전까지만해도 시골에는 약방이 많이 있었습니다. 약방이란 약사  없이 제약회사의 약을 파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약사가 없기 때문에 약을 조제를하여 팔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약국은 약사가 있어서 물론 제약  회사의 약을 판매도 하지만 환자의  증상에 따라 약을 조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약방과  약국이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는 아직도 약방 수준의 교회가 많습니다.  목회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신학을 하지 않은 일반 교인들이 함부로  목회의 영역에 손을 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 지금 우리 한국  교회의 아주 대표적인 문제중에 하나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약방  수준의 교회가 된데에는 만인  제사장설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아주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만인  제사장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맞습니다. 만인 제사장설이 맞습니다. 목사만 제사장이  아니요 모든 교인이 다 제사장이라는 말씀이 성경적입니다. 그러나 만인이 제사장이라는 말씀은 만인이  목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제껏 목사만을  성직이요  제사장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만인 제사장설은 만인 목사설로 오해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주 목사만 성직이 아니라 모든 직업이  하나님 앞에서 성직이고 또 성직이어야만 한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만인 제사장설은 모든 직업이 성직이라는 말씀과 연관이 되어야만 합니다. 자기 직업을  단순히 돈버는 수단과 도구로만 이해하지  아니하고 자기 직업 세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성직으로 이해할 때 만인이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 주 어느 신앙 잡지에도  모대학의 교수님이 글을 쓰셨는데 만인이 제사장인데 목사만  교회에서 설교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만인 제사장설이 아니라 만인 목사설입니다. 그분의   주장은 목사만 제사장이라고하는 잘못된  인식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주장이  옳다면 만인 의사설도 주장되어야만 합니다.   꼭 수술과 진료를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 면허를 받은 사람만 할 것이 있느냐 아무나 열정만  있다면 의사가  되어 봉사하자는 말이 성립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은 생각입니다.
  목회는 유일한 성직이 아니라 전문직입니다. 목회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잘못된 만인 제사장설을 근본으로 만인 목사설을 주장하게 된다면  교회는 약방  수준의 교회가 되어 영적인 진료의 수준이 형편없이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여러분 보건소와 종합병원의 차이를 아십니까?  보건소에는  주로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들이  진료를 합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고시에 합격을 하면  의사가 됩니다. 일단 의사가 되면 진료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들은 일반의에서 머무르지 아니하고  전문의 과정을 밟습니다.  그 힘들고 어려운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고 또 전문의 시험을 거쳐서  전문의가 됩니다.
  일반의는 모든 과목을 진료할 수 있지만 전문의는 자기가  전문으로 치료하는 과목만을 진료합니다. 보건소에는 주로 일반의가 진료를 합니다. 일반의는 모든  과목을 진료하기 때문에 의사 한 사람만  있으면 보건소를 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합병원은 전문의들이  모여서 자기 전문 과목만을 진료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자연 의사 한 사람만 가지고는 종합병원을 할 수  없습니다.
  이와같은 기준으로 볼 때  우리 한국 교회는 보건소 수준의 교회입니다. 아무리 큰 교회도,  부교역자가 아무리 많은 교회도 목회의  질과 수준으로 놓고 볼 때 다 보건소 수준의 교회입니다.   부교역자들이 있지만 저들은 간호사와 일반 행정 직원 수준의 일을 합니다. 모든 진료는 담임 목사 혼자서 다  감당하고 있습니다. 자연  진료의 수준이 떨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우리 동안  교회를 종합병원  수준의 목회로 끌어 올리고  싶습니다. 저는 그래야 우리 동안 교회가  21세기를 섬길 수 있는 교회가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교는 아마 아직 서울대학교일 것입니다. 서울대학교의 학생이 되는  것만도 대단한 일인데 그 학교의 교수라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겠습까? 서울대학교의 교수만 되어도 대단한 일인데 그 학교의 총장이 된다면  그는 얼마나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이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지금 서울대학교 총장이 누구신지 혹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을 꼽으라면 아마 서울 대학 병원과  중앙 병원 그리고 삼성 병원을  꼽으실 것입니다. 의대를  좁업하고 의사만 되어도 대단한 일인데  그가 위에서 이야기한 그러한 병원의 의사라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겠습니까? 그러한 병원의 의사만 되어도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만일 그러한 병원의 병원장이라면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앞에서  이야기한 병원의 병원장을 한 사람이라도 알고 계십니까?
  그러면 여러분 여러분은  소망교회의 담임목사가 누구신지 혹시 모르시는 분이 계십니까? 광림교회의 당회장이 누구신지 모르시는  분이 계십니까?  총장과 병원장의 이름은 대부분 모르셔도 소망교회가 광림교회의 당회장이 누구신지  모르시는 분은 아마  없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학교와 병원  그리고 교회의 수준차인 것입니다.
  서울대 총장은 대단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학교가 그  한 사람에게 달려있지 않습니다. 어떤 특별한 일이 있어서 총장이 바뀌게 된다고하여도 학교는 전혀  요동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총장은 중요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전 중심이 그에게 달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 훌륭한  교수들이 책임을 잘 나누어 맡고 있기  때문에 총장이 바뀌어도 학교는  꺼떡없이 계속 발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교회와 광림교회  그리고 특별히 여의도 순복음 교회같은 교회는  아마도 당회장이  은퇴 하시게 된 후 많은 충격을 받게 될 것이고 몸살을 하게  될 것입니다. 리더쉽이 분산되지 아니하고 한 사람에게 집중 되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목회가 분산 되어야만 합니다.  지금 수준의 신학대학교로는 이 시대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의대  수준으로 격상하여야만 합니다. 신학대학을 졸업하여 목사가 된 후에도 인턴  레지던트와 같은 전문 목사 과정을  신설하여야만 합니다. 교육이면 교육 선교면 선교 전문 목사가 나와야만 합니다. 그런 전문  목사가 배출되면 그를 교회의 전문 목사로  청빙하여야만 합니다.   기존의 부목사 수준의 목회가 아니라 자기 전공한 분야의 전문  목사가 되어  소신껏 목회를 하여야만 합니다. 기존 교회와 교회의 담임목사는  그와같은 역할을 인정하여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만 합니다.   감당도 못하면서 감투처럼 쓰고  있던 자리를  내어 놓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와 권한을 전문가들에게 넘겨 주어야만 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 동안교회는 작은 개척교회가  아닙니다. 담임 목사 혼자에게 모든 목회의 사역을  다 맡기려고  해서도 안되고 담임 목사 혼자서 모든  일을 다 장악하려고 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한시 바삐 전문 목사를 청해서 협동  목회 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그동안 유교 문화권에서 가장과 집안의  어른이 절대  권력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결정하는  체제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최근 까지도 군사  혁명을 통하여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통치하는 그러한 세상에서  살아왔습니다. 경제도 재벌  총수의 막강한 리더쉽 아래 성장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와같은 체제는 교회도 마찬가지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와같은 것이 통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양 교육을 통하여 민주화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와같은 것이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빠른 시일내에 교회가 그와같은 의식과 체제를 바꾸지 아니하고 재래식으로 목회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교주처럼 막강한 리더쉽을 발휘하려고 한다면  젊은이들을 교회를 버리고 떠나게 될  것입니다. 혹시 떠나지  않는다고 하여도 교회가 약방 수준 보건소  수준밖에 되지 않아 덩치만 컸지  힘이 없는 무력한 교회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동안 교회가 한시 바삐  오늘 본문 말씀의 교훈을 받아  들여 모세 일인 체제에서 천부장 백부장 체제로 목회를 분산하고  전문화한다면 21세기를 이끌어 나가는 훌륭한 교회가 될 수 있으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우려야만 합니다.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그대와 그대와 함께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출18:17-18)
 
  오늘로서 목사에 대한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저는  동안 교회의 위임 목사의 권한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원로 목사의 권한도 포기하겠습니다. 있는 동안  몇 년에 한 번씩 신임을 물어 목회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떠나게 되면 아주 깨끗이 떠나겠습니다. 그리고 담임목사 혼자서 교주처럼 목회하는 목회를 포기하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감당할 수도 없는 권한들을 깨끗이 전문가를 찾아 이양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 동안 교회는 참으로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 그리고 훌륭한 교회가 될 줄을 저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