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인 교회
출애굽기 18:13-27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참으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교회를 건축하면서 저는 저에게 건물을 건축하는데 은사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교회를 건축할 때 담임 목사들이 가장 생각이 많아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지시하기도 하고 또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변경을 하기도 하는데 저는 지난 2년 동안 그와같은 일을 거의한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 눈에는 그런 것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동안 교회 예배당은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제 은사와 노력과는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지어진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우리 교회가 더 잘 지어졌는지도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유형의 교회를 건축하는데는 은사가 없으나 그래도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무형의 교회를 건축하는데는 어느 정도 은사를 주시지 않았나 스스로 생각해 봅니다. 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무형의 교회는 오히려 눈에 보여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가 제법 선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와 또 직임에 따라 최선을 다하여 우리 동안 교회를 정말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고 훌륭한 교회로 건축해가고 싶습니다. 정말 교회다운 좋은 교회를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물론 그 일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고 도와 주셔야 되는 일이지만 그 일에 제 생명을 걸려고 합니다.
저 나름대로는 어느정도 생명을 걸 준비가 끝났습니다. 지난 6년 반 동안 우리 동안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 여러 차례 목회적인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최대의 위기는 바로 작년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여러 교우들에게 부끄럽고 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으나 저는 정말 동안 교회를 떠나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을 잘 모르시지만 그때 저는 교회 사택을 교회에 내 놓고 은행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전세 얻어 이사를 하였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바로 그 집입니다. 덕분에 평수를 많이 줄여야만 했습니다. 어머니와 세 아이를 포함하여 여섯 식구인 저희에게는 좀 비좁은 집이어서 이사짐을 많이 정리하여야만 했으며 아이중에 하나는 방에서 자지 못하고 거실에서 잠을 자야만 했습니다. 지금은 두 아이가 학기중에는 지방에 내려가 있기 때문에 별로 큰 문제가 없지만 그것을 통하여 저는 제 마음 속에 있는 거품과 인간적인 욕심을 어느정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사택뿐만 아니라 제가 쓰던 자동차와 전화기등등 교회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다 교회에 반납하고 개인적으로 새로 장만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까지도 아빠가 동안 교회를 사임하였다고 일러 주었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동안 교회에서 목회를 하게 되었지만 작년엔 정말 완전히 마음으로 교회를 포기하고 떠났었습니다.
그것은 제 평생의 목회적인 흠이 되리만큼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같은 실수와 허물을 통해서도 저를 훈련시켜 주셨습니다. 저는 작년 그 경험을 통하여 목회에 대한 인간적인 야망과 욕심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만 아니라면 떠날 수 있는 준비가 완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저에게 자유함을 주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소신껏 목회를 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힘을 잘못 사용하여 함부로 교회를 떠나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것을 엄포용 무기로 사용하여 교회와 교우 여러분들을 위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 합니다. 제가 그런 마음으로 칼자루를 함부로 휘두른다면 하나님께서는 저를 그대로 버려 두시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목회를 하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두려워하면서 목회 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요즈음 오십견 때문에 제법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몇주전에는 축도를 할 수 없으리만큼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의사로부터 오십견을 치료하려면 아픔을 무릅쓰고 운동을 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숯불을 뒤집어 쓰는 것과 같은 통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온전하지는 않지만 많은 진전이 있어서 이제 축도는 거의 문제가 없고 몇주 정도만 열심히 노력하면 오십견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그것을 잘 모르고 통증이 있으면 움직이지 않고 있었는데 그것이 점점 근육을 유착 시키는 결과를 나아 병세가 악화 되었던 것입니다. 오십견의 경우 통증을 피하여 가면 점점 더 통증이 심하여지게 되고 통증을 무릅쓰고 운동을 해야만 통증이 점점 없어지게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와 일반 세상의 문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교회에도 오십견과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이든 교회든 나이를 먹어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오십견과 같은 근육 유착이 생겨 힘을 쓸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 동안교회도 마찬가지이고 그와같은 현상은 우리 한국교회에 전체에 아주 심각하게 나
타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좀처럼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그것을 고치지 못하고 내버려 두다가 나중에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상태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아픔을 통하여 제 오십견을 치료하듯 목회도 그와같은 정신으로 하려고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건물에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라는 글을 새겨 놓았습니다. 저는 정말 우리 동안교회가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와 같은 교회는 고통을 피하고 숨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싸워 승리한 후에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 동안교회가 정말 좋고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많은 아픔을 이겨내야만 합니다. 저는 정직하게 저와 여러분에게 그와같은 아픔과 고통을 요구할 것입니다. 회피하지 아니하고 정면으로 돌파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였을 때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넉넉 잡고 일주일이면 들어갈 수 있는 코스가 있었습니다. 그 길로 가려면 그 지역 사람들과 전쟁을 하여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와같은 마음의 준비가 없었습니다. 전쟁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쟁취하겠는다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보면 애굽으로 다시 돌아 갈 것을 염려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돌아가게 하시었습니다.
전쟁을 각오하고 앞으로 나갔으면 일주일이면 ㄷ을 일을 전쟁을 겁내서 돌아감으로 40년이나 광야에서 방황을 하여야만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십견과 같은 교회의 고통과 아픔을 직면하지 아니하고 회피한다면 40년이 지나도 건강하고 좋은 교회를 만들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잠간 동안의 아픔과 고통을 회피하지 아니하고 용감하게 직면한다면 일주일만에라도 교회가 마땅히 들어가야 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줄을 저는 믿습니다.
지난 주 설교때 말씀을 드렸지만 앞으로 여러주에 걸쳐서 제 앞으로 어떻게 목회를 할 것인가에 대해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가 어떠한 목회자가 되어 어떤 목회를 하기를 원하고 계시는가에 대하여 고민하고 기도하고 공부하여 정리된 내용들 입니다.
그 설교가 끝난 후 저는 당회의 결의를 거쳐 여러분들에게 신임을 물으려고 합니다. 2/3의 신임을 얻는다면 저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앞으로 정하려고 하는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해 시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2/3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어느 기간 동안 다시 기도하며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면 생각을 바꾸겠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데 만일 동안교회가 개혁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견디지 못하여 그것을 받아 들이지 못한다라고 판단된다면 교회를 떠나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겠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교인들중에 기도를 열심히 하시는 교인들이 많이 있는데 기도의 은사를 받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오늘부터 이 문제를 위하여 심각한 기도를 시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반듯이 우리 동안교회에 좋은 결과를 축복으로 주시리라 믿습니다.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목사와 교인들 사이에 목사의 직무와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를 포함하여 많은 교회의 문제가 거기에서 출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목사에 대한 직무와 역할에 대하여 정확하게 기록해 놓은 곳이 없습니다. 목사라고 하는 정확한 명칭이 사용된 것은 제가 아는대로 성경에 에베소서 4장 11절 밖에는 없습니다. 그나마도 에베소서 4장 11절에는 목사라는 명칭만 나올 뿐 그가 누구인지 어떠한 역할을 교회에서 감당해야하는 사람인지에 대하여 정확한 명시가 없습니다.
때문에 목사의 역할과 직문에 대하여 생각하려고 할 때 성경 구절을 정확하게 인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는대로 성경의 정신을 최대한도로 적용하는 것 뿐입니다. 저나름대로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면서 정리한 목사의 역할과 직무에 대한 말씀을 여러분들께 드리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목사를 성직자(聖職者)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목사는 성직자입니다. 그러나 누차 강단을 통하여 말씀을 드렸지만 목사만 유일한 성직자는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반듯하게 가지고 있는 직업은 모두가 다 성직입니다. 목회만 성직이라하고 목회외의 직업은 세속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직업을 우습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세속적으로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성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최대의 문제는 목사만 성직자라는 잘못된 생각에서부터 기인합니다. 목회외에는 어떤 직업도 성직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도 자기 직업에 대한 소명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직업은 단순히 돈을 벌고 밥을 벌어 먹는 수단과 도구일 뿐 신앙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일이 되어 신앙과 삶이 분리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모든 직업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합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목회도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목회를 직업이라고 이야기할 때 부정적인 느낌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직업이라는 말을 잘못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업을 단순히 돈벌고 밥벌어 먹는 것으로 이해하면 목회를 직업이라고 할 때 문제가 생기지만 직업을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생각할 때 목회를 직업이라고 이야기해도 별로 문제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목사는 유일한 성직자로서 이해 되기 보다는 목회의 전문가로 이해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옛날 제사를 비롯한 모든 성전의 일을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레위 지파에게만 맡기셨습니다.그리고 레위 지파 사람들은 다른 직업을 갖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성전의 일에만 전문하는 전문가가 되라는 뜻입니다.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는 세상 다른 일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셨지만 레위 지파 사람들 외에는 성전의 일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허락지 않은 사람들이 함부로 성전의 일에 손을 대는 일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두가지 예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사울의 제사요 둘째는 사무엘하 6장에 나오는 베레스 웃사 사건입니다. 블레셋과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이 와서 제사를 드려 주기로 하였는데 사무엘이 늦게되자 사무엘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사울이 스스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왕이라고 하여도 하나님께 제사하는 일을 구별없이 함부로 손대는 것을 옳게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교만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왕이 하여야 할 일과 제사장이 하여야 할을 구별할 줄 모르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사무엘하 6장에 보면 다윗 왕이 사울이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법궤를 찾아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가 끄는 수레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서 뛰자 법붸가 땅에 떨어지는 막으려고 웃사라고 하는 사람이 법궤를 손으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그것을 옳게 보지 않으시고 웃사를 그 자리에서 죽게 하시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베레스 웃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웃사와 충돌하셨다는 뜻입니다.
왜 하나님은 웃사와 충돌하시었는가? 그것은 참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웃사가 그 일로 죽게 된 이유는 단하나 웃사가 레위 지파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레위 지파 사람이 아닌 사람이 하나님의 궤에 손을 대는 일을 잘못된 일이라고 성경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다급하여도 하나님의 법궤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레위 지파 사람만 손을 대고 다른 사람들은 함부로 손을 대어서는 안된
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엄히 가르치시고 싶으셔서 그와같은 엄청난 일을 행하신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 사울의 사건과 베레스 웃사의 사건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 나타나고 있는 많은 문제의 원인 중에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의 목회의 전문성에 대하여 생각지 아니하고 함부로 충돌하기 때문에 목회가 전문화되지 못하고 아마츄어화 되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자신의 직업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목회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자기들의 직업에서도 전문가가 되지 못하고 아마츄어가 되어가고 있으며 세상에서 패배자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를 유일한 성직자로 이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목사를 목회의 전문가로 이해하고 목회할 것입니다. 지난 주에 서론적으로 설교한 담임목사는 교회의 선장이라는 말의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목사를 교회의 선장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옛말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사공을 여럿 뽑아 놓고 일이 있을 때마다 회의를 하고 다수결로 결정한다면 좋을 것 같지만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배를 바로 운행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전문과정을 만들어 놓고 그 과정을 거친 사람을 전문가로 뽑아 다른 일 하지 않게하고 오직 그 일만을 하게하여 그 일에 전문성을 높힌 후 그를 사공으로 삼아 배를 운행하게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고 전자의 방법
을 고집하려고 합니다. 교회는 여러 사람의 경험을 가지고 회의하고 토론하는 것도 있어야 하지만 성경과 목회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그일에 전적으로 헌신한 목회자에게 어느 것이 성경적인지를 연구하게 하고 자기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게하여 어느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아보게 하는 것이 더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회의 전문가로서 목회를 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위하여 헌신하였고 그것을 위하여 꽤 오랫동안 공부하였습니다. 나는 다른 직업이 없는 레위인으로서 학교를 졸업한 후 이제까지 20년 동안 목회외에는 다른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목회가 직업인 목회의 전문가입니다. 우리 동안 교회가 참으로 하나님 앞에 좋은 교회로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동안교회의 담임 목사인 저를 목회의 전문가로 인정하고 동안교회의 선장으로 세워 주셔야 할 것입니다. 지난 6년 반 동안 저를 좀더 자유롭게 믿고 맡겨 주었으면 이보다 더 좋은 동안 교회가 되었을 것이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너무 지나치도록 저의 발목을 많이 잡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 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지만 앞으로는 그와같은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게도 이제는 그와같은 일에 발목을 잡혀가면서 써야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할 수 있는대로 여러분의 전공과 직업의 전문가가 되시기를 위하여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직업은 단순히 밥을 벌어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직업 세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그와같은 소명은 도외시하고 목회자의 소명인 교회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함부로 구별없이 손을 대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전공에서 아마츄어가 되고 목회자는 목회에서 아마츄어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아니하고 좋은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참으로 동안교회를 사랑하시고 우리 동안교회가 참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훌륭한 교회로 성장해 나가기를 원하신다면 저를 목회의 전문가로 인정하고 세워 주시는 일을 무엇보다 먼저 하셔야 할 것입니
다.
목사를 목회의 전문가로 세워주고 인정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매우 위험한 함정이 있습니다. 목사를 목회의 전문가로 인정하고 선장처럼 세워 줄 때 목사가 시험에 들어 독재자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목회의 전문가인 것을 빙자하여 독재를하는 목회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독재자가 되는 것만을 막기 위하여 생각없이 목회를 제한하다보면 목사가 목회의 전문가가 되지 못하게 되고, 목사를 목회의 전문가로 세우기 위하여 선장처럼 세우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독재자처럼 함부로 교회에 군림하게 되는 딜렘마가 교회안에는 있습니다. 어떻게하면 목사를 독재자가 아닌 목회의 전문가로서 세울수 있느냐에 교회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를 목회의 전문가로 세우되 독재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제도적인 장치가 있어야만 합니다.
첫째, 당회입니다.
선배 목사님들중에 당회없는 목회를 말씀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당회의 지나친 견제와 월권 때문에 정말 소신껏 목회를 할 수 없는 일이 우리 한국 교회에 너무나 많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충분히 그 말의 뜻을 알면서도 저는 마음으로 그와같은 생각에 한 번도 동의해 본일이 없습니다. 제가 당회없는 목회를 생각하지 않는 까닭은 제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완전하고 실수와 허물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당회없는 목회를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저를 믿지 않기 때문에 제가 잘못할 때 막아주고 견제해 주는 당회가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저의 판단과 생각이 옳았을 때 그것을 지지해주고 밀어주는 당회가 있어야만 합니다.
자동차에는 악셀레이터와 브레이크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동차에 없어서는 안되는 매우 중요한 장치입니다. 빨리 달리는 것이 목적이라고 브레이크를 떼어 버리고 악셀레이터만 있다면 반드시 큰 사고를 내고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악셀레이터를 떼어 버리고 브레이크만 있는 자동차라면 사고는 나지 않겠지만 달릴 수는 없을 것을 것입니다.
당회는 자동차와 같아서 악셀레이터와 브레이크의 기능을 갖추고 있어야만 합니다. 브레이크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무조건 악셀레이터의 기능만 하는 당회는 좋은 당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브레레크의 기능만 하고 악셀레이터의 기능을 감당하지 못하는 당회도 좋은 당회는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 한국 교회의 당회는 후자에 속하는 당회가 많습니다.
기분좋은 운전을 할 때 보면 브레이크를 밟는 시간과 횟수와 악셀레이터를 밟는 시간과 횟수가 있습니다. 악셀레이터를 밟는 시간과 횟수가 아홉이라면 브레이크는 밟는 횟수와 시간은 하나 정도입니다. 그 정도의 비율로 당회가 역할을 한다면 좋은 당회가 될 줄로 저는 믿습니다.
둘째, 위임목사 제도와 원로목사 제도를 폐지하고 몇 년마다 교인들의 신임을 물어야만 합니다. 한 번 위임목사가 되면 정년 은퇴할 때까지 자리가 보장되며 또한 20년만 넘게 근속하면 원로목사까지 되어 노후까지 완전 보장이 되는 것 얼핏 보면 좋은 것 같으나 목사 자신에게나 교회에게 유익한 제도가 아닙니다.
전문가로서 소신껏 목회를 하는 것은 좋으나 교인들의 신임도 묻지 않고 은퇴 할 때까지 밀고 나간다면 그는 전문가가 아닌 독재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의 위임제도를 포기하고 몇 년에 한 번씩 교인들의 신임을 물어야만 나태해지지도 않을 것이요 교만해 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IBM 회사가 몇 년전 몰락 위기에 까지 몰린적이 있었습니다. IBM이 그렇게까지 위기에 몰리게 된데에는 몇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중 첫째가 한 번 IBM에 입사하면 절대로 퇴사를 시키지 않는다는 IBM의 원칙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 퇴직하기전에는 절대로 쫓아 내지 않았으며 스스로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났던 사람도 언제든지 다시 돌아오겠다고만 하면 누구나 언제든지 받아 준다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IBM사 직원들을 안일하고 나태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것이 IBM을 위기로 몰아갔던 것입니다. 새로운 회장이 부임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40만명의 직원중 8만5천명을 일시에 퇴직을 시킨 것이었습니다. 일시적으로 많은 경제적인 손실과 혼란이 있었지만 IBM은 그와같은 정책을 통하여 다시 살아 났습니다.
목사도 사람인지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잘못하면 교인들로부터 신임을 받을 수 없다는 위기가 있어야만 성실하고 반듯한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한 번만 위임을 받으면 70이 될 때까지 요지부동인 제도하에서도 반듯한 목회를 할 수 있는 목회자는 생각처럼 많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저는 동안교회의 위임목사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로서 그 위임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은퇴후의 원로목사가 되는 것도 포기하겠습니다. 몇 년마다 한 번씩 여러분들의 신임을 묻겠으며 은퇴한 후에 원로목사가 되어 교회에 남는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인간적인 보장을 스스로 끊어 버리고 교인들의 신임과 심판에 목회적인 생명을 걸 때 목사는 함부로 독재자가 되지 아니하고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팀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담임목사 혼자서 교회의 모든 일을 다한다는 것을 무리한 일입니다. 목회의 영역도 전문별로 나누고 분담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에 주력하여야만 합니다. 이 일에 대하여 다음 주일에 자세히 다루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아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모세가 혼자서 모든 일을 담당하려고 하였던 일은 옳은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등을 세워 일을 분담해 나가는 것을 하나님은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를 통하여 모세에게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정치도 경제도 다 독재이었습니다. 독재의 장점은 독재하는 자가 개인적인 축재만 하지 않는다면 급속도의 성장을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가 바로 그 가장 좋은 예입니다. 독재의 장점은 성장에 있습니다. 그러나 독재의 약점은 성숙에 있습니다. 박대통령의 독재로 인하여 나라가 어느정도 성장을 한 것은 사실이나 보다 중요한 성숙이 이루어지지 못해 다시금 성장의 기틀도 무너지는 우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몇몇 재벌 총수의 능력에 의하여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도 정치와 마찬가지이어서 재벌 총수의 절대권력은 성공적인 경제성장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몇몇 재벌 총수 위주의 경제는 성장은 어느 정도 가능하나 성장이후 필수적인 성숙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에 구조적인 헛점을 드러내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나라 경제가 처해 있는 현주소인 것입니다. 정치는 한시 바삐 중앙 집권제에서 지방 자치제로 바뀌어져야만 하고 경제는 한시 바삐 재벌 위주에서 중소
기업 위주로 바뀌어져야만 합니다. 이와같은 면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우리 한국 교회는 몇몇 뛰어난 카리스마적인 목회자들에 의하여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와같은 리더쉽은 교회의 성숙에 치명적인 문제를 드러낼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교회의 성장도 멈추고 교회의 정체를 가져오게 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정치도 민주화 되어야하고 경제도 민주화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회가 민주화 되어야만 합니다. 담임목사 혼자 팔방 미인이 되어 모든 것을 주관하고 관장하는 것에서 발전하여 전문적인 목회자들이 함께 동역하는 제도로 바뀌어져야만 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 동안교회와 한국교회와 정말 건강하고 능력있는 교회로 성장하려면 교인들은 목회자의 전문성을 인정하여야만 하고 목사는 목회의 전문성을 잃지 않기 위하여 교회를 장악하고 독재 군주와 같은 스타일로 목회하려고 하는 인간적인 야망을 버려야만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진정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목회자와 교인이 모두 교회 안에서 인간적인 야망을 다 내어 버리고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참으로 아름답게 건축해 나가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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