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출애굽기

[출18:21] 이상적인 교회

'코이네' 2020. 8. 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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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교회    

출 18:21-28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곳을 사회라고 합니다. 이 사회는 서로가 함께 살고, 함께 유익을 얻고, 함께 번영하기 위해 일정한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법을 순종하면 질서가 있게 되고 이 질서에 의해 자유와 행복이 보장되지만 이 법을 따르지 않으면 무질서와 파괴만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교회도 일종의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서 한 목적을 향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그렇기에 교회에도 룰이 있고 조직이 있고 제도가 있습니다. 이를 잘지켜 질서있는 교회가 될 때 그 교회를 드나드는 온 교인들이 유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상적인 교회’를 말할때 두가지 측면에서 말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내면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흔한말로 말씀충만, 은혜충만, 사랑충만, 능력충만한 교회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외면적인 요소로서의 교회, 조직체로서의 교회의 측면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외적인 면에서의 이상적인 교회를 말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늘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 집단생활을 한것은 오늘 구원얻은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교회라고 하는 집단생활을 예표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들의 사회생활은 곧 하나님 백성의 집단생활이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교회는 하나님자녀의 집단생활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전의 흥분을 가라앉힌 다음에 이제는 자체 집단생활의 질서를 바로잡고 사회생할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이제는 힘을 써야 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위로는 하나님과 아래로는 백성들 중간에 서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규례에 대해 물을 때 자세히 가르쳐 주거나 재판을 요청할때 판결해 주어야 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13절을 보면 아침부터 저녁늦게까지 하루종일 쉬지 않고 찾아오는 백성에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못하고 오직 이 일에만 매달려 있어야 했습니다. 이 모습을 어느날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찾아왔다가 보게 됩니다. 가만히 보니 모세는 지쳐있고 찾아오는 사람은 너무나 많고 순서를 기다리다가 하루종일 서있다가 그냥가는 사람이 적지 않아 능률은 오르지 않아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를 생각하고  넘어가야 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바치는 충성이나 열심이 아무리 좋을 지라도 방법이 잘못되면 하나님앞에서 어리석음에 속한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봉사를 보십시오. 마르다는 열심히 자기나름대로 딸흘리며 봉사한다고 했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기에 칭찬받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열심과 충성이 아무리 좋아도 방법이 잘못되면 하나님앞에서 귀한 것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열심과 충성이 혼잡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분별력있게 충성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위한다는것 까지는 좋았지만 칼을 휘두른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불충하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것 만큼이나 지각없이 제맘대로 촐랑대는 것도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방법도 모르고 종횡무진 설치고 다니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다윗이 법괘를 옮길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소가 난폭하게 뛰자 법괘가 떨어질것 같으니 웃사가 그만 법괘를 붙잡았다가 그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볼 때 웃사의 생각과 열심이 나쁜것입니까? 하나님의 법괘가 시궁창에 빠지는 것을 막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웃사에게는 두가지 잘못이 있었은즉, 첫째는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법괘가 떨어질까보냐? 소가 촐랑거린다고 하나님의 법괘가 시궁창에 쳐박히겠느냐? 마땅히 믿음으로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법괘는  제사장밖에 손을 못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아무리 뜻이 좋고 열심이 있다 할 지라도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니까 그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선한 마음이나 충성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면 오히려 하나님앞에 죄가 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점에서 볼 때 모세는 지금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 이드로가 모세에게 권합니다. 그러지 말아라. 네 할 일이 따로 있고 백성이 할 일이 따로 있지 않느냐? 어째서 지각없이 마구 덤비는냐? 네 할 일은 네가하고 백성이 할 일은 백성이 하게하면 되지 않느냐? 일의 한계를 지어 분담할 것을 권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사이에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 이스라엘에게 전하고 이스라엘의 소원을 받아 하나님께 전하는 중보자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모세외에 다른 사람은 못하는 사명입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사이에 일어난 시비는 모세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드로는 민중대표를 뽑아 그들에게 맡겨 천사람 다스릴만한 사람은 천부장을, 백사람 다스릴만한 사람은 백부장으로...세워 각각 할 일을 맡기고 모세는 오직 모세만이 할 일을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 충고를 받아들여 지덕을 겸비한 사람과,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과, 진실무
망한 사람과, 불의한 재물을 싫어하는 사람을 뽑아 그 역량대로 천부장, 백부장...직을 맡겼습니다. 이래서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사회는 조직화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조직은 하나님백성의  표면상의 조직이요 제도입니다. 이제 20장에 가서야 비로서 하나님백성으로의 내면적인 요소를 갖추게 해주셨습니다.

다음 주일은 우리 그물교회 창립3주년 감사주일입니다. 89/3/26일 부활주일에 저와 제 아내와 제 큰아들, 이렇게 셋이 첫 예배를 드리고 그해 5/4일에 창립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해마다 창립주일을 맞을때마다 교회의 내면적인 면을 다루어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조직과 제도적인 측면에서 이상적인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조직적이고 제도적인 교회로서 이상적인 교회가 되려면 어떤 요소들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가? 몇가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의식이 투철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는 신분의식이 투철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민족에게는 선민의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자존심과 독선적인 우월감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좋은 의미에서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부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살아올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러한 우월감과 자존심때문이었습니다. 이 백성이 이러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한은 어느나라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던, 노예로 있던, 가스실에서 대량학살을 당하던 절대로 동화되는 법이 없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형식화되어질때는 악이되어 예수님께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도 받았고 지금도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악이 되었지만 그러나 이것이 선하게 쓰여질때는 대단히 좋은 역할을 했습니다. 선민사상이야 말로 하나님백성답게 사는 마음의 바탕과 저력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회에게도 이것이 필요합니다. 여기 드나드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나는 구원얻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라는 이 우월감과 자존심, 이것이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신분의식입니다. “나는 어떤 가문의 몇십대손이고 우리 조상은 무슨 벼슬을 하셨다”는 자랑도 자랑이겠죠. 내 남편은 누구고 내 부모는 누구라는 사실도 자랑이겠죠. 그러한 자랑은 인간 세상에서 끝나고 마는 자랑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영원에 가서도 자랑거리요 천사들에게 우쭐댈 수 있는 귀한 신분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속에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다”라는 신분의식이 얼마나 투철하고 강하냐에 따라 여러분의 생활은 늠늠할 것입니다. 넘치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인천시내에서 사장 행복한 삶을 누리며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이러한 신분의식을 가지고 화합단결하여 하나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역사중 가장 강대했을 때가 언제입니까? 반대로 가장 약했을 때가 언제입니까? 하나님 모시고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화합단결했을 때는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부국강병의 나라였습니다만 그러나 종교적으로 우상을 섬기고 지도자와 백성들 사이에 내분이 있었을때 작은적 하나 이기지 못하고 빌빌거렸습니다. 이것을 증거한 책이 사사기요 사무엘서요 열왕기서요 역대기서입니다. 오늘 교회에 있어서 중요한 것중 하나가 바로 화합단결입니다. 물론 교회는 강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화합단결이 쉽지는 않습니다. 지식의 정도가 다르고 경제의 정도가 다르고 신분지위의 정도가 다르고 개성도 다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였으니 하나된다는 것은 인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제도나 조직이나 규율로 하나되게 할 수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 이는 하나되는 것처럼 보일뿐 실상은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는 제도로도, 조직으로도, 규율로도 하나되게 할 수가 없는 곳입니다.

콩이 담겨있는 바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바가지안에는 콩이 하나가득 들어 있습니다. 물론 겉으로 볼 때는 하나입니다. 그러나 바가지라는 제도와 형태때문에 하나가 된것이지 여전히 바가지 안에는 콩이 따로따로 하나씩 있습니다. 만일 바가지가 기우뚱하기라도 한다면 한순간에 와르르 쏟아져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만이면 만으러 제각기 뿔뿔히 흩어질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제도로 묶은 교회라면 제도가 흔들거릴때 다 뿔뿔히 흩어지고 말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는 바가지에 담겨있는 콩이 아닙니다. 콩을 부숴야 합니다. 그래서 가루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물을 부어 반죽하여 한덩어리의 메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리던져도 하나요 저리 던져도 한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입니다.

그럼 어떻게 이렇게 하나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보혈로,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인간적인 것을 모두 죽이고 예수님의 보혈로 반죽을 하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뭉치면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리할때 비로소 그 교회는 완전히 하나가 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쯤되면 성도의 교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어제 보았는데도 오늘 만나면 100년친구를 만난것 같이 반가와 손에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해를 초월하여 화합단결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개성을 초월합니다. 보혈의 공로로 출신지역을 초월합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는 흥해라 나는 기꺼이 쇠하겠다는 세례요한의 자세를 갖을 수 있습니다. 내눈의 들보를 먼저보고 남의 눈의 티를 보니 시비거리가 없어집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이루어진 한가족으로서의 이상적인 교회의 단결입니다. 그물교회여, 이렇게 단결하고 화합하여 한덩어리가 되시길 바랍니다.

 

3. 총동원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어떠 한사람의 힘으로 부흥하거나 발전하거나 세상의 빛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온 교회가 화합단결하여 총동원해야 합니다. 교회는 지체와 같은 곳입니다. 어느 한사람이 제 할 일을 안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것이 유기체로서의 교회의 성질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목사만의 교회도 아니요, 장로만의 교회도 아니요, 집사만의 교회도 아닙니다. 총동원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모세가 온종일 지치도록 일은 했지만 이스라엘 사회를 바로 이끌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뜨거운 땡볕에 기다리는 사람들의 입에서 불평만 터지게 할 뿐이었습니다. 모세는 피곤에 지쳐있고, 백성들은 불평에 찌들어 있고...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능률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드로가 각자의 일을 분담시킬 것을 권한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가 맡은 일을 총동원하여 감당했을때 이스라엘이라는 사회는 생기가 넘치고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모세는 일 할 대표를 뽑아 백성의 일을 그들에게 감당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교회조직의 원리입니다. 집사가 왜 있고 권사가 왜 있고 장로가 왜 있습니까? 교역자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으니 교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교인이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중보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 이스라엘에게 전하고 이스라엘의 소원을 받아 하나님께 전하는 일만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목회자의 위치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파송을 받은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하나님과 교회사이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교인들의 소원을 받아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의 제사를 바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모세가 한 일인 동시에 교회 목회자가 할 일입니다. 오늘 교회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많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일이 많아도 교역자가 할 일이 따로 있고 직원들이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바로 여러분들이 이자리로 불림받아 왔습니다. 여기 모인분들중 사명없는 분은 한분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자리에 왔다는 사실 그 자체가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이를 비유해 우리는 다 하나님집의 그릇들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금그릇이요, 어떤 분은 은그릇이요, 어떤 분은 질그긋이요, 어떤분은 나무그릇일겁니다. 질그릇이라고 해서 천한 것은 아닙니다. 그릇이란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주 쓰이느냐에 따라 귀중함이 결정되어 집니다. 여러분중 어떤분은 십부장, 어떤분 백부장, 천부장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모두 총동원해서 각자가 맡은일에 최선을 다할 때 그물교회는 이상적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일군만 있어야지 구경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주인만 있어야지 손님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모두모두 혼연일체 한덩어리되어 총동원하여 일어서야 겠습니다. 눈섭하나도 소용없어 붙어
있겠습니까? 코털하나도 소용없어 붙어 있겠습니까? 모두 할 일이 있어서 몸에 붙어 있다면 이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중 할 일 없어 불러 놓으신 분들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총동원하여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 감당합시다.

 

4. 유능한 직원이 있는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입니다.


말씀드린대로 교회는 교역자 한사람으로 부흥.발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말렉을 물리쳤을 때 모세 한사람이 했습니까? 아닙니다. 여호수아도 있었고 아론도 있었고 훌도 있었습니다. 본문을 다시 봅시다. 모세 한사람이 이스라엘을 능률있게 다스릴 수는 없었습니다.  유능한 일군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21절 이하의 자격으로 일군을 뽑고 있습니다.

재덕을 겸비한 사람을 뽑았습니다. 재주만 있고 덕이 없는 사람은 야박하거나 교활하거나 사기꾼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이일저일 할 수 있는 재주군이로되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덕을 겸비한 사람이 유능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앞에서 생각하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말하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는 사람, 이사람이야 말로 유능한 사람입니다.
그 다음 진실무망한 사람입니다.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 배신하지 않는 사람, 교활하지 않은 사람, 경망하지 않은 사람, 과장하지 않는 사람, 자화자찬하지 않는 사람.....이러한 사람이 유능한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불의한 이를 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무슨일이든 공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처리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유능한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니 이러한 사람을 뽑아 각 부장직을 맡겼다고 했습니다. 우리 그물교회 모든 제직들도 자신을 갈고 닦아 이러한 유능한 제직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부름받아 온 사람들입니다. 누구는 모세로 부름받았고, 누구는 아론으로, 누구는 여호수아로, 누구는 십부장으로, 누구는 백부장으로.....부름받아 왔기에 사명없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립3주년을 맞아 우리교회가 이상적인 교회로 발돋음하기 위해서 이상과 같이 말씀드린 네가지를 순종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당대에 이 인천을 가나안 만들어 놓을 수 있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놀라운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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