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출애굽기

[출18:13] 민주적인 교회3_김동호 목사

'코이네' 2020. 8. 4. 17:08


  민주적인 교회3

  출애굽기 18:13-27

 
   오늘날 세계적으로 볼 때  장로교회는 우리 한국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같은  징후가 이미 우리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이에대한 대비를 지금 심각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더  빠른 시일내에 우리 한국에서도  장로교회가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장로교회가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 말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으나 그러나 지금 서둘러 이  문제를 연구하고 대비하지 않는다면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안에 우리 한국의 장로 교회도 쉽게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와같은 생각을 5,6년전부터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으로 다루고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이었고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피해보려고 나름대로 애를 써보기도 하였지만 하나님은 저를 그와같은 일에서 풀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3월 중국의 총리가 된  주룽지(朱鎔基)는 최근 영국에서  열린 ASEM 즉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에서 '생사를 건 개혁'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는 정말 중국에서 생사를 건 개혁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하여서 97년도 중국이  인플레는 6%로 묶고 경제 성장은 10%에 가깝게 이끌어 올려 100억  달러의 국제수지 흑자를 기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저는 주룽지  총리의 '생사를  건 개혁'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바로 그것이 오늘날 우리 한국 장로교회에 필요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개혁되어야만 합니다. 특히  우리 한국  장로 교회는 개혁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저도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우리 한국 교회의 개혁을  위하여 생명을  걸어 보려고 합니다. 이  일을 시작하기 까지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많은 망설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망설임과 주저 끝에 결국 이 일에 손을 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제 나름대로는 교회 개혁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이제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정말  주룽지 총리의 말과 같이 저도 우리 한국 교회의 올바른 성장을 위하여 생사를 걸려고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여러분들의 많은 중보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장로교회의 정치 원리는 민주주의 정치가 표방하고 있는  대의정치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한국 장로교회는 대의정치가 되지  못하고 목사와 장로의 전제정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한국  장로 교회의 당회는 삼권을 다 장악하고 교회의 모든 일을 혼자서 다 결정하고  처리하는 우를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 장로 교회가  그와같은 우를 범하고 있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약할 때 당회는 교회의 모든  책임을 혼자서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교인들이 쉽게 교회의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았을 때  당회원들이 그 모든 십자가를 담당하여야만 했고 당회원들은 으레 그와같은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당회원이  되었습니다. 그당시 당회원이  된다는 것은 곧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를  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신앙적으로  볼 때  명예스러운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교회의 당회원이 되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당회원들이 걸머지고 있던 많은 책임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권한으로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십자가 이었던 일들이 면류관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에는 섣불리 당회원이 되겠다는 사람이 없었는데 요즘은 서로 당회원이 되겠다고 신학 대학은 치열한 경쟁율을 통해서만 들어가게 되었고  교회의 장로 선거도 과열되어 그로 인하여 시험이 들만큼 어려운 문제가 되었습니다.
 책임은 혼자서 걸머져도 크게  부작용이 없지만 권한은 혼자서 누리게 되면 크게 부작용이 생기게  됩니다. 본래 장로 교회 정치의 정신은 독재정치와 전제정치가  아니라 민주정치입니다. 이제 우리 한국의 장로 교회는 본래의 장로  교회로 돌아 가야만 합니다. 우리 한국 장로 교회는 장로 교회의 원래  모습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교회를 장로 정치의 원리를 따라 민주적으로 개혁해야만 합니다.

 

 미래 사회는  세계화와  지방화의 특징을 가진 사회가  될 것입니다. 옛날과 같이 중앙집권적인 정치 형태로는 도저히 미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도 마찬가지고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가 이렇듯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정부와 재벌이 중앙 집권적인 정치  형태로 정부와  사업을 운영해  왔기 때문입니다.
 국민 소득을 만불 까지  올리는데는 그와같은 중앙 집권적인 정치와 경제 형태가 어느 정도 효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불  이후에 계속적으로 성장하는 나라가  되려면 그와같은 정치와 경제  행태로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만불 시대에서 다시 주저 앉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것입니다. 이  잘못된 구조를 조정하고 개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주룽지 총리의 생사를 건  개혁의 내용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국무원의 숫자를 47.5% 즉 절반 가까이  줄이고 정부  기구의 25%에 달하는 기구를 축소하며 그동안 국무원에 속해 있던 200 가지의 직능을 지방과 민간으로 이양하겠다는 것입니다. 주  총리는 그와같은 개혁에  중국의 생사가  달려 있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 국민의 90% 이상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영국의 정치적인 영웅으로 까지 불리우고 있던 토니 블레어 (Tony Blair) 수상은  44세에 영국의 수상이  되었습니다. 그가 21세기를 열어가는 영국과 서구의 영웅으로 현란하게 부상하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그가 노쇠한 영국을 21세기를  향한 젊은  국가로 다시 태어나도록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국민들이 높이 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토니 블레어가 영국을 새로운 젊은 국가로 태어나게 하기 위하여 하고 있는  개혁도
결국은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권력을 과감하게 분산시키고  위임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장로 교회는  주룽지와 토니  블레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그와같은 개혁이 오늘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지방  자치제가  활성화 되고 사업도 제벌 위주에서 중소기업의 위주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살아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앙 집권적인 정치 체제와 경제 구조를  가지고는 21세기에 정말 살아 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정신과 원칙은 교회에도  나타나야만 할 것입니다. 옛날과 같이 목사 한 사람의 카리스마와 당회의 절대적인 권위만 가지고 중앙 집중적인 목회를 해  나가려고 한다면  결국 실패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전에 말씀드렸던 것을 한 번 다시 반복하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중앙집권적인 독재정치가 맞아 떨어 졌었습니다. 독재정치는 '성장 구조' 에 특효가  있는 정치 형태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정치 형태는 '성숙 구조'와는 맞지 않아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룬 후 반듯시 이루어야  할 성숙에는 독약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군사 독재로 말미암아 기적과 같은 성장은 이루었으나 성장 이후에 필연적으로 와야하는 성숙의 단계를 이룰 수가 없었고 그와 같은 미  성숙함이 결국은  IMF와 같은  사회적인 혼란과 연약함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재벌 위중의 경제 정책 그리고 재벌  총수 일인의 막강한 파워로 말미암아 한국 경제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발이 빠르고 추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구조로는 성숙한 경제 정책을  이루어 낼 수 없었고 그것이 결국은  다시 경제를 무너트리는 원인이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우리  한국 교회는 거의 절대 권력을 가진  목사와 장로의 중앙 집권적인 정치 형태를 통하여 세계가 놀랄만한  성장을하여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정치 구조로는 교회도  성숙한 교회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교회의 성장 이후 반드시 따라와야만 하는  성숙한 교회로의  발전을 가로 막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 한국은 유교  문화권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어느 정도 독재가 효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도 유교 문화권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이미 민주화 되어   있습니다. 그와같은 민주적인 문화 속에서 중앙 집권적인 정치 형태로는 교회를 바로  성장 시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안에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유형의 잘못된  인식과 힘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첫째는 목회적인 성직의 파워가 너무 강하여져서 감독정치 또는 교황정치 스타일로 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이 어떻게 하면 교인들과 장로들을 꼼짝 못하게 주무를 수 있을 인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회의 성패를 거기에 걸고  있습니다.
 

둘째는 교인들의 대표인 장로들의 파워가 커지면서 장로들이  교회의 주인이요 사주요 고용주인  것처럼 행세하는 스타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은 장로교를 Presbyterian  Church로  이해하지 아니하고 Elder"s Church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목사와 장로들의 파워 게임에 의하여 서서히 몰락해 가고  있다고 하여도  절대 과언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직시하고  먼저 목사와  장로가 쓸데 없는 힘 겨루기를 포기  하여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겸손히 자신의 면류관과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 드려야만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장로교회가 아닙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장로교회의  정치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이 장로 교회의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장로교의 정치만이  유일한 성경적인 원리에 따른 정치는 아니지만 장로교회의 정치가 가장 성경적이고 민주적이라고 하는데는  의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동안 교회와 우리 한국 장로 교회를  진정한 의미의 장로교회로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합니다.  지금 우리들이 하고 있는 장로 교회는  장로 교회의 본질에서  좀 많이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당회에 집중되어 있는 권한을 제직회와 함께 분담하여야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 장로교회에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당회의 권력 집중입니다.   정책과 예산을 세우는 것도  당회가 하고  정책과 예산을 따라 그 일을 집행하는  것도 당회가  하고 그것을  평가하고 감사하는 일도 당회가  다 합니다. 제직회와 공동의회가 있지만  대개는 형식적입니다. 그것은  우리 동안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작을 때는 할 수 없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정치를  하면 교회의  일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동안 교회와 같이 자리가 잡힌 교회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당회에서  다 처리하는  것은 장점에 비해 단점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당회가 정책과 예산을  세우는 일을 하고 그 정책과 예산을 집행하는 실제적인 일에서 손을 떼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와같은 일은 안수집사님들을 중심으로  한 제직회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당회원이  제직회 부장까지 다 맡아서 하고 있는데  제직회 부장은 안수 집사님들과 권사님들 선에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제직회는 당회가  결정한  정책과 예산의 범위  안에서 맡겨진  일을 수행하여야만 합니다. 일을 수행하는 동안 생겨나는 문제들을 당회에 건의 할 수는 있으나 스스로  결정해서는 안됩니다.   결정은 당회가 하고 집행은 제직회가하여  결정과 집행을 분리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다시 당회는 제직회가  수행한 일을 감사하고  평가하여야만 합니다. 잘했으면 칭찬하고 격려하고 잘못했으면 책망하고  꾸짖어야만 합니다. 교회에는  그와같은 어른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 어른의 역할을 당회가 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당회원이 제직회  부장까지  되어 교회의 재정을 결재하고  집행하면서 자신들이 한 일을 감사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때문에 우리 한국 교회는 당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없는 교회와 같이 권위 없고 무질서한  교회가 되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당회원들이 일을 처리하고 그것을 제직회에서 보고하는  형식이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회보다 제직회가 더 상회처럼 되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제직들이 일을 처리하고 그것을 당회에 보고하여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당회가 상회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식대로 하면 제직회가 더  상회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와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하여 제직회를 그저 '가하면 예하시오'만 하면 되는 유명무실한 조직으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전에는 사람이 없어서 모든  일을 당회원들이 다 하여야 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젊고  유능한 일군들이 교회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들에게 과감히  일을 맡겨야만 합니다. 당회의 많은 일을 저들에게 위임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저들을 믿음으로 지도하고 감독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건강한 교회 힘있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장로님들도  재신임을 물어야만 합니다.


 목사도 재신임을 물어야 하고  장로도 재신임을   물어야만 합니다. 재신임을 물으면 그것으로 인한 어느 정도의 혼란과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에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건강한 혼란과 갈등입니다. 무조건 안정되고 보장이 된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적인 안정과 보장이 오히려 물을  썩게 하는 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목회직과 장로직이 보장됨으로 교회의 물이  썩어가고 있는면도 있습니다. 목사든 장로든 몇 년 동안 일을 했으면  하나님을 대신해서 교인들에게 평가를  받아야만 합니다.
 한 번 위임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면 은퇴할 때까지 시무한다는 것은 인간이 누구나를 막론하고  교만해지고 게을러지기 쉬운  죄인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옳지 않은  제도요 방법입니다. 목사도 재신임을 묻고 장로도  재신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안식년도 하여야 합니다.


 셋째, 정확하고 깨끗한 은퇴를 하여야 합니다.


 장로는 봉사직이지 명예직이 아닙니다. 시무가 끝났으면  목사든 장로든 일반 신도의 자리로 돌아  가야만 합니다. 은퇴 장로님 방을 만들어 드리자는 안도 있었지만 제가 반대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원로 목사님 방이 없습니다. 원로 목사님 방이 없다면 원로 은퇴 장로님 방도 없어야 합니다.
 목사와 장로는 시무할 때  목사와 장로입니다. 저는 명예권사제를 찬동하지 않습니다. 직분은 명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무가 끝나면 그냥 교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물론 호칭은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으로 불리울  수 있지만  그 자리는 교인의 자리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야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직분이 계급화되고 그 계급에  따라 특권층화   하여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막지 않은면 교회는 절대적으로 부패합니다. 생명을  걸고 막아야만 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담임 목사도 목회의 많은  부분을 부교역자에게 이양하려고  합니다. 장로님들도 젊은 집사님들에게  교회 살림을 이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로님들은  담임 목사와  함께 보다 큰 일을 하여야 합니다. 본문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모세가 혼자서 모든 일을 담당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셔야만 합니다.  담임 목사와 장로는 교회의 어른이 되어야만 합니다.
 담임 목사와  장로님들은  앞으로 교회 안의 일은 부교역자와 집사님들에게 맡겨두고  교회 밖의  일을 좀 돌아 봐야만 합니다.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저와  함께 코스타도 좀 가보고 다른 교회도 방문해  보고 중요한 세미나에도 참여하여 앞을 내다 볼 줄 아는 안목을 높혀야 합니다.
 밤낮 교회안에서 돈 주머니만  붙잡고 있으면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 교회가 답답한  교회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세가  혼자 하던 일을 과감히 천부장과  백부장에게 맡기고 보다  중요한 일에  마음과 시간을 썼던 것과 같이 한국  교회의 당회원들도 그와같이 하여 우리가 섬기는  교회를 정말  민주적인 장로교회로 만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