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느헤미야

[느1:1] 민족을 위한 기도

'코이네' 2019. 3. 13. 15:50

민족을 위한 기도

1:1-11

설교 : 김동국 목사

 

 

고통 가운데 있는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방침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서를 통 해 우리에게 주의 길을 보여줍니다. 느헤미야서는 한 지도자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에서 귀환하면서 오랫동안 성벽을 재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여러 가지 박해와 모함으로 인해 백년이 흘러도 성벽은 재건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성벽이 없는 예루살렘에는 이방의 족속들이 언제든지 넘나들 수 있었습니다. 추수해서 곡식을 곳간에 모아두면 이방족속들이 무너진 성벽으로 달려들어와서 곡식을 가져가고 어린아이와 여자들을 착취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느헤미야가 52일만에 성벽재건을 이뤄 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모했지만 이룰 수 없었던 일을 한 사람이 이루었습니다. 환난과 역경 속에서, 대적들의 모함 속에서 느헤미야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지도력에 기인하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가 탁월한 지도자이기 전에 끈질긴 기도자였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체 13장으로 이뤄져 있는 느헤미야서에는 12번의 기도가 나옵니다.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나는 책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삶 속에 개입하시는 하나님느헤미야는 자신의 생애 가운데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시며 자신의 삶을 승리로 이끄셨는지 느헤미야서를 통해 고백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더니그는 세상 한 복판, 정치와 권력의 한 복판에 있었습니다. 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비록 세상에서 성공했지만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거룩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삶입니까? 무엇이 진정한 행복입니까? 진정한 삶은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개입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느헤미야는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삶에 개입하십니다. 개입하시기 전에 먼저 준비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이루실 때 항상 일할 사람을 먼저 준비시킵니다.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장소에 있게 하십니다. 에스더 416절을 보십시오.“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스더는 민족의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왕후로 있게 된 것이 자신의 안일한 삶을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민족을 위해 왕 앞에 나아가 하만의 계략을 밝혔습니다. 성공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그 삶이 실패하고 거꾸러지고 죽음안에 갇혀 있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그는 하나님의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는 사람과만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생애는 그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진행됩니다. 형제들에게 팔리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노예로, 죄인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개입을 통해 국무총리가 되고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됐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시면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삶에 안연하게 머물지 말고 깨어 있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삶 가운데 개입하시고 섭리하심을 피부로 느낀 모세는 40년 광야의 삶을 떨치고 자신의 민족 앞에 나아갔습니다. 홀로 바로 앞에 섰습니다. 그 절대 왕권, 권세, 칼 앞에 모세는 홀로 당당히 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개입하시면 우리는 그 개입하심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 개입하심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경우처럼 기적으로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평범한 삶 가운데 임하십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를 수산궁에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일상적인 삶 가운데서 개입하시고 부르셨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 즉, 사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왕과 함께 술을 마시고 제국의 일을 논하는 술맡은 관원이었습니다. 8백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해 모르는 체하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민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 때문에 남아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었습니다. 큰 문들이 극히 작은 문빗장에 의해 열리고 닫히듯이 일상적인 대화와 만남이 느헤미야의 인생을 바꿔놨습니다. 모세는 평소와 다름없이 양을 돌보기위해 밖으로 나갔지만 그날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다윗이 양떼를 지키던 날도 평소와 다름이 없었지만 그날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떻게 준비하시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잘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마음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그분 앞에 우리 존재를 열어 놓아야 합니다.매 순간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내게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큰 사건으로 말씀하시기도 하고 작은 소리로도 말씀하십니다. 내 일상 가운데서 때로는 친구로, 상사로, 가난한 자로 다가오십니다. 눈물의 기도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섭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예루살렘 소식을 들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하는지라느헤미야가 들은 소식은 절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간절한 기대가 무너지는 소식이었습니다. 남은 자들은 여전히 환난과 능욕과 훼파 속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여러분은 무엇때문에 우십니까? 느헤미야는 그 민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울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조국을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이 울음은 겁쟁이의 울음이 아닙니다. 혹 울음은 나약함의 표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울음은 예수님의 울음처럼 강한 울음이었습니다. 우리의 눈물은 하나님께서 우리 길에 심으신 섭리의 씨앗에 물을 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눈물이 없으면 그 씨앗은 결코 자랄 수도 열매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수일을 금식하며 울었습니다. 그러나 울며 앉아만 있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울기만 해서는 역사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 삶이 바뀌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일어나 기도했습니다. 그는 위대한 삶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기도의 영광과 능력을 알았습니다. 기도의 권세를 알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불평하고 비판하는 것으로만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잘못된 현실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이들도 간혹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는 것을 마치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샤머니즘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부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그 이상의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느헤미야에 관한 연구를 한 바브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스스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에게 얘기할 뿐입니다.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기반이 없는 것 입니다.그러나 진실한 지도자는 스스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만족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부족함과 자신의 필요를 아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낮추어서 홀로 그것을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 앞에 엎드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위대한 지도자는 위대한 기도의 전사입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기도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기도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그는 땅에 있는 신에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늘에 계신 참된 신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고통당할 때 어떤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무엇인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있을 그 때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께 기도하십니까? 느헤미야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 가운데서-그러나 큰일을 결심하고 있는 그 상황 가운데서 -크신 하나님, 권능의 하나님, 자신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자신에게 부딪힌 문제를 능히 해결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느헤미야처럼 크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신뢰하십시오. 우리의 기도는 믿음의 크기만큼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죄를 자복하는 기도

 

두번째로 느헤미야는 죄를 자복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유다 백성이 멸망당하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것이 느헤미야와는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적어도 유다가 멸망한 것은 느헤미야의 할아버지 이상의 때였습니다. 바벨론인들은 점령한 지역의 귀족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8백마일이나 떨어진 먼 곳에서 전쟁과 포로잡힘과 멸망과는 관계없이 지내던 어느 날, 느헤미야는 그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어찌 보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나와 나의아비집이 범죄하였음을 고백했습니다. 아버지의 죄악이 자신의 죄와 관계돼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민족의 죄가 자신과 관계있다고 여겼습니다. 죄악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가 죄악을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회개해서 해결해야 될 문제입니다. 죄악은 그리스도가 흘리신 보혈로만 깨끗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숨어 계시기에 그분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악이 눈과 귀를 가리우고 이성과 판단을 마비시켰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하지 못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기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나의 기도를 통해 이 땅의 죄악을 용서하실 그 하나님께 자복하는 마음으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7~10절을 보십시오.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이들은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삶의 전부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시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변명하지 마십시오.

 

기도를 통해 보여 주시는 비전

 

느헤미야의 기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동일한 원칙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원칙은 하나님 말씀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냥 돌아가지 마십시오. 적당히 위로받고 돌아가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해결할 의향으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우리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해결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의 능력이 내 삶 가운데 개입하실 때 우리 삶은 회복되고 변화됩니다. 느헤미야는 기도 가운데서 그런 환상, 비전을 보았습니다.

 

기도란 인간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이룬 것처럼 이 세상 가운데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품은 기도의 사람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응답하시기 위해 기도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나 자신을 위해, 가정을 위해, 이 민족과 이 세계의 황폐함을 보며 방관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그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고 우리의 내면과 삶을 바꾸고 이 나라와 민족을 고칠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보고 기도를 이루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느헤미야는 편한 왕궁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바로 민족을 위해 중보해야 할 자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11절을보십시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

 

느헤미야는 민족의 고통을 듣고 자신의 뜻을 정하고 행보를 결정하기 전에 울면서 하나님께기도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동일한 마음으로 한 목적을 위해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신만이 그런 아픔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자신만이 하나님의 개입을 받고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존재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기도 가운데서 거룩한 열망을 갖고 자신의 삶의 안연함과 행복에 만족하지 않고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기도하는 무리를 본 것입니다.

 

우리는 홀로 서 있지 않습니다. 함께 기도하며 헌신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우리 주변에 천사처럼 서 있는 것입니다. 일어나십시오. 담대하게 나가십시오.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우리를 막고 있는 장애가 어떠한 것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형통함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사람을 움직이기 전에 느헤미야는 먼저 하나님을 움직였습니다. 사람을 향해 말하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말하십시오. 사람을 대하기 앞서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불평하며 앉아만 있지 마십시오. 통회하고 한탄하며 여러분의 살 길을 찾아가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 느헤미야처럼 이 민족의 악과 우리 가운데 있는 악행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가 나의 죄이고 이 민족의 아픔이 나의 짐임을 고백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지도자들이 떠나가고 이 사회의 기초가 흔들리는 상황 가운데서 느헤미야를 묵상합니다. 느헤미야에게 개입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개입하여 주옵소서. 느헤미야를 사용하신 하나님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저희도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