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로마서

[롬12:12] 환난 중에 참는다는 것은?

'코이네' 2019. 2. 3. 01:55

환란 중에 참으라

본문 : 롬 12:12

 

 

열심히라는 것은 열정적인 것을 말한다. 뜨거운 것을 말한다. 계속해서 불을 지피라는 것이다. 차가시동이 꺼지면 제 아무리 비싼 차라고 해도 설 수 밖에 없다. 이유가 무엇인가? 불이 꺼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예배드리는 것 중요하고 기도하는 것 중요하고 말씀 앞에 엎드리는 것 중요하다. 하지만 예배에 불을 붙이지 못한다면 기도에 불이 붙지 못한다면, 말씀에 불을 지피지 못한다면 달리지 못하고 멈추어 선, 늘 갓길에 폐차마냥 세워져 있는 비싸기만 한 차와 무엇이 다를 게 있겠는가? 열심을 내시기를 축복한다. 계속 불을 지피셔야 한다. 부지런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감동이 계속 일어나려면 불을 계속 지펴야 한다. 교회가 계속 성령충만을 유지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계속 불을 붙여야한다. 또 계속 불을 붙이려면 끊임없이 땔감을 넣어 주어야 한다. 교회 안에 성령의 불이 충만하고자 한다면, 성령의 불을 활활 태우고 결코 꺼지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끊임없이 십자가에서 나의 육체와 세상과 공중권세 잡은 자와 율법을 이 땔감들을 십자가에 태울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성령충만이, 교회 안에서의 뜨거움이, 열심이 유지될 수없는 것이다.

 

계속해서 12 절을 나눈다.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사랑하면 소망은 그저 찾아와서 채워지는 것이다. 자녀들에 대해서도 절망하고 낙담했다가도 다시 마음의 줄을 잡고 소망하게 되는 것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란다고 말씀한다. 모든 것을 소망한다는 것이다. 어떤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낙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사랑하면 소망할 수 있는 것이다. 목회라는 것이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참 매력 없고 재미없는 것일 수 있다. 사력을 다해 에너지를 쏟은 곳에서 도리어 뒤통수 맞고, 오해를 사고, 욕 얻어 먹고, 상식 이하의 취급을 당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인간적으로 '이게 뭔가' 싶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여, 그 사랑으로 영혼을 바라볼 때 그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소망과 기대를 보는 것이다. 그럼 이 사역을 멈출 수가 없다. 사랑하면 소망이 넘치게 되어 있다. ‘우리에게 소망이 없다. 절망스럽다. 형제 자매에 대해서 실망하고 교회에 대해서 소망이 없다!’이것은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사랑하면 소망이 넘치게 되어있는 줄로 믿는다.

 

소망 중에 즐거워한다라는 말을 원어에 가깝게 번역하면 소망을 사용해서 계속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소망이 있으면 끊임없이 즐거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우리에게 기쁨이 없는가? 그것은 소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소망이 없는가? 그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소망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면 기뻐하게 되는 줄로 믿는다. 우리가 지금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는 건강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소망이 없기 때문이다.

 

왜 소망이 없습니까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소망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감동이 늘 채워져 있다면 늘 소망이 넘치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말씀들이 깨우쳐 지게 되어 있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성령의 감동들을 통해 삶의 길이 열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칠 흙 같은 어둠 속에 있더라도 한 줄기 빛만 비추이면 살아 나올 수 있듯이 하나님의 소망이 내 안에 품어지면 살 수 있는 것이다. 그 소망이 어디서 오는가? 사랑에서부터 온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말씀을 본다. ‘환란 중에 참는다고 이야기 한다. 헬라말을 그대로 번역하면 환란 중에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망치 않고 계속 머물러 있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 66 권을 통해서 우리에게 약속하신다. 우리가 이 약속의 주체되신 그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그분을 믿는다면 우리는 끝까지 참고 기다릴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참을 수 없다면, 끝끝내 견디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내가 그 약속의 주체되신 그분을 믿지 못할 뿐더러 그만큼 사랑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춘향전만 보더라도 남녀 간의 사랑도 믿어지면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이 진짜로 주어지는데 그 약속을 기다리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으며 참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어떤 환란과 고통이 와도 사랑한다면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사랑도 아니다.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 장은 사랑을 정의하면서 가장 먼저 무엇을 언급하는가? ‘사랑은 오래 참는다는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사랑이 아닌 것이다. 사랑은 참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의 약속을 믿는 것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 약속을 기다리는 것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 어떤 환란과 핍박에서도 참을 수 있는 것이다.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