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로마서

[롬12:10]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라

'코이네' 2019. 2. 3. 01:47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라

롬12:10

 

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하나님의 사랑은 형제자매를 사랑함으로서 완성되는 줄로 믿는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이 가짜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그 사랑을 완성시키는 것이 어떠한 모습으로 승화되어 나타나냐면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이야기다.

 

여기서 형제를 사랑한다라고 할 때, 헬라어 단어를 필레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인 아가페하고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요한복음을 보면 요한복음에서 쓰여진 모든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가페로 쓰여져 있지만 요 5:20 절에 등장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만큼은 아가페가 아닌 필레오를쓰고 있다. 요한복음 5:20 의 말씀을 한번 보자. 5: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 아가페 사랑은 고차원적인 사랑이고, ‘필레오사랑은 하등한 사랑을 표한할 때 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아가페의 사랑이 필레오의 사랑보다 더 완성된 사랑이다. 그렇다고 해서 필레오의 사랑이 하등한 사랑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필레오사랑은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냐면, ‘아가페사랑으로 승화하기 위한 과정 가운데 있는 사랑, 이 총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가 바로필레오. 그래서 요한복음 520절에도 하나님께서 아들을 사랑하셨는데 여기서 사랑을 필레오로 쓰고 있다. ‘필레오라는 것은 아가페 사랑으로 승화되고자 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사랑이다. 그래서 대게 필레오라는 단어가 쓰여질 때 그 뒷 문장이나 단어들을 보면 그 사랑이 아가페 사랑으로 승화되어지기 위해 전제되어지는 것들이 나온다. 그래서 요한복음 520절에서도 그 사랑이 승화되어 아가페의 사랑이 되어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아들에게 다 보여 주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필레오사랑이다. 아가페 사랑을 신적 사랑의 절정체라고 한다면 필레오사랑은 그 신적인 사랑의 관계적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오면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근데 여기서 이 사랑을필레오로 썼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면 그 사랑이 아가페 사랑에 도달되어지기 위해서 전제되어 져야 하는게 있는데, 당연히 뒤에 언급이 되게 마련이다. 그게 무엇인가? 서로우애하라는 것이다. 이 형제간의 우애함을 통해서 필레오적 사랑이 아가페 사랑 온전한 사랑으로 승화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애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족적인 사랑을 말한다. 가족 안에서의 사랑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다. 결코 추상적이거나 모호하지 않다. 가족 중에 누구라도 아프면 가장 먼저 아파해 줄 수 있는 것이 가족이다. 무엇인가 필요가 생기면 그 필요를 가장 먼저 채워 줄 수 있는 것도 가족이다. 이 가족적인 사랑은 매우 구체적이고 매우 실제적이며 매우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대게 이러한 사랑을 표현할 때 설령 혈연적 가족이 아닐지라도 우리 식구잖아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구역을 이야기 할 때도 구역멤버라고 하는 것과 구역식구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식구라는 단어의 한자어를 보면 먹을 식’‘입 구이다. 같이 먹는 사람이다.

 

가족적인 사랑은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으로 가장 가까이서 필요를 공급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당장이고 집안 식구들 중 한명이라도 아프면 가족 전체가 다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싫든 좋든 같이 힘들 수 밖에 없고 같이 그 아픔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족적인 사랑의 특징이 무엇인가? 구체적인 사랑이다. 교회 공동체는 가족과 같은 영원한 관계에 있다. 한번 보고 말 사람들이 아니다. 여기 계신분들, 그대로 하늘나라 가면 거기서 똑같이 볼 사람들이다. 자 어떤가? 천국이 소망 되는가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식구이다. 그래서 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하나님의 사랑은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으로 식구들이 사는 것처럼 표현되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없는 자에게 공급해주고 낙심한 자에게 격려해 주며 상처받는 자에게 위로해 주고 잘못하면 고쳐주고 세워주고 온전케 해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완성은 형제자매를 사랑함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축복한다.

 

서로 우애하는 것다음이 무엇인가?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라고 이야기 한다.

여기서 먼저 하라가 중요하다. 존경도 먼저하고 인정도 먼저하고, 인사도 먼저 하고칭찬도 먼저하고 굳은 일도 먼저하고 먼저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다. 서로 먼저하고자함의 모습들이 이 필레오의 사랑! 온전한 아가페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필레오의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먼저 하고자 함만큼 아름다운 게 또 있을까싶다. 물론 성격상 먼저 다가가지 못하시는 분들 계시다. 또 반대로 성격상 먼저 다가서지 않으면 못 견뎌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그건 조그만 같이 지내면 대번에 서로 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또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일상이라는 것을하지만 성격과 기질과 성품이 어찌됐든 간에 성경은 먼저하라고 명령한다. 조건이 없다. 사랑도 먼저, 섬김도 먼저, 존경도 먼저, 인사도 먼저, 굳은 일도 먼저!!존경을 먼저하라고 말한다.

 

이 말을 헬라말로 보면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이다.‘존중하라는 말은 달리 표현하면 인정해 주라는 것이다. 그 사람을 단순히 띄어 주라는 말이 아니다. 믿음의 격려를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신 안목으로 지체들을 격려하라는 것이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분명 격려할 만한장점들과 특징들이 있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지체들을 바라볼 때 아흔아홉가지가형편 없다 할지라도 나보다 뛰어난 한 가지가 크게 부각되어 보여질 수 있다. 그래서 먼저 격려할 수 있다. 그래서 먼저 인정할 수 있다. 그래서 먼저 존경할 수 있다.

그 사람이 나보다 객관적으로 잘나고 뛰어나서 먼저 존경하는 것이 아니다. 이 본문의 말씀은 믿음 안에서의 존경이고 믿음 안에서의 격려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하나님의 선하신 안목을 가져야 한다. 우리모두 존귀한 자인 줄로 믿는다. 우리의 존재 그 자체가 귀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무례히 행하지 않고 존중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옆에 분과 같이 인사 나누겠다. 당신은 존귀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할 때 드러나는 믿음의 고백이 무엇인 줄 아는가? 모두가 다 존귀하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꼭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꼭 실질적이고 표면적인 이득을 따져서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안목으로 바라볼 때 믿음의 눈으로 바라 볼 때 당신은 내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설령 당장은 내게 눈에 든 가시 같고, 가시방석 같은 불편한 존재일지언정 믿음의 눈으로 볼 때는 반드시 내게 필요한 존귀한 자라는 것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