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시45:1] 임금님의 결혼식

'코이네' 2018. 10. 24. 18:48

“임금의 결혼식”

시편 45편 


 
시편 150편 중에서 시편 45편은 종교적인 시라기보다는 세속적인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이 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라기보다는 세속적인 왕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12절을 주목해 보면, 이 시는 두로의 딸, 즉 두로의 공주와 이스라엘의 젊은 왕의 결혼식을 기념하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왕의 결혼식 때 지어 바친 축하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로의 딸 중에서 이스라엘의 왕과 결혼한 사람 중에 유명한 여인은 예언자 엘리야 시대에 아합왕과 결혼한 이세벨이라는 여인입니다. 이세벨은 북왕국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떠나 바알신을 섬기도록 만든 여인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 시에 등장하는 두로의 딸이 이세벨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학자들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임금 중에서 두로의 딸과 결혼한 임금을 열거하면서 이 시가 어떤 임금을 위해 쓰여진 시인지를 알아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솔로몬, 여호람, 아합, 예후, 여로보암 2세... 심지어는 신구약 중간시대에 마카비 전쟁으로 독립을 쟁취한 하스몬 왕조의 아리스토 불루스 1세까지도 후보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주어진 시와 자료를 토대로 해서는 어느 특정한 인물을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시가 어떤 임금을 위해서 쓰여진 시인가 보다는 이 시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유일하게 시편 150편 중에서 세속적인 내용으로 쓰여진 시편 45편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책인 시편에 속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45편이 왕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바치는 시라고 하지만, 이 시가 다른 이방 나라의 결혼 축하시와는 다른 이유는 왕에 대한 입장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방 나라는 왕이 곧 신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왕은 그 자체로 숭배의 대상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달리 생각했습니다. 왕은 비록 존귀하고 권위있는 존재이지만, 그도 역시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이방 나라에서 쓰여진 왕의 결혼식 축하시는 그야말로 아부에서 시작해서 아부로 끝나는 시가 대부분입니다. 왕은 전지전능하고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에 대대손손 영원히 찬양을 받는 존재로 노래합니다. 그런데 시편 45편은 조금 다릅니다. 비록 왕을 높이기는 하지만, 그 왕보다 더 높은 존재가 있음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시편 45편 역시 이방 나라의 축하시들 처럼 왕이 누릴 수 있는 온갖 행복, 기쁨, 만족, 화려함, 자랑스런 축복, 권위 등을 말하지만, 이것은 왕이 나라를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는 것을 4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시편 45편을 쓴 시인은 신하로서, 백성으로서 임금의 결혼식을 최고의 축제로 생각하면서 통치자인 임금에 대한 무한한 축복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편 45편도 어찌보면 이스라엘의 시 중에서 가장 아부가 뛰어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아부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이 시에서는 임금으로서의 고차원적인 의무와 책임의식이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생각하기에 왕은 백성들의 대표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은 진실된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만백성이 그의 말과 행동을 귀감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왕은 겸손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올바른 지도자 사상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왕도정치를 실천에 옮긴 이스라엘의 임금은 많지 않습니다. 구약성서에서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 중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임금은 이러한 왕도정치를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고, 특별히 추가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종교를 지켜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지도자에 대한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올바른 지도자는 백성을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개인적인 이익이나 집단적인 이익만을 위해서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이 진정 백성을 위하는 정치, 공평과 정의로 나라를 다스리게 해 달라고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10절과 11절은 왕과 결혼하는 왕의 신부들에게 훈계하는 내용입니다. ‘네 백성과 아비 집을 잊어버릴찌어다’라는 표현은 어찌보면 냉정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이 문자 그대로 처갓집과 결별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이방 나라의 공주가 이스라엘과 유다에 시집을 올 때, 그 나라의 종교적인 관습까지 함께 혼수감으로 가져왔습니다. 따라서 그 이후에 이스라엘과 유다는 종교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고, 종교가 혼합되는 현상도 벌어졌습니다. 엘리야를 비롯하여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바로 이러한 혼합적인 종교현상에 대해서 비판하였고, 이스라엘 종교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까지 바친 사람들입니다. 바로 오늘 시편 45편 10절에서 ‘네 백성과 아비 집을 잊어버릴찌어다’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종교의 순수성을 위협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가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책인 시편에 포함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축제 속에서 이 시에서 언급하는 임금이 어느 순간부터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왕이 결혼하는 경사스러운 날에 이 시를 낭송하면서, 이스라엘의 왕권이 영원히 유지되기를 바랬고,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의롭고 공평하게 다스려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러한 가장 이상스러운 통치자의 모델로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키웠습니다. 우리 민족을 영원히 다스리고 공평과 정의로 다스릴 임금이 언젠가는 오실 것이라는 메시아 대망이 이 시에 녹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메시아에 대한 갈망을 표현했다는 생각은 기독교에도 그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히브리서 1장 8~9절에서는 바로 오늘 시편 45편 6~7절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에서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제가 히브리서 1장 8~9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시편 45편 6~7절을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초대 교회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생각했습니다. 이방인의 출신으로 선택받은 민족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의 왕과 결혼함으로 과거의 낡은 습관을 벗어버리고 이스라엘의 왕을 주인으로 섬긴다면 13절과 같이 모든 영화를 누릴 수 있고, 15절에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새이스라엘로 부르심을 받은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으로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었지만,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시편 45편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의미있는 시가 되었고, 초대교회 공동체에게 가장 소중한 시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 시를 읽고 있는 우리에게도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희망의 시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를 묵상하는 우리도 이 시인의 신앙고백과,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을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이며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 속에 온전하게 모시며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