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시39:1] 인생을 알게 하소서

'코이네' 2018. 9. 12. 18:07

인생을 알게 하소서

39:1-13

 

 

여기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신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견딜수 없는 고통속에서 괴로워 하면서 터져 나오는 불평과 탄식을, 그 입에 재갈을 먹여 참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바로 이스라엘왕인 다윗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인간사에 있어 크게 당황하게 된 것입니다. S 하나님의 섭리는 가끔 의인의 마음속에 당황과 회의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아삽도 시편73편에서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중 마음이 정결한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는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실제로 우리는 우리의 주변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이 전혀 조화되지 않는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악인이 잘되고 형통하며 의인이 어려움을 당하는 그런 모습을 볼때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불의를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의로운 자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는 하나님 아니신가?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이 당하는 어려움은 극심한 고통인,것인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주석가마다 다른 해석을 합니다. 자신이 육신의 병고 때문에 신음하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고, 또 다른 견해는 다윗이 반란군 즉 아들 압살롬의 반란에 의해 갑자기 공격을 받고 피난을 하여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중에 쓴 글이라고 하는 해석입니다. 이 두가지 해석에는 다 무리가 없는것 같습니다. 12절에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라고 한것을 보면, 다윗이 받는 고통은 상당한 것이라고 보여 집니다.

사무엘하 1530절에 보면 다윗이 갑작스러운 반란군의 공격으로 급히 피난하느라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감람산으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루 아침에 왕관을 잃었습니다. 왕궁을 맨발로 떠나야 했습니다. 산속에서 이슬을 맞으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새우잠을 자야 했습니다. 다윗에게 이 모든것이 아픔이겠으나 무엇보다도 다윗의 마음을 아프게 한것은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란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정신적으로든 육신적으로든, 어떤 이유로든 죽음의 귀로에 서 본 사람은 새로이 깨달은 차원높은 인생관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잘아는 도스트예프스키는 1848년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하고 있는 페트라셰프스키의 서클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49년에 체포되어 12월에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집행직전에 특사로 사면을 받아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성경을 탐독하고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게 되고 자유의 몸이 되어 새로운 인생관 신관 그리고 국가관 문학관을 가지고 남은 인생을 살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가령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남은 3개월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보통사람과는 다른 관점에서 모든것을 보게 될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보는 눈이 남다르리라 생각됩니다. 얼마나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내이겠습니까? 평소에 잘해주지 못한것이 못내 아쉽고 살아있는 남은 동안이라도 잘해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돈과 재물을 보는 눈이 다를 것입니다. 개도 물어가지 않는 재물, 자기 生命을 구하지도 못하는 재물, 하나님의 나라에 단 한푼도 가져가지 못하는 재물 때문에 어찌 그렇게 혈안이 되었던가?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을 보는 눈이 다를 것입니다.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꽃 한송이가 그렇게 아름답고 소중한 줄은 예전에 미쳐 몰랐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은 산속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마음의 아픔에 잠못이루면서, 그는 도대체 인생이 무엇이란 말인가?하고 깊이 깊이 묵상하며 깨달은 바가 있을 것입니다.

 

1. 그는 1절에 악인이 내 앞에 있을때에 내가 내 입에 자갈을 먹이리라...

 

# 지난 시간에 여러분에게 가슴아픈일이, 눈물 흘려야 할 일이, 도저히 가슴에 담아 두지 못할 일이 있을 지라도 그것을 가지고 사람앞에 가지 말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이 해결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오히려 말거리로 만들어 욕이되고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령 우리속에 불만이 있을때 누구에게 가서 실컨 이야기 하면 속이 후련할것 같지만, 그것은 불씨에다가 기름을 끼었는 것과 같아 분노만 더욱 확장될 뿐입니다. 오히려 잠자코 있으면 마음이 갈아앉게 되고, 다른 각도에서 사건을 반성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 전에 예배에 출석을 열심히 하지 못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왜 예배에 출석하지 못했느냐 하는 식의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집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으로 그분에게 충분한 권면이 된다고 봅니다.

성경에 보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끌려온 여인을 사이에 놓고 바리새인들과 예수님간에 심각한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바로 많은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율법의 논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도주의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가르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들에게 침묵하면서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 주시었습니다. 군중들에게 침묵 속에서 자기를 볼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원수들의 조롱과 비난속에서 때로는 침묵하시므로 많은 웅변보다도 큰 감화를 주시게 됨을 우리는 예수님의 삶속에서 배울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들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눈물을 이해해 주십니다. 우리의 한숨을 해석하시며 우리의 비참한 영혼의 비밀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귀는 항상 우리를 향하여 열려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을 말씀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2. 3절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4절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다윗은 자기가 당하는 억울한 일을 생각하면 마음속에 화가 끌어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회의와 어두운 생각들을 사람들에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절대 인간은 위로자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의 정신적이고 육신적인 갈등과 고통을 하나님께 아뢸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여기 다윗의 기도는 반역자를 물리쳐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어서 속히 왕궁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볼 수 있는 인생관을 정립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했음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왕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재산을 가진 부자였습니다. 거기다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군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자식이 있습니다. 그는 부러워 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서 만족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3. 그러나 이제 그는 깨달았습니다. 5절하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인생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뼈져리게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또 벌어지는 사건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번 아시아나 여객기 사건은 인재라고 합니다만 그러나 그 누가 그것을 예측하고 그 비행기를 탔고 또 비행기 착륙을 시도 했겠습니까? 10분후도 모르는 것이 아닙니까? 이번 사고에서는 비행기가 산에 곤두박질하는 순간까지도 착륙하는 줄로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의사는 자기의 날을 알수 있습니까? 기독교의 선 무당들이 무슨 예언을 해준다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가서 기도들을 받는데 저 쓰러지는 날도 모르고, 저 죽는날도 준비하지 못하다고 쪼금이라도 다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며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래전에 미항공 우주국에서 발사된 우주선이 승무원들을 태우고 미국국민과 많은 세계사람이 보는 앞에서 발사된지 1분도 되지 않아서 폭발하여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인생은 실로 연약합니다. 우리 인생의 연약함을 깨달은자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할 것이고 하나님은 그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그를 붙잡아 약한데서 강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다윗이 또 하나 깨달은 사실은 인생이 덧없고 허무 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5절에 주께서 나의 날을 손넓이 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백년을 산들 그것이 영원이라는 차원에서 볼때 그것은 하나의 경점에 불과 한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6절에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며 헛된 일에 분요하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다윗이 왕궁에서 거하면서 비단옷에 기름진 음식 먹으며 즐길 때는 인생은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구나 생각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이제 다윗의 눈에 인생은 화려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의 본질이 이와같은 껍데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은 것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레미제라불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4. 우리 한글 개역 성경은 6절을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를 베이커 주석은 진실로 각 사람은 헛된 구경거리 속에서 돌아다닌다라고 읽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진실된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비실재와 헛된 구경거리 가운데서 살고 있음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참된 존재의식 속에서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허구 속에서 그것에 취해서 살아가고 있음을 다윗은 똑바로 보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와같은 헛된 쇼속에서 자기를 잃어 버리고 흥분과 쾌락과 부귀 명성을 찾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항상 구하나 찾지 못하는 것은 헛된 쇼만을 보기 때문이며 또 인간이 진실로 찾는 것은 세상 그어디에도 없기 때문인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부러울것이 없는 사람같은데 자살로서 그 인생의 막을 닫는 사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정주영씨 아들이 자살하는 것이 이해가 갑니까? 또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헤밍웨이가 엽총으로 자기의 이마를 쏘는 것은 왠일 입니까? 묻 세계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브러울것이 없는것 같은 마리린 먼로가 마치 자기 인생은 파장된 해수욕장과 같다면서 수면제를 먹고 영원히 잠들지 않으면 안되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그들이 깨달은 것은, 다윗과 같이 모든 사람이 헛된 구경거리속에 다니고 있음을 발견하였기 때문 입니다. 즉 인생의 허무를 발견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부지런히 뛰고 계십니까? 우리 모두는 한번 조용히 우리의 인생을 한번 깊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심연, 그 인생의 연약함과허무함을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생은 반드시 하나님앞에 서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윗이 깨달은 인생론의 결론이 우리의 인생론의 귀결이 되어야 합니다. 7절에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이런 고백입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의지하며 살겠습니까? 나의 의지와 나의 마지막 소망은 오직 하나님뿐 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 1권 첫장에서 주님 안에서 안식을 발견하기 까지 우리의 마음은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소망을 갖지 못한 사람은 세상에 아무리 부요할 지라도 소돔성의 재물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의 목적을 분명히 아닙다.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존재 입니다. 의미없이 세상의 쾌락을 쫒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받자옵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각하시고 돼지처럼 먹거 마시고 즐거워하는 쾌락적인 삶이 아니라 보다더 진실되게 성실하게 맡겨진일을 감당하시어 보람을 거두시고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