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민수기

[민20:2] 믿음으로 모든 환경을 극복하라 / 이중표 목사

'코이네' 2018. 1. 31. 07:51

믿음으로 모든 환경을 극복하는 새해를 만듭시다

(20:2-3)

이 중표목사

  

 

 

서 론

 

199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수많은 계획을 세우는 때입니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각오가 어느 때보다 굳건할 때입니다. 각자의 형편과 처지는 다를지라도 새해에는 지난 해와 다른 삶을 살아보리라는 결심을 할 때입니다. 어떻게 하면 보다 성공적이고 보다 좋은 결실을 맺는 새해를 만들 수 있는가 주 안에서 믿음으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인생의 승리자 되려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욱 많은 교훈을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간에는 광야교회와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을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광야같은 새상을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왜 광야교회는 실패했습니까? 왜 그들은 영광의 출애굽을 경험했으면서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까? 그리고 왜 초대교회는 언제나 가장 모델적인 교회로 제시되고 있습니까? 실패한 세대들의 경험과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교훈 삼아 성공적인 1995년을 설계하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본 론

 

교회란 무엇입니까? 교회란 구원 받은 성도들의 신앙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궁극적 목표는 '하나님 나라의 삶'에 있습니다. 그러면 좋은 교회란 어떤 교회입니까? 많은 학생이 명문대학에 합격한 학교가 일류고교라면, 많은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는 교회가 좋은 교회라 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성도를 천국에 보내기 위하여 교회는 세가지 중요한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즉 케리그마(복음 전파), 코이노니아(사랑의 교제), 디아코니아(봉사의 생활)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세상에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현재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게 하고 미래적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올바른 사명은 결국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올바로 살도록 인도하는 일입니다. 광야교회와 초대교회의 삶을 비교해 보면, 우리는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1. 광야 교회의 실패한 삶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가로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 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20:25)

 

첫째, 광야교회는 원망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원망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환경이 내가 원하는 대로, 기대했던 대로 안될 때에 일어나는 감정의 표현을 원망이라 합니다. 광야생활 중에 제일 많이 저지른 범죄가 원망입니다(고전 10:10). 원망은 불신자의 삶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불신자의 죄입니다(11:4, 12:38).

이스라엘은 잡족에서 원망을 배우고, 드디어 모든 백성이 원망의 대열에 선 것입니다. 그러면 원망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을 망각하고, 망각해야 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원망의 원인입니다.

인간에게는 무의식의 주머니와 의식의 주머니가 있습니다. 무의식의 주머니에는 잊어버리고 싶은 것,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넣습니다. 그리고 의식의 주머니에는 기억해야 할 것, 잊고 싶지 않은 것을 넣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거꾸로 되면 원망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민수기 20:25절을 보면, 광야교회의 단면도를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원망'이 충만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후 사흘째 되는 날, 마라에서부터 40년 동안 원망을 계속합니다.

홍해를 건너던 기쁨과 감격은 사흘만에 사라지고, 언제나 모세를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조상에게 언약하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바라보지 않고 애굽만을 동경합니다. 먹을 양식이 떨어져도, 마실 물이 없어도, 길이 좀 힘들고 험해도 원망뿐입니다. 그것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임재하신 하나님의 면전에서 원망을 계속합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성막을 건축할 때와 금송아지를 만들고 숭배할 때에는 원망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그리고 원망이의 주동자들은 이스라엘과 함께 나온 잡족이지만, 결국은 이스라엘 전체가 전염되어 원망하는 자들이 되고만 것입니다.

 

광야생활 중 원망의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14:1012: 홍해에서, 바로의 추격 때문에

(2) 15:2224:마라에서, 식수 때문에

(3) 16:13:신광야에서, 양식 때문에

(4) 17:13:르비딤에서, 식수 때문에

(5) 32:16:시내산에서, 모세의 부재 때문에

(6) 11:1:다베라에서, 악한 말로

(7) 11:46:기브롯에서, 고기 때문에

(8) 14:14: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군의 보고 때문에

(9) 16:135:고라 일당의 반역

(10) 20:213:가데스에서, 식수 때문에

(11) 21:4, 5:홍해 길에서, 에돔 후회 때문에

 

둘째, 광야교회에서는 모든 책임을 남에게 전가시킵니다.

광야교회의 또 다른 특징은 모든 책임을 모세에게 떠넘기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책임을 모세에게 떠넘기고, 모세 때문이라고 합니다. 양식이 떨어진 것도, 물이 없는 것도, 길이 험한 것도 모두 모세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양식이 없고, 물이 없고, 길이 험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무슨 문제든지 모든 책임을 내가 지면 해결이 되지만, 남에게 전가시키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셋째, 광야교회의 촛점은 가나안 입성에 성공한 자에게 있습니다.

, 성경의 촛점은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있으며,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의 장정 603, 550명이 두 사람 외에 모두 사망했음을 강조합니다(1:46:2:323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획은 좌절되지 않고, 601, 730명이라는 새세대를 통하여 40년 후에 성취된 것입니다(26:51). 결국 하나님 나라의 일은 불신앙과 불순종의 사람들이 아닌 믿음과 순종의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초대교회의 모범적인 삶의 모습을 돌아 봅시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며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2:4147)

 

첫째, 초대교회의 특징은 성령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다시 말해서 초대교회는 말씀 충만, 기도충만한 교회입니다. 오순절이 되자 예수님의 명령대로 약속을 기다리며 열흘 동안 기도하던 120명의 사도와 제자들에게 '성령충만'이 임하여 초대교회가 시작됩니다. 초대교회는 기도와 말씀보다 앞서지 않는 교회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12사도와 제자들은 계속해서 성령충만을 체험했고, 유무상봉했습니다. 맛디아를 선택할 때에도, 매일구제로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먼저 기도하고 성령충만하여 말씀에 입각하여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심지어 스데반은 순교할 때에도 먼저 기도하고 성령충만하여 담대히 순교했습니다. 광야교회가 원망 충만한 교회라면, 초대교회는 성령 충만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초대교회에서는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음을 강조합니다.

오순절의 순례자들은 성령충만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외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한 장본인들이 바로 자신들임을 깨닫습니다.

이와같이 회개한 성도들이 세례를 받고 초대교회의 구성원으로 3,000명 혹은 5,000명씩 들어옵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는 매일구제로인하여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자 12사도는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시키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자백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6:7)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광야교회가 책임을 전가하는 교회라면, 초대교회는 책임을 지는 교회입니다.

 

셋째, 초대교회의 촛점은 천국 입성에 실패한 자에게 있습니다.

광야교회가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그 촛점을 맞추고 있다면, 초대교회는 성령 충만하지 못하여 실패한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5:111). 모든 사람이 원망하던 현장에서도 믿음으로 순종하던 여호수아 갈렙은 가나안에 입성했지만, 성령이 충만한 초대교회에서도 거짓과 불신앙으로 가득찬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것입니다.

 

3. 오늘날에도 광야교회의 특징과 초대교회의 특징이 현재적으로 교회 안에 나타납니다.

어떠한 교회라도 광야교회의 특징이 아직도 나타난다면, 얼마 비참한 일입니까? 그러나 초대교회의 특징이 나타나는 교회라면, 얼마나 소망이 있는 교회입니까?

초대교회의 특징이 나타나는 교회는 계속하여 성장할 수 있지만, 광야교회의 특징이 나타나는 교회는 결코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 동시에 모든 사람이 원망하는 환경 속에서도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산다면 승리하겠지만, 성령이 충만한 환경 속에서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산다면 실패할 것입니다.

광야교회가 실패했던 원인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감사하면서 온전히 순종합시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삶의 모습을 되새겨 봅시다. 이것이 1995년을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의 비결이 될 것입니다.

 

첫째,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맙시다.

사무엘이 가르쳐 준 것처럼 지금까지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하나님을 잊지맙시다(삼상 7:12). 그렇게 산다면, 1995년은 믿음으로 승리하는 새해가 될 것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의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103:15)

 

둘째, 현재적으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맙시다.

언제나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잊지맙시다(7:14, 23:4, 28:19, 20). 사람은 축복에 익숙해지면,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이나 신기한 '만나'를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꿀 섞은 과자' 처럼 맛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자 그 맛은 '기름 섞은 과자' 같았다고 합니다(11:8). 나중에는 만나를 가르켜 "우리 마음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21:5)고 불평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날마다 밤의 추위와 낮의 더위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 광야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불기둥, 구름기둥 아래서 원망을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기적으로 반석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마시며 원망합니다.

헬렌 캘러의 이야기를 생각해 봅시다. "나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면 이런 사흘을 주었으면 좋겠다. 하루는 나처럼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소경이 되고, 하루는 아무 것도 들을 수 없는 귀머거리가 되고, 하루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는 벙어리가 된다면, 사람들은 감사의 의미를 알 것이다."

 

셋째, 미래에 베푸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맙시다.

창세기 22장에서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면서 아브라함이 체험한 '여호와 이래'의 하나님을 잊지맙시다. ,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잊지맙시다.

'여호와 이래'를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삭과 아브라함의 대화를 들어봅시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22:78)

이삭처럼 염려할 수밖에 없는 우리지만,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버립시다. 그러면 모든 상황을 보시고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린양을 준비해 주셨던 것처럼, 우리의 미래의 모든 문제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특별히 광야 세대의 미래는 가나안 입성이라는 축복이 약속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새해를 맞이하는 성도들은 광야같은 현실 속에서도 미래의 가나안을 바라보는 믿음의 안목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언제나 더 큰 축복은 미래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 었느니라"(8:1116)

 

결 론

 

1995년에는 광야 교회의 특징을 제거하는 삶을 살아 봅시다. 원망하거나 책임을 남에게 전가시키지 맙시다. 모세처럼 언제나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겨버립시다. 여호수아 갈렙처럼 모든 사람이 원망해도 하나님만 의지합시다.

성경은 민주주의를 말하지 않고 신주주의를 말합니다. 민주주의 원칙대로 다수결에 따르자면 60만대 2의 결과에 따라 이스라엘은 애굽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갈렙 두 사람만 찬성했어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나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기도와 말씀보다 앞서지 않는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봅시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시키지 않는 삶을 살아봅시다. 원망이 충만한 광야교회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살 것인지 아니면 성령이 충만한 초대교회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살 것인지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내가 서 있는 위치가 광야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지금도 함께 하시는 임무누엘의 하나님, 앞으로도 인도하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잊지말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새해를 만들어 갑시다.

우리 중에 한 사람도 기도와 말씀보다 앞서지 맙시다.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을 앞세우지 맙시다. 감사보다 원망을 앞세우지 맙시다.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됩시다. 그리하면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by 코이네설교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