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시6:1] 긍휼히 여기소서

'코이네' 2017. 12. 27. 15:50

긍휼히 여기소서
본 문 : 시 6:1-5


시편에는 전체적으로 선과 악의 대립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특히 죄에 대한 아픔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채찍질하고 견책하고 징계하셔서 그 환난 중에 다윗이 회개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육적으로 심한 고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다윗은 “(시6:2)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뼈가 쑤신다는 말을 하는데, 다윗은 뼈가 떨릴 정도로 육체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 “(시6:3)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죄의 값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다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메마른 땅의 풀과 같이 영육이 심히 곤궁해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범죄한다고 누구나 다 징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에 기록하기를 “(히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라고 했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아픔을 당하지 않는 것이 문제지 하나님 앞에 징계를 당하는 것은 오히려 큰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 징계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주의 자녀들이 강퍅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하나님 앞에 회개할 줄 모를 때에 깨닫게 하고 회개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입니다. 그래서 어떤 징계가 올 때에 그 아픔을 피하려고만 하면 하나님 앞에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8장을 보면 사울은 어려움이 있을 때 무당을 먼저 찾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를 회개케 하시려고 어려움을 주셨는데, 회개는 전혀 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징계가 오게 됩니다.
사업의 어려움으로 고통을 당할 경우에 대하여 다윗은 우리에게 참 좋은 자세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회개하는 다윗의 자세를 우리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사람 앞에는 침묵하고, 하나님 앞에는 입을 여는 자세로 나아가면 문제도 속히 수습되고 하나님 앞에 큰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잠3: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 하지 말라 (잠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징계를 경홀히 여기지 말고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징계를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고 말씀하셨듯이 교회와 성도들, 주의 종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계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히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요사이 아이들은 부모의 잔소리를 싫어하고 간섭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철이 들면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부모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술을 먹고 방탕한 생활을 살인 강도가 되면 잡아갈 사람이야 있겠지만 그를 징계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진흙탕에 뒹굴지라도 꾸중해 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징계로 권면으로 충고로 우리를 채찍질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녀들만이 누릴 수 있는 큰 축복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길 잃어버린 양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아니하고 허물을 그냥 덮어두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수밖에 없고 멸망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을 보면 악인에게는 징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징계가 없기 때문에 심판과 멸망이 있을 뿐입니다. 악인은 지붕 위에 돋은 풀과 같이 잘 자라지만 나중에는 완전히 뽑히게 되고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가장 큰 이유는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문제를 속히 수습해 주십니다. 원인을 아시는 하나님만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2. 긍휼을 의지하는 자는 주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 “(시6: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는 사람은 오로지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불평하면 안됩니다. 요나같이 하나님 앞에 불평하는 기도를 드리면 긍휼함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긍휼을 의지해야 됩니다. 주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면 살고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시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긍휼을 간구해야 됩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많은 불행한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했습니다. 자기 딸이 귀신들린 사람, 백부장, 소경, 모두들 불쌍히 여겨달라고 했습니다.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조건 소리만 지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는 언제나 긍휼을 의지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인자하시고 공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다윗은 전적으로 주님의 긍휼을 의지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과 내 잘못을 자꾸 비교하면 안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큰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어떤 어려움이든지 하나님 앞에 내놓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히브리서에서 “(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이방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게 하신 것은 주님의 큰 긍휼입니다. 우리가 직분을 갖게 된 것도, 하나님 앞에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것도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할렐루야.

 

3.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긍휼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서로 긍휼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하나님 앞에는 긍휼이 있는 심판이 있습니다. 내가 원칙대로 했으면 하나님은 나를 원칙대로 심판하시고, 내가 늘 긍휼을 베풀었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긍휼함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착같이 돈을 벌어도 하루아침에 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전에 잘살았어도 지금 가난하게 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안 쓰고 아껴도 가난합니다. 여러분은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머리가 좋아서, 내 능력으로 이렇게 잘산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 긍휼함을 받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입니까? 오늘 아침에 나오면서 예전에 겨울에 새벽종을 칠 때 얼마나 추웠는지 생각했습니다. 여름에는 또 너무너무 더웠습니다. 그전에는 여름옷과 겨울옷이 따로 없이 1년 내내 옷 한 벌로 지냈습니다. 여름은 얼마나 덥고, 겨울은 얼마나 추웠는지 모릅니다. 우리 조상들이 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믿음생활을 했습니다.
그래도 새벽 제단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했습니다. 지금도 기도원에 가서 밤을 새우고 기도하는 분이 많습니다. 추운 데서 금식하며 기도해 보십시오.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대체로 보면 선교를 앞두고 있는 분들은 얼마나 하나님께 매달리는지 모릅니다. 선교는 완전히 수색부대로서 적진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선교사로 나가면서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주의 일을 감당하려면 기도에 힘쓰지 않고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서서. 나는 갈 곳이 없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삽니다. 다른 것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그대로 멸망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 공로를 갖고 나가면 설 수가 없습니다. 교회도 역사가 깊어지고 조금 부흥된다 싶을 때에 큰소리치고 나서면 하나님 앞에 버림받습니다. 평생 동안 “주여, 우리 교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고 해야지, 우리 교회가 이만하면 됐다는 교만한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여러분이 조금 잘살더라도 교만해지면 안됩니다. 끝까지 “나는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하며 간절히 매달려야 됩니다.

 

주님은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십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십니다. 사유하기를 즐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용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잘못을 덮으시고 우리의 잘못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사야는 “(사49: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아니할 것이라 (사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사49:17)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