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자료

감동예화, 단역배우에서 셰익스피어 최고의 전문배우가 된 올리비에의 열정

'코이네' 2014. 4. 8. 16:47

열정 예화, 단역 한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땀흘려 뛰었던 로렌스 올리비에의 열정


영국의 어느 극단에 배우가 되기를 갈망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배우가 되는 길은 참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좋은 배역을 맡기란 불가능하고 겨우 단역을 하나 맡는 것도 오랜 세월 동안 청소나 잔심부름을 한 뒤에 겨우 발탁되는 것입니다.

이 소년도 연극 배우가 될 꿈을 가지고 시작은 했으나 하는 일은 몇년동안 심부름과 청소 잡일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입니다. 무대 뒤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이 소년에게 조연출자가 와서는 단역 배우 한사람이 사정상 빠지게 되었으니 대역을 하라는 지시를 했습니다. 그 역은 임금이 궁중에서 만찬을 베풀고 있는 때에 병사 하나가 뛰어들어와서 전쟁의 급보를 전하는 한 장면 뿐이었습니다.

이 소년은 자신에게 주어진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이 역을 두고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 장면을 이미 여러번 보았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그는 시간이 될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동료에게 무대에 올라 갈 시간이 임박하면 연락해 달라고 말한 뒤에 복장을 갖추고 무대 뒤뜰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계속 뛰기 시작했습니다. 땀이 흘러 얼굴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신발이 먼지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숨은 턱에까지 차 올라 금방 쓰러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때 신호가 왔습니다. 무대에 올라 갈 시간이 된 것입니다. 드디어 이 소년이 무대에 등장 했을 때 모든 관객은 정말 먼 전장터에서 며칠 밤 낮을 달려온 한 병사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영국의 연극 수준을 한단계 높여놓았고 후에 작위까지 받은 유명한 연극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입니다.  열정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합니다.

70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활약한 올리비에는 1922년 스트랫퍼드 극장에서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페트루키오'역으로 첫 무대를 밟았고, 1926년에서 1928년까지는 버밍엄 극단에서 일했으며, 1935년 마침내 존 길구드와 함께 올드빅에 참여, 극단의 중심인물로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외모 뿐 아니라 20세기가 낳은 최초·최고의 소리라 일컬어질 정도의 뛰어난 발성 등으로 영국 남우(男優) 일인자가 되었는데,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올리비에가 거치지 않은 작품이 없을 정도로 셰익스피어 연극을 위해 태어난 배우 같았다고 합니다.

그는 고전극뿐 아니라 현대극·영화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기생활을 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해군에 종군하였고, 전후에는 파괴된 올드빅의 책임자로서 영국 연극 부흥에 전력을 기울여, 그 공로로 1947년 기사작위에 서임되었습니다.

왕실로부터 "경"이란 칭호까지 받았던 영국 최고의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셰익스피어 전문가였습니다. 특히 감독, 제작, 주연의 1인 3역을 맡았던 <햄릿>은 1948년 남우주연상을 비롯한 아카데미 4개 부문고 베니스 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하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안개 자욱한 고성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살인, 배신과 비극을 직조하는 솜씨는 인생의 빛과 어둠을 모두 맛본 현자의 경지를 선보였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by 코이네 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