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자료

기독교인의 성생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코이네' 2016. 7. 30. 17:21

그리스도인의 성생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린도전서7장 1절입니다.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 함이 좋으나” 자, 여기 보시면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너희가 쓴 내용에 보면, 그래서 고린도 교회가 바울사도에게 무언가를 썼어요 그렇죠? 그 쓴 얘기에 대한 지금 답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답변을 하고 있어요 .

 

자 7장 25절에 보면은 7장 25절을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이것이 뭐냐하면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처녀에 대해서 질문을 했는데 아마 처녀의 결혼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은 모양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내 의견에 의하면,.. 이렇게 바울이 자기의견을 제출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자, 특별히 7장25절에서 재미있는 표현중의 하나는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바울이 얼마나 주님의 계시와 자기의 의견을 정직하게 구별하고 있는가를 여기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죠? 막연히 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바울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내가 이 문제 관해서는 주님께 받은 계명이 없다 내가 기도 해보았지만 주님의 뚜렷한 어떤 계시와 확실한 어떤 메세지가 없다 그래서 이것은 내 개인적인 사견이다. 이렇게 전제 하고 대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성경, 즉 정경에 캐논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성령께서 바울의 의견이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했든 것으로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고린도 전서7장에 결혼을 둘러싼 세가지 문제가 다루어 집니다.


첫째는 성 생활의 문제, 부부에 성생활문제, 둘째는 이혼의 문제, 그리고 세 번째는 독신생활의 문제, 싱글 라이프의 문제, 이 세 가지 의 문제가, 결혼을 둘러싼 이 세가지 논제들이 비울 사도를 통해서 답변 되고 있습니다. 첫째문제 이것은 부부의 성생활 문제 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두 가지의 경향이 있었습니다. 성을 둘러싼 뚜렷한 두 가지 대조적 경향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시대의 교회 안에도 저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하나는 무율법주의적 경향, 또 하나는 그와 정반대의 율법주의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 율법주의적 경향 이라는 것은 뭐 율법에서 신경 안 쓰고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다 이것을 다른 표현으로는 도덕 패기론이라고도 말합니다. 도덕패기론, 율법패기론. 율법은 별 의미가 없다. 율법에 구속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다. 그러나 자유의 의미를 곡해한 나머지 성적인 방종에 빠져 버릴 수 있었든 경향이 고린도 교회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특별히 그 당시 고린도 사회의 성에 대한 태도를 반영해주고 있는 것 입니다.

 

이미 말씀 드린 것처럼 이 고린티안, 고린도인이란, 말 자체가 그 당시에는 일종의 욕이였어요. 고린도인 처럼 행동한다 이 말은 성적으로 방종한 삶을 산다 라는 말과 동의어 였습니다. 고린도 사회에는 전형적인 소위 프리섹스 소사이어티, 성(性) 에 있어 아주 자유로운 그런 사회 였습니다. 불행히도 이러한 경향이 교회 안에도 들어와서 교회를 세속화 시키고 있었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경향이고, 그러니까 교회는 교회대로 나오면서도 성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자유화 한 삶을 살고있었든, 일단의 교인들이 존재 하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 율법주의적인 경향입니다.


자, 이것하고 정반대의 경향, 이것은 무슨 경향이에요? 율법주의적 경향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에대해서 아주 패쇄적인 경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빌면, 이것은 금욕주의적 경향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욕주의적 경향, 특별히 초대교회는 초대교회 전체를 위협하든 매우 강력한 이단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였습니다. 영지주의, 영지주의자 들은 인간을 이원론 쪽으로 간파 했습니다. 그래서 영과 육을 딱 나누어 놓았어요. 물론 우리가 죽을 때 영과 육은 분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은 분리될 수 없는 거에요. 하나로 묶여져 있는 일종의 전인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영혼과 육체를 딱 나눠놓고 영혼은 깨끗하고 거룩한 것이지만 육체는 더러운 것이다. 육체는 악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 영혼이 더 깨끗해 질려면 육체를 억압할수록, 우리의 영혼은 더 깨끗해질 수가 있다. 육체를 학대하고 또 육체를 모든 쾌락에서 멀리하기 위해서 금욕적인 생활태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금욕주의적 경향, 혹은 율법주의적 경향 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이런 사람들은 아예 섹스를 피한다든지, 섹스란 말만 들어도 그것을 혐오감을 갖는다든지, 죄악시하는 경향, 이것이 바로 금욕주의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사회에도 유교의 영향으로 상당히 성에 대해서 패쇄적이고 부정적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유교가 주는 역 기능적 하나의 영향중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다 사실이 아니에요. 복음주의는 성에 방종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주의 신앙은 성에대한 폐쇄적 태도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 안에 진리가 있어요. 자, 바울의 대답이 무얼까요? 한마디로 7장1절부터 7절 사이에 이 성(性) 생활에 문제, 이성 생활의 문제에 대한 바울의 대답을 두 가지로 요약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적극적으로 성생활을 하라는 거죠 부부가 되었으면, 부부가 되었으면, 결혼이란 한계 안에서 적극적 성생활을 하라, 그것이 어떤 단어로 쓰여지고 있습니까?3절을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자 문맥을 읽어보면 여기서 의무가 무슨 의무에요? 성생활의 의무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성생활의 의무, 의무를 다하라! 그것은 의무다. 결혼했으면 그것은 거의 의무다. 의무를 등한히 하지말라, 열심히 성생활을 하라, 성경엔 별게 다 있어요.그래서 저는 성서는 가장 위대한 성(性)서 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 적극적인 성생활을 하라, 그러나 또 하나 교훈은 뭐냐하면 우리가 성생활을 할 때 상대방 중심으로 성생활을 하라, 내 중심으로 하지말고 상대방 중심으로 하라, 상대방 중심에 성생활을 하라, 저는 그것이 아가페적 성생활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4절에 그것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 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자,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내 몸 내가 내 마음대로 하는데 어떠냐? 우리가 결혼했으면 부부는 한 몸이란 말이에요. 문자 그대로 한 몸이 될 수가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아내가 자기 생각대로만 자기 몸을 사용하지말고, 어떤 때는 내게 성적인 감이 없어도,성감이 없어도, 남편이 요청하면 남편에게 자신을 드릴 수가 있어야 한다. 거꾸로도 마찬가지에요.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주장해서는 안되고, 아내의 욕구에 의해서, 아내의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니까 상대방 중심으로 성생활을 하라. 사랑은 뭡니까?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사랑은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것, 성경이 강조하는 사랑, 아가페적 사랑, 십자가에서 보여주시는 사랑,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러니까 아가페의 사랑인데 이 아가페적 심장, 그 사랑의 핵심은 철저하게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지금은 나에게 어떤 성생할에 대한 리드와 필요와 감이 없어도, 상대방에 그 필요가 있다면 기꺼이 응해 주라는 말입니다..그래서 상대방 중심으로 성생활을 하라.한마디로 말하면 이 부부의 성생활에 대한 바울의 대답을 이두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이 남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런 적극적인 성생활, 혹은 상대방 중심의 성생활을 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다시 그 이유를 세가지로 요약 할 수가 있어요. 첫째는 뭐냐 하면 음행의 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음행의 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2절의 말씀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2절 다같이 시작,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녜, 결혼의 이유중의 하나가 음행의 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결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이것은 아니에요.그러나 결혼의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결혼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이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결혼관 전체를 여기서 피력 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 너무나 바울이 소극적으로 이 결혼문제를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견해를 가지는 사람도 없잖아 있을 거에요. 그러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의 한정에서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바울은 여기에서 결혼의 소극적 이유중의 하나가 뭐냐? 결혼의 소극적 이유중의 하나는 우리가 계속 뭐 성적인 필요가 있는데 그래서 사춘기가 되면 인간에게 그 성적인 리드, 필요에 대한 활동들이 시작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것을 성적인 욕구를 처리하지 못하고 계속 엉망진창의 무질서한 성적인 부도덕의 삶을 삶으로써 계속적인 음행의 범죄 가운데 거하는 것 보다 결혼하라, 이 말이에요. 결혼하라, 결혼의 소극적인 이유중의 하나가 음행의 범죄를 극복 하기 위해서다.

 

성생활에 불만이 생기면 어떻습니까? 성생활에 불만이 생기면 외도의 이유나 핑계를 제공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까 여기 저가 읽어드린 동아일보 뉴스 프라스 이 시사 주간지에도 그 내용이 나왔습니다 마는 특별히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 왜 이혼하는가 이혼 사유의 넘버원이 성격 차이에요 그런데 분석을 해보면 그것은 핑계에요. 그냥 하기 좋은 말이 성격이 달라서, 그러나 성격 차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격을 빼어야 되요. 격을 빼어야 되요. 녜, 이 성생활에 대한 문제가 상당히 부부생활에 그런 문제의 요인이 되고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우리 이웃초청 생명의 잔치에 오시는 강사중의 한 분이 박수웅 장로님이신데 낮시간 월 화 수 낮에 사흘동안은 우리가 가정생활 세미나를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미국에서 한국인 의사로서 성생활 강의에 왕초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특별히 성생활에 대해서 아주 신랄하고 희안한 강의를 해주게 될 것입니다..그래서 주변에 성생활에 관심이 있는 이웃 사람들을 다 데리고 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전도집회 가자, 이러지 말고 성생활 강의 들으러 가자, 그래서 이웃 사람들을 데리고 오셔서 예수 믿는 계기를 삼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그래서 우리가 부부의 적극적 성생활의 필요성, 첫째로 음행의 죄를 극복하기 위해서, 두번째는, 진정한 부부사이의 연합을 성취하기 위해서,부부사이 진정한 연합을 성취하기 위해서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부부들은 우리가 부부가 된 이상은 몸을 자기의 몸으로만 생각 해서는 안된다. 내 몸이 남편의 몸이고, 남편의 몸이 내 몸이다. 그게 하나됨의 의미죠.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면 뭐가 하나가 되었어요? 하나됨의 진정한 의미, 바로 부부의 성교는, 부부의 성교는,이 하나됨을 상징화 시키는 사건이라는 말이죠. 상징화 시키는 사건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남편의 필요 아내의 필요를 서로 거절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일종의 거의 권리에 속한다.


우리가 그 다음 5절에 보시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5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서로 분방 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서로 분방하지 말라 이 말에 그 원문의 뜻은 본래는 박탈하지 말라, 서로가 서로를 박탈하지 말라, 권리를 박탈하지 말라, 부부가 되었으면 성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말이죠. 그 권리를 박탈하지 말고 서로 기도할 틈을 얻는 시간만 제외 해놓고, 또 어떤 사람은 뭐 계속 기도하는 시간을 만들어놓고 그래서 계속 피할 수 있다 말이죠. 그러면 안된단 말이죠. 합의상 그것도 합의상 얼마동안 짧은 시간동안은 하되 다시 합해야 한다 4절의 말씀처럼 내 몸은 남편의 몸이고 남편은 나의 몸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됨을 정말 성취하는 사건이다 말이죠. 진정한 연합을 성취하기 위해서도 이 적극적인 성생활은 부부 사이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이유는 부부의 적극적 성생활의 세번째 이유는, 사탄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 자, 여기 5절의 마지막 부분에 이는 너희의 뭐라고 했습니까? 절제 못함으로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함이니라, 녜, 에베소서를 읽어보시면은 마귀로 틈타지 못하게 하라 사탄은 틈을 노려요 틈, 계속 틈을 노려요, 부부가 갈라지면 누가 제일 좋아할까요? 마귀가 제일 좋아해요. 마귀는 참소자 입니다. 마귀는 히랍어로 디아-볼러스 라는 말로 표시하는데 이 디아 라는 말 은 영어에 비투인, 사이 사이 에 이런 뜻이고, 볼러스라는 말은, 발로, 던진다, 스로우,,던진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사이에 던져서 나눈다. 이 마귀란 단어의 뜻은 그렇습니다. 마귀는 그러니까 관계를 파괴 하는 자, 관계의 갈등을 일으켜서 관계를 나누는 자, 그러니까 모든 가정의 불화의 배후, 배후에는 사단의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회서도 교인과 교인사이에 그 관계의 갈등, 그 배후에 사단의 역사가 있어요.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마귀로 틈타지 못하게 하라! 마귀로 틈을 주지말라. 그러나 부부가 자꾸만 서로 관계가 멀어지다 보면 사단이 이때다,하고 비집고 들어 온단 말이죠.그러니까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부부의 적극적인 성생활은 가정의 행복을 보호하기 위해서 매우 필요한 것이다 성생활에 적극적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이 안나와요 이상하게..아멘이 안나와요, 이상하게? 내가 틀린 말했어요? 성경을 말했는데 아멘 소리가 안나오네?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동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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