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가정에 불어닥친 불행
창세기 27:1-46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나이 40에 리브가와 결혼하였습니다.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하였는데 복중에서 아이들이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싸웠습니다. 하나님께 ‘어찌된 일입니까?’ 리브가가 묻자 하나님은 “두 민족이 네 태중에 있는데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드디어 세상에 태어난 에서와 야곱은 전혀 상반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에서는 털이 많고 사냥을 좋아하는 야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여자처럼 곱상하게 생겼습니다. 늘 어머니의 치마폭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이삭은 에서를 좋아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했습니다. 어느날 그들의 아버지 이삭이 늙어 병석에 눕게 되었습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네가 짐승을 잡아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하고 기쁘게 너를 축복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에서가 짐승을 잡으러 산으로 간 사이에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와 더불어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축복권을 가로 챕니다. 야곱에게 자기의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형의 옷을 입고, 아버지의 염소를 잡아, 어머니가 만들어준 별미를 가지고 들어가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야곱에게 축복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리브가와 야곱의 계략에 의하여 이루어진 일로 인하여 이 가정은 고통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됩니다. 본문 가운데는 이삭의 7가지 실수와 리브가의 2가지 실수, 에서의 세가지 실수, 야곱의 세가지 실수 도합 15가지의 실수가 들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 모두의 신앙을 하나님이 원하는 신앙으로 변화시키고 가정의 행복을 이룰 수 있는 말씀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이삭의 실수
1)비밀축복의 실수
이삭은 아내와 야곱 몰래 에서를 축복하고자 하였습니다. 공개적으로 했으면 야곱을 아끼는 아내 리브가가 말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리브가는 잉태 중에 아이들에 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큰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리브가는 그 약속을 믿었고 야곱이 당연히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삭이 비밀히 축복하려한 이 사건은 이삭의 의도와 정반대로 상황이 전개됩니다. 형제가 원수가 되었고 이로 인해 가정의 비극이 찾아오는데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운명할 때까지 돌아오지 못합니다. 가정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비밀스럽게 하려고 할 때 비극이 찾아옵니다.
2)서두름의 실수
이삭은 180세에 죽었는데 137세에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죽음은 43년 후에 찾아 왔습니다. 죽을 때가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가 가까운 것처럼 두려움을 느끼며 서둘렀던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도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드신다”고 했습니다. 사울은 블레셋과 싸울 때에 전쟁에 이기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제사하려 하는데 사무엘이 더디 옵니다. 급기야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자신이 할 수 없는 제사를 드리다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범사는 때가 있습니다. 서두르면 실수하게 됩니다.
3)인본주의적 실수
사랑이란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에리히 프롬이 쓴 사랑의 기술이란 책에서 보면 “인간의 사랑은 상대방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있는 나를 사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했습니다. ‘저 사람하고 결혼하면 나는 행복하겠다’ 생각하고 나를 위하여 결혼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배우자가 죽었을 때 우는데 죽은 사람이 불쌍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나는 혼자 어떻게 사나’하는 자기 신세를 생각해서 운다는 것입니다.
에서는 사냥을 좋아하는 야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계집애 같고 늠름한 큰 아들이 에서가 이삭은 맘에 들었습니다. 반대로 리브가는 거칠고 반항기 있는 에서보다는 야곱이 더 좋았습니다. 각자가 다 자기 기준에 맞추어 자식들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시고 그를 축복하려고 하신다는 것을 이삭은 알고 있었습니다. 알면서도 에서에게 축복하려는 것은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끌고 가려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에서는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끼의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장자권을 팔아 먹은 사람입니다. 이방여인과 그것도 2명과 결혼하였습니다. 이 일이 그들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고 창세기 26:35에 말씀했습니다. 자기가 근심하면서 축복하려는 태도는 인본주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인본주의에 빠져있지는 않은지요?
4)상식을 따르려는 실수
당시의 상식은 장자에게 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42대에 걸친 족보가 나오는데 대부분 장자의 이름들입니다. 하나님은 복중에서부터 야곱을 축복하려 하시는데 하나님의 뜻보다는 당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상식을 따르려고 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상식을 무시하지 않으나 상식에 의해 정복되지 않습니다.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상식보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관, 교회, 성도,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상식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밤에 얕은 곳에서만 고기를 잡습니다. 물이 너무 맑고 깨끗하기 때문에 낮에는 잡을 수 없습니다. 깊은 곳은 물이 차갑기 때문에 고기가 없습니다. 이런 상식을 뛰어넘어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습니다. 많은 고기가 잡혀진 줄을 믿으시면 아멘합시다.
5)먹고 축복하려는 실수
이삭은 영적인 사건과 육적인 사건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사도들이 성령의 능력을 행하니까 시몬이란 자가 돈을 주고 ‘성령의 능력을 나도 받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을 합니다. 이때 베드로는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하리로다(행 8:20)” 그를 꾸짖습니다.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섞일 수 없습니다. 장자권을 판 에서의 잘못이 큽니다. 그러나 먹고 축복하려는 이삭의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총은 값없이 받은 것입니다. 값없이 주어야 합니다.
6)착각의 실수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창 27:4)”
하나님의 뜻은 야곱에게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자신이 축복하면 이루어질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5:33을 보면 맹세하면서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장자권을 팔았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이 버린 사람을 축복한다고 그에게 축복이 임하지 않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하나님이 돌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돌리시는 수레바퀴를 내가 돌리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붙잡아 주셔야 된다고 믿으시고 하나님이 역사 하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7)깨달음이 더딘 실수
이삭이 에서에게 비밀히 별미를 만들어 오도록 했는데 너무도 빨리 왔습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에서가 아니고 야곱입니다. 그는 염소털과 사람털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야곱에게 축복하고 난 후에 에서가 들어와 속았음을 고합니다. 그러면 이삭은 ‘아차, 에서가 아닌 야곱을 하나님이 축복하시기를 원하시는구나’ 깨달았어야 합니다. 그는 그래도 깨닫지 못하는 아둔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와 가롯 유다는 수제자와 마지막 제자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가롯 유다는 깨달음에 더딘 사람이었습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나를 팔 것이다” 말씀할 때도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성전에 은 30을 던져 버릴 때 후회가 아닌 회개를 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닭이 울 때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회개하였습니다. 어려움이 올 때, 고통이 올 때 그 원인이 내가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감동에 민감하게 대처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셔서 언제나 주님 앞에 바로 서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2.리브가의 실수
1)약점을 이용하는 실수
이삭은 눈이 어두워 사물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리브가는 남편의 약점을 이용하여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습니다. 아버지를 속이도록 야곱을 부추긴 것이 리브가입니다. 아버지가 만일 너를 저주하면 내가 받겠다고 하였습니다. 별미를 만든 것이 리브가입니다. 염소털을 야곱의 손과 목에 붙여 에서처럼 꾸민 사람이 리브가입니다. 리브가는 남편의 약점을 절호의 기회로 노렸습니다. 기독교와 정치의 차이점을 아십니까? 정치는 상대방의 조그만 약점을 찾아내어 크게 확대해 넘어 뜨립니다. 기독교 신앙은 약점을 끌어안고 사랑하며 포용합니다. 도와줍니다. 이끌어 줍니다.
2)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실수
리브가는 복중에 아들들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약속은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어야 합니다. 믿음이 충만하면 하나님이 이루실 역사를 믿습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믿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3.에서의 실수
1)장자권을 소홀히 여기는 실수
장자권은 과연 무엇일까요?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공급하였으니 .... (창 27:37)”
주로 세웠다는 것은 영권의 축복을 말씀합니다. 모든 형제를 종으로 주었다는 것은 인권의 축복을 말씀합니다. 곡식과 포도주를 공급하였다는 것은 물권을 말씀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축복을 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토록 귀한 것을 에서는 헐값에 팔았고, 야곱은 잽싸게 빼앗았습니다. 에서는 나중에 땅을 치며 통곡했으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는 신령한 것을 육체적인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축복을 통곡으로 바꾸었습니다. 지배할 수 있는 것을 오히려 정복당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귀한 것으로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25:32에 “내가 죽게 되었으니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한끼 굶었습니다. 한끼 굶는다고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 내게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신앙에 비유하면 이렇게 됩니다. ‘바빠 죽게 되었는데 주일을 어떻게 지켜’하는 식입니다. ‘나 쓸 것도 부족한데 어떻게 십일조를 해’ 하는 태도입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예수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태도입니다. 어려움이 와도 고난이 와도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욥처럼 신앙만은 붙잡아야 합니다. 다 잃어도 에서는 장자권을 지켰어야 합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다는 것을 성경은 두고두고 상징화시킵니다. 성경에서 드러내 놓고 언제나 저주하는 대표적 인물이 에서입니다. 에서의 별명은 에돔입니다. 구약에서 이사야, 예레미야, 오바댜, 말라기 등이 몽땅 에돔을 욕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항상 얻어 터지지만 저주받지는 않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와 “필요치 않다”는 상징의 대표적인 두 인물입니다. 세상에서는 에서가 똑똑해 보이고 야곱은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나 정말 참되고 옳음은 주님 앞에가서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2)포기하지 않는 실수
에서는 무지함으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면 자기의 무지함과 장자권과 축복권을 지키지 못한 어리석음을 회개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에서는 오히려 야곱을 미워하고 증오심으로 그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는 실수를 실수로 인정하지 못하는 실수를 다시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실수를 처리하지 못하는 실수를 다시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남을 보고 나를 보지 못합니다. 모든 잘못이 상대방에게만 있다고 주장합니다. 잘못은 잘못으로 솔직히 인정하는 태도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3)살인하려는 실수
“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왔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창 27:41)”
그토록 간교하게 빼앗은 야곱과 공모한 어머니가 야속할 수는 있으나 더 큰 잘못은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현실을 수용하고 그는 모두를 용납했어야 합니다. 에서가 용서하고 사랑했더라면 가정의 비극은 없었을 것입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나의 행복을 위하여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수는 피를 부르고 다시 복수를 낳습니다. 미움과 증오의 고리는 내가 끊어야 합니다.
4.야곱의 실수
1)인간적 처리의 실수
야곱이 그렇게 뺏지 않았어도 축복은 야곱에게 돌아가도록 하나님이 역사 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적인 방법을 통해 가지려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야곱은 너무 약아서 오히려 문제였습니다. 그 덕분에 20년간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방법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갈 때 쓴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형을 속였기에 외삼촌 라반에게 철저하게 20년 동안 속았습니다. 아버지를 속였기에 자식들이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고 짐승이 물어 죽였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심은대로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시도록 해야 합니다.
2)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는 실수
“야곱이 그 모친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창 27:11-12)”
야곱은 그 일이 옳지 않은 일임을 알았습니다. 불의한 일입니다. 그러면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불의를 저지릅니다. 그 불의를 행하면서도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더 두려워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일에 가장 먼저 주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범사에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 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하나님을 이용하는 실수
“이삭이 그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창 27:20)”
아버지의 염소를 잡아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왔으면서도 하나님이 도와주셨다고 거짓말하였습니다.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하나님의 이름, 예수의 이름은 우리가 어려울 때, 죄지을 때 갖다 붙이는 이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셨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그 이름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악세사리가 아닙니다. 부적이 아닙니다. 과거 인쇄기술이 없을 때 성경은 파피루스라는 갈대에 붓으로 옮겨 적으면서 후대에 전달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을 옮겨 적을 때 여호와라는 단어가 나오면 목욕하고 와서 쓰던 붓을 버리고 새붓으로 적었습니다. 읽을 때에도 감히 여호와라고 읽지 못하고 ‘주’라는 뜻으로 ‘아도나이’라 읽고 지나갔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얼마만큼 여호와라는 이름을 하나님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고 있을까요?
이삭의 가정은 실수 투성이 가정이었습니다. 이 실수로 인하여 가정은 풍지박산이 납니다.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보내어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하나니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 피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창 27:42-45)
리브가는 몇날을 생각했습니다. 몇날만 지나면 에서의 화가 풀리고 야곱이 돌아올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몇날은 20년이나 걸렸습니다. 이삭이 죽었습니다. 리브가도 죽었습니다. 에서는 인생의 황금기를 분노와 증오로 살았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속고 또 속으며 죽을 고생을 다했습니다. 20년 후 야곱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에서는 400인의 병사를 데리고 야곱을 죽이겠다고 달려옵니다. 인간적 심었기에 인생들이 거둔 열매였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이삭은 7가지를 잘못했습니다. 리브가는 2가지를 잘못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세가지를 각각 잘못했습니다. 일가족이 도합 15가지 잘못을 한 사건 속에서 저지르고 있습니다. 예외없이 모두가 다 잘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귀중한 영적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가정의 불행의 책임은 모두의 책임입니다. 가족들 하나하나에게 묻는다면 모두가 “내 책임입니다” 말해야만 합니다. 이들이 서로 ‘네 책임이다’ 책임을 전가한다면 더 큰 불행은 시작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15가지 일가족의 잘못들을 보면서 이중에 단 한사람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가정의 불행은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비밀 안수를 하려고 마음먹지 않았더라면, 리브가가 남편이 아무리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리 못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더라면, 에서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을 수용했더라면, 야곱이 하나님의 뜻을 쫓아 불의한 방법을 버렸더라면 불행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이삭의 가정은 실수와 범죄한 사람이 많아서 불행을 만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고 순종하는 사람 하나가 없어서 이 큰 불행을 자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불행합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고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여러분만 하나님의 뜻을 좇아 전적으로 순종할 수 있을 때 가정의 불행은 물러갑니다. 문제가 해결됩니다. 나 한사람의 믿음과 순종은 가족 전체의 불신앙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죄와 허물을 덮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인간적인 버려야 합니다.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나는 그를 인하여 행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을 원하십니까? 가족 모두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십시오.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십시오. 가정 먼저 여러분의 온전한 순종의 사람이 되십시오. 예수만 섬기는 임마누엘의 축복된 가정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by 코이네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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