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창세기

[창26:12] 거부가 된 이삭 이야기

'코이네' 2016. 6. 4. 18:32

 

이삭 이야기

(창세기 26:12-2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떠돌이 유목민이 농사를 시작하였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첫 해부터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타작이라도 성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첫 해에 백배나 얻었다. 굉장한 수확을 의미한다.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잔치를 벌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쁨은 잠깐이었다. 이 받은 바 축복으로 인하여 번거로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물질의 축복은 시험을 동반하게 된다. 물질을 다스릴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갑작스러운 부는 축복이 아니라 화가 된다.

 

세상에서의 부는 거의 예외가 없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축복하신 이삭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당신과 당신의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며 헌신하는 사람들이 금세에 있어서 버린 것의 백배나 축복으로 받을 것이나 핍박을 겸하여 받을 것이라고 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아픈 것"은 한국사람 뿐만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이다. 오래 전부터 그 땅에 정착하여 농사에 이력이난 불레셋 사람들이 배가 아팠다. 베테랑인 자기들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공한 것이다. 그래서 시비를 걸기 시작한 것이다. 불레셋 사람들 뿐만 아니라 세상사람들이 거의 이와같다. 이런 세상 가운데서 자신이 받은 바 축복을 자랑하고 과시하는 사람은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세상인심이 이와 같아서 물질적 부요와 성공에는 시험이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들은 백배의 축복- 일확천금의 획기적인 부를 기대하기에 앞서 여러분의 믿음의 그릇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 사람됨이 종지에 불과한 사람이 큰 부를 바라면 그나마 종지가 깨어진다. 인생이 풍지박산이 난다는 것이다.

 

과천에 정부청사가 들어설 때 그 땅에서 평범한 인심 속에서 농삿군들이 일약 백억대의 부자가 되게 되었다. 조상대대로 지켜오던 땅에 대한 보상이었다. 백억대의 돈을 앞에 놓고 보니 오손도손 살아오던 가족의 분위기가 갑자기 험악해졌다. 친지들도 눈에 불을 켜기 시작했다. 이것을 견디다 못한 두사람의 촌노가 자살하고 말았단다. 성도 여러분은 백배의 물질적 부를 바라기 보다는 백배의 믿음의 축복을 사모하여 구하시기를 바란다. 다른이의 백배나 되는 믿음을 가지게 되면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를 맡기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셔서 된 부자는 그 부로 인하여 멸망하지 않는다. 그런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서도 환영받는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부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를 얻는 다른 방법이 있다. 그것은 마태복음 4장의 시험설화에서 보는 것처럼 사탄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도 있다. 발람선지자는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는 발락의 요청과 함께 그가 주는 뇌물을 받고 멸망의 자리로 나갔다. 아간은 자신의 욕심을 따라 전리품을 취하므로 돌팔매죽음을 당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 역시 자신의 욕심을 따라 거짓으로 얻은 재물 때문에 나병을 얻게 되었다. 사울왕은 물질에 욕심이 어두워 불순종의 길을 택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었다.

 

물질을 탐하지 말라.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실하게 살라. 이삭은 하나님께서 주신 백배의 축복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것을 포기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것에 집착하여 믿음을 잃어버릴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물질의 부를 관리하도록 허락하신다.

저는 선린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큰 부를 허락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일에 큰 손이 되기를 바란다. 믿음으로 크게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크게 축복을 받는다. 믿음의 그릇의 크기 만큼 축복을 받는 것이다. 증권이나 부동산에 있어서 큰 손은 수갑을 찬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 사업에 큰 손이 되기를 바란다. 선린성도들 모두 백배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우리나라 제주도의 화산석과 같이 구멍이 숭숭 뚫린 돌들로 구성되어 있는 팔레스틴의 땅에는 물이 잘 고이지 않는다. 그래서 물을 얻으려면 샘을 깊이 파야 한다. 우물을 파는 것은 무척 어려운 작업이다. 한번 파놓은 우물은 생명처럼 귀히 여기고 대대로 물려주는 그들의 재산이었다. 수도물을 먹고 사는 우리에게는 수도관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여러분 댁이 그렇게 되었다고 가정해보라.

그 우물에 육축의 생명도 달려있다. 물을 먹지 못하면 육축도 죽는다. 육축은 유목민들의 최대의 재산이었다. 그러므로 우물을 막는다는 것은 이삭의 재산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는 것이다. 불레셋 사람들은 너희들의 생명과 삶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시기심은 곧 살인이다. 가인은 아벨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을 시기하여 그를 죽였다. 시기심 때문에 남의 존재와 삶을 위협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살인자와 진배가 없다. 그런 사람은 그 땅에서 사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살인자 가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밭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하셨다. 남의 삶을 시기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그의 삶도 인정받지 못한다. 그는 안정된 삶을 살 수 없다. 남의 존재를 인정해야 나의 존재도 인정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만물의 생명원리이다.

남을 쫓아내는 자는 그도 쫓겨남을 당하고 만다. 이 불레셋사람들이 지금의 PLO다. 그들은 결국 그 땅에서 쫓겨나서 지금도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 이에 있어서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사명은 그들로 인하여 만민이 복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교만하며 주위 사람들을 저주하며 미워하였다. 만민에게 복을 끼치는 저희들의 사명을 외면한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도 세계만국으로 쫓겨나 유리방황하는 역사의 비극을 겪었다. 한국사람이 흑인의 존재를 무시함으로 인하여 흑인폭동의 피해를 받은 것이다. 한국인이 미워서 폭동을 일으켜 상점들을 불태운 흑인들 역시 그들의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서 먼곳까지 가야하는 애로를 겪고 있다. 결국 L.A는 모든 사람들이 거주하기를 꺼려하는 저주의 땅이 되고 있는 것같다. 일전에 강진이 일어났고 또 더 큰 강진이 내습하리라는 예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타도시로 이사하려고 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피해망상적 불안-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나보다 잘난 사람들, 나보다 강한 사람들을 제거해야 내가 안심놓고 살 수 있다는 논리가 인간의 죄된 논리이다.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밀쳐내려 하고 서로 헐뜯지 못하여 아우성이다. 세상은 온통 더럽고 추악한 소문과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있다. 털어서 먼지 않나는 사람이 있느냐 털면 먼지난다. 계속 털어서 그를 파멸시키고 그의 명예를 추락시켜야 내가 올라갈 수 있다는 식의 삶을 사는 것이 이 세상의 모습이다. 성도 여러분! 남의 흠을 말하지 마십시오. 남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남을 헐뜯지 마십시오. 남의 추하고 못난 것을 전하고 다니는 사탄의 사신이 되지 마십시오. 좋은 소식을 전하고 좋은 소식에 목마른 이 세대의 사람들에게 기쁨의 샘물을 길어다 주는 가브리엘 천사와 같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내 주위에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많음으로 인하여 불안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 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시편 3편 시인의 믿음이 여러분의 믿음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똑똑한 사람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쓰신다.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미련한 자를 들어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다. 예수께서는 무식한 사람들을 택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일꾼으로 삼으시고 마지막 날에는 열두보좌에 앉아 세상을 심판하는 일에 동참하게 하셨다. 경쟁적 불안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서 평안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남다르게 공부머리도 없고 열정도 부족하면 스스로 섬기는 자리를 택할 줄 알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축복의 길, 성공의 길입니다. 섬기는 삶을 자원하여 기쁨으로 살 때 하나님께서는 섬김을 받는 자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 나중된 자가 먼저된 다는 말씀을 참으로 믿으신다면 섬기는 삶을 누추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기쁨으로 살 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이삭의 사람됨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도저히 싸우려 하지 않는 무골호인과 같다. 요즘 세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사람이다. 요즘 세대에서는 바보로 평가받을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상수훈에서 말한 그대로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고 복음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마태복음 5장 38절을 찾아 48절 까지를

함께 읽어보자. "(공역)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하지 말아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어라.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말아라.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 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따르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난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그 만큼은 하지 않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이 말씀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말씀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현실성이 없다고 간주한다. 그래서 이 말씀대로 살기를 포기해버렸다. 때리면 같이 맞붙어 싸우고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혈투가 벌어지고 각종 추잡한 세력다툼과 이해다툼이 벌어지고 서로를 헐뜯는 비방이 전쟁터의 총알처럼 오가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의 많은 교회들에는 영생구원을 장담하는 신앙고백은 있으나 사랑과 평화를 잃어가고 있다. 자기 주장을 똑부러 지게 말하는 연사는 많으나 사랑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믿음의 바보들이 없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공중누각을 바라보는 것처럼 교회의 신앙고백은 기초를 잃어버린 건물과 같이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교회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전도의 능력이 약화되어 가고 있다. 젊은이들은 교회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고 있다. 위선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 모두들 현실교회의 문제에 대해서 비평적 반성을 하고 있으나 먼저 십자가를 지라는 명령 앞에서는 주저하고 핑계하고 있다.

 

성도 여러분들! 믿음의 바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들어도 못들은척, 알아도 모르는 척, 때리면 맞고, 빼앗으려 하면 미리 주는 믿음의 바보가 됩시다. 이삭과 같이 되자는 말입니다.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는다면 그렇게 합시다. 빼앗으려 하는 자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양보하고, 억울함을 당하면서도 악을 악을 갚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지하는 자는 모든 것을 얻게 됨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빼앗는 자는 계속 남의 것을 빼앗음으로써만 살 수 있는 피곤하고 저주스러운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믿음으로 양보하고 주는 자는 항상 양보하고도 결국에는 승리하고 주어도 계속 줄 것이 있는 부요하고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헐뜯는 자는 계속 헐뜯을 것이지만 비방을 참고 선으로써 악을 이기는 사람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내 잔에 넘치도록 기름부으시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이 이 축복을 모두 받으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