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창세기

[창26:12] 배가 되게 하소서

'코이네' 2016. 6. 4. 18:19

 

배가 되게 하소서(1)

 

(창세기 26:12-18)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장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이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살고 있던 땅에 흉년이 들어 더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이삭은 그랄로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랄>은 가데스 서남쪽 20Km 지점에 위치한 부족 국가였습니다. 그가 그 땅에서 그 해 농사를 짓고 100배의 소출을 거두웠는가 하면 그곳에서 창대하고 왕성했고 양과 소떼는 물론 많은 종들을 거느리게 됐다는 것이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한마디로 이삭의 성공담입니다.

성공도 나름입니다만 100배의 성공을 성취했다면 실로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94년도 충신교회의 연중 표어는 <배가 되게 하소서>입니다. 이삭이 100배의 수확을 거두고 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 교회도 그년에 100배 넘는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교우 여러분들도 이삭처럼 백배의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이삭이 그토록 넘치는 복을 받게된 원인과 비결을 찾아야 합니다.

 

1 개척 정신입니다.

당시는 목축시대였기 때문에 목축의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것은 우물과 초장입니다. 15절을 보면 그 동네사람들이 이삭이 확보한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꾸어 버렸습니다. 18절을 보면 이삭이 그 메꾸어 버린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21절을 보면 다른 우물을 다시 팠고 22절을 보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그가 계속 우물을 팠다는 것은 그의 끈기와 용기 그리고 개척자적인 정신을 보여 줍니다.

쉽게 되는 것은 개척이 아닙니다. 미국 사람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그 땅을 개척하는데 얼마나 많은 땀과 피를 쏟았습니까?

역사가들은 미국 역사를 개척사(Frontier History)라고 부릅니다.

그들의 서부 개척사를 보면 숱한 희생과 모험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중단하지 않고 개척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오늘의 미국을 이룩하게 된 것입니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약 25프로가 해면보다 낮은 나라입니다. 그들은 정부기구안에 수로청이라는 독립관청을 설치하고 바다를 메꾸어 육지를 만드는 공사를 추진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힘으로 그 큰 하렘 호수를 메꾸어 육지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네덜란드 격언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신은 바다를 만들고 네덜란드인은 육지를 만든다”.

그들의 끈기와 도전과 노력을 짐작케 하는 격언인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한 우물을 팝니다. 이삭이 계속해서 위협과 대치 하면서도 우물을 판 것은 그의 용기와 도전, 그리고 신앙과 끈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쉽게 물러서거나 포기하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어느 젊은 목사님이 부목사직을 사임하고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며칠 동안이나 굶을 수 있느냐” “몇 Km나 걸을 수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쉽게 되거나 얻는 것은 개척이 아닙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고 있던 리빙스턴에게 친구들이 보낸 편지가 우송되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우리는 자네에게 몇 사람의 선교사를 더 보내고 싶네, 자네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을 알아서 연락해 주기 바라네”라는 것이었습니다.

리빙스턴의 답장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곳까지 오는데 쉬운 길이 있어야만 오겠다는 사람들이라면 사양하겠네. 나와 함께 일할 사람들은 길이 없어도 오겠다는 사람들을 원하네”.

이삭은 우물을 파는 개척자였습니다. 그것이 그의 성공을 보장해준 것입니다.

 

2 양보하는 생활입니다.

짤막한 본문 속에 이삭이 얼마나 많은 박해와 도전을 받았는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삭이 당면한 도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1)그들의 시기입니다.

14절을 보면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였다고 했습니다. 시기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삭이 100배를 거두고 부자가 되고 살림이 불어 났다는 것 때문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어떻게 그것이 시기할 이유가 됩니까?

<시기>라는 헬라어 낱말 가운데 <젤로스>(zelos)가 있습니다. 그 뜻은 분개, 질시라는 것입니다. 시기는 남의 일에 괜히 성내고 분개하는 것입니다.

<프흐데이로>(Phtheiro)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그 뜻은 시들다, 상하게 되다, 멸하다, 타락하다 라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가 넘치면 자신의 영혼이 시들시들해 집니다. 그리고 심령이 상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멸망하고 타락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그토록 나쁜 시기를 왜 일부러 해야 합니까?

그랄 동네 사람들은 이삭이 백배의 복을 받고 창대하고 왕성하는 꼴이 보기 싫었습니다. 한국 사람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그랄 사람들도 배가 아팠습니다.

남의 성공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이나 축복을 위해 써야 할 에너지를 딴데 낭비하기 때문에 성공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의 크기를 떠나 다른 목회자들의 장점이나 특징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배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저희 교회의 경우 매년 10월 초면 다음해 목회계획을 위한 세미나를 목회자들이 모여 개최합니다. 그 이전 9월 한달동안 전 교역자들이 전국교회를 대상으로 특징있는 교회, 성장하는 교회, 바람직한 교회들을 선정하여 현장답사를 실시합니다. 목회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 교회의 목회자료들을 수집합니다. 저는 외국 여행을 할 때마다 외국교회들을 방문하여 보고 듣고 배웁니다. 그것들을 한데 모아 묶어서 새해 목회 계획의 자료로 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남의 목회를 헐뜯고 비난하고 약점만 들추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목회가 시원치 않습니다.

부부생활, 가족관계, 교회생활도 예외가 아닙니다. 내가 편안하고 성공하면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아름다운 행동을 부러워해야 합니다.

 

시내 모교회는 어느 장로님 한 분이 사재 100억을 드려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헌금 150억과 합해 250억 교회를 신축하는 것입니다.

두가지 반응이 가능할 것입니다.

“미쳤구먼 제 정신이 아냐, 돈푼이나 번모양이지, 보나마나 도둑질 해서 번돈이겠지. 아니면 사채놀이를 했거나, 그나 저나 그 돈가지고 구제사업이나 할 일이지 미쳐도 완전히 미쳤어”라며 게거품을 물고 밤잠을 못자고 만나는 사람마다 내 말좀 들어보소라며 쌍나팔을 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일생동안 주님 위해 원두막도 못지을 사람입니다.

그런가하면 “부럽다, 위대하다, 어쩌면 그런 일이 가능할까, 누굴까? 나도 그런 큰 일을 해봐야지, 주님 저도 그런 복을 주옵소서, 3천리 반도 금수강산 교회 없는 곳마다 교회짓게 해주시고 주님 교회를 바윗돌처럼 섬길 수 있게 해 주옵소서”라며 안방에다가 대한민국 지도 걸어놓고 함경도에서 제주도까지 십자가를 꽂아 나가는 사람이라면 그는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삭을 시기한 그랄 지방의 블레셋 사람들은 우상 섬기는 마귀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시기심은 마귀가 준 것입니다.

시기하지 맙시다. 질투하지 맙시다. 좋게 말해 줍시다. 좋은 일을 부러워 합시다.

저는 어려서부터 세 분의 설교를 내 것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꿈을 꾸며 자랐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명확성과 그 이격, 이상근 목사님의 해박성과 그 신학, 강원용 목사님의 역사성과 그 정열, 이 셋을 한데 묶은 설교자가 됐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그리고 선포할 때마다 그 꿈을 되새기곤 합니다. 좋은 것은 시기하지 말고 본뜨고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2)그들의 도전입니다.

15절을 보면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다고 했고 20절을 보면 다투었다고 했고 21절을 보면 또 다투었다고 했습니다.

고대 사회의 관행상 남의 우물에 흙을 집어 넣고 메꾸는 것은 선전포고였습니다.

아무리 이간성이 삐뚜러졌다고 한들 어떻게 남의 우물을 흙으로 메꿀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삭을 정면 대응을 피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상종할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 것입니다.

둘째 침묵하고 물러서는 것리 이기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소중한 정열과 에너지를 거기에 낭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넷째 맞서면 싸워야하고 싸우며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양보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졌습니까? 아닙니다. 이겼고 100배의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이삭이 그곳을 떠났다”고 했고 22절을 보면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참을 줄도 알고 기다릴 줄도 알고 그리고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증거입니다.

양보하고 물러서면 100보 전진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이 복을 주셨습니다.

그가 100배의 복을 받은 것은 개척정신이나 양보심 탓이지만 그러나 결정적 원인은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해에 백배나 얻었고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22절 끝을 보면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다”고 했고 24절 끝을 보면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랄은 토지가 박토입니다. 그래서 보통 농사를 짓게 되면 풍작일 경우 25-50배의 수확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삭은 100배를 거뒀습니다.

주경가 로빈슨(Robinson)은 “그 당시 블레셋 땅의 조건과 다른 사람들의 수확량에 비교해 볼때 이삭의 100배는 파격적인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파격적인 복을 주셨습니다. 그의 장소(사는 땅)를 넓혀 주셨습니다. 그 땅에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땅에서 짓는 농사는 100배의 수확고를 올리게 되었습니다.이것은 새해를 맞는 우리의 소망이고 기도제목입니다. 이 해에 이삭처럼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결론적으로 이토록 엄청난 축복을 받아드리는 이삭의 신앙과 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5절을 보면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고 했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 대하여 감사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받은 복과 은총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믿음과 그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넘쳤기 때문입니다. 받은바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는 사람이 더 큰 것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우물을 팠습니다. 성공했다고 해서, 돈 좀 벌었다고 해서 지위가 조금 높아졌다고 해서 전에 하던 복받은 그 일을 집어 팽개치지 않고 계속 했습니다.

여러분, 금년 한 해 복받을 일을 계속합시다. 100배로 받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주여 배가 되게 하소서.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