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창세기

[창26장] 이삭 그 땅의 상속자

'코이네' 2016. 6. 4. 18:01

 

이삭 : 그 땅의 상속자

 

창세기 26장

 

 

강우량이 부족할 때에 팔레스틴에는 기근이 듭니다. 그렇게 되면 복자들의 생활은 절망적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 목자들은 멀리 있는 그러나 비교적 비옥한 애굽에 끌리게 됩니다. 이삭과 리브가가 아이를 낳기 전에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이삭은 잠시 애굽으로 피할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 이삭은 불레셋의 그랄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은 이전에 아버지 아브라함이 머물러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랄은 하나님께서 사라를 기적적인 방법으로 보호하셨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아비멜렉 왕과 아브라함 사이에 언약이 맺어지기도 했었던 곳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모든 장소 이동을 지시해 주시는 하나님께서 이삭의 이주를 저지하십니다. 그랄에서 여호와가 나타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계속 가나안에 거하라고 이삭에게 명하셨습니다. 어떻게 기근이 든 이 땅에서 이삭은 가축떼를 거느리고 생명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인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삭에게 그 땅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후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이삭의 자손에게 주실 작정이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될 것과 그 자손을 인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처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물론 이삭은 자기가 아브라함의 축복을 상속받아야 될 자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때까지는 아버지의 발자취만 따라왔던 것입니다. 이제 이삭은 가나안에서 혼자의 힘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삭의 믿음도 성숙해야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랄에 거하는 이삭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과 똑같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순종하였기 때문에 그 약속이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덧붙여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삭은 아브라함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었고 아브라함이 받았던 동일한 약속을 이어받는 약속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이삭이 해야될 일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것과 동일한 약속을 붙들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직 그만한 믿음을 나타낼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삭도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 처럼 불레셋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리브가를 빼앗아 가지 않을까 하여 두려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믿음이 부족한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짓은 이삭이 리브가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아비멜렉이 알게되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을 책망하여 말하기를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하기 쉬웠을뻔 하였은즉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느니라” 하였습니다.

 

이 말 속에서 우리는 이전에 아비멜렉이 사라를 자기 아내로 취하려고 하다가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그의 집에 벌을 내리신 사건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아들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백성에게 아무도 리브가를 손대지 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전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려고 했던 아비멜렉을 하나님께서 간섭하셨는데 그것은 사라의 태를 통해서 세상 구속주가 오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라의 태가 더러워지는 것은 바로 언약의 씨가 오실 길이 막히는 것이었고 그것은 바로 아비멜렉의 모든 태가 막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저주요 사망입니다. 구원의 길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막은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아브라함을 선지자라 말하고 그가 기도해야 네 태가 열릴 것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에까지 증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바로에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는 좀 다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세상에서 어떠한 권세로 서야 하는지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권세로 아브라함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세상나라의 왕에게 아브라함 역사 통치적 권세를 가진 자로 세워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약속으로 애굽임금에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실 때는 구원약속을 따라 간섭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가 곧 상속자라. 만일 내가 이 씨를 건들면 우리의 태는 다 닫힌다. 전부 죽는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산의 모든 축복도 바로 이 상속자 안에 구원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방인도 번성합니다. 만일에 아브라함의 씨로 오시는 구원약속이 없으면 우리는 다 죽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세상을 번성시키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번성시키심은 아브라함의 씨 안에 세상의 구원의 소망이 보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삭과 리브가를 그랄에서 보호하셨습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출생되는 길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과 아비멜렉 사이에는 분쟁의 소지가 계속 있었습니다. 전에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했던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권리를 인정하여 주었지만 새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그렇게 한 족속의 왕으로서 대접해 주지를 않았습니다. ‘아비멜렉’이란 말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뜻이고, 아마도 족장 시대의 여러 불레셋 군주들이 가진 칭호였습니다.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이삭이 만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아비멜렉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구원약속을 받은 상속자로서 그 약속의 땅에서 인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이삭이 기근을 피하여 그랄로 내려갔을 때 그 기회를 사용하셨습니다. 이삭은 그 땅에서 인정받는 족장이어야만 했습니다. 비록 이삭도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 처럼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며 자기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이방 세계에서 벌벌 떨며 두려워 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두려움 가운데서 이삭이 언약의 상속자로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그 권위를 회복하기로 하셨습니다. 이렇게 이삭을 보호하심은 바로 약속의 씨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보호하시는 것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삭을 이렇게 보호하심이 세상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특별한 축복을 내리심으로 이삭이 그 땅에서 특별한 권세가 있는 자로 나타나도록 하셨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생활의 중요한 수단은 역시 농사였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당시 세계의 사람들은 농경생활의 풍요를 위하여 주로 농경신(農耕神)을 섬겼습니다. 구약 성경에 많이 나오는 바알과 아세라도 역시 농경신으로서 풍요의 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섬기는 여호와가 이삭에게 복을 주셔서 백 배의 결실을 맺게 하였습니다. 자기네들이 섬기는 바알신 보다도 훨씬 큰 축복이 이삭의 장막에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로 인하여 이삭은 그 땅에서 능력있는 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약속의 상속자로 그 땅에서 보호하셨던 것입니다. 평상적으로 농부는 뿌린 것의 30배 내지 50배를 거둡니다. 그리고 좋은 조건에서 많은 수확을 거둔다 해도 80배 정도입니다. 그러나 백배의 수확은 정말 보기드문 현상이었습니다. 더구나 지금 가나안은 기근이로 인하여 심히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감안한다면 하나님의 돌보심이 얼마나 특별한 것이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풍성한 수확을 통해서 이삭은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땅이 이삭에게 그렇게 풍성한 결실을 주었던 것은 이삭이 약속의 후사였고 그의 자손이 가나안 땅을 상속받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의 그러한 번성은 짐승들에게도 나타났습니다. 많은 짐승들로 인하여 이삭은 많은 목초지를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불레셋 사람들의 시기심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과 지금 이삭이 사용하고 있는 우물들을 모두 메워 버렸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그 땅을 떠날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삭이 불레셋 사람들 보다 크게 번성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이전에 아비멜렉이 아브라함과 맺었던 언약에 위배되는 행위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언약 안에서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은 아브라함의 소유라는 사실이 분명히 조약으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많은 재산을 가진 이삭의 생존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이삭은 그의 가축들을 데리고 그 땅의 토지와 우물들을 떠나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삭의 신앙문제도 관계 되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 땅의 사용권을 누렸다는 사실은 이삭에게 장차 그 땅이 자기 후손들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확증했고 또한 이삭 자신이 그 약속의 후사였습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떠날 것을 강요 당했습니다. 그러나 장차 오실 그리스도 때문에 그 땅은 이삭을 위한 땅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이삭이 온전하게 보존되는 길이 바로 그리스도가 오실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가정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삭은 불레셋 사람들이 그의 재산을 시기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삭이 지니고 있었던 특별한 약속에 대해서도 질투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제 그들은 이삭에게 시비를 걸만한 기회를 잡았습니다. 여기서 이삭은 믿음의 싸움을 싸웠습니다. 정말 약속이 자신을 위한 것인지 분명한 깨달음이 있어야만 그러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구속을 위하여 자기를 선택하셨고 그 땅을 상속하실 것으로 믿는다면 이삭은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으로 부터 그 땅을 상속받을 자로 부름받은 것입니다.

 

만일에 이삭이 우물을 뺏기지 않으려고 자기를 향하여 핍박하는 불레셋 사람들과 더불어 무력으로 싸우려 했다면 더 큰 사건에 휘말게 될 것입니다. 자신은 약하였고 그들은 강성했습니다. 이삭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것은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백성들이 당하는 고난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는 아브라함에게 함께 하셔서 창대케 하신 것처럼 믿음안에서 부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보존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창대하면 불신자들로 부터 질투를 받기 마련입니다.

 

이삭의 생애는 항상 손해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에 손해보는 것이 바른 길입니다. 이삭은 자기를 시기하는 자들로 부터 떠나서 물러 나옵니다. 이런 면에서 믿는 자가 세상적인 이해를 가지고서 싸우는 것이 잘못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르모가 관련되었을 때 손해보고 쫓기고 핍박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게 고난 받음이 우리의 신앙에 유익합니다. 그런데 고난 받을 때 그 고난을 당하지 않으려고 세상 사람들 처럼 행동하면 주님께서 대신 욕을 당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바른 행동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와 같이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실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방해세력에 부딪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그것을 통해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굳게 서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역시 이삭도 자기의 환경 속에서 이것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직 믿음에 굳게 서지 못했습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그 땅의 사용권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이삭은 그랄 골짜기로 내려갔습니다. 이삭은 그들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어긴데 대해서 한마디 항의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자기의 권리가 명백해질 때까지 계속 옮겨다니며 우물을 팠습니다.

 

이삭의 종들은 다시 우물을 파야만 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새로운 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우물은 생존의 근본을 얻는 일과 같았습니다. 물을 얻기가 쉽지 않은 광야에서 우물을 파고 물을 얻는다는 것은 바로 생존의 근거를 획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함께 가축을 치던 아비멜렉의 목자들이 와서 그 우물은 자기들의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삭은 그들이 타협을 거절하자 그 우물 이름을 ‘에섹’ 즉 ‘다툼’이라고 칭하고는 물러나 버렸습니다.

 

이삭의 종들이 좀 떨어진 곳에서 다른 우물을 팠을 때도 아비멜렉의 목자들은 그것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삭은 또 다시 그 우물의 이름을 ‘싯나’ 즉 ‘대적함’이라 칭하고 물러났습니다. 이삭은 계속 이동하여, 마침내 그들로 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툼없이 세번째 우물을 팔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삭은 그 우물 이름을 ‘르호봇’이라 칭하였습니다. 이 말은 장소가 좀 넓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삭을 위하여 장소를 넓히심으로 그 가축들이 번성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샘을 팔 때마다 자기 아버지 이름으로 팠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불렀던 이름으로 샘을 판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자기 아버지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상속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샘을 팔 때마다 불레셋 사람들이 와서 그 샘을 메꿔버리고 그 땅을 빼앗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삭은 매우 어리석은 인물로 나타납니다. 이삭은 결코 스스로 설 만한 힘있는 자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을 하나님 왕국의 선구자나 개척자로 부르기에는 좀 어색하기만 합니다. 이삭은 자기의 권리를 침해당할 때에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이삭의 믿음이 확고하지 못하는 한, 이삭은 자기의 권리를 올바로 주장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권리가 이삭 개인으로서의 권리 보다는 약속의 후사로서의 권리인 것입니다. 이삭은 상속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의 고난받음으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위기를 맞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믿음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삭이 브엘세바로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시고 약속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이러한 대적들의 방해와 압박을 겪고난 후 이삭은 약속을 분명히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브엘세바에서 이삭에게 나타나신 후 이삭은 거기에서 여호와를 위한 단을 쌓고 그의 모든 집안 사람들과 함께 공적인 예배의 형식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삭은 확신에 넘쳐서 거기에서 장막을 쳤고, 그의 종들은 우물을 파기 시작 했습니다.

 

이삭이 하나님께 단을 쌓고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당신의 섭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알게 하셨습니다. 그 때 종들이 새로운 우물을 팠고 이삭은 그 곳에서 언약의 후사로서 더욱 창대해졌습니다. 그 때 이삭의 창대함을 인하여 예상 밖으로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 왔습니다. 이삭은 매우 놀랐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것을 곧바로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아비멜렉을 꾸짖어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 때 아비멜렉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자꾸 이삭의 것을 빼앗아도, 생명의 근원인 물(샘)도 빼앗고 땅에서도 쫓아냈지만 이삭의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을 주시고 샘을 주시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원수들도 이삭이 누군가를 알았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을 그 땅의 상속자로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 아버지와 했던 것처럼 우리도 조약을 맺자”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방 왕 아비멜렉도 이삭을 아브라함의 상속자로 알고 바로 그가 세상을 복 주는 선지자적인 위치에 잇는 줄 알고 와서 이삭과 연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이 얻었던 그 땅에서의 위치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땅의 왕이라도 일개 미천한 떠돌이였던 이삭에게 더불어서 언약을 맺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약속된 씨를 생산할 상속자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그릇을 더 이상 핍박할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간섭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비멜렉은 이삭의 위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삭을 향하여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 때 이삭은 그들과 언약을 세웠으며, 그에 따라 그날 저녁에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다음날 그들은 맹세로써 언약을 보증하였습니다. 바로 그날 이삭의 종들이 그곳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우물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더더욱 그 땅의 통치자인 아비멜렉은 이삭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상속자로서 이삭에게 땅에서 번성할 수 있도록 그 토대에서 우물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제 이삭은 하나님께서 그 가족들을 위해 장소를 넓히셨다는 사실을 보다 분명하게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구원약속의 씨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그 땅에 화평을 심고 거둔 이삭을 통하여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이 땅에 장소를 마련하셨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약속의 후사는 이 땅에 오실 수 있게 되었고 장래에 하나님은 그를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날에는 모든 자들이 그를 인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역시 그 약속의 씨를 믿고 바라보는 언약의 상속자들로 세움 받았습니다. 우리가 담대하게 세상과 싸워 이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도 이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함께 하십니다. - 아멘 -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