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8:18] 머리 둘 곳 없으신 예수님 / 강기원 목사

'코이네' 2016. 3. 12. 20:48

머리 둘 곳 없으신 예수님

(마8:18-22)

 

 

우리 인간의 생각은 항상 육신적이고 항상 가시적이다. 보 이지 않는 것은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육신의 범위밖의 일은 알 수가 없다. 생각 뿐아니라 경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하고 있 는 경험이란 항상 육신적, 감각적이기 때문에 역시 마찬가지로 육신이 느끼지 못하는 세계를 느끼기에는 상당히 제한을 당하게 되어 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이곳 저곳을 다니지만 육신이 갈수 없는곳에는 우리의 상상과 생각이 미칠수도 있다. 그래서 구름 위에도 상상으로 날아가 보고 바닷속에서 상상으로 들어가 본 다. 그러나 우리의 상상이나 생각조차 미치지 못하는 수가 또 한 많이 있다. 왜냐 하면 우리의 생각은 육신에서 벗어나 육신 밖의 일을 상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차이가 크다. 우리 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더 깊다(사55:8,9). 우리는 항상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어있고 모자라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을 고칠 생각하지 말고 우리의 생각을 고치 기 위해서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이 세상 밖에서 이 세상안으로 오셨고 육신밖에서 육신안으로 오셨다. 그 분이 육 신으로 오시기 위해서 마리아의 배를 잠시 빌려서 오셨지만 그 러나 그분은 흙에서 오신 분이 아니시고 흙 밖의 세계에서 흙 안으로 들어 오신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그 분의 생각은 항상 다르다.

 

예수는 그 33년 육신의 생애 전체를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사셨다. 어려서 헤롯의 지랄병을 피해 잠시 애급땅을 밟은 것 외 에는 이땅을 벗어나 본 적이 없으시다. 어떤땐 걸어서 어떤땐 배를 타고 다시셨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땅을 벗어나 본적은 한 번도 없으시다. 팔레스타인 지방에 사는 사람은 예수의 이런 발 걸음과 자주 만났고 동행하기도 했다. 그래서 예수는 그리 멀리 여행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도 할 것이다. 예수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말을 준비할 필요도 없고 짐을 많 이 준비하고 짐을 실어 줄 나귀나 낙타도 필요없다. 그저 아침 에 떠나면 저녁때 쯤에는 돌아 올수가 있으니까 마누라 한테 눈 치보일 필요도 없고 부담이 없는 거다.

 

그래서 예수가 떳다 하면 수 많은 사람이 같이 뜬다. 예수 와 같이 가면 먹을것도 걱정이 없고 재수가 좋으면 병도 고칠수 있고 더 재수가 좋으면 예수의 눈에 들었다가 예수가 왕이 될때 혹시 한자리 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까 수 많은 사람이 예수의 가시는 곳에 부담이 없이 따라 다니는 거다.

 

어느 날 한 서기관이 이런 계산을 하고 예수앞에 와서 예 수를 따르겠노라고 고백을 했다. 예수가 가 봤자 어디로 가겠는 가? 고기서 고기지...내 직업을 계속 유지하는데도 별 방해받는 것도 아니니까 손해는 없으렷다, 수없이 많은 무리가 예수를 쫄 쫄거리고 따르는데 나도 빠지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했으려 는지...왜 이런 짐작을 하느냐 하면 바리새인, 서기관, 장로들, 제 사장들은 예수를 따라가서 항상 트러블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 그들은 예수를 고운 눈으로 보지를 못한다. 항상 예수를 딴지 걸기 위해서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이 서기관이 예수가 어디를 가던지 따르겠다고 말 하자 예수는 벌써 눈치채신다. 무슨 속셈으로 예수를 따르겠다 고 말하는지 감 잡으신다. 그래서 그에게 답을 하시는데 이 답 이 알쏭달쏭한 어려운 대답이시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거처가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신다. 언제 예수가 여우나 새들 보다 더 가난해 지셨나? 몸 전체는커녕 그까짖 몸 한구탱이 머리조차 둘곳이 없으시다? 과연 그래? 실제론 예수는 가는 곳 마다 인기가 좋으셨다. 위 에 말한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만 빼놓곤 다 예수를 좋아했 다. 떡 얻어 먹었지, 병 고침 받았지, 죄사함 받았지, 게다가 이제 예수가 왕만 되봐라, 그러면 내 두아들을 좌우정, 우의정 시켜 달 라고 아부께나 하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수두룩 한데 머리 두실 곳이 없다니?

 

아니 순 그짖말 아닌가? 베다니에 사는 마리야와 마르다 자 매는 예수가 오시기를 항상 목을 늘여 기다리는 처녀들 아니던 가? 사께오의 집에서도 대접을 융숭하게 받으시고 심지어 한 바 리새인이 저녁식사에 초대한적도 있고 가나지방에선 물로 포도주 를 만든 것을 아는 사람들이 결혼식때만 되면 예수를 초청하지 못해서 안달들이 나 있을텐데 아니 머리 둘곳이 없으시다니...좀 섭섭하신 말씀이 아니신가? 대접을 받으신거 다 잊으셨나...? 아 니 지금이라도 예수를 자기집에 모시지를 못해서 환장들을 한 사 람들이 목을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거 무슨 말쌈을 그렇게 하십 니까?

 

과연 예수님의 하신 '머리 둘곳이 없다'는 뜻은 무엇인가? 예수의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이길래 이런 어려운 말씀을 하시는 가? 예수의 가시려고 하는 최종 목적지는 어디이실까? 예수님은 베다니에 가시면 발뻗고 누우실 자리가 있으시지만 거기가 예수 의 목적지는 아니다. 예수는 거다라 지방에도 환영하는 사람이 있고 갈릴리 호숫가에도 그 어디에도 예수를 환영하는 사람은 많아. 그러나 거기에서도 예수는 머리를 쉬지 않으셨다. 예수는 마지막으로 가야바 대 제사장의 집에도 가셨고 빌라도 법정에도 가셨고 십자가에 까지 가셨지만 거기도 예수의 최종 목적지는 아니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는 무덤에도 내려 가셨으나 무덤도 그를 붙잡아 두지 못했고 예수는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 편에 가셨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이 예수의 최종 목 적지인가? 그것도 아니시다. 예수는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다. 아 직도 여전히 최종 목적지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최종 목적 지에 도착하기 이전에는 그 어느곳에서도 당신의 머리를 두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그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사도 요한이 요한 계시록 3장에서 예수의 오시고 싶어하시는 공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는 지금 어디에 오시기를 원하시는가? 바로 우리의 마 음속에 오시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 오셔서 발을 쭉 뻗으시고 먹고 마시고 머리를 두시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이 우리의 마음속에 그 너절한 서기관이 따라 오겠다는 거다. 말이 나 돼?

 

그런데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거처가 있는데 예수는 머리 를 둘 곳이 없다 하시니 이는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거 아닌가? 우리의 마음속에 여우가 먼저 굴을 만들고 독차지 하고 있고 공중에 새가 예수 보다 먼저 와서 둥지를 틀고 떡하니 앉 아 있으니 어찌 예수께서 머리를 두실 곳이 있으시겠는가?

우리의 마음속에 짐승이 들어있다? 그럼, 짐승이 들어있지 않구...아주 못되먹은 더러운 짐승이 가득 들어 있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잠12:1)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자는 짐승과 같으니(시 49:20).

그리고 계시록에는 짐승을 우상으로 섬기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짐승을 우상으로 섬기는 마음, 하나님의 징계를 싫어하는 서기관, 제사장, 바리새인, 장로들...은 도무지 예수가 그의 마음 속에 머리를 두실수가 없다. 깨닫지를 못하는 짐승과 같은 마음 을 가진자에게 예수는 문전 박대를 당하시는 중이다.

 

여러분들아, 예수를 어디로 가시게 하지 마쇼! 당신들의 마 음속에 공중의 새의 거처를 헐어내고 여우 굴을 메꿔버리라, 육 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요 사망과 멸망을 가지고 오는 생각이 다. 당신의 관심이 계속 육신적, 세상적으로 향하여 있는 한 짐 승들의 우굴거림이 당신의 마음속에서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한번 상상해 보시라, 여우들의 똥냄새...새들의 시끄럽게 떠들 어 대는 곳을 피해서 조용한 당신의 마음속에 오셔서 머리를 두 시려는 예수, 그 예수 품에 당신의 머리는 맡기는 장면...이 환상 적인 장면을... 한 번 경험해 봅시다.

(강기원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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