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창세기

[창세기5장] 에녹의 삶과 신앙

'코이네' 2015. 9. 6. 01:09

에녹의 일생

창5:21-24

 

오늘 성경을 쭉 읽어 내려가노라면 21-24절까지 독특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에녹의 사건입니다.

다른 신앙의 족장들은 모두 몇 세에 누구를 낳고 몇 세를 살며 자녀를 낳고 몇 년을 향수하고 죽었더라 하고 있지만, 에녹은 죽었더라는 말이 없습니다. 다만, 죽었더란 말 대신에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아담의 7대손 입니다. 이 에녹은 신앙의 후손 중에서 어느 누구보다 더 신앙을 훌륭히 하다 하나님 앞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 나라까지 계속 걸어가 버린 사람입니다.

이 시간은 두 번째 믿음의 조상 에녹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며 은혜를 나눌까 합니다.

에녹이 특별히 믿음의 생활을 잘했다고 해서 특별하게 출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도 똑같이 아담의 후손으로 우리와 똑같이 육신을 입고 육정을 가지고 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18절에 성경은 야렛이 162세에 에녹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야렛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도 우리와 같이 자녀를 낳았습니다. 별다른 데가 없습니다. 21-22절을 보세요. 에녹은 65세에 므드셀라를 낳았습니다. 에녹은 므드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을 하며 “자식을 낳았으며” 했습니다.

이는 우리도 자식을 낳으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줍니다. 우리도 옛날 선지 에녹과 같이 이런 훌륭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성경은 보여 줍니다.

그도 육신의 부모부터 출생했고, 그도 자식을 낳아 가며 가정 생활을 똑같이 하며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러므로 꼭 수녀 마냥, 신부 마냥 독신으로 지내는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시집, 장가가서 가정 생활을 하며 아기를 낳아 기르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을 성경은 말합니다.

 

저는 이 시간 에녹의 신앙을 몇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첫째,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신앙이었습니다.

본문 가운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22,24)

그러니까 3세기를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드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식을 낳았습니다. 여러분 동행은 뜻이 맞아야 동행할 수 있습니다. 뜻이 안 맞는 사람하고 동행할 수 있겠습니까? 뜻이 안 맞는 사람하고는 동행할 수 없습니다.

요사이 결혼을 하고도 뜻이 안 맞으니까 곧 이혼을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에녹은 하나님과 뜻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하셨습니다.

자기 부인은, 자기 생각, 자기 뜻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에녹은 자기 생각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이 가능했습니다. 전혀 자기의 계획이나 뜻이 없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드리고 그만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온전합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 드리고 생활했다는 것입니다.

 

2)둘째,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히11:5-6)

성경에 에녹에 대한 기록이 세 곳 나옵니다. ① 본서 21-24절 ② 히브리서 11:5-6절 ③ 유다서 14,15절입니다. 이 세 곳 가운데 히브리서에 에녹은 “하나님 나라에 옮기 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나 좋도록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에녹은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대체로 내 뜻이 성취되고 내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빌고 그렇게 기도합니다. 나 좋도록, 내가 기쁘도록 합니다. 그러나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에녹은 예수님과 같이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는 신앙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3)셋째,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나옵니다만, 공동 번역에는 에녹이 “300년을 하나님과 함께 살며”했고, 현대인의 성경에는 “300년 동안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자식을 낳고” 했습니다.

지극히 친한 친구와는 깊은 교제를 가집니다. 사람들은 흔히 제일 좋은 짝을 택해서 교제를 가집니다. 낯선 사람하고는 동행을 하지 못하고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길을 걸어가며 깊은 교제를 하였습니다. 얼마나 즐거운 교제를 가졌는지 시간 흐르는 줄 모릅니다.

제가 상당히 좋아하는 친구 목사님 한 분이 계십니다. 이 분하고 있으면 그저 좋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둘이 만나면 그렇게 좋습니다. 없으면 못살 것 같습니다. 어떤 땐 이런 친구가 없으면 어떻하나 할 때도 있습니다. 온갖 이야기를 다하고, 아무런 부담도 없고, 서로서로 기쁠 때는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때도 함께 슬퍼하고, 어려울 때도 서로 도우며 기도합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드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함께 길을 걸어가니 굉장히 즐겁고 재미있어 계속 걸어가다 보니 그대로 낙원에까지 걸어가고 말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친구와 밤늦게까지 놀다가 헤어지기가 싫어서 제가 그 집까지 바래다주다가 그 집까지 갔어요. 그래서 또 그 집에서 조금 놀다가 그 친구가 나를 바래다준다며 따라오다 또 우리 집까지 왔습니다. 또 바래다주다 친구 집까지 또 갔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함께 하다가 날을 새운 적이 있습니다.

오늘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재미있는 신앙생활, 재미있는 동행을 하다 보니 선 걸음에 그대로 낙원에까지 걸어가고 말았습니다.

거기서도 지금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

“킷토의 매일 성경 읽기”에 보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아주 재미있게 말해 줍니다.

마치 꼬마 아들의 손을 잡고 아들과 더불어 산들바람이 부는 언덕을 오르는 아버지의 예를 들고, 아버지 손에 이끌리는 아들의 예를 듭니다. 아들의 손목을 잡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온갖 것을 보여주고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고 안았다가 업었다가 놓았다가 목에 걸쳐 앉추었다가 아들이 즐겁게 웃는 일이라면 그대로 하는 아버지입니다.

또, 아버지 손에 이끌린 꼬마는 길이 험하고 날씨가 매서워도 길을 잃어버려도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하기 때문에 콧노래를 부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즐거운 교제를 하므로 항상 즐거웠습니다.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4)넷째, 에녹은 전진하는 생애였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걸어갔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전진했다는 말입니다. 200년이 지난 뒤에 와서는 그는 처음 시작하는 곳에 서(stand)있지 않았습니다. 많이 걸어왔고 300년이 지난 후에는 보다 많이 즐거웠고, 보다 많은 것을 이해했고, 보다 많이 사랑했고, 보다 많이 주었고, 보다 많이 봉사했습니다.

제가 신앙하기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은 전진한다고 믿습니다. 자란다고 믿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의 신앙은 자라지 않은 앉은뱅이 신앙이 아닌가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에녹은 가고 가고 가다 보니 낙원에까지 걸어가고 말았습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드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다 보니 365년만에 낙원에까지 걸어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것이 에녹의 결론입니다.

나도 누구를 낳고 몇 세까지 살다가 죽었다는 기록보다 누구를 낳고 몇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 앞에 갔다는 이력을 남기는 성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