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사사기

[송년주일 삿16장] 삼손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 / 이중표 목사

'코이네' 2014. 12. 18. 15:00

마지막 기회
사사기 16:23-31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

 

우리는 오늘 한 해를 마감하는 송년주일로 모였습니다. 이번 주일로 우리는 한 해를 끝내고
다음에는 새 해를 맞이하게 되는데 한 해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한 세기, 더 나아가서는 한천년을 마감하는 의미 있는 주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서 천년의 시대에 꼭 한번 있는 그때를 맞아서 태어났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천년을 사는 샘이 됩니다. 앞으로 맞이할 2천년은 3천년과 함께 가는 뜻깊은 해이기 때문에 우리는 중대한 사명감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성경 가운데서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특별히 삼손은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성공을 통해서 교훈을 주는 사람도 있고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하나님께서 성서에 기록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악한 자 는 그 악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고 실패한 자는 실패한대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므로 말미암아 실패한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남다른 용모와 탁월한 지혜와 힘, 이런 것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실패한 인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손의 출생

 

하루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어서 괴로워하던 삼손의 어머니에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나타 나서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 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삿 13:3-5)라고 말합니다.
삼손의 어머니는 너무 좋아서 남편에게 가서 그 얘기를 했습니다. 남편이 그 얘기를 듣고 과연 이것이 무슨 뜻이냐고 하고 여호와께 기도했더니 또 그 천사가 나타나서 그대로 대답 을 해 주었습니다. "네가 낳을 아들은 나실인이다. 너희들은 그 아이를 잉태하고 태중에 있을 때 포도주나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 삼손은 이런 감동을 받고 태어나게 됩니다. '나실인'은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특별히 하나님께서 성별한 자녀인데 날 때부터 머리를 깍지 아니하고, 독한 술을 마시지 않고, 죽은 시체를 만지지 않는 특별하게 성별된 사람입니다.

삼손은 자라면서부터 얼마나 힘이 센지 아무도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자를 잡아 찢는 것을 염소 새끼를 잡아 찢는 것처럼 했습니다. 이렇게 힘이 센 장사로 자랐습니다. 그 런데 이렇게 힘이 세던 삼손이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느날 삼손이 딤나에 내려갔는데 거기에 아름다운 블레셋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 여인을 보고 첫 눈에 반해서 부모에게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를 삼게 하소서" 하고 말합니다. 그 때 삼손의 부모는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하고 꾸중을 합니다. 그래도 삼손은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블레셋 여인을 그의 아내로 삼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블레셋 여인의 아버지는 삼손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는지 삼손이 사랑하는 딸을 삼
손의 친구에게 출가시키고 둘째 딸을 주려고 합니다. 그때 삼손이 화가 나서 여우 삼백 마리를 잡아 꼬리를 묶어서 그 가운데 불을 질러 블레셋 곡식 밭을 전부 불태웁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화가 난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삼손이 유대 땅으로 들어가 굴속에 숨어 있는데 블레셋 군대가 유대 땅을 점령해서 그들을 침략하니까 유대 사람들이 삼손을 굴에서 잡아다가 꽁꽁 묶어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내어줍니다. 그런데 삼손이 힘을 한번 쓰니까 묶였던 줄이 동아줄이 끊어지듯 끊어졌습니다. 또 삼손이 나귀 턱 뼈로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삼손은 힘이 세긴 센데 그 힘을 다 쓸데없는 곳에 낭비합니다. 다 하나님이 시키지 않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에 나가라고 해서 나간 것도 아니고 순전한 자기 감정과 분노에 의해서 힘을 씁니다. 결국은 나중에 블레셋 한 여인에게 포로가 됩니다.

 
그는 나실인으로서 지켜야 할 규례를 범하고 이방 여인과 불륜에 빠집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 힘이 어디에서 솟아나는가에 대한 비밀을 폭로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삼손을 죽일까 하고 드릴라를 내세워서 계략을 찾아내는데 삼손은 그것도 모르고 자기 힘의 비밀을 공개합니다. 드디어 삼손이 드릴라의 무릎에 잠들어 있을 때 삼손의 머리를 깎았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 와서 '블레셋 사람이 쳐 들어 왔다'고 외쳐도 삼손은 더이상 싸울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이미 떠났기 때문에 삼손의 힘이 다 빠 진 것입니다.

 

삼손의 타락

 

"블레셋 사람이 그를 잡아 그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로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21절)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잡아서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로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했습니다. 그는 초라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삼손의 말로였습니다. 삼손이 힘없이 잡히자 저들은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붙였다" 하고 다 모여서 그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면서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어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했습니다. 삼손이 나타날 때 수많은 사람들은 환호성을 칩니다. 그리고 "저 자가 정말 사자를 찢던 자인가 여우 삼백 마리에 꼬 리를 묶어서 불을 지른 자인가, 나귀 턱뼈로 천명을 물리친 자인가" 하면서 삼손을 비웃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에게 온갖 재주를 부리게 해서 희희락락거리고 즐거워할 때 삼손은 마음속에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조롱거리가 되다니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하면서 슬퍼 탄식하고 한 소년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나로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서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그리고 그가 기둥 곁에 서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를 드리고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가운데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잡고 "내가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고 기둥을 밀어젖힐 때 그 집이 무너져서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이 삼손과 함께 일시에 죽었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삼손은 마지막 그의 죽음으로 지난 날의 모든 자기의 부끄러운 수치를 청산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삼손의 비극은 우리들에게 중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가 떠난 삼손은 눈이 빠집니다.

눈이 빠졌다는 말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상실할 때 앞이 보이 지 않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은혜를 상실하면 눈이 어두워집니다. 미래의 환상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합니다. 성경에서 모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눈으로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눈으로 똑똑히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하나님의 은혜와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시야가 상실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삼손의 비극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은혜를 상실하고 볼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지, 눈은 떴으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섭리를 보지 못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두번째, 놋줄로 묶임을 당합니다.

이것은 세상 줄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인간의 비극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습의 노예가 되고, 허탄한 생각의 노예가 되고, 세속의 줄에 매여서 움직이지 못하는 존재, 마치 나사로가 무덤 속에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 하니까 나오기는 나왔는데 손도, 얼굴도, 발도 묶여서 걷지 못하는 것과 같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는 믿지만 세속의 줄에 묶여서 영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포로 된 자들이 많습니다. 혹시 내가 그런 존재 가 아닌지 성찰해야 합니다.

 

세번째, 연자맷돌을 돌립니다.


연자맷돌은 원래 나귀나 소가 돌리는 것입니다. 삼손이 건장한 몸으로 맷돌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을 떠난 자가 날마다 맷돌을 돌리듯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항상 세속의 쳇바퀴 돌듯이 먹고 사는 인생으로 끝나버리는 비극을 삼손이 친히 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내가 일생을 산 것이 맷돌을 돌리는 동물적 존재로 먹고 마시는 것으 로 끝나버린 존재인지 아니면 내가 날마다 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무슨 일이 성취되고 있는지 반성해야 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남편이 날마다 맷돌을 돌리는 것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면 안믿는 남편을 향해서 믿는 아내가 똑똑하게 말할 수 있는 지성을 가져야 합니다. 남편을 향해서 "여보, 당신이 일상적으로 맷돌을 가는 존재로 쳇바퀴 돌듯이 날마다 출근하고 해지면 돌아오는 것 으로 끝낼 것입니까 당신과 내가 가정을 이루어 사는 것이 이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자식이 교회에도 나오지 아니하고 밤늦도록 술취하고 세상을 살고 있다면 그 아들을 향해서 "아들아, 무릎을 꿇어라 인생으로 태어나서 그렇게 살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아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일생을 사는 어머니는 자식을 낳은 어머니가 아닙니다.

 

넷째, 노리개 감이 되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 사람들의 노리개 감이 되었습니다. 멸시를 받고 있습니다. 옛날 삼손은 전 국민으로부터 두려움의 존재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보면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경외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교회, 능력 있는 성도가 되면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합니다. 안믿는 사람이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을 상실하면 비난과 비웃음과 조소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을지언정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당당하게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권세를 가질 때는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놀라지만 그 은혜를 상실하면 바로 조롱거리가 됩니다.


과연 내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남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되는 삼손처럼 되어버린 사람이 아닌가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힘이 있습니다. 재능도, 건강도, 물질도, 학식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을 위해 쓰지 못하고 기분 내키는대로, 감정대로 탕진하고 소모하고 이제는 아무것도 없는 존재가 되어 세상으로부터 웃음거리가 되고 있지는 않는지 자기 자신을 성찰해야 됩니다. 한 천년을 마감하면서 우리는 분명히 새해를 맞기 위하여 나 자신이 과연 어떤 존재인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삼손은 수천년 전의 삼손이 아니라 바로 내가 아닌가 우리는 한번 돌아보아야 됩니다.

 

삼손의 회복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22절)

이러한 실패와, 부끄러움과, 수치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다시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다 상실되었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곧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이었습니다. 나실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기 위해서 머리를 깍지 아니하고 계속 길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방 여인 드릴라에 의해서 다 깎였습니다. 은혜가 완전히 소멸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삼손에게 머리가 다시 자라기 시작합니다. 은혜가 다시 소생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삼손은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삼손이 이제 기도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삼손의 실패는 기도하지 않는데 있었습니다. 삼손은 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하나님의 큰 능력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삼손을 망친 것입니다. 이제 삼손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가 소생하는 비밀입니다. 우리가 기도 를 상실하면 삼손처럼 완전히 폐인이 됩니다. 예수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능력 은 기도에서 얻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목사는 이미 힘을 잃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가대는 찬양이 죽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장로는 이름만 있지 능력이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치 머리 깍인 삼손처럼 세상에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에 와서 은혜 받을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우리는 모두 다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됩니다. 눈 빠진 자가 누구 입니까 사슬에 묶인 자가 누구입니까 맷돌 가는 자가 누구입니까 조롱거리 된 자가 누구입 니까 기도를 하지 않는 자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이렇게 됩니다. 새 천년을 맞기 위해서 모두 다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자기 과거에 대한 회개

삼손에게 두 번째 은혜가 소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여기 삼손이 '이번만'이라고 말합니다. '한번만'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삼손이 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야 자신의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그는 깨닫고 그의 비참한 실패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을 깊이 느끼면서 '오 주여, 지나온 날을 후회합니다. 회개합니다. 다시 기회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지나온 날의 생애를 돌아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인생을 다 낭비해 왔습니까 나에게 준 그토록 많은 은혜를 세상에 다 탕진했습니다. 쓸데없는데 써 버리고, 빼앗기고, 잃어버렸습니다. 디제 우리가 주님 앞에 서서 할 말이 있다면 '다시 기회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회개하는 것입니다. 삼손은 자신의 실수로 하나님께서 멸시 당하는 처지가 된 것에 대하여 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실인으로 태어나 부모님의 기도에 어긋나게 눈 빠지고, 맷돌 가는 노예가 되어 이방 신전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니 오 주여 용서하소서.' 이렇게 그는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뉘우치는 죄인에게는 한번의 기회를 다시 주십니다. 하나님은 제2의 기회를 우리에게 준비하고 계십니다. 기도하면서 회개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오고 있 습니다.

 

셋째, 삼손의 희생적 각오

삼손은 죽음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죽어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것에 노예가 되어 살았기에 이제는 내가 죽음으로 자유하는 존재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삼손의 위대한 승리를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살았다면, 나만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이기적인 나를 버리고, 육신의 정욕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살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일하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죽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줄로 믿습니다. 제2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희생을 각오해야 됩니다. "생명을 얻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와 복음을 위해 생명을 버리면 얻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제 우리는 일 사각오의 정신으로 내가 죽어서라도 주님의 영광을 돌려야 되겠다 이 각오가 서시기 바랍니다.

 

넷째, 이방 신전을 무너뜨렸다.

하나님께서는 드디어 삼손에게 놀라운 기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집을 버틴 두 가운데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 보다 더욱 많았더라"(29-30절)
삼손이 지금 있는 그 자리는 이방 신전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성전 삼아야 할 몸입니다. 그런데 성전된 몸이 타락해서 눈 빠지고, 사슬에 매이고, 맷돌을 갈고,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비웃고, 조롱하는 이방의 무리들을 보면서 중심으로 회개하면서 '오, 하나님이여, 이번만 나에게 힘을 주사 나로 하여금 마지막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무리들을 심판하게 해 주시옵소서. 이것은 나에 대한 심판이 아니요, 하나님에 대한 저들의 잘못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과, 전능하신 것과,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 주시옵소서.' 그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삼손이 신전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힘을 다하여 밀어젖힐 때 기둥이 뽑아지고 밀리면서 지붕이 무너졌습니다.


나를 버티고 있는 기둥들, 나를 사로잡고 있는 기둥이 무엇입니까 돈과, 권력과, 세상의 모든 허탄한 것들을 기둥 삼고 있습니까 내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을 노예의 사슬로 묶어놓는 기둥들을 뽑아버리시기 바랍니다. 무슨 기둥이 나를 얽어매고 있습니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것들의 기둥과 이 세상의 모든 돈의 기둥과, 물질의 기둥을 세워놓고 살려는 우리의 잘못을 뽑아버려야만 새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비웃는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누구로부터 비웃음을 받고 있습니까 눈이 빠지고, 머리가 깍이고, 사슬에 묶인채 이방 신전에 들어온 줄도 모르고 춤추고 노래 하는 모습,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된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삼손을 향해서 부르짖는 소리가 삼손을 향해서 부르짖는 소리가 아니라 교회를 향해서 나를 향해서 부르짖는 소리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우리는 정말로 주님의 종답게 자기 자신을 당당하게 세워야 합니다. 뽑아져야 할 것 다 뽑아버리고, 무너져야 할 것 다 무너져버리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서야 합니다.

 

우리는 나도 모르게 들어가서는 안될 곳에 들어가 있는 때가 많습니다. 우상의 집이 하나님 의 성전이 되도록, 내 가정이 하나님의 가정이 되도록 세우시기 바랍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