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열왕기

[왕하 6:8] 보다 더 귀한 한 사람 _김창인 목사

'코이네' 2025. 3. 20. 21:09
반응형

보다 더 귀한 한 사람

왕하 6: 8-17

설교 : 김창인 목사 

 

 

오늘은 열왕기하 68절에서 17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보다 더 귀한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100마리를 기르고 있던 사람이 어느 시간에 양을 계수 해보았더니 양 한 마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 99마리를 들에 두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섰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들이란 사나운 짐승들이 들 끊는 광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초장을 의미합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이리 저리 다니다가 양을 찾았습니다. 양을 걸려서 데리고 올 수 있으나 얼마나 기뻤던지 둘러메고 돌아왔습니다. 이 비유가 주는 교훈은 한 마리 양이 그렇게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99마리는 귀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도 귀하다면 잃어버리지 아니한 양 한 마리 한 마리도 다 귀한 것입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 광성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또는 중요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보다 더 귀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보다 더 귀하고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기도하는 한 사람이 보다 더 귀합니다 (8-10)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을 하는 중에 아말렉 족속과 크게 싸움이 붙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군대를 거느리고 여호수아가 나아갑니다. 그런데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보란듯이 진격해 들어가고 피곤해서 손을 내리고 기도하기를 쉬면 이스라엘이 점점 밀리곤 했습니다. 그 때 아론과 훌이라고 하는 사람이 모세의 손을 양쪽에서 받쳐 줌으로 모세가 계속 기도했더니 결국은 아말렉을 보기 좋게 그리고 완전히 승리했다는 성경의 기록입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움을 잘해서 아말렉을 이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싸움을 잘해서 이겼다면 모세가 기도하든지, 기도를 하지 않든지 승리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도하면 밀어붙이고 기도하기를 쉬면 패하고 그러다가 나중에 완전히 승리했다고 하는 것은 아말렉 군대가 사실은 이스라엘의 전략전술에 밀려 패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한 사람 모세를 당하지 못했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군대도 귀하지만 보다 더 귀한 사람은 기도하는 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8절에서 10절을 보면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며 그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곳으로 나오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자기에게 고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어 방비하기가 한 두번이 아닌지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람 나라는 그 당시 이스라엘 보다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군사들을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침략하는데 먼저 왕이 신하들을 모아 놓고 이스라엘을 아무 아무데로 쳐들어가고 아무 아무데 진을 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경내를 넘어서 들어가기도 전에 그 때 마다 이스라엘 군사가 꼭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치는 바람에 아람 군대들은 죽지 않으면 포로가 되고, 포로가 되지 않으면 겨우 도망을 갔습니다. 아람 왕이 체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싸움을 잘 해서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아람 왕이 언제 얼마의 군대로 어느 곳으로 침략한다는 작전을 세우면 기도하는 엘리사는 영감을 통해서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왕에게 다 이야기를 해 주면 이스라엘 왕이 그대로 길목을 지켰다가 적군을 격파하고 승리하곤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스라엘이 싸움을 잘 해서 강대국 아람을 이긴 것이 아닙니다. 아람 나라의 대군이 기도하는 엘리사 한 사람을 못 당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한 사람이 군대보다 귀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면서 10년을 믿어도 기도 생활을 단 한시간도 하지 않는 사람과 항상 하나님 앞에 때마다 일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의논하는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영국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 피비린내 나는 살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영국 황제 헨리8세가 황후 캐더린과 이혼을 해야 하는데 로마 캐톨릭의 교황이 허락을 해야 이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황청에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절대로 나누지 못한다고 하면서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 헨리8세가 일어나서 종교개혁을 하고 성공회라고 하였고 국교로 삼았습니다. 동시에 캐톨릭과 관계를 끊어버렸습니다. 지금도 성공회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성공회의 칸다베리 대주교로 하여금 이혼을 선언하라고 합니다. 대주교가 이혼을 선언하자 캐더린 왕후가 쫓겨나서 얼마나 비참하게 세월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그 왕후에게는 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딸 메리는 어머니의 치욕과 불행을 보고 한이 맺혔습니다. 헨리8세가 죽고 아들 에드워드6세가 왕위에 오르나 6년 만에 죽었고 폐위된 캐더린의 딸 메리가 왕위에 오릅니다. 그쯤 되고 보니 종교개혁자는 잡히는 대로 잡아다 죽였습니다. 그래서 메리 여왕은 피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메리 여왕이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고 잡히는 데로 죽여 버렸습니다. 영국의 북부지역에 있는 스콧틀랜드에서 종교개혁을 하는 존 낙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는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모릅니다. 그의 종교개혁이 스콧틀랜드에서 먹혀들어 성공할까? 해서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에 두려워했습니다. 기도하는 존 낙스 한 사람이 정예화 된 일개 사단 보다 더 무섭다고 했습니다. 일개 사단이 서울에 들어오면 서울이 뒤집어 집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그렇게 무섭다는 뜻입니다. 존 낙스가 거기에서 종교개혁을 성공했고 장로교를 창설했습니다. 스콧틀랜드 장로교회라 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로교회가 되지 않았습니까? 기도하는 한 사람이 이렇게 귀한 것입니다. 제가 드린 말씀이 그저 그럴듯하다 하지 마시고 마음에 감동이 오거들랑 당장 결단을 내리고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한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바른 말하는 한 사람이 보다 더 귀합니다 (11-12)

여기서 바른 말이란 좋은 말 혹은 옳은 말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1절에서 12절을 보면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번뇌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의 내응이 된 것을 내게 고하지 아니하느냐 그 신복 중에 하나가 가로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람 군대가 가는 곳마다 이스라엘 군대가 길목을 지키고 있어 전쟁에서 항상 패하곤 하므로 아람 왕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을 전부 모아 놓고 우리가 언제 어디로 얼마의 군대가 이스라엘로 처들어 간다하고 작전 계획을 세우고 작전을 개시하게 되면 여지없이 이스라엘이 다 알고 길목을 지키니 우리가 이 꼴이 되지 아니했느냐? 우리 신하들 중에 분명히 이스라엘과 내통하는 자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빨리 자수하라하고 불호령을 내립니다. 옛날에는 왕의 말 한마디로 죽고 살았습니다. 지금 신하들은 상당히 불안하고 공포에 떨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 때 신복 중의 하나가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라고 합니다. 왕이 그렇다고 하는데 아니라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 사람은 자기가 어떤 불이익을 당해도 바른 말은 해야 하겠다 해서 이 말을 한 것입니다. “무엇이 아니란 말이냐?” “이스라엘에 가면 엘리사라고 하는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 선지가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영감으로 모든 사실을 알려 주는데, 심지어 왕이 침실에서 하는 이야기까지 다 알아서 자기 나라 왕에게 알려 주곤 합니다침실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잠자는 곳입니다. 누구랑 잠자는 곳입니까? 왕후 즉 자기 아내와 잠자는 곳이 아닙니까? 침실에서 하는 말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아내 왕후와 자면서 속삭이는 말입니다. 그것까지라도 다 알고 말해 주는데 신하들이 모여서 아람 나라 대군을 동원 시켜 작전을 한다고 하면 그것을 모를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런 이유 때문인지 이 가운데 내통하는 자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신복은 바른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좋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까닭에 왕도 깨달음이 있었고 그 덕분에 신하들이 머리끝 하나 상하지 아니하고 화를 면했다는 것입니다. 바른 말하는 한 사람, 좋은 말하는 한 사람, 옳은 말하는 한 사람이 이렇게 귀한 것입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신부가 한번은 성찬예식을 거행했습니다. 천주교에서 거행하는 성찬예식 때는 포도주와 떡은 가져다 놓기는 하지만 잔은 나누지 않습니다. 떡은 살이라 해서 살 속에는 피가 의례히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잔을 따로 나누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누셨는데 왜 자기들이 이렇쿵 저렇쿵 합니까? 하여튼 신부가 그런 성례를 거행할 때 돕는 소년들이 까운을 입고 와서 온갖 도움을 줍니다. 흔히 그 도우미는 신부가 될 생각을 합니다. 성례식 때 포도주를 담은 큰그릇을 들고 시중을 들던 소년이 그만 실수를 하는 바람에 포도주 그릇이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났습니다. 신부가 어떻게 화가 나는지 당장 나가지 못해!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어라고 심히 책망을 했습니다. 그 간단한 말 한마디에 그 소년이 나가 버리고 교회와 영원히 등지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완전히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그 소년이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대통령입니다. 신부가 되려고 했던 사람이 신부의 말 한마디에 무신론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곳에서도 신부가 성례를 거행하고 있는데 역시 돕고 있던 소년이 그만 실수하는 바람에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려 깨쳐 버립니다. 그 때 성찬을 집례하던 신부가 안절부절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년에게 너 이다음에 훌륭한 신부가 되겠다는 위로의 말을 해 줍니다. 그 소년이 그 말에 얼마나 위로를 받고 감격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가 천주교 신학을 하고 추기경이 되었습니다. 이 분이 훌튼 신(FULTON SHEEN)이라고 유명한 추기경이 되었습니다. 추기경이라고 하게 되면 교황 투표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자기도 뽑히는 날에는 교황이 될 수 있습니다. 훌륭한 추기경으로 훌륭하게 일하다가 일생을 마쳤습니다. 똑같은 실수가 아닙니까? 신부의 말 한마디에 이런 엄청난 차이가 난 것입니다.

사람은 불완전한지라 실수는 얼마든지 용납해야 합니다. 실수를 용납 안 한다면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의적이거나 의도적인 것은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신부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천국과 지옥을 판가름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신복 중의 한 사람은 왕 앞에서 감히 아니라고 말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자기에게 어떤 불이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말은 꼭 해야 되겠다 하여 바른 말, 옳은 말, 좋은 말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많은 신하들이 화를 면하는 좋은 결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경우에서나 좋은 말, 옳은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른 말 하는 한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사람이 보다 더 귀한 사람입니다.

 

셋째, 은혜 받은 한 사람이 보다 더 귀합니다 (13-17)

누가복음 425절에서 27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3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오늘 주인공으로 나오는 엘리사의 선임자입니다. 그런 큰 가뭄이 들었을 때 얼마나 백성들이 어렵습니까?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아도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서 이방인의 땅인 시돈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보내셔서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고 축복하사 그 흉년을 넘기도록 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 은혜 받은 한 사람이 얼마나 영광이요, 복 된 것입니까? 모두 다 받는 중에서 나도 같이 받았다고 하면 영광될 것도 없고, 축복이요, 은혜라 할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나병환자가 그렇게 많았다고 합니다. 즉 엘리사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나병환자는 하나도 고침을 받지 못하고 아람 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 만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기적 같은 사건이 열왕기하서 5장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받는 은혜와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영광이요, 큰복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은혜 받는 한 사람의 기가막힌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3절에서 17절을 보면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보내어 잡으리라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리사가 도단에 있나이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람 나라 왕은 머리가 아주 나빴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에 대군을 보내어 침략을 했지만 그 때마다 패했습니다. 기도하는 엘리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엘리사를 붙잡겠다는 것은 제 무덤을 파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엘리사를 그렇게 쉽게 붙잡을 것 같으면 일이 간단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람 왕이 엘리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보라고 하였습니다. 도단성에 있다고 하자 도단성에 큰 군사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침 일찍이 엘리사의 수종을 드는 사환 게하시가 나가보았더니 아람 군사들이 새까맣게 도단성을 에워싸고 숨통을 조이듯이 조여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엘리사에게 달려갔습니다. “큰 변이 났습니다” “?” “아람 나라 군대가 지금 사면으로 에워싸고 숨통을 조이듯이 조여오고 있습니다그 때 엘리사는 큰 변이 났구만 우리한번 기도하지하면서 하나님 이 사람의 신령한 눈의 열어 주십시오라고 간단히 기도를 합니다. 육신의 눈이 아닌 신령한 눈을 하나님이 열어 주시니까 불말과 불수레가 엘리사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로구나!” 하면서 게하시는 거기에서 참 평안을 얻습니다. 똑같은 상황인데 왜 엘리사는 평안하고, 게하시는 그렇게 공포에 사로 잡혀 떨었습니까? 기도하는 엘리사와 기도 안 하는 게하시는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엘리사가 기도했더니 영안이 열려 거기에서 평안을 얻지 않았습니까? 기도를 통해서만 참 평안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누구나가 다 그것을 본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도단성의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단 한 사람이 받는 그 은혜를 게하시가 받았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없어서 그렇지 그 때 게하시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 최고다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엘리사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게하시의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하나님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어려운 난국에서 엘리사를 보호해 주었고 게하시를 지켜 주셨던 하나님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고 어려운 곤경에 처했다고 할지라도 지켜주십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러분의 하나님이 분명코 여러분들을 지켜 평안함을 주실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산상부흥회 때 분명히 기도원에 올라가 게하시가 받은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의 은혜를 받고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보다 더 귀한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첫째 기도하는 한 사람이 보다 더 귀합니다. 기도 없는 군대보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기도 안 하는 100 사람, 1,000 사람이 기도하는 한 사람을 당하지 못합니다. 둘째 바른 말하는 한 사람이 보다 더 귀합니다. 바르고 좋은 말을 하는 한 사람이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는 대중보다, 또는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 보다 귀하고 복되고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좋은 말 한 마디, 바른 말 한 마디가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셋째 은혜 받는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게하시가 그런 위기 상황에서 돈주고 살 수 없는, 하나님이 주는 평안과 은혜를 체험한 것처럼 이번 기도원 부흥회를 통해서 이런 은혜를 받으시고 체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