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구할까?
본 문: 왕상 3: 1-15
우리나라 교회가 이렇게 부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뭐니 뭐니 해도 한국교회의 부흥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가 쌓인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새벽기도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여러나라 목회자들이 한국교회의 부흥을 배우려고 왔다가 새벽기도회를 보고 혀를 내 둘렀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새벽기도 뿐 아니라 철야기도회 산상기도, 작정기도 금식기도 조찬기도에 20일~ 40일 100일 특별기도회 등등 그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 어떤 이는 아침 금식을 하는데 벌써 여러해를 계속하고 있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오죽하면 이런 말도 있을까? '미국 성도들은 모이면 선교하고 대만 사람들은 모이면 찬송하는데, 한국성도들은 모이면 기도한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
자정예배를 마치고 제가 잘 아는 장로님가족과 함께 기도원에 올라 가는데 산에서 내려오는 차량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기도원에서 새해 첫 시간을 지낸듯한 성도들이 차를 몰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원 안팎의 이곳 저곳에서 엎드려 기도하며 찬송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한 평생 선교사로 있다가 한국을 떠난 선교사 한분이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한국처럼 세계에서 기도를 많이 하는 민족은 없다. 그런데 한국처럼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나라도 드믈 것이다.' 사실 우리처럼 새벽같이 일어나 복을 달라고 울부짖는 민족이 없다. 우리처럼 밤새도록 복을 달라고 부르짖는 민족이 어디 있는가? 이 산 저 산에 올라가 기도하며 몸부림치는 민족이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형편은 어떤가? 우리가 과연 기도의 응답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민족인가?
이 시간 우리는 솔로몬이 어떻게 하여 하나님 앞에 응답받는 사람이 되었는가를 살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1. 솔로몬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른 사람이다.
기도는 누가 누구에게 하는 것일까 ?
기도는 우리 인생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기도이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사람을 향하여 기도할 때가 있다. 우리가 만일 어머니에게 말씀드린다고 어머니를 찾은 후에 다른 동생들의 얼굴을 보면서 말한다고 하면 어머님이 어떤 모습을 보이리라 생각하는가? 너는 왜 나를 찾고 동생과만 이야기 하느냐?할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을 찾기는 하였으나 그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언어라면 그것은 하나님으로 화 나게 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았으면 하나님께 간구하여야 한다. 또 우리가 누구에겐가 부탁을 할 때 나를 아는 사람이면 쉽게 대답을 듣게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따돌림을 받게 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된다.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인 줄 믿는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한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며 어떤 사람이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인가? 오늘 본문을 보면 솔로몬은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의 법도를 따라 행한 아들로 설명하고 있다. 솔로몬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근한 사람이다.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 사람인가?
1)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
2) 왕과 신하 혹은 백성의 관계
3)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이 모든 관계 중에서 어떤 관계가 응답이 쉽겠는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전에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먼저 확인하기 바란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는 사기꾼에 불과하다. 근자에 우리 농촌 총각들과 결혼하는 중국 연변의 조선족 여인들이 결혼식을 마치고 호적을 옮긴 후에는 어디론가 잠적해 버리는 일이 많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히 결혼을 빙자한 사기행위이다. 그들은 한국남자와 결혼하여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다른 곳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었다.(3) 자기 아버지의 법도를 따랐다.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고 싶어한다. 어제 만나서 늦게까지 이야기 했는데도 오늘 또 만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며 손과 손을 맞잡고 마음과 마음을 나눈다. 그들은 하루종일 함께 있어도 싫지 않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예배의 태도에서 나타난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도록 하자! 하나님께 드리는 에배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 예배를 소중히 생각하는가? 예배가 기다려 지는가 ?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조바심을 하는가? 그 날과 그 시간이 기다려 지는가 ?
솔로몬은 기브온에 있는 유명한 산당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 일천 번제란 솔로몬이 그 제단에 바친 번제물이 천마리가 넘는다는 말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바쁜 국정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 제사하며 분향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2. 솔로몬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시인하였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랴' 하는 음성이었다. 이 음성을 들은 솔로몬의 대답은 즉각적인 간구가 아니라 즉각적인 감사였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중요한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은혜를 아는 마음은 응답을 받는 선결조건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나 가끔 듣는 이야기 중에 '부모님이 나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 하면서 자녀들이 부모에게 못된 짓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부모 앞에 여러가지로 행패를 부린다는 말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 가면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 싶은 것이 많이 있다.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내가 한가지 아는 것이 있다면 '내가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 부모님의 사랑의 크기를 말할 수 있을까 ? 하나님의 은혜의 넓이를 아는가? 겨우 표현하는 것이 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하리오며, 하늘을 두루말이로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그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다는 정도이다.
솔로몬은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함으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6) 라고 간구하였다. 자신이 왕위에 앉아 있게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시인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간구하기 전에 먼저 받은 바 은혜를 돌아보고 감사를 드려야 한다. 더 큰 복을 사모하기 전에 이미 주신 복을 헤아려보고 감사를 드려야 한다. 이것이 응답을 받는 비결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신 것이 무엇인가하고 따져드는 것은 불경일 뿐이다. 어리석은 일이다.
3. 솔로몬의 간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말은 상대방의 마음에 들도록 해야 한다. 상대방의 마음에 드는 말은 어떤 것일까 ? 영국의 전래동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세가지 소원이라는 제목의 글인데 숲 속에 사는 난장이가 가난한 할아버지에게 무엇이든지 세가지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집에 돌아 온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무엇을 구할까 생각하다가 너무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커다란 소시지 한개를 갖고 싶다고 말하였다. 소원대로 커다란 소시지가 눈 앞에 놓여지자 화가 난 할머니가 '그렇게도 소시지가 좋거든 당신 코에다가 붙이고 다니시오.' 라고 말하자 소시지가 그만 할아버지의 코에 달아 붙었다. 이제 한가지 소원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할머니는 마지막 소원을 할아버지의 코에서 소시지를 떼는데 사용했다는 이야기이다.
만일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한가지 소원을 말하라!' 한다면 무엇을 말하시겠는가? 평소에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면 솔로몬처럼 신속하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저는 한 칼럼을 감동 깊게 읽었다. 미국에서 노예해방을 위한 남북전쟁이 치열할 때였다. 북군의 전세가 불리하여 쫓기고 있을 때 목사 대표들이 아브라함 링컨을 예방하였다. 대표 중 목사님 한 분이 "링컨,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계시기를 바랄 뿐이요."라는 말을 하였다. 링컨은 이 말을 듣는 순간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 편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들은 깜짝 놀랐다. "뭐요? 대통령께서 지금 하나님이 우리 편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는다구요?" 라고 물었다.
링컨은 "그렇소 나는 하나님이 우리 편이냐 아니냐에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한다는 생각일 뿐이요."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하나님은 태산이요 인간은 태산 아래 있는 작은 뫼에 불과하다. 뫼가 태산의 보호를 받으면서 태산에게 자기의 편이 되라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뜻은 큰 강물이요 인간의 뜻은 그 강물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냇물에 불과하다. 깊고 넓은 강물더러 작은 냇물의 편이 되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을 기쁘게 여겨야 한다.
솔로몬은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 장수와 부귀 영화를 구하지 않았다.
원수 대적을 멸하여 달라고 기도하지도 않았다. 오직 왕으로서 백성을 올바르게 재판하고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간구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다. 솔로몬의 간구를 흡족하게 여기신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부귀 영광 장수를 더하여 주셨다.
우리가 기도를 게을리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그러나 더 나쁜 것은 자기 욕심대로 구하는 것이다. 야고보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지적하였다.
솔로몬은 자기의 사명을 위하여 간구하였다. 지혜 자체를 구한 것 보다도 백성들의 옳고 그름을 판별해 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지혜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혜를 구한 이유가 분명한 것이다. 우리가 재물을 구한다면 그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건강을 구한다면 그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사업과 은사 까지도 그 목적과 이유가 분명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솔로몬은 하나님에게서 지혜를 약속받았다.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화도 덤으로 얻었다. 그러나 얻은 것은 꿈 속에서 얻은 것이었다. 실제가 아니었다 얼마나 실망스런 일이겠는가? 그러나 솔로몬은 실망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돌아가 주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잔치도 베풀었다. 솔로몬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이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이 주님의 분부이다.(막 11:24)
솔로몬은 꿈에 응답을 받고도 확신을 가지고 감사제를 드리고 잔치를 베풀었다. 비록 꿈이 없다하여도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믿고 감사하며 기뻐하는 신앙을 가지자.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응답하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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