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열왕기

[왕상 2:1] 다윗의 진실한 삶 _ 유경재 목사

'코이네' 2022. 4. 28. 10:52

다윗의 진실한 삶

본문: 열왕기상 2: 1- 4  
설교 : 유경재 목사 
 

 

 
우리가 이 땅에서 한 평생을 진실하게 산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20세기처럼 산업발전에 따른 사회변동과 2차에 걸친 세계대전 그리고 동서냉전시대에 따른 국지 전쟁이 일어난 시대에는 사람들이 지조 있게 신념과 신앙을 지키기보다는 타협과 변절을 수 없이 거듭하는 굴절된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20세기 한국의 역사는 조선조의 몰락과 일제의 강점(强占)으로 반세기를 지내고 해방 후 남북 분단과 전쟁, 그리고 60년대 이후 군사정권의 억압적 통치 등으로 얼룩져 왔기에 더더욱 우리의 삶은 폭풍 이는 바다에 뜬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흔들렸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은 그 시대의 권력과 타협하였고, 분명하게 자기 생각이나 이념을 들어내지 않고 상황의 변화를 주시하면서 자기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한 세기에 걸친 격동의 역사를 살면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관들이 흔들리고 전통적으로 지녀왔던 높은 도덕성이나 이념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청빈(淸貧)과 강직(剛直)함을 높은 이상으로 알았던 선비정신은 사라져버리고, 자본주의가 가져다 준 가치관 즉 무한한 욕망의 추구를 통해 부를 이루기만 하면 성공이라는 유물론적 사상이 이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선비정신 같은 것은 보잘 것 없는 것이며, 오히려 성공의 장애물이 될 뿐이었습니다.

초기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왔을 때는 선비정신과 기독교신앙이 조화를 이루면서 보다 높은 이념으로 사람들 속에 자리잡았는데,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굴복하면서 그 기개가 꺾였고, 해방 후 북쪽에 공산정권이 자리 잡으면서 교회는 모두 남쪽으로 내려와 이승만 정권에 적극 협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정권이 몰락하면서 교회도 흔들렸고 60년대 경제성장의 물결에 동승하면서 교회성장주의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다 오늘에 이르러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경제성장주의가 이 땅에 가치관의 몰락을 가져온 것처럼 교회성장주의가 한국교회의 순교정신을 몰락시키고 영적 권위를 모두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정말 지녀야 할 영성은 없고 시대에 뒤떨어진 교리만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어 이 시대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지 못합니다.

다윗의 유언

오늘 읽어 드린 구약의 말씀은 다윗 왕이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 중 일부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힘을 내어 사내대장부가 되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그가 주신 율법을 그대로 지키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솔로몬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만일 네 후손들이 행실을 조심하고 내 앞에서 마음과 정성을 다 기울여 성실히 살아간다면 너에게서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자가 끊기지 아니하리라.

다윗은 젊었을 적에 사무엘에 의해 다음 임금으로 기름 부음 받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성실하게 하나님의 명령과 그 율법을 지켜 행하였습니다. 지금 그는 임종의 자리에서 아들 솔로몬에게 자기처럼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말고 사내대장부가 되어 마음과 정성을 다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다윗의 이 유언(遺言)은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그의 삶의 증언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다윗의 목표는 늘 분명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경주는 항상 분명하였고, 힘들어도 끝까지 그의 달음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가장 훌륭한 왕으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기억되는 까닭은 그가 변함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명령을 충실하게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에게서 중요한 유언을 받았음에도 그의 삶은 아버지와 같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처음에는 성실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 같았는데, 그의 권력이 강화되고 나라가 부강하여 지면서 그의 생각이 변하였고, 점점 하나님의 명령을 묻고 따르기보다는 자기의 뜻대로 행할 때가 많았으며, 그것은 국가의 번영을 가져오기는 했으나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타락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이 그렇게 마음을 다하여 지켰던 정신을 솔로몬은 헌신짝처럼 내어 던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비극의 원인이 되어 그 나라가 둘로 분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가졌던 이상 혹은 그의 신앙은 어떤 것이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상을 현실로 이끌어 낸 신앙

첫째로, 그는 많은 전쟁에 나가 싸웠지만, 자기의 전략이나 우세한 군사력에 의해서 이긴다고 생각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함께 하실 때만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가 아직 목동이었을 때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나갔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욕보이는 블레셋의 골리앗을 보았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군대가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젊은 다윗이 물매돌 다섯 개를 들고 나가 그와 맞서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주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겠다.…  또 주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께 달린 것이다. 주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삼상 17:45-47

이것은 다윗의 전쟁관을 그대로 들어내 주는 말입니다. 그는 모든 전쟁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싸웠고 그래서 항상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구원은 칼이나 창 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분명하게 믿었고, 그 믿음을 그는 죽을 때까지 간직하였습니다. 이런 그의 확신은 시편 여러 곳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대표적인 시편이 44편 6절 이하입니다.

내가 의지한 것은 활이 아닙니다. 나에게 승리를 안겨 준 것은 칼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로 하여금 적에게서 승리를 얻게 하셨으며,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셨기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 하나님만 자랑합니다. 주의 이름만 끊임없이 찬양합니다. 시 44:6-8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무장시켜주셔서 항상 승리하게 하신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싸우러 나갈 용기를 북돋우어 주시고, 나를 치려고 일어선 자들을 나의 발 아래에서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주께서는 나의 원수들을 내 앞에서 도망가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진멸하게 하셨습니다. 시 18:39-40

요즈음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강력한 군비력만이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이라는 믿음은 없고, 파수꾼에 해당하는 많은 군대만이 우리가 사는 성을 굳게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윗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런 가운데서 다윗만은 철저하게 하나님이 전쟁을 좌우하신다고 믿고 그를 굳게 붙잡았고, 그래서 그는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신념은 이상(理想)임과 동시에 다윗의 믿음을 통해서 현실 속에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런 믿음을 이상으로 간직하지 못하고 오로지 현실론에 이끌려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나약함이며, 이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적 통치가 이 땅에 실현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역사의 종말 이후로 미루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신앙은 이원론적 세계관을 지지하면서 하나님의 하나되게 하시는 역사를 거슬려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인간의 왕국

둘째로,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하는 사울왕을 끝까지 원수가 아닌 하나님이 기름 부은 왕으로 대접하면서 자기의 손으로 그를 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처음부터 인간의 왕국을 굳게 세우는 것에 앞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그의 뜻을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처음에는 사랑하였지만, 그가 자기의 왕위를 빼앗을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면서 그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자기를 위해 거문고를 타는 다윗에게 창을 던졌는가 하면, 그를 군대장관으로 임명하여 블레셋과의 전투에 내보내 죽게 하려하였고,  도망다니는 다윗을 찾아다니며 그를 없애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의 추격이 너무도 끈질겨서 마침내 다윗은 블레셋으로 잠시 망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의 이런 적대적 행위를 일찍 알았으면서도 그는 결코 사울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동굴 속에 들어온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손대지 아니하였고, 또 한 번은 그가 잠자는 동안 그의 천막에 들어가 그의 칼과 물병을 가지고 나올 수 있을 정도로 그에게 가까이 접근하였지만 왕의 목숨을 살려 주었습니다. 다윗을 따르는 신하들은 그 때마다 죽이자고 주장하였지만, 결코 사울왕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를 죽이면 더 이상 도망 다니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사무엘에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기에 사울을 이어 왕이 될 것이 분명했는데도 다윗은 결코 사울왕을 자기가 직접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왕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는 서둘지 않았습니다. 다윗에게는 아무리 사울이 악하게 행하여도 하나님이 일단 기름 부어 세운 왕이기에 자기가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고, 여러 상황에서 아주 강력한 유혹을 받았지만, 그는 끝까지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자 몹시 슬퍼하며 그들을 위하여 조가를 지어 불렀습니다. 정적(政敵)이었던 사울왕이었지만, 진심으로 그를 애도하였고, 적의 성벽에 걸렸던 왕의 시체를 거두어다 장사를 지낸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칭찬하고 격려하였습니다. 다윗의 한결 같은 진지한 삶의 자세가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둘로 나뉠 뻔한 나라를 하나로 통일 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정치는 하나님의 역사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하겠습니다. 일반적인 정치 논리는 정적을 인정사정 둘 것 없이 찍어누르고 자기 세력을 확보하는 것이었지만, 다윗은 그런 정치 논리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허락과 그의 명령을 기다리면서 거기에 충실하게 따른 정치를 하였습니다. 결국 다윗은 한 나라의 왕이었지만 그 왕국을 굳게 세우는데 그의 정치적 목표를 두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그의 나라를 세우는데 두었던 것입니다.

다윗을 이어 왕이 된 솔로몬은 아버지와 다르게 철저하게 인간의 왕국을 든든하게 세우는데 전력을 다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그의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영토는 가장 넓었고, 주변의 국가들은 모두 조공을 바쳤으며, 감히 솔로몬의 왕국을 공격하려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중앙집권제가 확립되면서 왕권이 강화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부강한 나라로 부상되었습니다. 그는 성전도 지었지만, 자기 왕궁을 그보다 더 화려하게 건축하였고, 국경 지대를 요새화하기 위하여 성을 많이 건축하였습니다. 아버지 다윗왕의 정책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 했던 다윗과는 달리 인간의 왕국을 강하게 한 솔로몬의 정치는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하였으나 그로 인해 그의 생각이 바뀌었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약화되어 마침내 후궁들이 만들어 놓은 산당에 올라가 제사에 함께 참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 경고하셨습니다.

네가 이러한 일을 하였고, 내 언약과 내가 너에게 명령한 내 법규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네게서 왕국을 떼어서, 네 신하에게 주겠다.

결국 솔로몬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나뉘어 두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한 다윗의 정치와 인간의 왕국을 목표로 한 솔로몬의 정치가 대조되면서 성경은 인간의 왕국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 신앙의 궁극적 목표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삶

오늘 우리가 격동하는 시대와 더불어 우리의 삶이 요동치는 것은 우리의 삶의 목표를 이 땅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격동하고, 경제가 불안정하며, 지구적 환경이 무너져가면서 거기에 뜻을 둔 사람들의 삶도 함께 격동하며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목표를 이 땅에서 잘 되고 이 땅에서 번영을 누리는데 둔 사람들은 결코 그 처음 가졌던 이상과 꿈을 끝까지 지킬 수 없습니다. 정치적 변동에 따라 그의 이념이 바뀌고, 가난할 때는 민중적 투쟁을 하다가 가난을 벗게 되면 기득권을 누리는데 정신이 팔려 버려 옛날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 시대가 변하는데 따라 그런 사람은 수도 없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기득권 속에 머물러 이 땅에서 온갖 특혜를 누리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파렴치한 자들이지만 권력의 자리에도 오르고 부유한 삶도 누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해서 하나님의 역사에 그 삶의 목표를 둔 사람들은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정치적 상황이 격동하여도, 거기에 따라 요동하지 않으며 한결같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서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삶을 온전히 헌신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대개 가난하고 권력과는 거리가 있으며, 이 땅에서는 언제나 고난의 삶을 사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그 목표가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비록 고난을 당하여도 결코 낙심하지 않으며, 그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 날을 기다리며 한결 같은 신앙으로 살아가기에 그의 삶은 진지하고 올곧으며, 그 뜻이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고 처음과 나중이 한결 같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경은 나라를 부강케 한 솔로몬을 칭찬하지 않고, 진지하게 한결 같은 신앙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든 다윗을 메시야의 조상으로 내세우며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과거에도 악한 자들이 한 때 번영을 누렸지만, 결국 그들은 이 땅을 차지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고난 중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뜻과 그 역사를 바라보며 기다린 의인들이 마침내 이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오늘날 격동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목표를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삶에 두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을 아는데 두므로 시대가 바뀌고 정권이 달라져도 변함 없는 믿음으로 흔들림 없이 굳게 서야 할 것입니다.

이제 썩지 아니할 하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경주장에 나선 선수처럼 끝까지 변함 없이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만세반석 위에 신앙의 집을 세우므로 모든 것이 무너질 때에도 무너지지 않고 굳게 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