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가복음

[막 1:40] 내가 원하노니_김창인 목사

'코이네' 2025. 2. 2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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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노니

본문 : 마가복음 1: 40-45

설교 : 김창인 목사(광성교회)

 

 

마가복음 140절에서 45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내가 원하노니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립니다. 본문의 내용은 문둥병자 하나가 예수님께 나왔다가 고침을 받고 전혀 딴 사람이 되어 돌아갔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문둥병자에게 원하는 바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원하노니! 그러니까 문둥병자는 성경에 보게 되면 죄인으로 영해를 하기도 합니다 즉 우리 교인들의 상식으로 혹은 영적으로 해석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문둥병자는 못 고치는 병이기 때문에 버림받은 병입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버림받는 병이요. 사실상 하나님의 용서 없이는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문둥병을 영적으로 죄라고 해석을 하는데 문둥병은 자기도 모르게 3년을 지낸다고 합니다. 의학적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도 모르게 3년을 지낸 다음에 나만 알게 3년을 지내고. 그 다음에는 저 사람 문둥병에 걸린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서 이제는 모든 사람이 다 알게 3년 지내면 끝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모르게 죄 짓는 일이 많습니까? 얼마를 지내고 보니 아이구 내가 그런 죄를 지었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지은 죄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만 알고 짓는 죄가 있고, 그 다음에는 만천하가 다 아는 죄가 있습니다. 하여튼 이 문둥병 자는 예수님께 나와서 고침 받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문둥병과 같은 죄인된 우리도 예수님께 나와서 다 용서함 받고 새 사람이 된 다는 그런 영적인 교훈입니다. 그러면 문둥병자에게 예수님이 원하는 바가 계셨다면 오늘날에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들에게도 주님은 똑같은 내용을 원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I.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40-42)

 

 

그 내용은 40절에서 42절인데 우리들의 신앙 생활 속에서도 변화라고 하는 것을 봅니다. 이 변화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많아도 단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물리적 변화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여기 물이 있습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다 증발이 되어 수증기가 되고 눈에 안 보입니다. 그러다 이것이 물방울로 맺어져서 비가 되어 떨어지면 다시 물이 됩니다. 물이 수증기가 되니 변화가 되고. 그러다가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이번에는 날씨가 추워지면 얼음이 어는데 물이 얼음 되면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또 날씨가 따뜻해지면 다시 또 물이 되는 것은 겉모습만 변했기 때문인데 이것을 물리적인 변화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변화가 많습니다. 못된 친구 사귀고, 기생집 다니고, 사기치며 돌아다니다가 이래서는 안되지 하고 교회에 나와 한 반년은 잘 다닙니다. 그러나 교회 나오지만 잘 적응을 못해서 옛날의 기생집에 다시 가고 옛날에 하던 사기를 다시 치고 못된 친구를 다시 사귀며 옛날로 또 돌아가고 그러다가 다시 깨닫고 교회 나왔다가 또 되돌아가고 이러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겉모양만 변했지 속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질적인 변화가 없습니다.

둘째로는 화학적 변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쇳덩어리가 있는데 이걸 그냥 놔두면 비 맞고. 햇빛 쏘이고, 바람 불고 그러다가 이것이 녹이 슬고 세월이 지나가면 산화되어 버립니다. 아무리 무슨 수를 써도 녹슨 가루를 가지고 쇳덩어리를 다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화학적 변화라고 합니다. 이것은 질적인 변화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이런 변화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 믿기 전과 믿은 후에는 질적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런 변화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문둥병자가 예수께 나와서 변화를 받는 데 세 가지 변화였습니다.

 

 

40절에서부터 42절까지를 보면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나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느라 하신 대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고 하였습니다. 문둥병 환자가 완전히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고 성한 사람, 온전한 사람이 되는 그런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첫째로는 간구하여 가로되 즉 기도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문둥병이 얼마나 불행해진다는 것을 잘 아시지요? 문둥병이 들면 아내가 먼저 쫓아내고. 아들 딸들이 집안에서 쫓아냅니다. 쫓아 내지 않으면 동네가 그 문둥병자를 내쫓고 그 집을 불사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남은 식구라도 살기 위해서는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족에게서 먼저 버림을 받고, 동네에도 못 들어가고 죽으면 송장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완전히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불행 속에서 울고. 정말 괴롭고,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는 상황에 있을 때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붙잡은 것입니다. "간구하여 가로 되"라는 말씀이 기도했다는 말이 아닙니까?

 

 

여러분! 버림받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죽지 못해 사는 그런 지경에 이르렀을 때 주님이 우리 곁을 지나가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때 기도로 붙잡으십시오 기도로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되고 주위 환경에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변화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으니 일은 다 끝난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얻어진 승리입니다. 이 사람이 병에 걸린 사실을 자기만 알고 있을 때까지 남모르게 고쳐 보려고 얼마나 애쓰며 헤매었겠는가를 상상해 보십시오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 어디서도 해결 받지 못한 문제가 예수로 말미암아 해결이 되었고 예수님이 완전히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내 힘으로 안 되고 무엇으로도 안 되고 누구로도 안 되는 문제는 예수님의 도움을 받아야만 할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내 남편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된 친구 사귄 내 아들딸들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예수로 말미암아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사람 자체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람이 변화되면 생활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본문에 "문둥병이 곧 떠나고 깨끗하여 진지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부터,그 순간부터 생활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먼저 가정 생활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문둥병이 걸리면 가정 생활은 이미 포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깨끗해졌으니 집에 돌아가서 가정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생활의 변화입니다. 문둥병이 들면 직장 생활을 못합니다. 사람이 모인 곳에 가서 섞이지를 못하니 어떻게 사회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이 간증을 듣고 싶어서 그의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고 직장에 취직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셋째는 믿음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문둥병이 들면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안식일에 회당을 갈 수가 없습니다. 유월절이나 장막절이나 오순절이 되어도, 그 백성들이 그렇게도 즐기는 축제인 종교적인 행사에 절대로 참여를 못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깨끗해졌으니 안식일마다 회당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절기마다 이제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게 되었고 종교적인 행사에 마음놓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종교적인 활동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굉장히 큰 신앙 생활의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날 이것을 우리들에게 원하십니다. 기도할 문제는 기도할 적에 변화가 일어나고 사람의 힘으로 안될 적에는 예수님의 도움을 받으면 새 사람이 되고 결과적으로는 신앙 생활의 변화까지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오늘날 이것을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II. 증거하기를 원하십니다(43-44)

 

 

43절에서 44절에 보면 엄히 경계하사 곧 보내시며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원하시는 바는 문둥병자가 변하여 새 사람 되기를 원하는가 하면 이제는 나가 증거 하기를 원하십니다. 한번은 예수님께 많은 사람들이 에워싸서 막 밀고 밀립니다. 그런데 열 두해를 혈루증 앓는 여인이 예수의 뒤로 와서 주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혈루증이라고 하는 것은 여자들이 피를 쏟아내므로 냄새나고 더럽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합니다. 그 여자가 앉았던 자리에 누가 앉으면 그는 옷을 벗어 빨고 목욕하고 정한 기간까지 회당에 못갑니다. 혈루증에 걸리면 이처럼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 여자는 돈이 많았는데 돈을 다 허비했고 치료받느라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 했지만 오히려 증세는 더 악화되었습니다. 17년이라는 세월도 헛살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예수를 찾아와야 될 사람이 딴 곳을 찾아다니고 예수를 믿어야 될 사람이 돈버는 일만 찾아 돌아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2년 만에 이 여자가 깨달았고.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전에는 예수에 대한 관심이 없다가 이제는 예수의 소문이 귀에 들렸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 속에 섞입니다. 즉 그 대열에 참여하였습니다. 이제는 주일 날 교회에 나오는 무리들 속에 섞여 나왔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쯤 되면 되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뒤로 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것은 그 여인의 생각에 예수님의 안수 기도를 받으면 그 이상 소원이 얼겠지만,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내 병은 낫는다는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한 일이었습니다. 그럴 때에 즉시 능력이 나타나 혈루 근원이 말랐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주님 앞에 나을 때에는 예수님께 대해서 귀를 기울여야 되고 성도들이 봉사하는 일, 예배하는 일, 전도하는 일 등 믿는 사람의 대열에 참여해야 됩니다. 그리고 분명히 목적 의식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 다녀야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둘러보시더니 "누가 내 옷에 손을 댔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말하기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에워싸 밀고 밀리는 데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하였으나 내 옷에 손댄 사람이 있다, 즉 분명히 목적을 가지고 뜻을 가지고 만진 사람이 있다고 주님은 강조하셨습니다. 여자가 더 이상 숨기지 못할 줄 알고 주님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말했습니다. 즉 증거 하였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은혜 받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 증거하기 원하십니다. 주님은 그 사람을 기어이 찾아내서 간증을 시킨 것입니다. 작은 은혜를 받았다 싶으면 작은 은혜를 나름대로, 큰 은혜를 받았다 싶으면 큰 은혜를 나름대로 만나는 사람에게 열심히 간증을 해야 예수님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에서 계속해서 하신 말씀이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는데 이는 병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네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는 그런 뜻입니다. 육신이 병들었다가 병고침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 안 믿는 사람이 병원에서 병 고침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 일수도 있지만 우리는 예수 믿고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라는 말씀은 재발이 안 되는 완전한 건강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큰 은혜든 작은 은혜든 받았다 싶으면 만나는 사람에게 마다 즉시 증거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원하심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증거하라는 말씀은 그전에는 병들었던 몸, 비참하던 몸, 이런 불행스럽던 몸, 나는 예수로 말미암아 은혜 받고 병 고침을 받아 내 몸에 이런 변화가 일어났고 예수를 보기 원하면 나를 보라고 할 정도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믿기 전과 믿은 후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야 하고, 작년과 금년이 다른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라고 하였는데 이 말을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큰 은혜 받음을 인하여 라는 말입니다. 모세의 명한 제물을 드리라는 말씀은 결례라고 하는 제사를 드려 즉, 요즘으로 말하면 예배를 드려 증거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말을 쉽게 말씀드리면 큰 은혜를 받았으면 예배 시간에 빼놓지 말고 꼭 참여하여 그때마다 증거 하라는 말씀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주일에 예배드리게 되어 있고. 예배드리면 또 은혜를 받지만 예배를 안 드리면 은혜를 못 받고 은혜를 못 받으니 또 예배를 안 드리는 악순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 받는 사람은 예배 시간에 빠지는 법이 없습니다. 예배 시간에 참여함으로 여러분은 은혜 받은 증거를 간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이것을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제물을 드려 증거하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III. 모이기를 원하십니다(45)

 

 

45"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이사야 58장에 보면 안식일 지키는데 세 가지 방법으로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13절에서 14절을 보면 첫째로는 안식일에 오락을 행치 말라는 것입니다 본래 안식일은 축제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7일에 쉬셨다고 하였는데 에덴 동산과 천지 만물을 지어서 우리에게 주신 이 엄청난 축복을 기뻐하며 축제하는 날이 곧 제7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식일 날은 축제일로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사람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경건 때문에 벌벌 떨면서 부동자세로 예배드려야 경건인줄 알지만 그것은 인위적인 경건이요. 축제의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짚고 넘어갈 것은 축제와 쾌락을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오늘에는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주의 날에 정성 드리고 기쁨으로 예배하며 기쁨으로 봉사하는 그런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쾌락으로 착각하여 주일 예배를 제1부에 드리고 설악산을 가고 또 해수욕장을 가면서 육신의 쾌락을 좇는 일을 서슴치 않습니다. 주의 날은 영적인 축제를 해야 합니다. 오락을 행치 말라는 것은 쾌락을 행치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주일날을 귀한 날이라 하여 주일 날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다가 주일날이 지나가면 아쉬워 할 정도로 그 날을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사사로운 일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주일날 열심히 돈벌어 놓고 돈벌어 모았다고 자랑해 보아야 그 돈은 먹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주일을 범하고 번 돈을 누릴 수 있다면 예수께서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될 것 같으면 하나님이 성경에 하라고 하시지 왜 하지 말라고 하셨겠습니까? 이상과 같이 순종하면 세 가지 복을 주신다고 약속 하셨는데 첫째의 복이 "여호와 안에 즐거움을 얻을 것이요" 라는 즐거움의 복입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이 아니요 돈이 주는 즐거움이 아닙니다. 돈이 주는 즐거움은 돈을 잃어버리면 즐거움도 떠나 버리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은 혼자 있어도 즐겁고, 가정에 들어가면 가정 생활이 즐겁고, 교회에 나오면 교회 생활이 즐겁고, 직장에 나가서도 즐거움으로 일하게 됩니다. 이런 즐거움이 없으면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그래서 즐거움이 큰복입니다. 이 즐거움은 영적인 즐거움이요 영적인 축복입니다. 그리고 둘째의 복은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하는 자리의 복입니다. 인맥 즉 사람의 줄을 타고 출세하면 그 줄이 끊어지는 날 여지없이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높은 곳에 올려줄 때는 진정한 출세가 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 복은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라"는 재물의 복입니다. 야곱의 업이 무엇입니까? 형이 죽이겠다고 하여 밤에 맨손 쥐고 도망가서 20년만에 아들 딸 낳고 가정을 이루고 천하 갑부가 되어 돌아옵니다. 보십시오. 주일을 잘 지키면 하나님이 이렇게 복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주일을 안 지키고 돈을 벌어 보아야 모두 헛것이요 가져가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까 안식일을 잘 지키고 즉. 주일을 잘 지키면 하나님이 야곱의 기업으로 길러 주시니 큰복이 아닙니까?

 

 

여러분! 그래서 주일날만 되면 기다렸다가 모여드는 이 모임을 주님이 원하십니다. 물론 엿새 동안은 부지런히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둥병에서 깨끗함을 받은 사람이 나가서 열심히 전도했더니 많은 사람이 모이더라고 본문이 밝히고 있습니다. 전도를 많이 해야합니다. 전도함으로 많이 모이고 사방에서 예수께 나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사방에서 모이기를 원하십니다. 말을 바꾸어 말하면 교회는 별별 사람이 다 모여야 됩니다. 남자 여자가 함께 모이고, 젊은 사람들과 늙은 사람들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부자와 가난한 사람, 이렇게 교회라고 하는 곳에는 사방에서 다 모여야 제구실을 합니다. 즉 각계 각층에서 모일 때 건전한 교회가 됩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오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누구든지 전도하고 누구든지 나와 모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예배 시간에 예수에게 나와야 합니다. 목사에게 나와야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에게 나오라." 이것을 주님은 원하십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리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세 가지인데 첫째로는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성도는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즉 상태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열심히 증거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은혜 받은 자는 예수님이 이렇게 좋더라고 간증을 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열심히 모이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모이지 아니하면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열심히 모일 때 힘이 나고 힘을 모아 세상을 향해 봉사하게 됩니다. 주님의 원하시는 바를 분명히 기억하시고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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