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히브리서

[히 10:23] 사랑하기 위해 모여야 한다

'코이네' 2024. 3. 11. 21:06

사랑하기 위해 모여야 한다 

본문 : 10:23-25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도 인간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을 사랑하셨으며 그 사랑을 확증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보다 다른 것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사람들인 교회마져도 그러한 풍조에 동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속에 나타나는 갈등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점점 적어집니다. 이제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사람이 소중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만남을 갖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말세적인 분위기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신앙인들에게 진정한 신앙인의 생활을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위기가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신앙인들은 결코 그렇게 살아서는 않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생활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1. 모여라(10:25)

우리는 사랑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저번 주에 그리스도의 바보같은 사랑, 낭비적인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사랑에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롭게 살겠다고 하나님 앞에 재헌신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리스도의 사랑의 시작은 서로의 만남으로부터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경험하려는 우리는 먼저 서로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모이지 않고 우리는 사랑을 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로 교회의 형제와 자매가 만나는 시간을 포기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다고 비난합니다. 그리고 또 생각하기를 내가 모이지 않는 것은 모임에서 사랑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좀 더 정직하자면 나에게 경제적인 모임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기를 희망합니다. 얼마나 모순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신을 낭비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를 감동 시켰으며 우리를 변화 시켰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러분! 어떤 사람들의 습관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헬라적 의미로 이 말은 모임을 항상 뒤에 버려 두는 행동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모임은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강조해 왔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징도 교회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진정한 천국의 가족 개념도 교회의 형제 자매라는 표현을 통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형제 자매의 모임보다 다른 모임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가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기대하는 형제 자매의 사랑은 이론으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제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모임보다 다른 모임을 더 의미있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리의 구체적인 형제와 자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천국에서는 형제요 자매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적어도 유형적인 교회의 형제 자매는 아닐 것입니다. 만약 그래도 형제고 자매라고 말해야 한다면 거기에는 형제와 자매간에 있어야 할 사랑이 없는 습관적인 관계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권하여우리는 서로에게 권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의 영적 가정을 회복하자고 권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교단체가 아닙니다.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고상한 학교가 아닌 것입니다. 교회는 거듭난 생명들이 형제 자매로 모여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 뜻을 함께 나누는 살아있는 영적인 가정인 것입니다. 진정 우리가 사랑을 원한다면 우리는 조건 없이 모여야 할 것입니다. 형제와 자매간에 갈등과 긴장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피할 문제가 아니라 서로 충고하고 권면하고 이해하며 그래서 하나가 되어 가는 경험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임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2. 모임의 성격(10:23-24)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우리의 모임의 근거는 믿을 수 있는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한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생과 소망을 주시고 지금도 함께 하신다는 그 분의 약속이 있기에 그 약속에 근거해서 모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서로에게서 떨어뜨리려 합니다. 그래서 깊은 외로움과 분노를 갖게 합니다. 더 이상 그리스도의 사랑은 없다라고 말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형제 자매의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찾아 헤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사랑을 보고 싶어서!

물론 그들에게도 문제는 있습니다. 그 사랑을 자신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잃어버리고 있는 연민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치유할 교회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이어 이렇게 말합니다.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교회가 예배외에 어떠한 성격으로 있어야 하는 가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는 권면입니다. 서로 돌아본다는 말은 능동적인 표현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서로를 생각하는 일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랑과 선행은 모임의 목적입니다. 그리스도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도덕성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동안 우리는 사랑을 말했으며 형제요 자매라 불렀지만 그 안에 진정으로 나를 주고자 하는 주님의 마음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괴롭지만 이 사실을 시인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교만한 죄인이었습니다. 자기를 포기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교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사랑에 목말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베풀고도 억울해 했던 것입니다. 기쁨과 평안과 풍성함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투자를 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말씀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새로운 시작을 우리의 안에서부터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진정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서로 부족하지만 주님은 충분하십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괴로워 하지말고 우리가 받은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줍시다. 누군가의 회개를 기대하지 말고 내가 회개하고 누군가의 겸손을 가대하지 말고 내가 겸손합시다. 그리고 누군가의 사랑을 기대하지 말고 내가 사랑을 시작합시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당연한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