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히브리서

[히 7:1] 하나님의 제사장

'코이네' 2024. 3. 5. 17:39

하나님의 제사장 

7:1-3

 

 

지난 몇 주간 동안에 믿음의 초보를 버릴 것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믿음의 초보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맹세도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은 히브리서의 본 궤도를 이탈한 것들이었다.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본론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을 설명한다. 특히 본문에서는 멜기세덱을 들어서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을 설명하고 있다. 멜기세덱은 누구인가? 창세기 14장에 기록되어 있는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 한다. 135년 경의 랍비들은 멜기세덱이 노아의 아들 셈이라고 했는데 루터는 이 견해를 지지하였다. 필로는 그를 신적 이성과 인간적 영혼을 지닌 인물로 보기도 하였다. 오리겐은 그를 천사적 존재로 보았다. 3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그를 성령이 잠정적으로 화육한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Hieracas).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견해는 단지 추측일 뿐이다. 결론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멜기세덱은 신화적 인물이 아닌 실재적 인물이었다.

 

본문 3절에는 멜기세덱에 관하여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는 자라고 하였다. 실재적 인물이라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이 말에 대한 의미도 바로 알아야 하겠다. 몇 가지로 추론이 가능한데 그 중에 하나는 멜기세덱의 부모가 보잘것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말이라는 학설이다. 헬라의 저술가들이나 라틴의 저술가들은 이런 의미의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유피리데스에 나오는 아이온은 자신을 천민 출신이라고 하면서 나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기에 아폴로의 신전에 나간다라고 했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시리아 사본에서는 본문을 그 아비와 어미가 족보에 기록되지 않은이라고 번역하였다. 다시 말하면 멜기세덱은 족보나 계보가 없는 사람이란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아브라함의 족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혈통으로 된 성직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된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고 했다. 제사장으로서 그는 그의 직책의 시작과 종결에 대해 시간이 제한되지 않았다.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은 어떤 정해진 시간에 제한되어 있지 않았으며 직책의 제한이 없는 제사장이다. 다만 여기서 멜기세덱의 족보 없음과 시작도 끝도 없음이 강조가 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사역의 예표를 강조하기 위함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멜기세덱은 예수님의 탄생, 죽음, 부활, 승천, 재림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알파과 오메가 되신 예수님을 가장 근접하게 설명해준다.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그는 캄캄한 어둠 속에 빛을 비춘 자이며 예수님의 영원한 신비를 가르쳐준 사람이다.

 

 

하나님의 제사장의 신분

 

멜기세덱의 제사장의 신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의 신분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의 우월함은 예수님의 제사장 사역이 구약의 아론의 것보다 훨씬 더 우월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는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그의 제사장의 직위는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인데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직분을 주신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다. 최고의 하나님이시다. 만유에 대한 위엄과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다. 창조주요, 섭리주요, 주속주요, 아들을 보내신 분이시다. 초월하시면서도 내재하시는 분이시다. 바로 그 분이 세우신 제사장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제사장직은 권위가 있었다. 그는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이었다. 사람의 종이 아니었다. 그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의 직위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보여준다. 그는 왕같은 제사장이었다. 그는 살렘의 왕이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왕되심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의 권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제사장의 권위는 하나님이 세워주셨다. 이 권위는 누구도 침범하지 못한다. 사울은 자신이 왕이라고 해서 사무엘이 오지 않는 동안에 제사를 집행했다가 결국은 그것 때문에 폐위되었다(삼상 13:8-14). 민수기 12장에 나오는 사건을 보면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할 때에 모세만 선지자가 아니라 자기도 선지자라는 주장을 하다가 문둥병에 걸렸다. 모두가 하나님이 세우신 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때 생기는 결과들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이다. 나이나 경험으로 무시되어져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권위로 인정되어야 한다. 멜기세덱의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였다.

 

 

하나님의 제사장의 사역

 

제사장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부터 세우심을 입은 자이기에 특별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권위를 받았다. 그가 받은 권위는 무엇이며 그는 그 권위를 어떻게 사용하였는가?

 

1. 복을 빌었다.

 

멜기세덱은 전쟁에서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맞이하면서 그에게 복을 빌어주었다. 14:17-20에 보면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잡혀가게 되자 자신이 훈련시킨 군사를 데리고 가서 조카 롯은 물론이요 빼앗겼던 모든 것을 다 찾아왔다. 그 때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사웨 골짜기까지 마중나갔다. 아브라함이 그것을 먹고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었다.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기는 하였지만 언제 다시 침략해 올지 모르는 그들을 생각하면서 다소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멜기세덱은 그러한 아브라함의 심정을 미리 읽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축복해주었다. 아브라함의 형편을 잘 알았기에 구체적으로 축복을 할 수 있었다. 개인 자격으로 축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으로 빌어준 축복이다. 축복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고 축복을 이루어 주시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다. 멜기세덱은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으로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다.

 

21:5 이하에 보면 복을 비는 것은 제사장의 임무로 되어 있다. 또한 민 6:24-26에서도 제사장은 백성을 축복하였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을 가지고 백성을 축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그 축복을 이루어주신다.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지만 은혜로운 허락 하에서 하나님의 정하심에 따라서 특정한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복주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한 집안의 제사장으로서 부모가 자녀를 축복해 주는 것은 그 좋은 실례가 된다. 9:26, 27:27, 28:45에 보면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축복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 축복은 반드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저주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축복하여야 한다.

 

그러나 명심할 것 한 가지가 있다. 잘못된 자가 축복하면 그 축복은 오히려 저주가 된다. 흡니와 비느하스는 잘못된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법궤와 함께 축복하는 일을 담당했다. 그 결과는 저주였다. 축복도 중요하지만 축복하는 자의 자세도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멜기세덱의 축복은 온전한 것이었다. 그는 아브라함의 형편을 잘 알고 축복을 빌어주었으며 하나님은 그가 아브라함을 위해 빌어준 축복을 이루어 주셨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모든 형편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의 간구가 무엇인지를 아시며 그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주신다. 세상사에 지치고 피곤해 하는 그의 백성들의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축복해 주신다. 입을 열기 전에 들어주실 것이며 말을 마치기 전에 응답해 주실 것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복은 영원한 복이다.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마중나갔다고 하는 말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그것은 당시에 먹을 수 있는 양식이다. 그것 때문에 전쟁에 지친 아브라함은 기력을 회복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성찬을 생각나게 한다. 이것은 세상사에 지치고 헤메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으므로 영적으로 소성케 되는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다.

 

2. 십일조를 취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의 환대를 받고 특히 멜기세덱이 주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수를 먹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한편 멜기세덱은 거절하지 않고 십일조를 취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십일조를 요구하셨다.

 

십일조란 무엇인가? 자세한 것은 다음 주에 취급하기로 하고 오늘은 개괄적인 것만 설명하고자 한다. 십일조란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레위인의 생계 수단을 위해서 드려졌다(18:24). 십일조는 창 14:20에 처음 나오는데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받은 것이 십일조의 시초가 된다.

 

십일조는 성별된 것으로 하나님의 소유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드리라고 명령하셨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받은 것의 극히 작은 부분을 드리는 것이다. 십일조는 축복받는 비결이며(3:10) 하나님께 드려지는 최소의 헌물이다. 십일조는 신앙고백의 구체적 행위이며 십일조 헌금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모습을 증명하는 행위다.

 

십일조는 의무다. 소득 중에서 정해진 몫을 그 분께 드리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린 것도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다. 예수님도 십일조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다. 11:42, 18:12 그리고 마 23:23에서 십일조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멜기세덱이 십일조를 받은 것은 제사장의 사역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온전한 십일조를 받으실 분이심을 보여주신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는 축복을 받게 된다.

 

3. 의와 평강으로 다스렸다.

 

멜기세덱은 왕으로 다스렸다. 멜기세덱의 멜기나의 왕이란 뜻이고, “세덱란 뜻이 있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은 의로 다스리는 왕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다. 멜기세덱의 의로움은 예수님의 의로운 통치를 예시해 준다. 하나님의 통치는 의를 기초로 한다.

 

의가 없으면 불평이 생긴다. 의는 공평이다. 자식 사랑도 공평이 있어야 하고 교인 사랑도 공평이 있어야 한다. 자식 사랑에 공평이 없는 이삭의 가정은 야곱과 에서의 불화를 가져왔다. 화평을 위한 기초가 바로 의에 있다. 의가 없이는 화평이 있을 수 없다. 아모스 선지자의 말대로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나라에 평강이 있게 된다. 예수님이 의로 다스리는 나라에 진정한 평강이 있게 된다. 개인의 평화, 가정의 평화, 교회의 평화, 국가의 평화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기초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었다. 살렘은 평강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평강의 나라다. 그런데 평강은 바로 의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통해서 평강이 나오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은 은혜와 진리(1:14), 인자와 정의(3:3), 의와 화평, 긍휼과 진리(85:10) 등으로 설명되는데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의가 있은 후에라야 평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32:17에서도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고 했다.

 

의와 평강이 있는 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있는 곳이다. 공의가 없는 곳에서는 평강이 있을 수 없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리라고 했다. 평강은 의를 구함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5:1에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그 후에 화평이 있다고 했다. 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만 화평이 오게 된다.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며 평강의 왕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직분의 영원성

 

멜기세덱은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고 했다. 멜기세덱의 제사장의 직분의 영원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의 영원성을 예표한다. 멜기세덱이 영원한 직분을 가졌다는 것은 그가 죽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의 생애는 끝났지만 그의 영광스런 직책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말이다. 110:4에서 멜기세덱의 직책이 아직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사람의 반차를 좇은 것이 아니기에 후계자나 대리자도 없다.

 

멜기세덱의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고 했다. 그는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으며 왕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의의 왕으로 평강의 왕으로 있었으며 아브라함을 복준것, 예물을 받은 것, 육체의 혈통을 따라 제사장이 되지 않은 것, 레위의 규약에 제한이 없는 것등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한 것들이었다.

 

멜기세덱의 이러한 특징들은 예수님께서 레위 가문의 혈통을 밟지 않고도 어떻게 대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멜기세덱의 이런 모든 일들은 예수님의 대제사장 족보 시비를 사전에 제거할 수 있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결론을 맺는다.

 

멜기세덱의 대제사장 사역은 단순한 개인 사역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을 예표하는 하나님의 대제사장 사역이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사역을 어떻게 감당하셨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성도들의 궁극적 복을 위해서, 의와 평강으로 다스리셨다. 지금도 우리를 그렇게 다스리고 계신다.

 

하지만 히브리인들은 듣기에 둔하였다. 그들은 그저 강해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면 되는줄 알았다. 만일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면 그런 것들은 자기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런 자들은 자라지 못한다(1:10). 퇴보할 뿐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머리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영혼을 성장시키지 못한다. 그 행실이 하나님을 향하여 감동되어야 한다.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의의 왕, 평강의 왕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했던 멜기세덱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발견하고 그 분을 마음 속에 모시므로 평강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