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히브리서

[히 6:1] 하나님께 나아가는 신앙

'코이네' 2024. 2. 27. 21:13

하나님께 나아가는 신앙 

성경 본문: 6:1-2

 

 

기독교신앙의 배경에는 나아가는 신앙 즉 미래지향적이며 전진적인 사상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특히 히브리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그 중심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본 서신을 통해서 "나아가자"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사람은 누구든지 두려움이나 제한 없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율법의 장벽에 막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사람들은 율법에 지시된 계명들을 충실하고도 순전히 잘 지켜야만 했는데 사람의 행위로서 율법을 다 지킨다는 것은 실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번째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는데 그것이 성막을 통해서 드려지는 제사의 제도였다. 제사장직을 통해서 올바른 희생의 제물을 드림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제사장이란 말은 라틴어로 "폰티펙스"라는 단어로서 "다리를 건설하는 자"라는 뜻이다. 즉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다리를 건설하는 중보자인 셈이다. 이처럼 희생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과의 교제는 회복되었지만 사람들은 언제고 희생제도에 얽매여서 항상 자신의 허물을 가리우느니라고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되시는 예수님께서 직접 희생의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몸찢고 피흘리심으로 단번에 제사드려져 사람들은 더이상 희생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외치시며 운명하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하나님과 사람과의 막혔던 담이 제거되고 자유로운 교제의 통로가 열리게 된 것이다.

성경 히브리서 10:19,20"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롭로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희의 육체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몸찢고 피흘리시므로 우리는 언제나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선언한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록된 "나아간다"는 단어를 찾아서 그 뜻을 상고해 보고자 한다.

 

1)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우선 믿음이 있어야 한다.

 

히브리서 11:6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다. 즉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믿음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또 히브리서 7:25에도 보면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예수를 힘입을때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신다는 확신에 찬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중보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지 않고 또 믿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열려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힘있게 증거하기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돌로서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4:11,12) 고 담대해 외쳤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에게 제일 중요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힘입으면 우리가 반드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또 그는 항상 살아서 나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계시하실 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나아갈 자가 없느니라"(14:6)고 선언하셨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 나와 함께 동행한다는 사실을 믿고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은 에녹의 믿음이다.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 동안을 동행하다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늘로 데려감을 받았다. 에녹이 살았던 당시에는 가인의 계열과 셋의 계열이 서로 대딥할 당시였다. 즉 불신의 세력과 믿음의 세력이 서로 다툼을 하던 상황에도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 아모스 3:3에도 "두 사람이 의합치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느냐"고 말씀하심으로 뜻을 같이하지 않으면 한시라도 동행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과연 오늘날의 이 시대는 어떤가? 하나님게 나아가고자 하는 믿음의 세력과 육신의 정욕의 세력을 쫓고자 하는 불신의 세력이 서로 공존대립하는 상황이 아닌가? 우리는 에녹과 같이 믿음을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동행하고자 늘 애쓰며 노력할 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게될 것이다.

 

2)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깨달아야 한다

 

본문은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과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로 나아갈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본문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라고 했는데 여기서 '버린다'는 말은 "확실하게 깨달았다"는 뜻이다. 즉 완전하게 이해하고 습득했으면 다시 교훈 받으려교 애쓰지 말고 버리라고 강조하는 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초보적 기초에만 얽매여서 닦으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적인 단계를 깨달았으면 정체하지 말고 더 깊은 말씀의 도를 깨달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답답한 심정으로 우리에게 권면하기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먹을 자가 되었도다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치 못한 자"(5:12)라고 했다. 우리가 말씀의 초보적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게 되면 항상 젖먹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적단계를 벗어났으면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깊이 있는 말씀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초보적 단계를 여섯가지로 구분해서 열거하고 있다.

첫째,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회개하는 것을 왜 해야 하는지 우리가 회개하는 것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이유와 방법을 몰라서 계속 배워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마찬가지다.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과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받았다는 사실을 다시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셋째, 세례들도 우리는 물세례와 불세례 즉 성령세례를 경험함으로써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네번째 안수는 기도를 말하는데 우리가 왜? 누구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몰라서 다시 배울 필요가 있을까?

다섯번째 죽은 자의 부활도 믿는 자의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불신자는 심판의 받게 된다는 사실은 기독교의 초보이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배울 필요가 없다 마지막으로 영원한 심판도 마찬가지다. 심판주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몰라서 반복적으로 계속 가르치고 배워야 할까?

우리는 초보적 단계에서 원칙만 배우려고 고집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깊이있게 깨달아 그것을 생활속에 실천하며 목표를 세우고 전진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

 

3)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한다.

본문 6:2의 마지막 부분에 "오직 완전한데로 나아갈지니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는 말씀은 온전히 성숙함에 나아가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완전한 데로 나아갈 수 있을까? 히브리서 10:22에 보면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기록되어져 있다 .

그러므로 완전한 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1) 회개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히브리서 10:22의 말씀은 가장 중요한 하나님께 나아가는 신앙으 가자세에 대해 잘 말씀해 주고 있다. 언제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마음속 심령에 뿌려지게 되면 우리는 양심의 악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히브리서 9:14에는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겠느뇨?"라고 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죽은 양심과 죽은 행실"을 깨닫게 하고 이를 회복시켜 주시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언제나 말씀의 물로 자신을 정결케 하는 회개함이 있어야 한다. 히브리서 10:22"몸을 맑은 물로 씻는다'는 말씀속에서 우리는 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 에베소서 5:26에도 보면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는 말씀가운데도 물은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증명하고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언제든지 비추어보면서 마치 옛날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 물두멍에서 손을 씻고 난 다음에 물에 자신의 몸을 비추어보고 깨긋한 몸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갔듯이 우리도 하나님앞에 나아갈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비춰 살펴서 죄를 깨닫고 양심의 악을 회개하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애쓰는 삶을 살아야 완전한 데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히브리서 4:16"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했다. 우리의 신앙이 완전한 데 나아가기 위해서는 긍휼하심을 얻기 위해 또한 은혜를 얻기 위해 우리는 힘찬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없이는 온전하고도 완전한 신앙에 결코 이를 수 없다. 기도할 때만이 우리를 돕고자 하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도우실 수가 있다. 성경 로마서 8:34에도 "예수는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여 기도해 주시는 분"이라고 했다. 주님은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연약함을 아시고 체휼하시며 동정과 사랑과 도움을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얻는 방법은 기도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와 때를 가리지 말고 언제든지 기도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완전함에 이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3)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능욕을 지고 가는 고난을 감수해야 한다.

 

히브리서 13:12,13"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고 했는데 이처럼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성문밖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으니 우리도 예수님께서 져주시는 능욕의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영문밖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지고가야 할 십자가는 영광의 십자가만 아니라 고난의 십자가 수치의 십자가 아픈곳을 찌르는 십자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내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난을 감수할 때 완전함에 이르러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라"(벧전 3:17)고 했다. 우리에게 고난이 닥쳐올 때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에 위로를 삼아 담대하게 완전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할 것이다. 히브리서는 이제 구약적 제사 방법으로는 하나님께 나아올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 히브리서 10:1에도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하실 수 없느니라"고 했으므로 이제는 율법이나 희생제사로는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케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 온전하고도 완전한 데로 나아갈 수 있는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와 말씀을 통해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되 먼저 회개함으로 나아가고 기도함으로 은혜를 구하면서 나아가고 능욕의 십자가를 지는 생활을 살고자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완전히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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