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히브리서

[히 8:6] 우리 마음(심비)에 새긴 하나님의 법

'코이네' 2024. 3. 5. 17:53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

히브리서 8:6-11

 

 

우리는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으로서, 영생을 얻은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인으로서 이 한해를 어떻게 살아왔나? 과연 나는 그리스도인답게 한 해를 살아왔는가? 라고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좀 막연한 질문인 것 같습니다만 오늘은 성경이 보여주는 어떤 한 구절에 주목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인가? 그리고 나는 그처럼 이 한해를 살아왔나? 하는 것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첫 언약과 새 언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히브리서 87절부터 보면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첫 언약은 처음에 세운 언약, 다시 말하면 옛 언약이란 말입니다. 구약 출애굽 당시에 광야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해 주신 십계명 언약을 말합니다. 그리고 새 언약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그로 말미암아 인간들에게 세워 주시는 언약을 말합니다. 첫 언약은 바로 "구약"입니다. 그리고 새 언약이 "신약"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89절에서 이 새 언약과 첫 언약은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둘이 서로 어떤 면에서 어떻게 다르다는 말씀입니까? 히브리서 810절입니다.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 이것이 새 언약의 특징이요, 이점에서 구약과 신약의 차이가 있다고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상당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어디에서 인용해 왔나 살펴보십시다. 그 원래의 성경 본문도 좀 같이 살펴보아야 겠습니다.

레위기 3131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이것이 바로 새 언약의 특징이요, 또한 이것이 구약의 옛 언약과 다른 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옛 언약 첫 언약 때는 어떠했었습니까? 구약의 십계명 언약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새겨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법을 어디에다가 새겨 주셨습니까? 두 돌판에 새겨 주셨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일 동안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두 돌판에다가 친히 새겨서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셔서 그 백성들로 하여금 그 율법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돌판에 새겨진 말씀을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이 오시고 난 신약 시대에 예수님을 통해서 체결해 주신 새 언약, 즉 하나님의 법을 어디에다가 새겨 주셨다고 했습니까?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 속에 기록하리라." 이번에는 하나님의 법을 사람의 마음 판에, 생각 속에 기록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입니다. 구약에서는 돌판에다가 하나님의 법을 새겨 주셨고 신약 시대에는 사람의 마음 판에다가 하나님의 법을 새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에다가 써 주시는 것이 더욱 효과가 있겠습니까? 돌판에다가 써 주시는 것과 사람 마음속 마음 판에 써 주시는 것. 이 둘 가운데서 어디에다 써 주시는 것이 더욱 효과가 있겠습니까? 물론 후자입니다. 돌판에다가 써 주셨더니 백성들이 그 법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람의 마음 판에다가 새겨서 기록을 해 주시므로 지킬 수 있고 더욱 효과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돌판은 던져 버릴 수 있습니다. 깨뜨려 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기록해 주신 돌판을 모세가 던져서 깨뜨린 적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돌판은 인간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던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깨뜨려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 판에 말씀을 새겨 주시면 우리가 마음대로 던져 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방법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영영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러면 과연 인간의 마음에 무언가를 기록하고 새겨 주신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처럼 인간의 마음에 무언가를 새겨 주신다는 구절들을 성경 다른 곳 여러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이 사실을 믿기 쉬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3"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사람의 심비, 즉 마음 판에 무언가를 써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무엇인가가 쓰여져 있는 기록되어 있는 편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영으로 말씀을 새겨 놓으신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일종의 기록된 글이 있는 편지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아도 우리 성도들의 마음 판에는 무언가가 쓰여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것은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영으로 쓰셨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부으셔서 하나님의 법을 우리 마음에 새겨 주셨답니다.

신명기와 잠언에 나오는 하나님의 명령 몇 가지를 보겠습니다. 신명기 66"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 잠언 33"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잠언 621"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잠언 73"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 판에 새기라" 이러한 명령들을 보아도 과연 인간의 마음 판에다가 어떤 말씀을 새길 수 있는 일이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명령을 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신약 시대에 예수를 믿는 자들의 마음 판에 하나님께서 이것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말씀을, 하나님의 법을 새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 말씀이 성육신 되었다. 말씀이 육신을 입었다. 말씀이 육체 안에 거한다."라고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과연 말씀이 사람의 마음 안에 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곧 마음 판에 새겨져서 거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있습니다. 골로새서 316"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요한일서 214"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요한복음 538"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자는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한다는 것입니다. 곧 시내산에서 돌판에 새겨 주시듯이 예수를 믿으면 마음 판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법을 새겨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왕때에 드디어 성전이 건축되었습니다. 성전을 다 건축하고 난 다음에 성전에 여호와의 법궤를 메어 와서 성전 제일 가운데 지성소에 모셔 두게 됩니다. 그런데 그 법궤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습니까? 두 돌판이 들어 있었습니다. 전에는 거기에다가 만나도 넣었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도 넣어 두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두 가지는 없어지고 두 돌판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 두 돌판이 제일 중요하니까 그랬나 봅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말씀을 새긴 두 돌판을 법궤에 넣어서 성전의 제일 중앙에 모셔다 놓았습니다.

왜 하필 두 돌판을 하나님의 성전 중앙에다가 모셔 놓았을까요? 그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성전의 제일 중심부에는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잡고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깊은 의미가 있는 상징입니다. 성전 중심부에 새겨진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을 신약 시대로 비교해 보십시다. 성전은 성도의 몸을 상징합니다. 몸 중앙에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 시대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겨 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어떠한 상태가 됩니까? 몸 중앙에 새겨진 말씀이 있게 됩니다.

구약 때에도 똑같습니다. 솔로몬 성전 중앙에 새겨진 돌비가 있었습니다. 구약 성전에는 새겨진 말씀이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의 중심 마음 판에 하나님의 법을 친히 새겨 주실 것을 예표하는 사건입니다. 이같이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솔로몬 성전에 그같은 일을 행하신 것은 신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성도들 마음속에 말씀을 새겨서 간직되게 하시려는 것의 예표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말씀을 새겨 주셨다는 것을 이상과 같이 성경 여러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 단계는 무엇입니까?

마음 판에 새겨져 있는 이것이 자꾸 마음에서 떠올라야 합니다. 생각 속에 새겨진 것들이 자꾸 생각으로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야 그대로 행할 것 아니겠습니까? 베드로후서 112"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15"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

성도들은 이미 진리에 서 있습니다. 곧 진리를 영접한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하는 이유는 이미 새겨져 있는 마음의 생각들이 다시 떠오르게 하려고, 생각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예수를 영접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 마음에 새겨져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교회 와서 말씀을 듣고 또 듣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꾸 들으면 우리 속에 있는 진리가 자꾸 일깨워진다는 것입니다. 마음 판에 새겨져 있는 말씀이 자꾸 생각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19절 말씀을 주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주의하고 있으면, 주목하고 있으면 마음속에서 샛별이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난다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 판에 새겨 주셨기 때문에 마음을 가다듬고 주의하고 묵상하고 있으면 깨달음이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첫째로 주의해야 합니다. 깊이 생각하고 묵상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둘째 일깨워 주는 말씀을 자꾸 들어야 합니다. 경건 생활, 말씀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판에 새겨진 것들이 떠오릅니다. 생각으로 떠오릅니다. 시인들도 시상이 떠오른 후 시를 써야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보이는 대로 행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부어 주신 하나님의 법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영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진리가 너희 속에 없음이니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들을 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영을 받은 사람은 진리의 말씀을 전할 때에 속으로 "아멘" 하게 됩니다. 깨달아 집니다. 일깨워 집니다. 생각이 떠오르게 됩니다. 생각이 나게 됩니다. 자기 속에 이미 있기 때문에 생각이 나고 일깨워지게 됩니다. 물 속에 무엇이 있으면 막대기로 휘 저을 때 무언가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으면 아무리 막대기로 저어도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이제 하나님의 말씀은 막대기와 같은 것입니다. 경건 생활은 막대기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경건 생활을 하면, 마음속에서 생각이 일깨워집니다. 마음속에 있는 진리가 일깨워 집니다. 막대기로 마음속을 휘 저을 때에 마음속에서 생각이 솟아오르는 것. 이것이 성령의 감화입니다. 이처럼 무언가 마음에 감동이 올 때에 그것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행하는 것이요, 이것이 성령으로 사는 것이요, 이것이 성령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무언가 떠오릅니다. 기도할 때에 무언가 마음속에서 생각이 떠오릅니다. 집에서 성경 볼 때에 무언가 떠오릅니다. 조용히 묵상할 때에 무언가 떠오릅니다. "내가 더욱 열심히 기도 생활 해야 하겠다." "내가 참아야 하겠다." "내가 잘못하고 있구나." "내가 겸손해야 하겠다." "내가 회개해야 하겠다." "내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열심히 해야 하겠다." 이것이 영의 생각입니다. 이것을 좇아 행하는 것이 성령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우리는 올 한해 이렇게 해 왔습니까? 깊은 기도와 깊은 묵상과 말씀 묵상 속에서 깨달아지는 그 생각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육신의 정욕대로 그냥 행하면서 살아오지는 않았던가요? 안목의 정욕대로 보이는 대로 내 육신 편한 대로 살아 버리지는 않으셨는가요? 그냥 혈기대로 행동해 버리고 나중에 후회하는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는 않으셨는가요?

 

말씀들을 때에 떠오르는 선한 생각들, 또한 깊이 묵상하면서 기도하여 떠오르는 선한 생각들 이것들을 붙잡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의 감동으로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선한 하나님의 명령들 이것을 실천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렇게 사는 자들이 자기 심령 속에 진리의 영을 모시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이 바뀝니다. 우리의 삶이 바뀝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그 사람의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속에 거하시는 주님의 말씀의 인도대로 살기로 결단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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