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전도서

전 12:13, 솔로몬이 말하는 사람의 본분

'코이네' 2023. 7. 5. 17:37

사람의 본분 

전도서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저 유명한 이스라엘의 지혜자 솔로몬 왕의 말입니다. 그는 그가 받은 지혜를 동원하여 하늘 아래서 행해지는 모든 인생사(人生事)를 궁리해 본 사람이었습니다(1:13). 결국 그는 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는 회의적인 허무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혹자는 솔로몬의 이러한 독백을 가리켜 전도서를 히브리 종교와 헬라 종교의 갈등이라고도 하였습니다. 혹자는 경건한 이스라엘과 사두개 간의 대립이라고도 하였습니다. 혹자는 또 말하기를 이는 스토아 철학의 번영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잘못된 생각들입니다.

인생이요, 피조물이요, 죄인이었던 솔로몬은 이러한 인생의 실존적 상황에서 빠져 나와 너희는 청년의 때 창조자를 기억하라(12:1)는 궁극적 신앙의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더우기 오늘 말씀처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의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 이것이 인생의 본분이라고 하므로 헛되고 헛된 인생이 창조자를 기억하고 그를 경외하는 것이 사람의 사람된 본래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솔로몬 왕이 사용한 영감의 표현 중에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란 말에 유의해 보기도 합니다. 이 말의 확실한 의미는 사람의 전부란 뜻입니다. 70인역(LXX)에는 전 인생이라고 번역했고, 레비(Levy)인생의 근본 법칙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전부가 무엇인가?

 

.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재물)는 결코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바로 솔로몬 왕 자신은 이러한 부를 누린 전무후무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전도서 510절에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고 하였습니다(6:2).

록펠로는 그의 전성기에 하루에 25만 달러의 수입을 올릴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96세까지 오래 살면서 실로 기하학적인 많은 돈을 소유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소유했던 그 많은 재산은 결국 자신의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 돈을 소유했을 뿐입니다

J.P 모오건은 한 때 미국 재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막대한 세력을 행사하는 금융가의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사람들은 모오간씨가 없다면 우리 금융계는 아무 일도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라고 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남프랑스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죽고 말았습니다.

한 때 헨리 포오드의 수입은 하루에 50만 달러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 액수는 시간당 2만 달러가 넘는 것이었습니다. 분당 333달러, 초당 5달러 50센트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재산은 결국 그의 전부가 되지 못했습니다.,

재물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사람을 위해 잠정적으로 관계하는 한 부분이 됩니다. 결코 그 많은 재물이 죽음을 만난 인생 문제를 해결할 길이 전혀 없습니다. 이상하게도 재물에 대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가지면 끝없이 더 가지고 싶어 하다가 마침내 은과 함께 멸망에 빠지는 비운을 만나게 됩니다(8:20).

(재물)을 인생의 전부로 삼는 자는 그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 그것이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러 자학에 이르고 맙니다(딤전6:10).

 

.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영화(명예)도 결코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솔로몬은 모든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헛되다고 하였습니다.

전도서 416절에 저의 치리를 받는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저 로마의 황제 쥴리우스 시저는 영원한 권세의 야망을 추구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자기의 심복이었던 부르터스에 의해 살해를 당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불과 32세의 젊은 나이로 당시에 알려졌던 세계를 다 정복했지만 30세 초기에 조사(早死)하고 말았습니다.

나폴레옹은 전 유럽을 그의 수중에 장악하려 했던 그 순간, 저 워터루의 전투에서 패전의 쓴잔을 마시고, 유배지에서 참담한 모습으로 영웅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카이젤과 히틀러가 그의 일본의 동조 같은 자가 세계 정복의 야망을 꿈꾸었으나, 오히려 저들은 역사의 현장에서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너무 묘하게도 해방 후 반세기가 지나가는 한국 민주 역사의 과정에도 우리는 놀라운 역사의 교훈을 받고 있습니다. 건국 초기의 국부(國父)처럼 등장했던 저 자유당 정권의 이승만 대통령은 독재 정권으로 망명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 후 민주당 정권의 장면 총리는 저격을 당했습니다. 다시 군사 혁명 정부를 수립했던 고() 박정희 대통령이 그의 심복에 의하여 저격을 당했습니다. 그의 뒤를 잇던 전두환, 노태우 전직 군부 대통령이 그 백성의 심판을 받는 중에 있습니다.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계 정복의 대왕이 되었던 알렉산더는 더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는 이유로 주저앉아 울어 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후에 그는 곧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해 아래 살아가는 인생들의 영화는 그것이 사람의 전부가 아니고 지극히 적은 한 부분임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쾌락도 결코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솔로몬은 전도서 2장 중에서 향락의 허무성을 독백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하고 싶은 것을 위시하여 육신의 즐거운 것을 다 추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산업도 크게 해 보고,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수목을 기르고, 노비를 부려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은금과 왕들의 보배(보물)를 쌓아 보고,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두어 보기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눈이 원하는 것 마음이 즐거운 하는 것을 막을 자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결국 이러한 인생 쾌락의 유물을 가리켜 미친 것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희락을 논하여 말하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습니다(2:1-11). 그리고 인간 지혜의 허무성(2:12-17), 인간 수고의 허무성(2:18-23)을 실토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하였습니다(1:2).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갖는 감각적 쾌락에서 결코 참 행복과 참기쁨과 참 평안을 찾을 길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이 추구하는 쾌락이나, 지혜나, 수고가 결코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그것은 인생의 부분이라는 사실입니다.

 

. 하나님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하였습니다.

 

12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허무의 늪에서 빠져 나와 결국 사람의 사람된 본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의 사람된 전부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람의 전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전부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첫째, 존재론적 의미에서 하나님이 인생의 창조자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인생 전부, 곧 존재 자체의 근원이란 뜻입니다.

바로 창세기 28절에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의 육신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후에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이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두 사람을 부부 되게 하여 인류 역사를 시작하게 하였습니다(2:21-25).

하나님은 사람의 알파요 오매가 이십니다.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란 뜻입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의 전부를 창조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만이 사람의 사람된 내용을 다 아시는 자란 뜻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란 뜻입니다(1:26).

 

둘째, 가치와 목적론적 의미에서 하나님 경외를 위하여 창조하였다는 뜻입니다.

우리 본문에 하나님 경외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전부는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하여 지음 받았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사람의 사람된 내용과 가치와 목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전부는 하나님 경외에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창조 목적이요, 창조 질서요, 축복 질서라는 사실입니다.

전도서 311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영원의 실존이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피조세계)을 지으셨습니다. 그것들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창조되어 사람들의 소유가 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수단들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세계는 사람에게 종속되어 있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27절로 30절에는 모든 땅의 피조물, 하늘의 세계, 바다의 세계를 사람에게 주어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그것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수단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만물은 다 너희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3:21-23). 그렇다면 존재하는 피조 세계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존재하는 피조 세계는 인생을 위한 부분이요, 수단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인생의 전부는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구원론적 의미에서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생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사람된 전부는 영생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자신의 창조 목적입니다. 태초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인생 창조는 영생이었습니다. 죽지 않는 영생의 존재로 창조했습니다. 죽음은 하나님 창조의 본래가 아닙니다. 영생이 창조의 본래요, 인생의 본래였습니다. 죽음도 인생이 범한 죄의 결과였습니다. 죄의 삯이 사망이었습니다(6:23). 죽음은 정상이 아니고 비정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생을 사망에서 구원하여 창조 본래의 영생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어 진노하심에서 구원하였습니다(5:6-11).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전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아들 예수와 함께 영원히 영생할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우리는 이상한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뒤죽박죽 되어 무엇이 어떻게 되어 가는 것조차 분별하기에 아주 힘겨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무질서와 패괴와, 혼돈 속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의 사람된 내용과 신분과 가치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거저 거저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은 거저 거저, 그렇게, 이렇게, 저렇게, 아무렇게 살아갈 존재가 아닙니다.

그 큰 이유는 사람의 사람된 존재 의미가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사람된 존재는 그 본질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보다 못한 그 어떤 피조물이 사람의 전부일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의 주인이나 왕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식도, 아내도, 친구도, 명예도, (), 그리고 이 세상에 사람과 관계된 모든 것도 사람의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전부로 삼고, 그를 경외하도록 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수단을 목적으로 둔갑을 시켜서도 안됩니다.

사람의 전부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 첫째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의 전부, 곧 영육을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그 두 번째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 경외를 위한 목적적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 셋째 이유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영생할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자신이나, 다른 어떤 것을 사람의 전부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사람의 전부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창조와 구원 계시의 전 내용입니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