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전도서

전 4:9, 모여서 하나가 되라

'코이네' 2023. 6. 24. 20:06

모여서 하나가 되라 

본문 : 전4:9-12

 

 

4: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 을 것임이라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오늘은 그 옛날 히브리인들의 모습을 살피면서 오늘 우리와 유사한 점을 찾아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 할 것인가, 문제의 해결을 어떻게 하는가를 발견하여 승리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생활을 40년간 하게되는데 그 동안에 하나님께 불순종하던 백성들은 다 죽고, 그 후손들이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여러가지 상황속에서 서로 굳게 결속하여 마음을 하나로 하여 손을 굳게 잡고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가나안을 정복해 나갔던 것입니다.

 

저들은 모세가 죽기전에 했던 유언에 따라서 가나안을 정복하는 위험한 사명에 기꺼이 자신들을 헌신했던 것입니다.

또한 저들의 헌신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을 따라서 성공을 할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가 된 저들을 붙잡아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구약성경 민수기 13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후에 저들이 믿음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자 하나님은 저들은 가나안을 정복할 자격이 없음을 아시고 저들에게 허락치 아니 하셨던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힘으로는 절대로 가나안을 정복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셔야 하는데, 하나님은 믿음으로 말씀으로 하나가 될때 도와 주시는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사람들이 다 죽고 이제 모세의 유언에 따라 여호수아와 하나가 된 믿음의 사람들이, 모세의 말씀에 순종하여 여호수아를 따를때에 가나안이 정복되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우리 교회도 정복해야할 가나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미칠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특별 기도회를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목숨을 걸고 기도를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만의 힘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사람의 희생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기도해야 하고 우리 모두가 하나 같이 희생할 때 하나님은 함께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모여서 하나가 되는것이 흩어져 개체로서 있는것보다 얼마나 큰힘과 유익이 되는가를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 17장에도 예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내용이 나옵니다. 성도가 하나가 되기를 그렇게 원하셨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마음이 완악한 이 세대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이 그렇게 원하시는 하나가 되어지지 못한 현실을 볼때에 심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오늘 현실은 개인주의 사상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몸된 교회를 중심한 공동체의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아시는 대로 교회라는 말은 에클레시아라는 말로서 구별하여 불러낸 무리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세상에서 불러내어 예수님의 몸된 지체로서의 교회안에 한 일원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불러주심을 잊어서도 안되며 일하지 않아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공동체의 삶입니다. 연합의 삶입니다. 너와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로서 일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 깊은 교제를 원하고 계시며 그렇게 사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만한 관계를 교회와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일도 사랑해야 합니다.

제가 전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의 다정한 친구가 어디에 있는가? 만약에 다정한 친구가 믿지 않는 친구라면 그것은 여러분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친구는 믿는 형제야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내안에 내가 아버지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소서라고 기도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가 될때 아버지의 뜻이 이루워 집니다. 우리가 서두에도 말씀드렸듯이 기도로 말씀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나로 할때 하나님이 계획이 되고 하나님의 경영이 되는 것입니다.

! 여러분 제가 비젼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해보려고 기도회도 하고 어떤 사람은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가령 여러분이 협조 해주지 않는다면 결국은 실패가 될것이 아니냐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하나님은 내가 아니래도 또 여러분이 아니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수가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시겠다고 하셨고, 이들이 외치지 않으면 이 돌들이 외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동참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일이 성취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이고, 그러나 마땅이 나의 뿐깃인데 감당하지 못한 우리는 우리의 분복이 다른 사람에게로 돌아 간다고 하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행하시는 곳은 항상 많은 사람이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을 호위하는 사람도 있고 예수님을 대접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으로 부터 사랑을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칭찬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으로 부터 병고침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구경꾼들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구경꾼들은 그 옛날이나 오늘이나 똑같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경꾼들은 예수님의 행하시는 일들을 봅니다. 그리고 놀라고 감탄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지는 몰라도, 그러나 그 모든 사건이나 행하시는 모든 일들, 그리고 제자들, 은혜받고,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과,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극장엘 가면 많은 사람이 자리를 같이 합니다.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에로 시선을 모읍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같이 웁니다. 같이 웃읍니다. 그리고 끝나서는 각각 자기 나름대로 갈길을 가버리고 맙니다. 같이 울고 같이 웃었으나 거기에는 서로 간에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극장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공연을 보러 온것이 아닙니다. 연설을 들으러 온것이 아닙니다. 구경꾼이 아닙니다.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성도들이 교제가 없다면,그리고 하나님의 일에 협력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에 2장에 보면 중풍병자를 메고 온 네 친구가 있습니다.저희들의 믿음이 하나가 되고 사랑이 하나가 되고 행동이 하나가 될때에, 예수님은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믿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건 하나가 되는 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씀안에서 기로로 하나가 되고 믿음으로 역사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안에 있고 내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무엇이든지 이루리라말씀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과연 이 교회에 대해 주인공으로 일하고 있는가? 아니면 방관자 인가? 무대위에서 함께 땀흘리며 일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구경꾼인가 솔직히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가 앞으로 큰일을 할수가 있느냐 아니냐부흥하느냐 이대로 주저앉고 마느냐의 관건이 여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벳세다 광야에 장정만 5천명이 모였습니다. 이제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고 배는 고픈데 장정이 5천명이나 있었지만, 저들은 이 상황을 보고도 어쩌지 못하는 무능한 장정들이었습니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누구도 최선을 다 해보는 자세를 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때 5천명이라는 수에도 치지 않던 한 소년이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져와 헌신을 했습니다. 어린 소년의 극히 작은 헌신이지만, 그 헌신이 예수님과 하나가 될때, 거기에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린 한 소년만도 못한 믿음을 가졌고 정말로 무능한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영국의 윈저공은 사랑을 위하여 왕관을 버렸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위하여 세상의 모든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여러분의 사랑을 원하신다면, 여러분의 왕관이라도 드릴 용의는 없으십니까?

신명기서 64절에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요구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죽도록 충성하라고 요구 하십니다.

여러분! 주님 사랑하는 일에 교회를 사랑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보셨습니까? 정말 주님을 교회를 위해 죽도록 충성해 보셨습니까? 죽도록 까지는 아니드라도 힘에 지나도록 충성을 해 보셨습니까?

한번도 해 보지도 않았다면, 만약 주님이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여러분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주님이 그렇게 절대로 묻지 않으시기 때문에, 생각해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러분 그 물음은 오늘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질문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훗날에 하나님앞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했나를 판단 받아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생각해 볼것은, 우리는 주께 메이고 공동체인 교회에 메이고 성도와 아름다운 관계를 갖고 살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안에서 이와같은 관계를 가지고 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어떠한 복을 누리고 산다고 할지라도 진정한 의미의 즉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고 할수 없는 것입니다.

누거복음 16장의 부자는 자신의 세계를 즐기며 휼륭하게 富貴榮華를 누리고 살았지만 이웃이 없는 개체로서 존재했고 이웃을 긍휼이 여기지 못하고 단절된 삶을 살았습니다.그의 결국은 하나님앞에 슬피울며 이를 가는 자리에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라는 공동체를 무시한다면 그는 미래에 있을 천국이라는 공동체를 무시하는 것이 되고 말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앞에는 분명한 목표가 정해 졌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제목이 무엇이며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가 되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청산하고 가나안을 정복하였듯이 우리도 우리 앞의 가나안을 정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길에 여러분의 신앙의 길에 놓여있는, 우리가 돌파해야 할 문제들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또한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길을 내사 능히 감당케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평안함 안일함만을 추구하는 신앙에는 하나님은 축복하지 않습니다. 애굽의 평안함을 추구하는 자들은 가나안땅을 들어가 보지 못하고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자기의 희생을 각오하고 신앙의 모험을 하는자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세계인 가나안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평안히 얻어 먹고 딩구는 돼지가 되기 보다는, 찟기는 아픔이 있을지라도 싸우고 쟁취하는 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와 같은 성도의 인생길에 많은 고난과 역경이라는 난관을 놓으시고 끝없는 도전과 응전을 통해서, 성도들이 성숙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하므로 하늘나라의 상급을 받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금 말씀 드립니다.이제 우리는 결단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해야 합니다. 주님의 선한 사업을 위한 것이라면 나를 희생 할수 있는 믿음의 응답을 할수 있어야 합니다. 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우리 주님의 요구에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확증할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