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전도서

[전12:9] 일의 결국 _ 김기홍 목사

'코이네' 2021. 8. 12. 11:36

일의 결국

(12:9-14)

 

 

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은 먼저 갔다온 사람들을 찾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준비하려는 것이다. 특히 먼 곳 미지의 나라를 가려할 때는 더욱 그렇다. 쓸데 없는 장소에서 기분 나쁜 경험을 하면 않된다. 좋은 장소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 처음보는 음식을 먹고 특유의 문화를 접한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차고 넘쳐서 돌아온다. 이것이 여행의 목적이다.인생을 여행이라고 한다면 아주 오래고 먼 여행이다. 평생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추억을 만든다. 그리고 멋진 경험을 하면서 훌륭한 일을 많이 하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품으로 간다. 얼마나 멋진 삶의 여행인가!

 

반면에 평생을 시행착오 속에서 낭비하다가 종착역에 도착해 심판을 받는다면 얼마나 후회가 넘치게 될 것인가.참으로 인생은 특별한 여행이다. 무한한 가능성 속에 수십억의 인생이 있다. 거지에서 왕까지 노예와 상전의 경험을 하며 알 수 없는 미래로 설래며 달려간다. 좋은 여행길을 소개 받으려면 가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러기에 모두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그들이 진솔하게 경험을 후배들에게 심어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전도서는 인생길의 모든 결국까지 가 본 사람의 가르침이다. 자기가 기록한 내용이 모두 정직한 진리의 말씀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의 말을 잘 들어본다면 할 일과 안 할 일이 분명해진다. 어디 전도서뿐이랴! 잠언도 그가 쓴 것이다. 그리고 성경의 다른 부분 역시 같은 내용을 주고 있다. 그뿐 아니다. 아무도 경험 못한 새로운 경지로 가는 힘을 준다.

 

1. 인생은 헛된 것과 유익한 것이 있다

 

전도자 솔로몬은 왕이었다. 인물 좋고 건강하였고 최고 부자였다. 그의 그릇과 가구는 모두 금이었다. 수천명의 아름다운 처첩이 있었다. 똑똑하고 잘난 아들들이 있었다. 왕들이 그를 존경하고 공물을 드렸다. 무엇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였다. 인간이 가볼 수 있는 최고 경지에 도달했었다. 인생여행에 그보다 멀리 가본 자 어디 있었던가!그의 말을 잘 들어 보아야 한다. 그가 말한다. 처음부터 헛된 목표에서 헛되게 가는 인생이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영원을 향해서 가치있게 가는 인생도 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한 사람은 생명 없는 경험이요 다른 사람은 살아있는 경험을 한다. 한 사람은 자기 영혼에 해를 끼치며 산다. 다른 사람은 모든 경험이 영혼에 유익을 준다.헛된 것은 시간이 지남과 동시에 없어진다. 입체영화 보는 것과 같다. 눈 앞에 무서운 괴물이 다가온다.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면서 공포에 소리지른다. 하지만 실체는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안경을 벗어야 한다. 끝나고 나면 아무 것도 남는게 없다. 왜 피하고 소리쳤는지 모른다. 안경만 벗고 나면 공포가 사라지는데 그냥 쓰고 앉아서 휘둘린다. 또한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한없이 아름다운 경치 속에 멋진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감미로운 음악이 들리고 여러 사람들이 와서 시중을 들며 분위기를 돋군다. 이런 상태로 한없이 있고 싶다. 아마도 솔로몬은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영화보는 것과 같다. 안경을 벗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님을 누구나 안다.왕의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하면 다 행복이 오는게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해 아첨한다고 그 상태가 내 영혼에 유익이 되는게 아니다. 모든 경험은 입체영화와 같다. 세상 경험 그 자체는 영혼에 유익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 경험이 하나님과 함께 만드는 것이라면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힘으로 하는 것이라면 영혼은 힘을 얻는다.그러므로 전도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도다. 모두가 헛되다." 세상에 새로운 일도 영원한 것도 없다. 아무리 좋은 경험도 그칠 날이 있고 동시에 아무리 아픈 경험도 반드시 마치는 날이 있다. 육신만 위해 살았던 일의 결국은 모두 허무로 돌아가고 만다.

 

전도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충고한다. 그러면 그 경험에 생명이 주어진다.그렇게 무서워하던 것들이 영원하지 않다. 그렇게 사랑하던 모든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 사라지고 만다. 원수도 고통의 경험도 부모도 애인도 돈도 명예도 다 그렇다. 하지만 하나님의 것은 영원히 있다. 그의 말씀, 그가 되리라고 한 모든 내용들, 약속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영원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사라지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그러므로 거기 맞추어서 삶을 계획하고 살아나가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헛되고 헛된 이유가 무엇인가? 영원한 것들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모든 만물의 본체를 잡으면 그림자는 저절로 따라온다. 사람들이 이 점을 잘 믿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불변하시는 분이다. 사랑과 약속과 능력과 아버지 됨이 영원하시다.

 

2. 유익한 것에 맞추어 인생을 살아가라

 

유익한 삶은 어떤 것인가? 첫째로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심판을 염두에 두는 것과 안두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삶에 준다. 세상의 모든 두려움은 그림자와 같다. 모두가 언제인가는 끝난다. 적어도 죽음으로 세상적인 모든 것은 끝난다. 그러나 영혼은 육신처럼 죽어지지가 않는다. 헛되고 헛된 것처럼 죽음도 그렇게 없어지고 말리라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진짜 죽음이 기다린다. 심판이 그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헛된 것들 속에 무서운 일들을 보여주며 진짜 심판을 예고해 주신다. 불신자들도 심판에 대한 막연한 느낌은 모두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당장 눈 앞의 일들, "헛되고 헛된" 것들에 사로 잡혀서 애써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면 신자도 심판을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신자에게는 심판이 아니라 상급이 있다. 이것도 명심해야 한다. 영적인 세상에서는 작은 것이라도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는 엄청난 결과로 나타난다. 하지만 상급은 그 반대이다. 이 세상에는 작은 일 같아도 장차 올 영원한 세상에서는 엄청난 상급으로 돌아온다. 그러기에 최선을 다해서 달려야 한다.

 

교우 한 분이 콘택트 렌즈를 잘못 사용해 눈을 뜰 수 없게 되었다. 눈이 멀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며칠을 누워있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에 들린다. "내가 왜 네 눈을 고쳐주어야 하느냐?" 이때 가족이나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산 것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일한 것만 생각났다. 그것만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둘째 삶의 원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제일 원리와 함께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희생하고 고생만 하는게 아니다. 남이 모르는 능력과 기쁨이 있다. 신자가 기쁨과 확신에 잡혀 있지 않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2:24) 그뿐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는 특별한 복이 주어진다.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26) 이 말씀을 믿는가? 그러면 기뻐하라. 재산 모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하나님 기뻐하시는 자가 되는 일이다.

 

그러나 세상 일 역시 중요하니 세 번째 명령으로 모든 기회를 최대한 선용하며 살라 하신다. 하나님만 찾는다고 세상 일을 제대로 안한다면 잘하는게 아니다.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신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지혜의 말씀이 어디서 왔는가? 인생에서 모든 길의 결국을 본 사람이 한 말이다. 남들이 해보고 싶은 것, 먹고 싶고 누려보고 싶은 모든 것의 최고봉을 다 해 본 사람이 충고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 그를 즐거워하고 주신 모든 복으로 행복하라. 감사해라.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일하라. 이 순서를 바꾸면 모두가 헛 것이다.

 

3. 이러한 삶의 힘을 하나님에게서 얻으라

 

사실상 누구나 자기의 분복을 기뻐하고 자기의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고 싶을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족을 사랑한다. 자기 분야에서 모든 힘을 다해서 최상의 결과를 맺는다. 알맞게 재산도 모으면서 선도 행하고 말년을 준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배하며 올바로 산다. 이러한 삶은 다른 성현들의 가르침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문제는 그럴 힘이 어디서 나오냐는 것이다.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 정말로 그렇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서 오는가이다. "다 한 목자의 주신 바니라." 그렇다.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전도자의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은 다 잘알고 있다.(왕상3:12) 그는 일천 번제를 드리고 지혜와 축복을 받았다.오늘날의 신자들은 그것을 거저 받아 가지고 있다. 하나님 스스로가 신자 속에 들어와 사신다. 하지만 누구나 그 힘을 누리지는 못한다. 감각적 현실과 거기에 해당된 일만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혼의 일이나 거기 주어진 축복과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다.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와 함께 살라. 자신에게 주어진 분복을 기쁨으로 누리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기쁨이 속에 주어진 것을 안다면 모든 것들에서 하나님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사랑과 자비로서 선물을 주심을 알게 된다. 그러한 믿음으로 만물을 받는다면 모두가 축복으로 변한다. 거친 음식을 먹어도 하나님 없는 사람들보다 몇 배 맛있게 먹고 건강과 풍요를 얻는다.하지만 만물에 보여지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은 그냥 물질로만 보게 된다. 그러면 물질 이상의 효과는 경험되지 않는다. 아무런 영적인 권능이나 축복은 경험되지 않는다. 그러한 삶에는 기적이 없다. 그냥 생명 없는 물질로 그칠뿐이다. 아무리 모으고 아무리 쌓아도 죽은 시체처럼 썩어간다. 결국에는 모두가 헛된 것일뿐 아무 의미가 없다.거기서 세상을 지배하고 감상하는 능력도 절대로 나올 수 없다. 모든 삶은 그냥 생명 없는 메마른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훌륭한 집 안에 앉아서도 지루함과 무의미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초가집에서도 행복할 것이며 초가집이라도 차츰 궁궐로 변해갈 것이다.

 

믿는자는 주위를 황금의 동산으로 만든다.오늘도 전도자는 외치고 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라. 그로부터만 생명의 능력이 나온다. 그가 우리 안에 계셔서 모든 힘을 지금 공급하고 있음을 믿으라. 매순간이 복된 것이 된다. 하지만 그와 단절되어 살거나 그를 잊고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은 "헛되고 헛되나니 모든 것이 헛된 것"이 될뿐이다. 이것이 일의 결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