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시편

시 50:22, 감사로 드리는 제사

'코이네' 2023. 6. 29. 20:44

감사로 드리는 제사 

본문 :  시편 50:22-23

추수감사절 설교 

 

 

 

짤막한 본문 속에서 우리는 두 종류의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그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의 종말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이 어떤 것인가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좀더 자세하게 본문을 살피겠습니다.

 

1.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

 

22절을 보면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사랑과 믿음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말합니다.이는 다른 관심거리가 새로 생겼기 때문이며,다른 사랑의 대상이 생겼기 때문이며 다른 신뢰의 대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어느 여론 조사 기관에서 가정 주부들을 대상으로 감정 유발의 동기와 처리 방법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남편이 당신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경우는 언제인가라는 설문이 있었는데,대표적인 대답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남편이 친정 부모나 형제들의 단점을 들출 때.

자신의 생일이나 결혼 기념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갈 때.

걸핏하면 당신 때문이라고 모든 잘못을 떠넘길 때.

다른 여자를 지나치게 칭찬할 때.

자질구레한 용돈 쓰는 일까지 간섭할 때.

남편이 자신이나 가정에 불성실할 때.

요약하면 남편의 관심과 사랑이 어떤한가에 따라 감정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시인이 말하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은 하나님보다는 다른 것들에 관심을 빼앗겨 버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다음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첫째,영적 탈진 상태가 일어납니다.

영적으로 힘이 빠지고 쇠약 증세가 나타나게 됩니다.성경 말씀과 기도와 찬송이 멀어지고 교회도 점점 멀어집니다.

둘째,감사가 없어집니다.

그와 동시에 원망과 불평과 짜증스런 사람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셋째,모든 것이 파괴됩니다.

본문 22절은 그것을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찢는다는 것은 분열과 파괴를 의미합니다.하나님을 떠나면 인격도 정신도 영혼도 산산조각으로 찢어지는 분열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본문은 하나님께서 찢으면 건질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본래 이스라엘은 통일 국가로 출발했습니다.그러나 제3대 왕인 솔로몬의 범죄와 타락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찢으셨습니다.,솔로몬이 죽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면서 이스라엘은 두 나라로 찢겨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두 나라가 다 망하기까지 그들은 통일을 보지 못했습니다.그것은 찢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면 하나님만이 다시 건지시고 하나 되게 하실 수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삶은 감사가 없는 삶입니다.감사가 없는 삶은 불만스런 삶이며 불평스런 삶이며 불안한 삶입니다.그리고 삭막하고 음산한 삶입니다.

감사가 없는 삶이 발전하면 산산조각이 나고 인격도 신앙도 찢어진 종이처럼 아무 쓸모가 없어져 버립니다.

 

2.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

 

23절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에서 열렸던 노회 기간 중의 세미나에서 한 신학 대학 교수는 강연 중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하였습니다.

현재 매년 1,100만 헥타르의 삼림이 없어져 가고 있는데.그곳엔 다시 나무를 심어도 크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매년 260억 톤의 곡식을 거둬 들일 수 있는 땅이 황무지로 변하고 있으며,매년 600헥타르의 땅이 사막이 되어가고 있고,세계 도처에서 매년 수천 개의 호수가 산업화로 오염되어 죽어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지하의 물줄기가 말라 가고 있기 때문에 샘을 파도 물이 나오지를 않고,매년 수천 종의 동식물이 멸종되어 가고 있는데 적어도 20년 안에 모든 살아 있는 종자의 5분의 1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교수는 삼천리 금수 강산에 살고 있다는 것과 아무데나 샘을 파면 물이 솟고,나무를 심고 씨를 뿌리면 싹이 나고 자라는 땅에 산다는 것을 감사해야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에겐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감사가 너무나 많습니다.그리고 감사의 표현과 표시 방법에는 다음 세 가지가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는,항상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입니다.

둘째는,항상 입으로 감사를 표현하려는 것입니다.

셋째는,물질로 감사의 정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감사는 이상의 세 가지 방법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 성립됩니다.어느 것 하나만으로는 온전한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려면 마음으로 감사하고 입으로 고백하고 그리고 물질도 드려야 합니다.

 

본문 23절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에게 임하는 세 가지 은혜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을 갖습니다.

첫째는,하나님 중심의 삶을 산다는 것이고

둘째는,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는 것이고

셋째는,하나님께 순종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의 감사를 기뻐하십니다.특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를 기쁘시게 받으십니다.

가인의 제사에는 감사가 없었습니다.그러나 아벨의 제사는 감사로 드린 제사였기 때문에 받으셨습니다.감사로 드릴 때 그 제사는 열납되는 것입니다.

 

2)그 행위가 옳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행위를 옳은 행실로 인정해 주실 뿐만 아니라 감사의 제사를 통해서 나의 그릇되었던 행실이 옳게 된다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에 힘썼습니다.

특히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그리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제사를 받으시고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에도 제사가 나오는데 왜 조상 제사를 반대하느냐고 묻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그 대상이 하나님이십니다.,살아 게신 인격적 존재이며,드리는 제사를 인격적으로 받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상 제사는 후손의 도리일 뿐 그 조상이 인격적으로 제사를 받거나 응답하지는 않습니다.

즉 구약의 제사는 예배와 경배이며 전통적 조상 제사는 일종의 도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동일한 취급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드리는 자세와 방법이 정당해야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신약의 예배 역시 준비와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예배에 못지 않게 옳은 행실과 옳은 삷도 중요합니다.아니 얼마나 예배를 잘 드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삶을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3)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두 눈으로 똑똑하게 하나님의 구원을 목격하게 됩니다.

시편 91:16을 보면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고 했습니다.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만족하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14:13을 보면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시편 50:23과 시편 91:16과 출애굽기 14:13에서 구원을 보이리라”,“구원으로 보이리라”,“구원을 보라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면서 살아온 민족입니다.

홍해에서 바로의 군대를 수장시키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감격적인 현장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여리고 성에서는 일주일 만에 여리고 성벽이 무너지는 장엄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뢰 소리 때문에 블레셋 강병이 혼비 백산하여 지리 멸렬하는 기적적인 승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강대국 앗수르와의 전투에서는 하나님께서 동원하신 전투 방법으로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사 185천명이 시체로 변하는 상상도 못할 승리의 현장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보다더 중요한 것은 누가,언제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느냐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복음서는 죄인이 구원받은 이야기들과 병든 자가 치료받은 이야기들과 약자가 강자로 변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외면한 채 절망과 좌절과 불행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구원과 희망과 사랑과 평화를 날마다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이겠습니까?

본문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면서 살게 e된다고 말합니다.

두 여인이 있었습니다.그들은 서울 시내 모 명문 여대의 동기 동창이었습니다.졸업 후 K여인은 돈 많고 인물 좋은 재벌 3세와 결혼해 영동 고급 주택가에 신혼집을 차렸습니다.그러나 3년 만에 이혼했습니다.이혼 사유는 서로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여자네 가정 형편이 남자네 쪽과 걸맞지 않는다는 것,그리고 거기에 남자의 외도까지 곁들여 급기야 이혼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그녀는 지금도 신경성 불면증과 위궤양,만성 두통 등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C여인 역시 청년 실업가와 결혼했습니다.그들은 K여인 부부처럼 화려한 출발은 아니었습니다.하지만 점차로 화려한 행복을 엮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유는 날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날마다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과 평화를 바라보며 체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누가 불행한 사람입니까?

감사가 없는 사람,사람의 조건만 쳐다보고 사는 사람,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지 않고 저 멀리 지평선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바로 그들이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1984년도 어느 금요일 저녁 철야 기도회 후에 권혁진 전도사(당시 학생)가 기타로 딩동거리며 만든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시편 50:23을 주제로 만든 노래입니다.

그리고 이 노래는 오늘 설교의 결론이기도 합니다.감사로 제사를 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