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골로새서

[골 2:11] 할례와 세례

'코이네' 2023. 5. 18. 20:53

 

할례와 세례

골로새서 211-15

 

 

이날 아침에는 할례와 세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말씀이 세례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세례의 중요성을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고 이미 세례받은 세례교인들에게는 세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아 더욱 더 주님 앞에, 그리고 몸된 교회에 온전한 순종과 헌신을 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구약시대의 할례가 신약시대의 세례의 모형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 11절에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받았는데, 그 할례와 곧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간의 맺은 언약의 중표였습니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시기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9절과 10절에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대대로 자자손손 지켜야 할 언약이었습니다. 창세기 1711절 하반절에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表徵)이니라고 하였는데 할례가 언약의 표징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713절에 모든 사람이 다 할례를 받아야 할지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언약의 표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몸에 새겨진 흔적이었습니다. “너는 내 것이다.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증표, 심볼(symbol)이었고, 흔적(mark)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신분증명서(I. D. Card)였습니다. 즉 주민등록증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주민등록증은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하는 일종의 증표인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할례는 몸의 살을 베어 내어 흔적을 내는 낙인이요, 흔적이요, 증명서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어떤 형제가 부모님 슬하에서 다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6. 25가 발발하여 부모님은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하고 형제는 서로 헤어지게 되었답니다. 40여년 동안 헤어져 살다가 마침내 형제가 만나게 되었는데 형제임을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린 시절에 다친 상처의 흔적으로 말미암아 기쁨의 해후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할례는 바로 사람의 몸에 새겨진 상처의 흔적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 흔적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징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확실한 증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별도의 신분증명서(I.D. Card) 등을 소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몸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흔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는 구약시대의 할례가 세례로 바뀌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 영원한 징표가 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 순간 하나님께서 너는 나의 자녀가 되었다 너는 내 것이다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자녀가 된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네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고 고백하므로 죄사함을 받았고 구원함을 받았느니라 이제부터 세상 끝날까지 너를 지키며 너를 붙들어 주리라 너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리라고 하는 구원의 보증, 구원의 확증이 바로 세례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3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구원의 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기에 구원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것은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면 구원의 표가 된다고 하는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례받을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은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세주가 되심을 믿고 스스로 신앙고백을 한 사람에 한해서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는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14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만이 오직 한분 이신 구세주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신앙고백하여 구원받은 사람이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 에디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빌립의 전도를 받고 길을 가다가 물있는 곳에 이르러 말하되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줄 믿노라라고 고백하자 빌립이 그에게 세례를 베풀어 에디오피아 사람 내시가 침례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가 되심을 확신하고 예수님이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 되심을 신앙고백한 사람이 받는 예식이 세례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구원의 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시고 나의 하나님 되심을 믿고 고백하므로 구원받고, 그 구원받은 확신을 가지고 신앙고백하는 예식이 세례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세례받으신 분들은 이런 확신을 가지고 더욱 더 몸된 교회에 충성하시고 아직 셰례를 받지 못한 성도들은 이런 확신을 가지고 침례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으므로 구원받은 징표로서 세례를 받게 되므로 세례를 가리켜 구원의 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하여 구원의 완성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당장 성화되고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전서 321절 하반절에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레를 받은 다음에는 더욱 거듭난 선한 양심을 갖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며 우리 자신이 날마다 성화되도록 힘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힘써야 될 것은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곧 신분과 상태에 대한 진리인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 사실을 신앙고백하는 행위로서 세례를 받으면 신분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획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분상으로는 하나님의 쟈녀가 되었다곻 할지라도 그 상태는 아직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성품을 온전히 지니지는 못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화한 것이 아니라 옛 사람의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날마다 옛 사람의 성품을 죽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기 까지 날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에 참여하여 은혜를 받으므로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낮고 천한 육신의 성품, 옛 성품이 죽어지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화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신분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상태로는 온전히 변화받지 모ᅟᅭᆺ하여 옛 성품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옛 성품을 날마다 죽이며 옛 성품을 십자가에 못박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예로 북한에서 귀순해 오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ㅇ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 적응능력 등은 기존의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앞으로 시간을 두고 환경에 적응하고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동 서독이 통일이 되기 까지는 교회가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서로가 서신왕래가 이루어졌고 동독이 서독의 생활상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동독 사람들이 서독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전혀 다른 생활 상태에서 통일이 된다고 하면 큰 혼란이 야기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간을 두고 서로의 문화를 접한 다음 통일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구원받지 전에는 세상풍속을 쫓으며 살았고, 옛 성품, 그대로, 육체대로, 정욕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으므로 신앙고백을 하여 구원받은 것입니다. 구원의 징표, , 세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상태까지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옛 성품을 그대로 지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옛 육체내으 소욕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으로 화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연단을 받아야 하며, 많은 시련을 경험해야 하며 예배에 열심히 참여하여 말씀을 통해 은혜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받아 옛 성품이 변화되어지고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도구로 다음어져야 합니다. 바로 이 과정이 신앙생활이요,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 중심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랜 신앙생활을 해서 변화받을 때가 되었는데도 변화받지 못하고 여전히 육체대로 살고, 여전히 정욕대로, 옛 성품을 그대로 지니고 산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오래했으면 분명히 변화받아야 합니다.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두운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변화받아서 성도들 간에도 본이 되어야 하고 몸된 교회에 더욱 더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할례는 두가지가 있는데 손으로 하는 할례와 손으로 하지 않는 할례가 있습니다.

손으로 하는 할례는 육체의 몸을 베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손으로 하지 않는 할례는 그리스도의 할례인데 마음의 할례라고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롈을 히브리어로 물롵()”이라고 하는데, “베어낸다의 뜻입니다. 육체의 살을 베어내는 예식이 할례인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육신의 몸을 베어내는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가죽을 베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44절에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육신의 몸을 베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가죽을 베는 것이 중요합니다. 완악한 마음과 패역한 마음과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마음을 베어내야 합니다. 불의한 마음, 거짓된 마음, 불순한 마음들을 베어내야 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할례입니다.

로마서 228절과 29절에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고고 하였습니다.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할례, 신령한 할례가 중요한 것입니다. 육체의 자국과 흔적을 주는 할례보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 순종과 헌신을 요구하는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할례당이라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리고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과 이방인들 멸시하고 천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926절 하반절에 대저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615절에 할례나 물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고 하엿습니다.

 

세례도 두가지로 물 속에 몸을 담그는 세례와 마음의 세례입니다.

물세례를 받은 다음에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의 세례로 고린도전서 101절이하에 보면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라고 하였습니다.

홍해 바다를 건넌 것은 세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애굽의 세력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며, 바로의 학정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렇게 홍해 바다를 건너므로 세례를 받앗는데도 마음의 세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광야 생할을 하면서도 여전히 악을 즐기고 우상을 섬기며, 간음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마음의 세레를 받지 못하므로 엳전히 육체대로 살고, 여전히 정욕대로 살고, 여전히 죄를 짓는 생활을 하므로 결국 광야에서 멸절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도 세례는 받아야 합니다. 물세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에 세례를 받는 일입니다.

 

마음의 세례란 완악하고 죄악된 마음들을 제거하고 마음의 죄를 씻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의 할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관의 언약의 징표였습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꼭 받아야 만 했었습니다. 그러나 할례를 받고서도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하다가 멸망을 당했습니다. 신양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세례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이요, 또한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베풍어 주시는 징표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레를 받은 사람들이 마음을 씻고, 마음이 새로와지는 태도의 변화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의 가죽을 베어내는 세레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 앞에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 침례를 받지 못했다면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되심을 확신하시고 신앙고백하시어 세례를 받으시고 침례를 받은 다음에 마음이 새로와지는 마음의 세례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완악하고, 불의하고, 불순종하고, 패역한 모든 마음을 베어버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헌신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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