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골로새서

[골 2;11] 새로운 세계

'코이네' 2023. 5. 24. 17:54

새로운 세계 

골로새서 2:11-15

 

 

 

 

사도 바울은 기독교에 대한 다음 두가지 근본 주장들을 내세웠습니다. ,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거한다는 것과 너희도 그 안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접촉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 메시지의 중심이며 계시와 구원의 목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은 새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존재의 충만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곧 자신의 자유와 왕족으로서의 위치와 영광된 미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 졌으니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입니까? 또한 얼마나 간단한 방법입니까?

골로새 교인들은 아마 이 놀라운 진리를 제대로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을 듯합니다. 그럼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는 어떨까요? 우리들 역시 1세기 때의 교인들처럼 교회의 전통과 격식과 의식들에 집착되어 있지 않습니까? 육에 속한 인간의 모습은 교회사를 통해 늘 반복해서 등장되어 왔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정신은 기독교 내부에서 교묘하게 고개를 쳐들고 나오면서 인간이 만든 종교들을 내걸고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시킵니다.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그의 교우들을 위협하는 이러한 위험스런 유혹을 직시할 수 있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유감스럽게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의 경이로운 성과들을 아직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부분적인 지식이나 또는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지식은 위험합니다.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건전치 못한 데서 눈을 돌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교인이 지금 현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향유하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에서 자신의 가장 값진 소유와 가장 깊은 체험을 가질 수 없어서 2의 축복을 찾아 다닌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곧 골로새 교인들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인간적 전통들과 철학들에 끌려 그런 것들이 자기들의 신앙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바울은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지적함으로써 모든 타종교와 인간의 철학 사상들 위에 기독교를 군림시켰습니다. 그는 이제 이어서 그리스도인의 독특한 특성을 적시합니다. 그의 요지는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옛 질서와 과거의 종교적 체제로부터 완연한 결별을 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단절

 

이 단절은 죽음처럼 종결적인 것입니다. 바울은 세례(침례)의식을 예시로 사용하여 이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세례로도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2:12),

세례’(침례)는 매장(죽었다는 확인임)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흑암의 권세에서풀려나와 그의(하나님)사랑의 아들의 나라로옮겨진 극적인 변화를 여실히 드러내 줍니다(1:13).

분명히 이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세례가 아닙니다. 세례는 이 변화를 상징해 줄 뿐이며 실제의 변화는 그리스도안에서 일어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죽고 또 살아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발생되는 사건입니다. 세 생명은 세례(침례)의 물속에서 태어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써 탄생됩니다.

우리들이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일은 믿음에 의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생명은 믿음 자체에 의해서 우리들에게 주어지지 않고 그리스도에 의해서주어집니다. 믿음은 신자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일을 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가 받는 새 생명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것입니다. 이 생명은 어떤 물리적인 행위나(세례) 혹은 도덕적인 일(믿음)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세례로 상징된 체험의 깊은 내적 성격을 확증 시키기 위해서 할례의 유추를 사용합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2:11).

할례는 유대인이나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소속되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신체상의 표시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할례를 언급하면서 이 유대인의 의식과 자신이 강조하고픈 실체 사이의 구분을 지으려고 시도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인간이 행하는 할례를 위한 신체상의 수술을 그가 벗는다는 말로 표현한 내적이고 영적인 할례와 대조시켰습니다. 육에 의해서 지배되는 옛 사람 곧 죄악된 본성을 벗어버리는 일은 어떤 성례적인의식이나 금욕적인 실행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옛 방식의 죄악된 삶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곧 그리스도인들이 나누어 갖는 그리스도의 생명력에 의해서 탈피될 수 있습니다.

 

완전한 구출

 

그리스도인은 과거의 인연들을 끊은 자입니다. 자기를 포로로 잡고 있던 권세들, 곧 이 세상의 원리들(초등학문)은 더이상 그리스도인을 지배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모든 것들로부터 구출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다 완벽한 복음이라는 미명하에 미끼를 던지는 어떤 권위나 전통이나 혹은 의식들에게 조금도 한눈을 팔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권위와 일체의 종교적 체제들 위에 계신 분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어깨를 견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이외의 권위들은 모두 정죄된 것들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속박했던 과거의 권세들이 완전히 패하였다고 선포하기 전에 그리스도인의 근본적인 체험을 언급합니다. 그는 방금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을 때, 복음에서 증시된 세례로 상징된 부활의 죽음과 비슷한 변화가 발생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는 이 변화가 있기 이전과 그 이후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정의해 줍니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2:13)

첫 번째 상태는 죽음입니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말은 더 이상 옛 삶의 종식이란 뜻이 아닙니다. 옛 삶 그 자체가 영적 죽음의 상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적대 관계에 있는 부패된 본성의 표현인 죄입니다. 이 죄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떨어지게 하는 분리의 상태로 몰고 갑니다. 이것을 성경은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두 번째 상태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영원의 세계에 속한 참된 삶입니다. 이것은 은혜의 선물이며 그 근원은 그리스도입니다. 이 생명은 우리들의 죄가 용서될 때에 시작됩니다.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2:13).

바울이 여기서 서술하고 있는 죽음과 생명에 관한 체험들은 그가 앞에서 원수와 화목이란 말로 설명한 내용과 같은 것입니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1:21-22). 전자의 경우에서는 구원이 하나의 실제적인 체험으로 간주된 반면, 후자에서는 구원의 법적 측면이 강조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법적 측면이 바울의 다음 예시에서 다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새롭게 태어날 때까지 지배를 받았던 옛 종교체제와의 완전한 단절을 명시해 줍니다. 이단들은 이 과거의 체제를 여러 가지 준칙들과 금용적(빛나는 얼굴) 실천 사항의 형식으로 교회에 다시 끌어들이려 하였습니다(2:20-23). 인간을 얽매고 정죄하는 이 인간적 철학의 체계는 십자가에서 완전히 종결적으로 파괴되었습니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2:14)

이 본문 뜻은 골로새 교인들에게는 분명했겠지만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우선, 하나님이 십자가 위에서 취소시키고 제쳐 놓았다는 의문에 쓴 증서’(혹은 채무증서’)란 무엇일까요? 어떤 성경 번역에는 율법을 가리키는 것처럼 옮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율법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페하지 않고 그것을 성취시키려고 오신 분입니다(5:17).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과 생애를 통하여 율법의 깊은 참뜻을 드러냄으로써 율법을 완전케 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15:11-13 ; 22:40 ; 7:12) 문제의 증서는 우리의 손으로 서명한 문서로써 하나님께 대한 우리들의 빚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신들의 악행으로 우리 자신의 정죄에 서명한 셈입니다. 왜냐하면 악의 행실들은 우리 속에 악이 머문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이며 우리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빚은 없어졌습니다. 우리들이 스스로 빚을 갚았기 때문이 아니고(이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빚을 말끔히 청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들을 위해서 갈보리에서 단번에 영원히 얻어주신 용서와 화해는 우리 자신들이 약속어음이 아닌(이것은 어리석습니다.)채무 이행 불능을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을 할 떼에 유효하게 됩니다.

한편 십자가는 우리들의 정죄를 종식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속박도 끝내주었습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2:15). 본문은 패배한 적들을 뒤에서 끌고 오면서 퍼레이드를 벌리는 정복자의 개선 행진을 염두에 둔 묘사로서 매우 뜻이 깊습니다. 십자가는 사람들을 탈선케 하면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라고 속이는 인조 품의 모든 종교 체제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 부활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 자입니다. 그의 세례가 이 사실을 증거해 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그는 죄의 횡포와 무거운 부담으로부터 풀려났습니다. 또한 그는 죄로부터 구출시켜 준다고 장담해 왔던 모든 종교적인 체제에서도 자유케 되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선행이나 금욕적 실행에 대한 규칙들을 소개하면서 죄로부터의 자유를 선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죄로부터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습니다.

옛 세계는 죽었습니다. 이것은 다시 번복시킬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로 인도되는 길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무이한 접촉점이며 독일무이(獨一無二)중개자입니다. 다른 부가물들은 그리스도의 유일하신 가치를 손상시킵니다. ‘덧붙인복음은 다른복음입니다. 아무것도 그리스도를 능가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충만(완전)하여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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